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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soy Coreano, 나는 한국 사람도, Ni soy Japones, 일본 사람도, No soy Desrraigado.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이다. 아련히 기억이 난다. 재일 한국인이 느끼는 차별과 정체성을 다룬 영화 '고(Go)'가 나와서 이슈가 되었던 것을 말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제일동포는 일본인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어딘가 모르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일본 사회에서도 참 어중간한 존재였었다. 첫 장편 첫 장편 '고(Go)'로 재일동포 중 처음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가네시로 가즈키(43)의 신작 '레벌루션 No.0'이다. '레벌루션 No.0'은 레벌루션 No.3 ㅡ> 플라이 대디 플라이 ㅡ> SPEED '더 좀비스'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연작소설인가 보다. <더 좀비스>는 책에 나오는 신주쿠에 위치한 삼류고교 학생들의 학내 모임 이름이란다. 왜 좀비스냐고 하면, 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설은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아서’라고 하니, 이 단어 하나 만으로도 작품 전체에 감이 잡히는 느낌이랄까. 세 권을 따로 읽어도 상관이 없는데, 중간중간에 앞의 책 내용이 언급되는 부분이 있어서, 차례대로 읽는 편이 더 좋다고 한다. 헌데 좀비스 시리즈는 처음이라서 막차를 탄 느낌이랄까. 뭐,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도 괜찮겠지. 왜냐하면 마지막 작품의 결론을 볼 때, 이 시리즈는 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결론이 고등학생 주인공들이 여차여차 졸업을 해서 사회에 나가 이제는 세상과 싸울 차례이다가 아니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레벌루션 No.0을 읽으면 레벌루션 No.3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그러니 재일동포를 포함한 일본 내 마이너리티의 유쾌한<?> 투쟁은 좀비스에 의해 영원히 진행된다는 이야기. {교내에는 순도 100퍼센트의 찌질이들, 주스로 치면 농축액에 물을 탄 과즙이 아니라 과일을 그대로 꽉꽉 눌러 짠 생과일 주스 같은 얼간이들이 우글우글 떼 지어 다닌다..14} 가네시로 가즈키, 굉장히 거칠고 광폭한 필체를 가졌다. 한마디로 피 끊는 중, 고 남학생들의 소설이다. 스피드도 빠르고 비유도 직설적이고 현실적이다. 작가의 감정도 소설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니 광폭한다고 해야 하나? 한 마디로 폭주족이 모는 오토바이 뒤에 탄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들이 은은하고 잔잔하게 때로는 교묘하게 작품에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도 하는 묘한 놀이에서 약간의 패배감에 물들어 권태에 빠져있다, 간만에 시원시원하게 달려 보았다. 또한 이 소설의 인물들 역시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지만 절대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똘똘 뭉쳐 있다. {하지만 나는 게임을 끝내는 방법을 몰랐다. 학교를 그만둔다고 치자. 그다음에는 과연 어디로 가면 좋단 말인가?...28} 꼴통 학교 1학년들에게 갑작스런 비보가 날아드는데 교사들이 기강 해이를 이유로 합숙훈련을 하겠단다. 말이 좋아 합숙훈련이지, 그 이면에는 한 명이라도 더 자퇴를 시켜서 운영비를 남기려는 학교 경영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고립된 수련장에서 죄수보다 더 심한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순신, 히로시, 가야노, 야미시타)이 처한 상황은 참으로 가혹하다. 헌데 이 가혹한 현실에서 네 명의 아이들은 달린다. 맨발로 어둠 속을 질주한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좋은 기억보다는 억울하고 답답하고 짜증나는 기억이 더 많은 것이 일본이나 우리 학교 현실이 아닐까 싶다.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 따위는 싶게 무시되어 더 큰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며 은폐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침묵하고 외면했던 ‘청춘’이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질 거라는 걸 알지만,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무모하리만치 용감하게 도전해 볼 여지도 조금은 남겨 둘 걸 그랬다. 3류고 문제아들의 모험담을 보고 가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만끽하지도 못하니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아서’가 아니라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아서’. 가네시로 가즈키는 조언한다. “그게 싫으면 이렇게 계속 달리면 된다. 간단하다. 놈들의 시스템에서 빠져 나오면 된다. 초등학교 1학년생들의 달리기 시합처럼 계속 달리면 된다.” 재일동포 혹은 다른 이방인들 혹은 외계인, 모두에게 고하는 말인 셈이다. 안주하는 것과 달리는 것. 달린다. 영화에서 어기적 저기적 늘어지며 걷는 좀비들이 달릴 수 있다고? 