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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함에 따라 요구되는 지도자의 모습이 있다. 조선 왕조 5백년의 역사 속에서 비극의 주인공이었음에도 새롭게 소현세자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소현세자에게서 시대의 표상을 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국한 청나라의 선진문물들을 가난한 조선에 들려와 강하게 만들 꿈에 부풀었던 소현세자를 절망케 했던 것은 다름아닌 아버지 인조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아내 민회빈 강씨, 인조에게는 며느리인 그녀 또한 인조의 명에 의해 사약을 먹고 죽은 비운의 주인공이다. 조선시대의 여성의 삶은 불행했다. 나는 가끔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 조선을 말해주는 두 단어 성리학과 사대부, 그 둘만 생각하는 것도 머리가 아파온다. 허난설헌이 글쓰는 재주로 인하여 소박맞은 채 쓸쓸히 죽어간 것도 서글프고 학식과 예술성을 두루 갖추었음에도 천민으로 태어나 비루하게 살다간 황진이의 삶 또한 서글프다. 그리고 민회빈 강씨의 삶 또한 서글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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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의 세자빈이다 역사에서 치욕은 무엇일까? 외국의 침략을 받아 강압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일보다 더한 치욕이 있을까? 우리 역사에서 이렇게 이름붙인 사건은 몇 번 있었다. 현재와 비교적 가까운 조선의 역사에서는 청나라의 침략에 변변한 저항한번 해 보지 못하고 당한 인조 왕 때의 병조호란과 황후의 목숨까지 빼앗아간 일본의 침략에 어쩌지 못한 을사늑약이 있다. 이러한 치욕적인 사건의 원인 무엇일까? 막연하게 침략의 주범이 되는 외국의 탓으로 만 돌릴 수 있을까? 물론 일차적인 원인이야 침략한 외국에 있겠지만 침략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정치가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김용상의 작품 ‘민회빈 강씨’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치욕적인 사건 중 하나인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세자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7세기 조선의 정치상황은 혼란을 거듭하는 시기였다. 광해군을 모라내고 왕에 오른 인조반정 후 명나라와 청나라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한 논란과 인조반정의 주역들 사이에서 벌어진 세력다툼 등 이미 백성의 안위나 국력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만큼 안정되지 못한 정치 상황이었다. 정적 간에 죽고 죽이는 피를 부르는 정국은 왕이 왕의 권력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왕위 계승문제에도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당시 상황에서 7년이 넘는 세월동안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소현세자와 세자빈 민회빈 강씨는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넘어선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다. 강한 조선을 꿈꾸며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며 훗날을 준비하는 것이다. 성리학이 주류를 이룬 조선에서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여인들의 삶은 대게 비슷했다. 그러한 여인들의 삶을 표현하는 바로 삼종지도가 그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세자빈 민회빈 강씨가 보여준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당당함을 보여준다.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조선 최초 여성 무역상, 노예로 끌려와 고통 받는 조선인을 속환하기 위해 힘쓴 일, 천주교와 서양 문물을 접하면서 조선의 개혁과 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한 여인하며 미래 조선을 준비하던 모습은 현대의 눈으로 봐도 당당함이 넘쳐난다. 저자는 이러한 ‘민회빈 강씨’의 모습에서 "이 시대 여성의 표상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소현세자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주목하고자 했던 바는 남성 못지않은 뛰어난 기개와 총명한 재능을 지닌 실용적인 여성 경영자라는 점과 현실을 파악하는 시대적 감각이 탁월할 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 사고력을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상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서 저자의 시각으로 여성상을 찾는다면 바로 ‘주어진 현실을 주체적으로 개척해 가는 정신’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비운의 삶을 살았고 시아버지에 의해 사약을 받아 죽음을 맞이했던 세자빈 민회빈 강씨는 끝까지 조선의 여인, 조선 사람으로 자존심을 잃지 않았다. '나는 조선의 세자빈이다'라는 외침은 허공을 돌아 지상에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꿈에도 그리던 조선에 귀국 후 아버지 인조 왕의 태도에 소현세자와 세자빈이 받았을 정신적 충격과 심리적 압박이 얼마였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하여, 가정이 있을 수 없는 역사 앞에 가정을 해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가정을 하는 이유는 바로 현실을 올바로 바라보기 위함일 것이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려는 마음이 역사의 가정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
