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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民畵)는 조선시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이는 민화가 가진 특징 덕분이었다. “민화는 자유다! 기존의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림, 그것이 민화다. 세상의 그 무엇에도 옥죄이거나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민화 속에 한껏 펼쳐져 있다. 사회적인 굴레에 얽매이지 않으며 풍요롭고 다채로운 상상의 세계가 표현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공간을 신축적으로 운용하며, 필요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고 있다. 관습과 규범, 시간과 공간, 스케일로부터 자유롭다. 이는 엄격한 장중함을 추구하는 궁중회화나 드높은 격조를 지향하는 사대부회화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p. 17]”
대표적인 민화의 하나인 <까치호랑이>의 경우를 살펴보자.
까치호랑이
출처: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p. 54
출처: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p. 203
“민화의 까치호랑이는 단순히 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것이 아니다. 권력자와 민초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나타낸 그림이다. <까치호랑이>에서 호랑이[권력자]는 사팔뜨기로 희화화(戱畵化) 되었고, 송곳니를 드러내고 붉은 입을 벌리고 있지만 꼬리를 아래에 감추었다. 반면에 기품이 느껴질 만큼 점잖고 당당한 까치[민초]가 무언가 계속 시비를 걸지만, 호랑이는 아예 까치를 등져 버렸다. 권력을 맘껏 부릴 수 있는 호랑이는 우스꽝스럽게 나타내고, 힘없는 까치는 당당하게 표현했다. (이렇게) 세상의 권위는 적어도 민화 속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적어도 민화 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공평하다. 높은 것은 깎아내리고 낮은 곧은 돋우어서 평등하게 만든 세상, 이것이 서민들이 꿈꾸는 이상향인 것이다. [pp. 54~55]”
그렇기에 성리학이 주도하는 사회였던 조선사회에서 민화는 사대부의 문인화나 도화서 화원에 의해 그려진 어진(御眞), 산수화 등에 비해 저평가되었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문제는 여기에 근대화 과정에서 옛 것을 낡고 고루한 것, 버려야 할 것으로 인식하면서 민화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문화사대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광풍 (狂風) 속에서 우리 손으로 만들고 우리의 삶이 스며있는 것들이 버림받은 것이다.
그 결과 “민화의 가치는 우리가 아닌 외국인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1959년 일본의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는 민화 책거리에서 받은 감동을 “불가사의한 조선민화”라는 글을 통해 극찬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조선민화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 민화 수집이 이루어졌고, 여러 민화 전시회가 열렸다. [pp. 6~7]”
민화만 그런 것이 아니다. 건축가 승효상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에서 “우리 선조들이 일군 모든 집들의 마당들이 그런 아름다움을 가졌었다. 그 마당은 대개는 비어 있지만 언제든지 삶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어린이들이 놀든, 잔치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든 그 공간은 늘 관대하게 우리 공동체의 삶을 받아들였고 그 행위가 끝나면 다시 비움이 되어 우리를 사유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게 불확정적 비움(Indeterminate Emptiness)이었고,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우리에게 전한 아름다움이었다. 그런 아름다움을 버리고 서양의 미학을 좇으며 마당을 없앤 지금의 우린데, 서양인들은 그게 궁극적 아름다움이라고 다시 우리 선조의 마당을 찾으니, 이 황망함을 어떻게 하나.”라고 탄식한다.
선조들이 구해온 다이아몬드를 그냥 돌덩어리라고 생각해서 집밖에 던져놓고, 지나가는 사람이 소중히 여기자 그제서야 관심을 가지는 격이다.
분명 시대에 따라 주목받는 것은 달라질 수 있다. 각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 주목받았던 것이 재조명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그 시대 사람들과 공통적으로 바라는 바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대가는 충분하다.