그래서 달린다고? 기꺼이 동참해볼까? 달려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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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스' 시리즈라고 해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이야기인줄 만 알았다. 그리고 일본 이름인 가네시로 가즈키 라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의 소개를 읽고서야 알게 되다니. 왜 난 이렇게 어리숙한 걸까 혼자 생각했던 책이다. 예전에 <연애소설>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감동받았던 그 작가이다. 재일교포로서는 처음으로 <나오키문학상>을 수상한 가네시로 가즈키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일본인은 아니고 한국에서는 한국말을 못하는 반쪽자리로 놀림받는 자신의 느낌을 좀비라는 것으로 형상화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무엇'인 존재. 그렇게 탄생한 ‘좀비스’ 시리즈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대표작이자 5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온 최고의 청춘소설이다. [레벌루션 No. 3][플라이, 대디, 플라이][SPEED]에 이어 좀비들의 출발선을 그린 , 이 모든 소설들의 원점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삼류 고등학교 꼴통들인 1학년들에게 갑작스런 비보가 날아든다. 기강이 해이하다는 명목으로 합숙훈련을 실시한다는 공고이다. 1학년 450명은 12명이 한 조가 되어 전세버스에 태워진채, 아키키 산으로 연행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그 곳에서 공포와 폭력은 따라올 자가 없는 사루지마 선생아래 지옥같은 훈련을 받게된다. 그러나 이 지옥같은 훈련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생기게 되는데 자퇴를 말리던 노구치로부터 훈련뒤에 숨겨진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학교운영비를 위해 학생정원을 200명이나 늘려 받은 후 입학금과 수업료를 챙긴 후 자퇴를 유도하여 운영비를 남기기위함이었으니, 이를 알게된 K조 꼴통들은 탈주 계획을 짠다. 탈주계획을 짜면서도 빤히 보이는 탈주의 종착역에 대한 망설임도 있었지만 꼴통들은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처음으로 세상과 맞서길 원한다. 집에 무사하게 돌아간들, 남들이 멍청한 짓이라 생각할지라도, 멋훗날 왜 그런짓을 했을 까? 라는 생각을 할지 몰라도 .....그런 탈주라는 학생들의 일탈의 결과는 마지막의 이야기에 집결되어 있다.
"무슨 잘못이 있는데 , 그걸 사람들이 마치 당연한 일인것처럼 여긴다고 해서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거야,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거나, 잘못을 인식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이 필요해. "라는 것을 깨닫는다.
[레벌루션 No.O]는 정체성의 혼란과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들이 느끼고 있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세상과의 갈등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탈주라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하나의 일탈로 간주되지만 그 일탈로 인하여 그들이 세상으로부터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은 청소년시기에 무척 중요한 과정이라 보여진다. 그러므로 따분한 것은 세상의 책임이 아니라며 세상을 바꾸라고 획책한다.그들이 경험했던 무한함 힘과 청소년 안에 잠들어 있는 무한한 잠재성을 깨우라고 말하는 레벌루션, 가네시로 가즈키의 좀비스 시리즈는 이것으로 완결이지만 뒷면에 인터뷰한 내용을 읽어보면 좀비스시리즈에 관한 독자들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된다. 좀비스 시리즈는 청소년들에게 즐거움과 동시에 꿈과 희망을 깨닫게 해 주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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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로는 처음 일본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 작품은 그를 유명하게 했던 대표작들 - 이 글에서 소개하게 될 “더 좀비스”나 나오키 상의 영예를 안겨줬던 <GO>, 일본 드라마로도 유명한 <SP> 등 - 아직 읽어보지 못했었고, <연애소설(북폴리오/2006년 2월)>을 4~5년 전 쯤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모 미니홈피에 정리해놨던 짧은 감상글을 찾아보니 책 제목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연애소설이 아니라 독특한 내용의 소설이었던 그 작품은 중단편 3편의 모음이라 소설 전개도 빠르고 작가의 글 풀어가는 솜씨도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했던, 결론이 단편에 걸맞지 않게 진지해서 되새김할 만한 작품이어서 느낌이 좋았던, 그래서 나에게는 깔끔함, 그리고 탄탄함 두 단어로 기억될 작가라고 평가해 놓았다. 오래되어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꽤나 인상적이었던 작가였던 것 같다. 이번에 드디어 그의 대표작인 “더 좀비스” 시리즈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레벌루션 No.3>, 이문식, 이준기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한 <플라이 대디, 플라이>, <SPEED>로 이어지는 “더 좀비스”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레벌루션 No.0(원제 レヴォリュ-ションno.0 /북폴리오/2011년 9월)>이 바로 그 책이다. 전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아 소개글을 찾아보니