![]() 민회빈 강씨라는 책의 제목으로 보아서는 이 책이 어떤 인물에 대한 책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민회빈 강씨 보다는 소현세자 부인이라는 옆의 구절이 더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몇십년동안 청나라에서 살아 가며 산전수전을 겪었던 소현세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겠지요. 솔직히 청나라에서 길고 긴 시간동안 볼모살이를 했다고만 알고 있지, 그들이
청나라에서 어떻게 살았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덜한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이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 어떻게 그려져 있는건지 흥미가 생기는것 같습니다. ![]() 이 책은 소현세자가 아닌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에 대한 소설이에요. 역 사소설이기는 하지만 딱딱하다는 느낌 보다는 오히려 여태까지 생각해 왔었던 조선의 여성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나이에 소현세자의 부인이 되어 청나라라는 낯선 나라에서 청나라의 멸시
아닌 멸시를 받으면서도 굳은 심지를 가지고 흔들리기 쉬운 세자의 심지를 굳게 지켜주고 그의 옆에서 조선을 어떻게 하면 더욱더 좋은 나라로 만들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그것을 실제로 실천에 옮기기도 했던 진정한 실천파 민회빈 강씨. 여인이라고 해서 못할것은 없다. 내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조선
의 발전은 없다. 민회빈 강씨의 삶의 모토입니다.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자신이 직접 행동하지 않는다면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 그녀는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의지할데 라고는 자신의 짝인 소현세자와 얼마 되지 않던 같은 처지의 볼모들이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조선인 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당당한 여장부의 면모를 지닌 사람입니다.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귀하게 자란 조선의 여인이었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조국에 대한 충정심을 가졌던 그녀는 다른 볼모들이 절망하며 현실을 회피하려 할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청나라와의 군신관계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습니다. 역사속의 실제 사건과 인물들의 생생한 성격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소설이어서
읽어가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몰입하기가 쉬웠던 책이었습니다. 책 뒷표지에 나 오는 말처럼 철저히 고증된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인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어서 매우 흥미로우면ㄴ서도 드라마틱한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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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조선시대를 살아간 여성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을 두권째 읽게 되었어요. 이미 망한 명나라를 이어 중화문명을 지키겠다는 소중화주의가 불러일으킨 병자호란... 형제의 나라였던 중국에게 군신의 관계를 자임하며 인조가 스스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올려야 했고... 그 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등 많은 사람이 중국으로 가게 되었지요. 먼저 읽었던 덕혜옹주때문에 답답했던 마음... 어떤 분들은 슬프고 애잔했다고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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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초의 한반도 주변의 국제 정세를 보면 여진족이 일으킨 청나라에 의해 맹주였던 명나라가 기울어 가고 있는 형국이였다. 그런데 이 두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잘 펼치고 있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조선의 16대 왕이 된 인조는 이러한 변화 앞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친명사대의 명분을 내세우며 청나라를 배척하다 병자호란이라는 씻을 수 없는 화를 당하고 만다. 이 댓가로 한나라의 왕이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찧는 역사상 가장 수모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게 되고 소현세자와 세자빈인 강씨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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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이 좋은점은 역시 정사가 아닌 야사를 많이 접할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민회빈 강씨는 소현세자빈으로만 기억될뿐 그녀의 행적에대한 것들을 그속에 다 뭍혀버린다. 남존여비가 강했던 조선사대부들은 민회빈의 행적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을것이다. 이번에 이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또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또한 그녀의 시대를 앞서간 모습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몰랐을것이다.