하나 더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민화,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한때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던 민화에 담긴 우리 민족의 삶을 읽게 되면, 그 말이 적용되는 리스트에 민화도 포함될 것이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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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대중들의 꿈의 표현이다 최근 개인적 관심사 중 하나인 ‘중요무형문화재’에 대한 검색을 하다가 웃지 못 할 현실을 접하게 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는 ‘연극, 음악, 무용, 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무형문화재 가운데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를 말하며 이때 그 대상이 되는 기·예능을 보유한 사람을 인간문화재(人間文化財)라고 부른다. 반드시 지키고 전승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출발했을 이 중요무형문화재에 인간문화재를 선정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 거문고 등 12 분야가 있고 그렇게 공석으로 비어있는 기간이 10여년이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렇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의미와 가치도 충분하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출발한다. 우리 손으로 만들고 우리의 소중한 삶이 스며있는 우리의 것이 우리들에게서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버림받았지만 오히려 외국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거꾸로 우리에게 들어와 뒷북을 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어 슬픈 현실임을 느끼게 된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이 책의 주제인 민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민화는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며 일반적으로 민속에 얽힌 관습적인 그림이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회의 요구에 따라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여 그린 생활화를 말한다. 비전문적인 화가나 일반 대중들의 치졸한 작품 등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직업 화가인 도화서의 화원이나 화가로서의 재질과 소양을 갖춘 화공이 그린 그림도 포함시켜 말하고 있다. 이런 민화가 우리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 출발한 민화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성리학에 의해 규정되어 있었으며 정통회화나 도화서 화원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에 의해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 사람들의 주목에 의해 비로써 국내에서도 주목 받게 된 것이라고 한다. 주객이 전도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민화의 가치에 주목한 사람이 이 책의 저자 정병모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현대인의 각광을 받고 세계화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통미술이라는 믿음’으로 민화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 결과가 이 책에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민화를 전통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이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로 주목한다. ‘정통화가들이 아무리 격조가 있고 능란한 화풍을 구사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반면, 무명의 서민화가들은 어떤 권위에도 구애되지 않고 어떤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구가했다. 또한 서민의 진솔한 감성과 자유로운 미의식이 담겨 있지만, 양반도 함께 즐겼던 민화는 조선시대의 대중문화다.’라고 민화가 가지는 가치를 밝히고 있다. 책거리, 문자도, 까치호랑이, 운룡도, 십장생도. 이것은 저자가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담고 있는 민화의 분야다. 조선이라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슴속에 담겨있던 삶에 대한 바람이 극적으로 표현된 부분이다.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길흉화복에 대한 염원,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던 바램 등을 담아 공유할 수 있었던 문화라는 점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국내외 박물관 등을 발품 팔며 접했던 민화를 생생한 도판을 통해 보여주고 설명하며 유사한 것들과 비교분석한다. 정조의 책거리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있었다는 점이나 이것이 시간이 흘러 에로틱한 책거리가 등장하기에 이르는 시대적 상황을 통해 민화는 그 시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또한 까치호랑이가 우리만의 독특한 분야라고 생각했던 것이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부분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이지만 조선 사람들은 이를 자신들만의 독특함으로 변화시킨 창조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민화 속에 다 담겨 있다고 본다. 시대에 따라 주목받는 것은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민화가 다시 주목받는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주인공들이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찾을 실마리를 찾고자 함이 아닐까?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애환을 민화에 담았듯 현재 우리들도 미래를 희망으로 바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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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속 사슴 등에 커다란 화분이 올려져 있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틀속에 갇혀 있지도 않는 자유분방함이 좋다. 무엇이든 간에 민화의 세계는 사실을 넘어서는 이상적인 세계다. 보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느끼고 아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여 실제적인 사실성보다 관념적인 구성이 두드러진다.(31쪽) 민화를 보고 또 보고 우리집 벽에 민화 비슷한것도 없지만 친숙한 느낌이다. 몇페이지 못 넘길것 같은 느낌이였는데 자연스럽게 술술 넘어간다. 뭘까 나도 전생에 무명화가?? 민화를 그렸나??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정도였다. 관심이 없었던것도 같고 생활속에서 가까이 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은연중에 민화는 생활속에서 친숙하게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서양화를 바라볼때는 뭔가 불편한 마음이 있었는데 민화를 볼때는 편안한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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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 싸구려 그림’이란 등식에 별다른 이의가 없다면? 그렇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고 양심에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다. 당신은 그저 민화의 매력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민화에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매력적인 도발의 세계가 숨어있다. 