“삼류 고등학교의 꼴통 고등학생들이 이 엄격한 학력사회에 뇌사 상태 수준의 머리를 가졌다는 뜻으로 만든 ‘더 좀비스’ 클럽.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들이 세상을 향해 벌이는 작은 혁명극이자 모험극을 그리고 있는 ‘좀비스’ 시리즈(YES24 발췌)”
라고 한다. 언뜻 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조흔파” 선생의 <얄개전>이 연상되는데, 제목의 “레벌루션(Revolution)"이라는 단어의 뜻인 “혁명”이 말 그대로 “혁명(革命)”을 뜻하는 지 아니면 불량(?) 청소년들의 “반항(反抗)”을 뜻하는지 선뜻 감이 오질 않았다. 176 페이지로 불과 한 두 시간이면 읽어낼 수 있는 이 책을 직접 읽고 나서야 감이 잡힐 것 같아 익살스러운 청소년 남자의 그림이 만화(漫畵)을 연상시키는 책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순도 100퍼센트의 찌질이들”이 모여 있는, 근처에 있는 명문 여고 아씨들이 눈조차 마누치려 하지 않는, 심지어 학교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발생 근원지라고까지 소문이 날 정도 - 주인공은 조류 정도의 지능밖에 없는 얼간이들이 모여 있으니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 로 3류 남고(男高)에 입학하게 된 “나”와 친구들은 열흘전 학교 옥상에서 교내 최강자를 가리는 “쌈질”을 벌인 후 모여서 담배를 피웠다가 그만 정학을 당했다가 정학이 풀리고 등교한 첫날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접한다. 바로 일주일 후 1학년의 풍기가 심각하게 문란해서 3박 4일 동안 군마 현의 아카기 산에서 1학년 전체 합숙 훈련을 실시한다는 소식이었다. 다른 어느해보다 200명이나 신입생을 더 뽑아서 콩나물 시루같았지만 입학하고 몇 개월 만에 수십명이 학교를 그만둬버리는 마당에 무슨 합숙 훈련이라니, 거기에 최악의 폭력 선생 “사루지마”가 지휘한다니 사상 최악의 지옥 훈련이 될 것이 뻔한 그런 훈련이 될 것만 같다. 이혼한 아버지가 지금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이 다녔던 학교로 전학가지 않겠냐는 제의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어쩌면 언제라도 그만두고 갈 곳이 있다는 보험 같은 생각이 든 나는 학교 합숙 훈련에 참가하게 된다. 그런데 합숙 훈련은 역시나 기대(?) 이상으로 최악의 그런 것이었다. 고립된 터에 자리 잡은 수련장에 죄수처럼 갇혀 주변 높은 산을 4시간에 주파해야 하는, 시간 안에 들지 못하면 선생들의 무지막지한 욕설과 폭력이 춤을 추는 그런 지옥 같은 상황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합숙 훈련이면에 숨겨진 학교 재단 측의 음모를 알게 된 나와 친구 일행들은 이 지옥 같은 합숙소를 탈출하기로 모의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결행의 그날 밤, 나와 같은 조 일행 12명은 탈출을 감행한다. 수련원에 싸이렌이 울리고 선생들이 쫓아오는 긴박한 상황, 과연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과연 “나”와 일행들이 벌인 이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교육계에도 “체벌(體罰) 금지”, “학생인권조례 제정”등으로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내가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냈던 불과 십 수 년 전 만 해도 이 책에서의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행위를 실제로 고스란히 겪었던 그런 일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면 정말 어떻게 어린 학생들을 그렇게 때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무자비했던 “폭력” 선생님들이 학교마다 꼭 한 두 명씩 있었고 -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美化)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나중에 두고 보자 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게 했던 그런 선생님들이었다 - , 극기(克己)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야간 행군, 교내 마라톤, 해병대 캠프 훈련 등에 강제로 참가해야 했으며,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그 어떤 과제보다도 최우선인 대학 진학을 위해 0 교시 수업 뿐만 아니라 새벽 1~2시까지 자율 학습에 내몰렸지 않았는가. 이 책에서 등장하는 “나”가 다니는 학교가 바로 우리 세대가 겪었던 수 십 년 전 그 학교 그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대학 진학의 대오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절대 권력자인 학교와 선생님들께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졸업하고 말았지만 이 책에서 “나”와 일행들은 과감하게 “혁명”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 혁명이 우리가 아는 민주투사들의 비장하고 절박한 그런 외침이나 투쟁이 아니고 “유쾌”하고 “통쾌”하게, 그리고 멋있기까지 하다. 