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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반 소리 반> 이 말은 굉장히 유명하다. 고유명사처럼 쓰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K팝스타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나온 기획사 JYP의 대표 박진영씨가 한 말이다. 음악 좀 하고 좀 듣고 좀 안다는 사람들은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말을 대부분 박진영을 까고 조롱하는데 쓴다.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알아듣지 못할 박진영만의 표현을 듣고 ‘그러네~ 맞아. 노래는 공기 반 소리 반으로 해야지’하는 시청자가 있을까? 그 소리를 들은 오디션 참가자는 다음번 스테이지에서 또 같은 말을 듣는다. <공기 반 소리 반>이 무슨 소리인지 당최 알 수 없는데, 뭘 고쳐야 하는 지 알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아니! 공기 반 소리 반이 뭔 소리요! 당신이 먼저 그렇게 불러 보든지”하는 오디션 참가자는 없다. 혹 있다 해도 모조리 편집! <공기 반 소리 반>이 인구에 회자되고 이번 시즌 K팝스타에서 유독 박진영의 심사평이 도드라지게 편집되는 건 어쩌면 프로그램 담당자의 욕심일 수도 있다. 워낙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고 어쨌든 살아남고 시청률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만인이 깔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 물론, 심사위원 박진영은 함께 하는 두 사람보다 더 프로의식과 전문가의식을 가지고 심사를 하겠지만 말이다. 시청자와 음악 좀 하고 듣고 안다는 사람들 중 많은 숫자가 박진영을 까는 것은 그의 허무맹랑한 심사평과 더불어 박진영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차이다. 그가 구원파에 연루가 되어있느니, 결혼 생활과 여자관계가 어쩌느니, 기획사가 엄청난 재정난에 빠졌다느니 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사실여부를 알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의 표절 의혹이다. 여기서 의혹이라 하는 것은 국내 발매되는 음반과 음원에 대해 표절 판단을 내리는 주최도 애매하고 그것에 대한 신뢰도 마음껏 보낼 수 없는 골 때리는 음악 환경 탓에 있다. 마음 같아서는 <그의 표절>이라고 하고 싶지만 몸을 사려 본다. 그렇다면 박진영의 표절은 나쁜 것일까? 표절이라면 당연히 나쁜 거지! 남의 것 갖다 베낀 거 아니야! 당연할 걸 가지고!
맞다. 남의 것을 갖다 베끼는 행위는 잘못된 거다. 그런데 이런 표절 논란 같은 것에 휘말리는 가수나 작곡가들의 변명 중 대다수는 이런 것이다. “아~ 말이죠~ 음악을 잘 모르시나 본데 말이죠~ 얼마나 많은 음악이 존재합니까. 세상에는 말이죠. 창작 이라는 것은 말입니다. 무지하게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 뼈를 깎는 고통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말이죠. 멜로디 라인 몇 개가 비슷하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하면 말이죠. 어떻게 음악을 만듭니까!!” 라고.
“책에 씌어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이미 어딘가에 씌어 있는 것이나 들은 것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지식에 소유권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 예전에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던 지식을 사용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다. 책뿐만 아니라 문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는 무언가에 얼마간을 덧붙여가는 것이 문화 행위이기 때문이다.” (p.302) 저작권을 비롯한 창작물에 대한 관습·성문법의 시초가 되는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에서 결과적으로 도널드슨이 승리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 된 문장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창작은 자연스러운 행위이자 활동이었다. 출판물을 비롯해 음악·미술, 인류의 삶 전반에 걸친 모든 영역에서 창작은 반복되고 반복되어 왔다. 정말 아무도 하지 않았고 만들지 않은 순수한 창작물을 만드는 행위가 가능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면서 표절을 반복해서 일삼는 이들의 행위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남의 창작물을 베끼거나 가져가는 행위가 아무런 절차 없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과도한 카피라이트의 적용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컴퓨터 인터페이스나 브라우저와 같은 경우 마이크로소프트와 대척점에 있는 오픈소스집단과 그들의 콘텐츠는 알 만하고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자유로운 정보의 이용으로 사용된다. 인터넷 브라우저가 당연히 마이크로소프트밖에 없는 줄 알았던 나와 같은 IT관련지식 문외한에게는 가르쳐줘도 사용하지 못하는 개념과 정보지만 창작물이 어떤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공유의 개념이라는 큰 틀에서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것이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정보의 생산과 창작물의 생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세상에, 인류에게 공유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학과 학문입니다. 그것들은 공기나 물처럼 자유롭고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p.191) 이미 18세기에 이런 생각을 하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것으로 인해 카피라이트의 개념이 지금까지 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18세기 영국의 대형 서점주는 책의 기획에서부터 제작, 인쇄, 유통, 판매까지 모두 관여했다. 그 무렵의 서점주는 출판문화의 종합 프로듀서였던 셈이다.” (p.24) “요컨대 이 싸움은 밀러처럼 에든버러에서 일찌감치 런던으로 진출한 서점주와 도널드슨처럼 뒤늦게 찾아온 사람과의 싸움, 즉 선발 업체가 독점한 시장에 신규 참여자가 파고들려고 한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다.” (p.41) 진짜 이유는 기득권 싸움이다. 