민회빈이란 칭호는 그녀의 사후 오랜시일이 지난뒤 숙종의 복원으로 이루어질수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자신의 의지로 반정에 성공한 왕이 아니였다 왕이되겠다는 생각없이 떠밀려 왕이된그의 행적은 실망스럽다 숭명정책을펴다 청의 눈밖에나고 결국 청의 침입으로 백성은 전쟁의도탄에 빠졌다 왕은 백성을버리고 살길을 찾게되고 결국 인조는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봉림대군 부부를 볼모로 보낼수밖에 없었다. 청은 일국의 세자와 그 일행을 볼모이상으로 대하지 않는다 세자빈은 자신의 백성을 돌보기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세자도아니고 봉림대군도 아닌 세자빈 민씨는 무역을하고 농사를 짓는다. 봉림대군은 그런 형수와 형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청을 숭상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무역과 농사를 하는건 조선을 잊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세자빈의 생각은 달랐다. 무역을통해 벌어들인 돈은 청에 노예로 끌려온 백성을 돈으로 환속시킬수 있고 농사로 자급자족하고 부를축적해 조선을 도울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조정은 세자와 세자빈의 행동을 그들의 잦대로 판단한다. 그건 봉림대군또한 그랬다. 물론 효종의 북벌또한 나쁘다는게 아니다 치욕을 값고자하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상대를 판단하고 상대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면 받아들일줄도 알아야한다. 바로 세자빈은 청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하 한다고 고려시대에 해상무역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조선시대에는 그러지 못했는가에 한탄한다. 조선조정이 일본의 해적에대한 방편으로 해양봉쇄를 선택했다 나는 해양봉쇄를 보면소 쇄국정책을 떠올렸다. 발전을 두려워하면 후퇴할수 밖에없다 소현세자와 빈의 죽음을 보면서 조선의 미래를 보는듯했다 조선시대가 아닌 현재에 태어났다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쳤을텐데 시대를 앞서 태어나 억울하게 세상을 떠날수밖에 없었다. 세자빈이 왕에게 남기지못한 편지의 내용이 구구절절 어찌그리 옳은 말이던지 왕이 만약 그 편지를 받았다면 어떤 얼굴이었을까 궁금해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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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회빈 강씨 김용상 역사소설 멜론
인조반정을 일으켜 숙부인 광해군을 몰아내고 보위에 오른 조선의 16대 임금 인조. 25년 간의 재위기간동안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겪으며 세 차례나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피난한 무능한 왕으로 평가 받으며, 역사 속에서 맏아들 소현세자일가를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는 인조. 그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왜 자신의 아들을 이토록 미워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요즘 소현세자를 소재로 한 책들이 간간히 나오는 듯 하네요^^ 신용우의 <요동묵시록>과 김용상의 <민회빈 강씨>는 이미 읽었고, 이수광의 <소현세자 독살사건>은 아직 읽지 못했으나, 곧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이미 읽어본 <요동묵시록>과 <민회빈 강씨>를 비교하자면, 위의 두 소설의 차이는 봉림대군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를 숱한 당쟁과 왕권 독살의 소용돌이로 표현하고 있는 시각도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인조의 큰 며느리이자 8년 간의 볼모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2개월만에 급사한 소현세자비인 민회빈의 입장에서 기술된 역사소설이다. 같은 시기의 같은 인물들을 묘사한 신용우의 <요동묵시록>과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읽었다. 20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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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회빈 강씨/김용상/멜론 역사소설의 장점 중 하나는 중요 사실을 줄거리로 취하고 가상의 인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기적 기록이 불러올 수 있는 분쟁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찬반 논쟁이 상호 비방의 수준까지 확대된 경우는,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두고 벌어진 논쟁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런 논쟁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면에서 저자의 선택은 현명해 보인다. 상. 하 두 권으로 출간되었던『별궁의 노래』를 한 권으로 재출간하였다. 이 책을 모태로 <별궁의 노래>라는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사실에 충실하다 보면 기록으로 머물게 되고 재미에 비중을 두다 보면 사실을 소홀히 하기가 쉬운데,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인물들의 긴장감을 끝까지 잃지 않은 것이 큰 장점으로 보인다. 병자호란 후 심양으로 끌려가 8년 가까이 인질생활을 하다가 귀국을 한 소현 세자 내외는, 소현 세자가 의문의 병으로 급사한 후 세자빈도 인조를 시해하려고 했다는 무고로 폐서인되어 친정으로 쫓겨난 후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소현 세자와 민회빈 강씨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던 인조와의 갈등은, 끊임없이 왕을 교체할 수 있다는 청나라의 압력으로 인조가 소현 세자를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정적으로 의식하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또한, 삼전도의 굴욕을 복수하겠다는 인조와 신하들과는 달리, 소현세자는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먼저라는 현실적인 입장을 보인다. 인조는 이러한 생각이 세자빈이 심양에서 농사를 짓고 무역을 하여 돈을 모아 세자를 조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은 세자빈이 친정 아버지 조문을 못하게 막는 상황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세자빈은 인조의 의심을, 총애를 받던 후궁 조소용의 간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저자 역시 조소용의 모략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시각은 보기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민회빈의 죽음이 큰 아쉬움을 주는 것은, 소현 세자가 등극하여 백성의 배고픔을 달래고 과학과 기술에 바탕을 둔 실질적인 개혁이 시행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잃고 말았다는데 있다. 인조의 뒤를 이은 봉림대군 효종의 북벌 준비가, 집권 세력의 숭명배청 논리와 대국 청나라를 상대로 한 현실적인 한계를 보면서 더 큰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강빈이 사약을 받고 안장된 곳은 고향 금천 능말의 산 아래이다. 