수련원을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일행들은 자신들이 도망가기에도 바쁜 판에 공원에서 희롱을 당하는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폭주족 불량배들과 일대 활극을 벌이고 그녀를 구해낸 다음 다시 탈주극을 계속한다. 수 km의 밤길을 내처 달려 도착한 역(驛)에서 일행들은 이민가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한 친구에게 수중에 가진 돈을 다 몰아주고 자신들은 광장에서 자신들을 잡으러 오는 선생님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이 얼마나 “쿨(Cool)"하고 멋진가. 그리고 당장 때려치워도 시원찮을 학교를 그들은 계속 다니기로 결심한다. 재단과 선생님들의 음모에 순순히 따라줄 수 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시 한번 학교를 옮기라는 아버지께 ”나“는 학교를 옮길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 학교에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 무슨 잘못이 있는데, 그걸 사람들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긴다고 해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거나, 잘못을 인식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이 필요해. 나는 그 때문에 지금 학교에 있고 싶어. 내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 P.155
깨진 앞니를 보고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 아버지께 반항심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멋진 이유가 아닌가. 아직 성인이 되기에는 이른 청소년이 그릇된 일을 피하거나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서 잘못된 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행동하겠다는 당찬 각오가 느껴지는 말일테다. 그리고 사회 모순에 분노할 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의 가슴 뜨끔하게 하는 그런 일침이다. 그래서 어쩌면 불량 청소년들의 일대 소란에 불과할 수 도 있었던 이 책의 이야기가 유쾌하고 통쾌하고 너무나도 멋진 “혁명”으로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덕분에 “가네시로 가즈키”는 나에게 깔끔함과 탄탄함과 함께 통쾌하고 멋들어진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완결편부터 읽었지만 “더 좀비스” 시리즈를 처음부터 제대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선보이는 찌질한 “좀비”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혁명”의 목소리로 잃어 버렸던 내 젊은 날의 열정을 기억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 말미에 적혀 있는 한 문장을 꽤나 오랫동안 - 적어도 그의 좀비 시리즈를 다 읽을 때 까지라도 -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모순을 바꾸고자 했던 내 젊었던 시절, 그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물가물한 기억을 다시금 되살리는 바로 그 문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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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시리즈는 "더 좀비스"시리즈라고 불린단다. 레벌루션 No.3 , 플라이 대디 플라이, 스피드 그리고 레벌루션 No.o 여러 입소문을 타고 있는 책이라 읽어봤는데.. 솔직한 나의 평가는 그리 유쾌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소위 문제아들이 모여있는 골통 고등학교. 나는 그 고등학교에서 별 다른 반감없이 다니고 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는 의문의 3박 4일 훈련을 떠난다. 그 훈련은 말 그대로 지옥훈련. 밥만 겨우 먹이고, 거친 등산을 정해진 시간 내에 끝나게 하고, 팀으로 팀원 중에 한명이라도 낙오가 되면 그 팀 전체가 벌을 받는 등 정말 말도 안되는 훈련의 연속이다.
그래서 내가 속해져 있는 K조는 훈련만 끝나면 학교를 그만두리라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왜 이런 말도 안되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 속에는 학교측의 시커먼 욕망의 결과물이였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그만두는 것.. 그것이 학교측의 속셈이였던 거였다.
그런 것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는 철두철미한 보안을 뚫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 탈출도 쉽지는 않았고 반은 탈출을 성공했지만 나머지 반은 붙잡히게 된다. 물론 그 탈출로 인하여 그들이 큰 영웅이 되었다거나, 학교측에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의지대로, 주체적으로 삶을 사려고 노력하는 시발점이 되진 않았을까 싶다.
