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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중산층 빅뱅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비단 이 책의 저자인 추미애 님만의 것이 아니다. 1998년 갑작스러워 보이는 그러나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던 한 차례의 붕괴로 인해 기존의 안정적인 삶은 균열을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평생 고용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거리로 나앉았다. 퇴직 이후의 삶은 아직 멀었다며 넋 놓고 있던 사람들은 당장에의 삶을 걱정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흔들리는 큰 기업들의 안녕을 돌보느라 바빴다. 대기업이 무너지면 우리 경제도 무너진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상대적으로 작은 곳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정부로부터 받질 못했다. 제 갈 길은 제 스스로 고민해야만 하는, 하지만 ‘혼자서도 잘 해요’를 외치며 일어서기엔 경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또 한 차례의 위기가 현재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기업들은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같다. 매해 이익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듣는다. 그런데 성장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잠시 포기해도 된다며 참아왔던 우리 자신의 몫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장은 계속 하는데 그 성장이 또 다른 고용을 창출한다거나 실질적으로 성장에 기여한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쪽으로 이어지질 않았다. 기업들이 휘청였으면 정부의 선택이 달랐을까?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현 정부는 듣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중심축이어야 할 중산층이 엷어지고 있는데, 오히려 정부는 젊은이들이 취직치 못하는 이유는 눈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을 뿐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란 없다. 다만 조금 더 어렵고 덜 어렵고의 차이가 있으며 시간이 더 걸리고 덜 걸리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부의 의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소수에게 몰아주는 식의 정책에 너무도 익숙한 것 같다. 극한 상황에서는 그런 입장이 통할 수도 있다. 대다수를 침묵케 만들면서 소수의 엘리트를 육성하는 정책이 지난 날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층은 숫자를 특정 지을 수 없는 대다수의 서민들이다. 무엇이 얼마나 그리고 왜 어려운지를 파악한 후에 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 관점에서의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할 것인데 정부는 그러려는 노력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돈이 없다며, 경제 성장의 원흉으로 복지를 지목하고 이의 축소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시에 좀더 시장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부자들의 세금을 감축하려는 움직임을 수시로 보이고 있다.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존재할 때 이 정부는 가장 힘 있고 부유한 자의 편을 듦으로써 스스로가 친서민적이지 아니함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가 책의 후반부에서 제시한 정책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사실 극소수(?)의 저소득 계층을 위해 본인이 반을 저축하고 정부에서 저축 금액만큼을 보장하는 식의 제도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그 적용 계층을 확대하자는 소리인데 아마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할 듯 싶다. 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4대강 사업을 관둔다면 충분한 재원의 확보가 가능할 것도 같은데, 그러기에는 배불리 먹여주어야 하는 토건 세력의 힘이 막강한 것이다. 결국 누구를 위해 움직일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정치적인 결단에 의해 중산층은 지켜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보통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그녀의 목소리에 동의한다. 이제껏 정부는 객관을 가장한 채 소위 힘 있는 세력의 제 신명을 바쳐왔다. 정작 이 사회를 지탱하는 시민들의 아픔에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 채 발생한 문제는 모두 개개인의 무능력과 게으름의 결과라는 식의 매도를 해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는 비정규직과, 그마저도 되지 못해 거리를 배회하는 실업자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받아야할 교육으로부터 높은 등록금 때문에 소외를 경험하고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 그들을 위해 대신 울어줄 이가 과연 있기는 한가? 정권의 교체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그러나 반대의 기치를 높이는 데에 주력하다 보면 그 이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는 한다. 그리고 현 집권 세력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폄하를 듣고 있는 민주당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바로 그 집단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은 게 사실이다. 기성 정치인들이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정치권 밖에 위치한 사람들이 누리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를 시사한다 하겠다. 안철수 신드롬은 괜한 게 아니다. 사회가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면 지금의 트렌드를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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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5%올랐다고 난리지만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체감지수는 그 몇 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