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를로스 푸엔떼스는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지식인 중에 하나이다. 훌륭한 외교관이었으며, 또한 훌륭한 학자이며, 무엇보다도 훌륭한 작가이다. 그의 소설은 그가 활동했던 다른 천재적인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들처럼 명확하게 라틴 아메리카적이다..그리고 그러한 확고한 라틴 아메리카적이라는 것이야 말로 그와 다른 중남미의 작가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구가하게끔 해준 커다란 요인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푸엔떼스의 소설은 이상하게 국내에서 그 번역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보르헤스의 경우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푸엔떼스의 작품이 이들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걸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이 아우라다. 비록 이 책의 구성에서의 아쉬움이 조금 생기긴 하지만 그건 출판사의 문제이고 소설 자체는 작가의 훌륭함을 여실히 보여주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바로 라틴 아메리카적인 사고관 속에서 배태된 환상과 현실의 혼동에 대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실제인가, 저것이 실제인가에 대한 혼동.. 바로 그 혼동은 라틴 아메리카 고유의 것인 동시에 오늘날 세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중남미 작가들이 오늘날 그렇게도 대중적 인기와 문학적 명성을 얻은 것이기도 하리라. |
|
단편 소설이 이만큼 묘한 허무감과,사랑에 대한 집요함 그리고 그집요함이 알수 없는 공포감 이랄까 하는 감정 마저 불러 일으킨다.생의 허무감을 느낀다는건 해탈자가 아닌바에야 공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흐릿한 감정만이 느껴지고 탄력있고 다소곳한 젊은 '아우라'의 존재가 어디에서 요렌테 부인과 오버랩 되고 어디에서 분리되어 버리는지 조차 구분을 못하겠다.
분명한 것은 주인공 자신은 아우라를 애틋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요렌테 부인은 바로 그 아우라 라는 사실 이다.신비주의 소설 분야의 최고라고 평가되는 작품에 대한 나의 느낌은 환상과 현실이 몽롱해지는,시간과 공간 마저 왜곡 되어버린 다른차원을 여행한 기분이다.참고로 작품의 원문(스페인어)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인상깊은구절] 그 사진을 눈에 붙이다시피 채광창 쪽으로 들고 서서, 넌 한 손으로 요렌테 장군의 하얀 수염을 덮어 보고 있어.그리고 검은 수염을 상상해 보는 거지. 그런데 네가 발견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지워지고 잃어버린, 그리고 잊혀진, 그러나 너,바로 너,너 일뿐이야.(중략)그 고무와 마분지로 만들어진 얼굴은 네 진짜 얼굴을 잊고 있었던 너의 옛 얼굴을 4반 세기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