철저하게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그림’이라는 구호아래 민화는 서민의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쌍곡선의 중심에 위치하여 때로는 양반의 모습을 흉내 내 가난 속에도 소박한 낭만을 꿈꿔보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을 빙자하여 서민들에게 폭정을 자행하는 탐관오리에 당당하게 대항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톡톡히 하여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했다. 닮고 싶은 마음과 가슴에 사무치도록 미운 마음이 교차하는 양반들의 기득권에 슬그머니 발을 얹어보기도 했다가도 과감하게 그들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화폭에서나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 발칙한 자유를 꿈꾸던 서민들의 은근한 하극상이 펼쳐지곤 했던 민화는 알면 알수록 은밀하고도 통쾌한 비밀코드가 곳곳에 숨어있다. 미국 민간미술(Folk Art) 연구가 베트릭스 럼포드(Beatrix T. Rumford)는 우리의 민화를 일컬어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예술”이라고 한 바 있다. ‘평범’이라는 가면에 가려진 ‘비범’한 예술의 세계가 민화 속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이미 평범은 익히 알고 있으나 숨겨진 비범의 세계로의 도약은 어려울까? 그렇지 않다. 민화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십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꿈속에서조차 민화를 찾아다닐 정도로 민화에 푹 빠졌던 저자가 차려놓은 밥상에 그저 숟가락 하나만 놓으면 된다. 서민들의 생활과 이상이 숨 쉬는 민화를 따라 그곳에 숨겨진 코드를 쫓아가 보면 책이나 벼루, 먹, 붓, 붓꽂이 따위의 문방구류를 그린 그림인 책거리에서 언뜻 떠오르는 학문에 대한 애착 너머로 꺼진 촛불을 배경으로 주위에 여인의 생활용구와 선비의 문방사우가 어지러이 만나고 있는 에로틱한 책거리도 등장하고, 기존의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사팔뜨기 호랑이, 발톱이 솜방망이처럼 거세된 호랑이 등 다양하게 희화화되어 어수룩하고 얼빠진 모습으로 그려지는 등 사회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풍요롭고 다채로운 상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민화는 수준이 낮다는 편견을 깨면, 그 속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민화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에 파묻혀 있는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눈길에 목말라하는 무명화가들의 반란이 증표처럼 새겨진 민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더 늦기 전에 이 책으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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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세종문화회관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는 '환타지아 조선' 민화 전시회에 갔었다. 그동안 한국화에 대해서 책도 많이 읽고 전시회도 많이 갔었기에 한국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전시회에서 본 그림들은 내게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규율과 도상에 얽매이는 기성화가들과는 다른 표현방법을 쓰고 있었다. 파격적이고 천재적이라는 장승업도 명함 내밀기 힘든 자유로운 영혼들의 그림을 보았다. 전시회 사진 : http://blog.daum.net/gotemplestay/579
민화는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에 나오는 그림들을 몇 번 보았었다. 그러나 모두 찔끔찔끔 나오는 그림들이라 별 감흥이 없었다. 그냥 예쁜 꽃 그림 정도....
그래서 민화에 대한 책을 읽어보기로 하고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민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그림이 어떻게 민화화하는 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나는 40대가 넘어 고려불화의 존재를 알았다. 이제 민화라는 장르가 그냥 가벼운 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지난번 전시회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19세기 서양에서 그림들이 고전 주의를 넘어 표현의 방식에 폭발이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19세기에 나라는 망국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문화적으로는 자유를 향해 달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책가도와 책거리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책과 책장이 함께 그려지면 책가도이고 책장없이 책이 그려지면 책거리이다. 춘화적인 요소가 들어간 책거리도 마우 흥미로왔다.
파리의 기메동양박물관에 있는 책거리, 19세기 노골적인 것보다 유추할 여지를 주는 그림이 훨씬 재미있다.
17세기 은밀한 은유로 춘화를 그렸던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을 떠 올렸다.
Girl Chopping Onions, 1646, Gerrit Dou https://en.wikipedia.org/wiki/Gerrit_Dou 엎어지고 뚜껑 열린 화병은 여성의 해부학적 표현, 죽은 새는 남성 상징. 그 유명한 The Milkmaid (Vermeer)도 이 연장선에 있다.
까치와 호랑이 그림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왔다. 벽사의 의미를 가진 호랑이가 민화에 와서는 까치에게 조롱당하는 그림으로 변형되면서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은밀한 저항을 나타내는 그림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 들어와 십장생도에서 소나무를 밀어내고 중심 테마로 부상한 '반도'(복숭아)의 의미도 잘 알게 되었다. 즉 조선 후기 들어 도교의 영향력(서왕모신앙)이 커지면서 겨레의 나무인 소나무를 밀어내고 복숭아 나무가 점점 더 강조 되었다고 한다.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김홍도가 그린 신선도나 서왕모도, 요지연도를 본 적이 있다. 그런 그림들이 등장하게되는 배경을 알게 되어 기쁘다.
지난번 전시회에서 본 까치와 호랑이 그림. 다른 호랑이 그림들에 비해 분위기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에 의하면 황해도 무속화라고 한다.
당분간 민화에 대한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민화도 좋은 그림들은 외국에 있다는 사실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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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화에 대한 이야기란다. 이 책에 실려있는 작품들은 내가 직접 본적은 없지만 다른 책을 통해 언젠가 한번은 봤던 그림과 읽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주제의 민화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정말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네,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물론 예상처럼 책은 재미있었고 예상보다 아주 빨리 읽어버렸다. 사실 점심시간에 밥 먹으면서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섭취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으려고 한 것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냥 줄줄 읽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책을 읽는 것까지는 즐거웠는데 도무지 책의 내용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내가 무슨 전문 평론가도 아니고 그저 책을 읽으면서 소소하게 느낀걸 털어놓으려고 하는건데 내 안에서 나올 이야기가 하나도 없으니 이걸 어찌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