그곳은 흔히 애기능이라고 이름하는, 지금의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위치한 영회원이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따뜻한 봄날 다시 한 번 아이들과 함께 그곳을 찾아 당차고 올곧은 한 여인의 비운의 삶에 대해 되새겨 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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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인상’하면 여전히 떠오르는 것은 역시 신사임당이다. 남편 내조 잘하고 자녀 교육을 완벽하게 시키는 여인, 말없이 순종하는 여인이다. 하지만 요즘은 신사임당이 한국의 여인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각이 떠오르고 있다. 왜 이런 논란이 있는 것일까? 신사임당이 시댁에는 그리 잘 했던 여인이 아닐 수 있다는 반론이 재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의 새로운 여인상을 찾아야 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여인상, 그 여인상에 나는 주저없이 민회빈 강씨를 추천한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여인을 보았다. 초중고교 12년 동안 역사를 배우면서 아주 짧게 스쳐지나가듯 들었던 여인, 충분히 역사적으로 재조명이 되도 좋을 여인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이 여인이 바라본 새로운 세계, 그리고 그 세계에서 적응해 나가는 이 여인의 모습을 통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인조의 세상, 반강제로 왕이 된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정당한 방법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그는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고 많은 정적이 만들어 졌다. 그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그 권력욕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는 친 아들과 며느리까지 자기 손으로 죽여야만 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결국 청나라의 볼모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많은 백성들을 청나라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면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왕이었다. 또한 그런 약점과 스트레스를 자신만큼이나 권력욕이 강한 여인에게 풀었으며 그 여인의 치마폭에서 놀아났던 왕이었다. 민회빈은 이런 왕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아는 여인이었다. 이 여인이 세상을 읽어내는 능력은 탁월했으나 청나라 볼모로 끌려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알지 못했다. 가장 힘들 때 그녀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집안에서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 조선의 여인에서 벗어나 남편과 청나라로 끌려온 조선의 백성을 구해내기 위해 무역과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죽어가는 많은 백성들을 살려 냈다. 끊임없는 청나라의 말도안되는 돈과 물건을 달라는 요구를 이 여인은 자신이 스스로 일군 땅과 무역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남편을 내조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정확하게 알았고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 아님을 확신했다. 스스로 농사짓는 법을 익혔으며 그것을 조선의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진두지휘했다. 이렇게 앞선 그녀의 생각과 실천하는 행동은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시아버지 인조의 잘못으로 인해 어린 자식들과 생이별을 해서 살면서 그 아픔을 그녀가 가진 능력으로 조선의 백성들을 살려내며 달래야 했다. 이런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인조의 귀에 들어가 큰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녀가 살려낸 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그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던 신하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아낌없이 받았다. 그녀의 행동하는 백성을 향한 사랑은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신하들이 끝까지 배신하지 아니하고 죽음으로 그녀에게 보였다. 그녀는 분명히 조선에서 바랐던 세자빈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환경에 적응하는 여인이었으며 세상을 읽어내는 눈을 가지고 조선의 백성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여인이었다.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분명 많은 비판이 따른다.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이뤄나갈 줄 아는 사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아는 민회빈이야 말로 지금 현재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인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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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을 물린 뒤 세자는 무슨 이야기든 이어가려고 무진 애를 썼다. 별로 재미도 없는 궐 안 소식도 들려주고 귀국길. 귀환길에 있었던 일들도 늘어놓았다. 그런 이야기를 시시콜콜히 하던 사람이 아닌데 한성에서 겪은 아픔을 감추느라 저리 애를 쓰는구나 생각하니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본문 중 표현된 몇 줄 안 되는 이 내용에서만도 충분히 이 책의 정체성과, 이 짧은 내용 안 세자와 빈궁의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세자는 하나의 '사람'이었으며, '남편', 이었으며, '아버지'였다. 평범한 하나의 인간이었다. 그런 그를 곁에서 보필하며 그리워하며... 민회빈 강씨. 그녀는 나약한 이가 아니었다. 타지에 동떨어졌을 적에도 결고 굴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을 해쳐 나가려 노력했다. 실존했던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당연히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법이나, 동시에 역사라는 것 자체가 '승리자의 기록'이기에 가슴 한 편을 아릿하게 만든다. 내면에 어떤 내막과 한이 서렸을지를 가만히 상상해보게 한다. 시대를 지나쳐간 한 여인의 파란만장했던 기록을 되새겨보며, 그녀의 운명을 되살려낸 머릿 속에서 몇 번이나 다짐했다. 이런 개인적 다짐 외에도 이 흥미롭고 서글픈 역사를 우리의 피에 흘려내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조금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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