" 따분한 것은 세상의 책임이 아니다. 나태한 우리가 만들어내는 세상이 따분할 따름이다." 더 좀비스 시리지를 다 읽어보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 취향에 맞지가 않아서 그런지.. 얇은 책이였지만 속도감 있게, 흡입력 있게 읽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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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참 건전하고 건강한 책이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와 [스피드] 등을 읽으며 책속에 등장하는 정의의 사도 같은 인물의 처음 시작이 궁금하곤 했었는데 이 책의 제로(0)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그 주인공과 순신과 야마시타와 가야노와 아기의 첫 출발이다.
우리는 좀비라고 하면 인간이 괴물로 변해 버린 악마와 같은 존재로 여기지만 이 책속에서의 좀비는 같은 인간이지만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달라 차별받는것에 대항해 세상을 바꾸려 하는 존재들을 의미한다 .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교포 3세로 일본에서 일본인도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닌 채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이야기들을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건전한 글로 써 내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립학교의 비리를 그냥 참고 견디며 졸업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들고 일어선 한 사람을 도와 학교에 반항하듯 들고 일어서는 무리가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왠지 숨구멍이 하나쯤 트일것만 같은 그런 소설이다. 숨막힐듯 경쟁하고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하루 종일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폭력에 무참히 짓밟히면서도 찍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정의로운 주인공과 항상 돈벌이에 바쁜 가야노와 머피의 법칙을 달고 다니는 야마시타와 야쿠자가 탐내는 순신이 뭉쳐 바로 그렇게 숨구멍을 티어 주는 역할을 해 내고 있다.
친구들과의 주먹다짐으로 정학을 먹고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는 단체훈련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학대하기 시작한다.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들에게 맞서 싸울 힘이 없는 아이들은 학교의 비리를 알고 탈출을 시도하는데 그 일의 결과는 엉뚱하게도 학교에서의 정학처분을 면하게 해주는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들은 누군가 자신들의 정의감에 불을 댕겨 주기를 기다리는 좀비스가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오히려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는 그런 시대가 되어 버렸지만 그렇더라도 학교라는 틀 안에 매여 있는 아이들에게는 분명 이런 존재들과 같은 분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시대는 청소년들이 갈만한 곳도 즐길만한것도 딱히 없는 그런 세상인듯 해서 참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자꾸만 피시방을 찾아들고 친구를 괴롭히고 심지어 선생님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것은 아닐까? 몸과 마음이 엄청난 에너지로 똘똘 뭉친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고교입시라는 틀에 매여 주눅이 들어 있지만누군가 용기를 낸다면 부당한것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끝으로 이 시리즈의 막을 내린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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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들의 삶이라..사실 꼴통 하면 얌전한 학생들에게 돈이나 빼앗고, 나쁜 짓을 일삼는다는 편견만 떠올라서 평소의 인상으로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지 못했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꼴통이라는 존재 역시 그런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레벌루션에서 만난 그들은 뭔가 다르다. 그들은 더이상 비호감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데 열을 올리지도 않고 (전편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무자비하다싶을 정도의 심한 교사들의 폭력에도 묵묵히 참아가면서 (오히려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 그들을 더이상 학생으로 대우하지 않는 이성을 잃은 학교의 처우에 정정당당히 반기를 들 줄도 안다. 그들의 그런 반란은 유쾌 상쾌 통쾌하기까지 하다.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소설. 덕분에 새벽잠이 확 달아나버렸지만, 만화를 그대로 재연해놓은 듯한 말투하며 배경에 그대로 장미꽃이 그려질듯한 생생한 묘사 등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골든 레트리버가 야마시타를 쿵쿵 머리로 들이받는 그 장면이 이해되질 않았는데, 나중에 산악 훈련을 할때 멧돼지가 달려와 야마시타를 들이받고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을 읽으며, 굳이 머리로 이해하려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기라는 별명의 그 남자. 전설의 꽃미남인 그를 이야기하며, 주인공이 자꾸 안길 뻔한 그 미소에 자신을 추스려야한다는 표현을 읽으면서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명랑만화 같은 이 소설 속 양념들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버무려진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권을 읽고 나니 전편들이 궁금해지는 그런 소설이 되고야 만 것.
