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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세계사]라고 한다. 문득 책 제목에서 묘한 불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어디서 연유하는 불쾌감인지를 알기 위해 반란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 반란(反亂): 정부나 지도자 따위에 반대하여 내란을 일으킴. 사전적 의미로만 보았을 때, 반란은 불순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기존의 질서를 뭉개는 듯한 어감이 느껴진다. 따라서 반란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면 그저 소일거리로 읽어보기는 하겠지만, 거기서 무슨 의미나 아니면 우리가 배워야 할 가치를 찾는다는 것이 부질없어 보인다. 그러나 역사상 무수하게 일어난 반란들을 과연 우리는 소일거리로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역사는 우리가 알다시피 승자의 기록이다. 따라서 승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들에게 반하는 모든 저항은 반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민중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의 반란이 성공하면 그들이 승자가 되었기에 반란이란 이름에서 벗어나게 된다. 즉, 반란이라는 명칭 또한 철저하게 승자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가 있다. 아마 이래서 반란이라는 제목을 보고서 불쾌한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란이라 이름 붙여진 승자의 기록 속에서 감추어진 것을 찾고자 한다. 승자만이 이 세상을 움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압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저항이 있었으며, 그것은 역사의 불변하는 진실이었기에 그들의 언어 속에서 피억압자들의 투쟁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민중의 저항은 일상이며, 동시에 진보의 원동력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압제와 폭정에 맞서서 자유와 해방을 위해, 그리고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투쟁한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 있어왔고,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25개의 민중저항을 고대와 중세의 반란, 근대의 반란, 그리고 현대의 반란이라는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어떤 것은 그 봉기가 성공하여 혁명으로 이름 붙여지고, 또 어떤 것은 전쟁이나 항쟁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혁명이 되었든, 전쟁이나 항쟁이 되었던, 아니 반란으로 그대로 남아있던지 간에 거기에는 수많은 피억압자들의 붉은 피가 선명하게 묻어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대부분의 서적이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세계사를 다룰 때, 주로 서구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나, 이 책의 경우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동양의 사례도 다루고 있다. 인도 세포이 항쟁과 티베트의 라사봉기, 베트남혁명, 그리고 중국에서 일어난 황건적의 난과 황소의 난, 우리나라 고려시대 천민, 노비의 난과 동학 농민혁명이 그것이다. 소개된 반란들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얼마나 편견에 빠져 있는지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기원전 52년에 일어난 켈트반란, 1876년 미국 제7기병대를 궤멸시킨 인디언 전쟁, 1987년의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등을 읽으면서, 우리는 승자의 기록에만 의지하여 그 기록 이면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람들을 억압을 보지 못했음을 알게된 것이다. 우리는 로마시대의 역사서나, 아니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를 읽으면서 로마의 눈으로 역사를 보게 된다. 그러나 갈리아인 즉 켈트족에게 있어 로마는 잔인한 침략자이자 노예상인에 다름 아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총독으로 10년간 갈리아를 통치하면서 살해한 켈트인이 100만명, 노예로 로마에 끌려간 켈트인이 50만에서 100만명 이라는데, 우리는 카이사르에 열광하면서 켈트족의 억압과 그들의 투쟁에는 귀막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또한 인디언을 비롯한 각 대륙의 원주민들에 대한 편견은 어떠한가? 신대륙을 찾아나선 서구인들의 시각에서만 그들을 파악했지, 그들이 대륙의 주인이었음을, 그들이 어떻게 억압받았는지, 그들이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저자는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또 하나, 역사는 항상 민중의 편이 아니며, 투쟁은 민중이 하지만 그 과실은 기득권층일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서기 66년 예루살렘의 마사다 요새에서 벌어진 유대인과 로마의 전쟁은 유대인의 지배층은 로마에 빌붙어 기득권을 누리는 동안 민중들만이 처절하게 로마에 투쟁했다. 그런가 하면 중세유럽, 기근과 흑사병의 유행, 거기에 봉건영주들의 수탈에 농민들과 공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만 상인 및 수공업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외면함으로써 모든 투쟁이 허사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했다. 반란은 경제적 모순과 정치의 실패가 만날 때 무르익는다. 그것은 예기치 않은 사소한 사건으로 점화 될 수 있지만, 사상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준비된 집단의 유무가, 그리고 그들 지도자들의 투철함과 유연함, 민중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힘이 융합될 때 혁명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1791년 카리브해의 에스파냐령인 히스파니올라섬 서부 산토도밍고에서 일어난 아이티 혁명이 그러했고, 호치민이란 걸출한 혁명가가 있었던 베트남 혁명,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끈 쿠바혁명이 우리에게 그걸 보여주고 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억압받던 민중들의 외침은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시작된 혁명은 이집트를 거쳐 온 중동을 휘몰아치고 있다. 또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나라들의 민중들은 그들의 억압과 탄압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시퍼런 칼을 담금질하고 있다. 우리 또한 현대사에서 수많은 항쟁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승자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패자가 되기도 했지만, 그러한 투쟁들 모두 우리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은 결코 반란일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말했던 마지막 문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우리는 자신의 시대와 치열하게 싸우는 최초의 사람도 아니며, 마지막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그들 중의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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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떤 블로거의 글 중에 본 것 중 이런 것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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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공부를 하다보면 많은 반란을 보게 된다. 기득권층의 권력다툼으로 일어난 것부터 하층민, 평민들의 반란까지 다루는데, 대부분 그 끝이 안 좋고 그것 자체를 그냥 몇줄로 짧게 넘어가서 그들이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아닌 그 반란의 결과만을 배웠던 것 같다. 애초에 왕의 업적이나 그 당시 정치, 경제등을 위주로 배우고 역사 자체가 가진 자 입장에서 기술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반란은 좋지 않게만 그려졌지 싶다. 우리는 그 시대의 기득권층의 역사만 배우고 실제 평민이나 하층민의 삶같은 것이나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하니 반란은 항상 다른 사람을 빼았으려고 하는 나쁜 이미지가 은연중에 심어져있다는 생각이 든다.(생각해보면 드라마 봐도 기업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사람은 그저 나쁘게만 그려지고 맨날 마지막에 진다. 그들은 그저 조연에 악역일 뿐이다. 주식회사면 그 회사가 오너꺼도 아닌데 말이다.) 그 당시 평민이나 하층민이 얼마나 수탈당하고 힘겨운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책에서는 가르쳐주지도 않아서 더 그런듯 하다. 그런데 이 책은 세계사 속의 여러 반란의 실제 내막을 소설처럼 이야기해준다. 우리가 익히 배웠던 최치원의 황소토격문을 통해서만 알았던 황소의 난, 다리우스 왕과 싸운 그리스, 홍건적의 난등을 그 원인, 과정, 결과 등을 말해주는데, 이책을 읽어나는 반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분명 사회학개론 시간에 갈등은 나쁘지만은 않다. 갈등으로 인해 변화가 온다고 배웠음에도 반란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이 책 속의 수많은 반란을 보니 그나마 반란이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시대가 바뀐다 싶다. 아주 옛날의 반란부터 최근의 것까지 다루고 있는데, 세계사 속의 반란을 다른 시각에서 보여준 고마운 책이다. 읽기전에는 다 읽고 중고로 팔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가지고 있으면서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을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