이기적인 어른들의 아이들을 찍어누르는 무자비한 처사. 누구에게나 공평한 대우가 주어져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화가 나고, 그들의 폭발된 분노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한밤의 탈주극. 정말 상쾌하다. 아, 그들이 실패했으면 나까지 억울해질뻔했다. 달리자, 꽉 막힌 이 세상 시원하게 뻥 뚫어줄 그들과 함께 달리고 또 달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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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일년쯤 산 기억이 있다. 그 때 무슨 행사가 있었고 그 행사에 '코리아나'라는 그룹이 와서 노래를 불렀다. 사실 88올림픽 이후 코리아나라는 그룹이 왕성하게 활동을 했었지만 그 그룹에게 크게 애정이 있었던 편은 아닌지라 유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그 행사에 무슨 큰 기대가 있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행사장에 들어섰을 때 코리아나가 애국가를 부르고, '손에 손잡고'를 부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더랬다. 그렇게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들 한다. 처음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을 접했을 때 '순신'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응? 이건 뭐지 싶었다. 그의 작품에는 늘 그렇게 한국인이 등장했다. 알고보니 작가 자신이 재일교포였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작품은 왠지 정이 간다.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면서 느꼈을 법한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녹아있으리라. 1934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9살까지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법 사업을 크게 하는 아버지 덕분에 부유하게 살았던 그 할머니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친구가 별로 없었다. 어쩌다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면 어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그 일본인 친구들은 구경도 못해봤을 법한 맛난 것들로 대접을 해주었다. 아마도 딸이 학교에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그 귀하고 맛난 것들을 다 먹고 돌아갔으면서도 학교에 가서는 그 할머니를 외면했고, 그네 집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흉을 보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 마음에 한복을 입은 어머니를 미워했고 왜 우리 엄마는 일본 사람이 아니고 조선사람일까, 가난해도 좋으니 일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이야기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네시로 가즈키를 떠올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감정적 대응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스포츠를 할 때도 1등은 못해도 괜찮지만 일본에게는 지면 안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한일간에만 존재한다.
'더 좀비스'의 완결편. 우리나라로 치면 똥통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사고나 치는 사회의 이른바 루저들. 밝고 경쾌한 고딩들의 이야기처럼 흘러가지만 사실 들으면서 그닥 마음 편하지는 않다. 체벌이라기엔 폭력에 가까운, 아니 폭력이 분명한 선생들의 무차별적 행동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좀비들은 쿨하게 받아들인다. 이걸 견뎌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니라고. 이걸 견뎌내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라고 낙오자라고 아직은 낙인찍지 마라. 우리는 아직 아무데도 속하지 않은 미완의 청춘들이니까. 인생이니 민족이니 지배층이니 피지배층이니 하는 구태의연한 말 따위도 하지 마라. 우리는 따분한 것을 견딜 수 없는 파랗다 못해 시퍼런 청춘이니까.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 작품에 배경음악을 깔아 준다면 이런 노래쯤이 되지 않을까? 젊으니까 그래도 된다고,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고 청춘에게는 말해주어야 한다. 내가 비록 기성세대, 그들에게는 꼰대가 되어버린 나이이지만 말이다. '더 좀비스'를 기억하며 이제 청춘이 될 내 아이에게는 조금 더 너그러워진 가슴을 내어주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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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레벌루션 No.0>는 재일교포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신작 소설이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 중에서는 <GO>, <플라이, 대디, 플라이>가 영화화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벼우면서도 위트 있는 캐릭터가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책의 맨 앞부분에 나오는 추천사의 글귀가 인상적이다. "제일교포 3세인, 영원한 코스모폴리탄 가네시로 가즈키가 제안하는 좀비는 '플라이,대디,플라이'의 무기력한 중년 남자에게 두 주먹으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답답한 계급 사회에 구멍을 뚫기 위해' 명문 여고의 축제에 난입하는 정도의 초라한 패배자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영화 속의 좀비는 지능도 없고 무기도 없지만 이 세계를 파멸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좀비들의 세상을 인간들은 싫어하지만, 좀비에게는 나름 평화롭고 완벽하지 않을까? '레벌루션 No.0'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좀비들의 출발선을 그린, 어쩌면 가네시로 가즈치 소설의 원점이다. 삼류 고등학교에 들어간데다 학교 측의 음모로 자퇴의 위기에 몰린 학생들. 한국으로 치면 '유격훈련장과 같은 곳'에 끌려가 엄청난 폭력과 모멸을 견뎌내던 학생들 일부가 저항하기로 한다. 가네시로 가즈키는 섣부른 승리를 제안하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을 달래세요, 라고 치유를 권하지도 않는다. 그냥 달리고, 춤추라고 말한다. '이 세계는 우리를 다시금 위대한 탈주로 인도할 요소와 징조로 넘쳐흐른다.'면서 힘껏 달리라고 말한다. 남들이 던져주거나 규정한 것을 뛰어넘어서, 안정된 미래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모든 것을 언제든 리셋하겠다는 마음으로 내달리라고 말한다. 따분한 이 세상은, 나태한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면서. 가네시로 가즈키의 제안은 단 한가지다. '너희들, 세상을 바꿔 보고 싶지 않나?' "
순도 100%의 찌질이들이 모인 꼴통 학교의 1학년 학생들에게 갑작스런 비보가 날아든다. 교사들이 기강 헤이를 명목으로 합숙 훈련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산으로 가로막힌 고립된 터에 자리 잡은 마치 ‘알카트라즈’를 연상케 하는 수련장에 역시 죄수처럼 감금되는 1학년들은 세계 수준의 폭력 교사인 사루지마의 지휘 아래, 높은 산을 4시간 만에 주파하지 못하면 매를 맞고 고통스러운 체력 훈련을 받는 등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게다가 모든 불가능한 미션에는 연대 책임을 묻는 악질적인 형벌이 따른다. 하지만 이 납득 불가능한 상황의 이면에는 학교 경영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1학년 200명 전원을 퇴학시켜 운영비를 남기려는 것. 선생들을 상대로 순신, 히로시, 가야노, 야미시타 등, 열두 명의 K조 꼴통들은 가능성이 희박한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주인공이 자신을 학교라는 롤플레잉게임 속의 플레이어로 비유했던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의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학교 안에서 앵무새처럼 선생님의 말에 똑같이 삶을 살아나가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을까?
"비유해 말하자면, 나는 '학교'라는 롤플레잉게임 속의 플레이어였다. 교칙이라는 룰을 충실하게 지키고, 성적이라는 아이템을 획득하면서 오직 고학력이라는 보물이 기다리는 골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 플레이를 하는 도중에 장벽에 부딪혀 아이템을 획득하지 못하자 '학교'라는 RPG가 얼마나 답답하고 따분한 곳인지를 알게 되었다. 낙오자로 찍힌 나는 같은 위치에서 제자리 걸음만 했다. 지금 있는 장소에서 지금까지 하던 방식으로 플레이를 계속해 봐야 보물이 기다리는 골에는 도저히 도달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게임을 끝내는 방법을 몰랐다. 학교를 그만둔다고 치자. 그다음에는 과연 어디로 가면 좋다는 말인가? 나는 담임에게 이렇게 물어야 했다. 공부를 했는데도 가능성을 찾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화가 난다. 숨이 막힌다."
찌질이라고 생각되었던 학생들이 기강해이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수련원에 가고 그곳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후련해졌다. 내가 학창시절 공부만 하고, 부모님 말씀만을 들었던 사회순응적인 학생이었기 때문일까? 세상을 상대로 싸워본다는 의미 하나만으로도 모험을 감행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어젯밤 진짜 대답을 알고 난 후부터 우리 눈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세상이 다 그런 건데 어쩌겠어, 그렇게 포기하든지.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절대 용서 못 해. 그렇게 세상을 상태도 분노를 터뜨리든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스타터 피스톨의 방아쇠를 당겨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우리는 지금껏 세상을 상대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나를 지배하던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도망친다는 목적만을 위해 존재했던 그 찰나의 순간들에서 소설 속 캐릭터들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학교란 과연 무엇인가, 가르친다는것,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등 내가 학창시절을 보냈을때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때, 어느 누구의 손에도 붙잡히고 싶지 않아 기를 쓰고 도망쳤던 그 모든 순간, 나는 오직 '도망친다'는 목적만을 위해 존재했다. 망설임과 주저와 하잘것없는 보험과 개떡 같은 죄책감 같은, 평소 나를 지배하던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엉뚱한 것이 내 안으로 파고들어와 내 마음을 침식하여 자칫 발이 움직임을 멈추는 일이 없도록, '모든 것을 잊어라. 너는 오직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는 강력한 힘이 리셋 버튼을 계속 눌러, 나를 0으로 되돌려놓고 있었다."
"지금 학교에 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어. 무슨 잘못이 있는데, 그걸 사람들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긴다고 해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거나, 잘못을 인식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이 필요해. 나는 그 때문에 지금 학교에 있고 싶어."
우리가 세상을 향해 소리칠때 알아야할 것이 분명해졌다. 따분한 것은 세상의 책임이 아니라는것. 준비를 게을리하지말고 질주를 위해서 모든것을 내던져볼것. 소설을 다 읽었을때 내몸이 하늘에 떠있는 구름위에 있는것과 같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래! 과감하게 세상을 향해 달려보는거야!
"이때 우리는 확실하게 예감했다. 스타터 피스톨이 다시 울리는 것을.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을. 이 세계는 우리를 다시금 위대한 탈주로 인도할 요소와 징조로 넘쳐흐른다는 것을. 부족한 것은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감지할 수 있는 감각뿐이다. 따분한 것은 세상의 책임이 아니다. 나태한 우리가 만들어내는 세상이 따분할 뿐이다. 그러니까, 눈믈 부릅떠라. 귀를 귀울여라. 감각을 갈고 닦아라. 그리고 준비를 게을리하지 마라. 경이로운 질주를 보여주기 위해 몸을 가뿐히 하라. 누군가가 멋대로 정한 편차치. 그들에게 이식된 열등감. 진부한 상식. 하찮은 영광. 흔해빠진 미래를 약속하는 보험. 모든 것을 내던져라. 리셋 버튼을 계속 눌러라. 몇 번이든 제로로 돌아가라. 요네쿠라가 입을 열었다. 언어가, 온몸을 파고든다. 지금, 방아쇠가 당겨진다. 우리의 혁명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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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플라이대디플라이의 저자 가네시로 가즈키는 이 레벌루션 No. 0으로 좀비시리즈를 마감했다. 이 역시 과격하고, 직선적이며, 폭력적임과 동시에 나태하고 따분한 세상에 대한 도전을 과감하게 도전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따분한 것은 세상 책임이 아니다. 나태한 우리가 만들어 내는 세상이 따분할 뿐이다"
"학교에는 왜 꼭 가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는 나. 선생님은 공부란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라 하지만, "공부를 했는데도 가능성을 찾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지만, 나는 무의미한 생물시간에 이 한 구절을 듣는다. "생물의 진화는 언제나 위험과 함께 한다" 나는 한달에 한번 이혼한 아버지 - 명품가방을 든 - 로부터 용돈을 받는다. 그 아버지는 '빽"으로 더 좋은 학교로 전학시키려 한다. "설마 지금 다니는 학교에 만족하는 건 아니겠지?" 한편 찌질한 고등학교는 찌질한 학생들을 자퇴시키기 위해 단체훈련을 실시한다. 학생이라는 건 아무 쓸모없는 자격이다. 도저히 불가능한 훈련과제를 부여하고, 당연히 실패한 후 무조건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학교와 그 선생들, 혹은 외면하는 이들. "이렇게 길들여 간다. 그렇다고,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 폐쇄된 공간에서 우리는 한없이 무력하다." 비인간적 체벌과 가혹한 연대책임의 사슬이 난무하는 이 수용소에서 나는 내가 속한 조원과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나는 왜 이런 장소에 있는 거지?" 짧은 시간에 준비된 탈주시나리오는 완벽하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불가능해보이는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데 절반은 성공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부조리. 아마도 이 부조리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부터 어른은 시작되는가 보다. 그렇게 시키는대로 살아가지만, 진실로 살지는 않는 좀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인공은 그 부조리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과감하게 새로운 삶에 한걸음을 내딛었던 것이다. 무조건적 복종, 체제에 대한 순응은 거의 편안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주체적 의식의 상실과 종속된 삶을 강요하기 마련이다. 소설 속에서의 설정은 현실과 모든 면에서 흡사하다. 이 사회를 바꾸는 것은 그 안주에서 기꺼이 탈출하고자 하는 용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거 꼭 해야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 용기를 가지고 실천하는 것, 어렵지만 해볼만한 가치는 있다고 답해야 한다. 무력한 좀비로서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저자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교포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며 한계인이다. 불완전한 소속을 타고난 그들은 어쩌면 현존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가장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권력과 협잡에 대한 환멸과 멸시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모티브로 강력히 작용하고 있다. 편안하지 않고, 때론 거북하기까지한 폭력에 대한 묘사는 폭력에 관한 인간성의 저 깊은 곳에 대한 통찰이자 진실이다. 피땀흘리는 소설이다. 따라서 내 안에서 따뜻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내 한심한 안일함에 대한 경고이다.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말고, 깨어나고 깨달을 것. "이 세계는 우리를 다시금 위대한 탈주로 인도할 요소와 정조로 넘쳐흐른다는 것을, 부족한 것은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감지할 수 있는 감각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