기득권을 쥔 쪽이 후발주자를 견제하고 자신들의 방으로 기웃거리는 새싹을 짓이겨 다시는 움트지 않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저 멀리 촌구석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 서점가에 들어와 자신들의 밥상 한쪽을 차지하려는 도널드슨을 없애버리려는 시도였다. ‘도널드슨 대 베케트’재판의 양쪽 당사자들과 법률 대리인들이 펼친 이야기들은 보편적 인권과 인류의 자유로운 정보교류 등 고상한 것들이 많았다.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고상한 용어와 문장과 단어들 뒤에 숨은 의도는 결국 자기 기득권 지키기였다. 결국 재판에서 승리한 도널드슨도 에든버러에서 서점주로 성공한 후 런던으로 진출해 더 큰 성공을 바란 것이지, 처음부터 영국과 자유국가와 그 시민들의 인권과 공유의 가치 실현을 위해 재판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독점과 ‘해적’은 선악이라는 이분법으로 가를 수 없다. 양자는 어디까지나 경제적 이익을 추구했지만 자신들의 처지를 옹호하는 방편으로 저자의 권리나 독자의 편의를 말해왔다. 양자의 힘과 힘이 충돌하고 거기에 법률가들의 인간관계가 뒤얽히며 시대가 움직여갔다.” (p.324) 이 책의 주제라고 생각한다. 솔직한 주장이다. 가치 판단은 너무 어렵고 골치 아프다. 오늘 날짜로 정당이 없어진 통합진보당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을 가지고 ‘악’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나? 그리고 17만 장이나 된다는 판결문의 내용만큼 오늘 날짜로 없어진 통합진보당의 구성원들이 ‘악’이라고 규정지을 수도 없다. 선악의 이분법은 간단한 듯 어렵고 골치 아픈 문제다. 이분법이 간단해 지면 그 틈을 비집고 폭력과 야만이 기어 들어오게 마련이다. 차라리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이자 목표다. 권력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다.
“저작권 연장에 찬성하는 쪽의 논의에는 저작권 사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자란 곧 콘텐츠 유통 사업이다. 저작권이 연장되면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저작자가 아니라 저작권자이고 저작물을 유통시켜 이익을 얻는 회사다.” (p.320) 한국에서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대형 기획사가 찍어낸 보이·걸그룹은 제외하고)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뮤지션이 한 곡당 가져가는 저작료가 몇 십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음반 시장은 붕괴한지 오래고 음원 시장이 현재 갑인 구조다. 이것 떼고 저것 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돈을 저작료로 받는 다는 것이었다. 그런 현재 한국의 음악시장의 구조를 놓고 보면 저작권 및 카피라이트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창작자는 물론 소비자까지 ‘을’을 지나쳐 ‘병’이나 ‘정’쯤으로 만들어 버린 ‘갑’들에게 있다. 대형 유통 업체. 수백, 수천 곡의 음원을 싸게 사 들여 그것보다는 조금 더 비싼 금액으로 소비자에게 파는 그들의 ‘갑’질에 대해 제재하거나 수익구조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 이상 한국의 뮤지션들에게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 판결의 주요 요인이 된 개념을 들이밀며 “에이~ 만인을 위해서 저작권, 카피라이트 따위 매달리지 말고~~ 에이~ 더 만들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폭력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 고통의 연속인 창작에만 매달려도 시원찮을 뮤지션들에게 정보의 공유와 오픈소스 개념을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다. 어? 그러면 K팝스타의 심사위원 박진영씨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은 과도한 거 아닌가? 표절의혹이 아니라 단지 너무 허무맹랑한 심사평과 유명한 해외 뮤지션들을 한방에 깎아내리는 절대 신공의 용기가 싫은 건가? 잘 모르겠다. 크흐흐...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의 결과, 카피라이트는 영구적이지 않고 기간이 정해진 권리라는 원칙이 만들어졌다.” (p.10) 아무튼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은 런던의 기득권 대형 서점주들에게 패배를 안겼다. 그들이 가진 독점적 권리와 자폐적 탐욕은 사라졌다. 물론! 잠시 동안! 카피라이트가 영구적이지 않고 기간이 정해진 권리라는 원칙이 이미 200년도 훨씬 전에 만들어 졌지만 아직도 모든 영역의 창작활동과 창작물에 대해서 표절 논란과 의혹이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쉬운 일이 아니다. 간단하게 선을 긋기도 모호하다. 선악의 이분법만 들이밀기에는 골치 아픈 문제다. 결론은 공기 반 소리 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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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7. 해적판 스캔들 – 사계절 카피라이트. 언제부터 있던 개념일까요 잘 모르겠지만, 영국에선 중세 이후에 있던 개념인 듯 싶습니다. 해적판 스캔들은 정품과 해적판의 첫 번째 싸움이라고 하겠습니다. 정품을 써야 된다. 해적판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적인 행위로서 매우 나쁜 짓이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저작권에 대해선 간단히 보면 위와 같습니다. 즉, 해적판은 나쁜 것이라는 거죠. 초등학교때, 중/고등학교때는... 이렇게 교육받고, 아 그런갑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겁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거나,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생각의 깊이가 넓어지면서, 이런 저작권의 개념에 대해서 비판의식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저작권. 지키는 게 맞는 거 같긴한데, 가끔 보면 황당한 것도 있는 듯 싶다.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자신이 만든 창의적인 자료라고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남이 만든 창작품 – 저작권을 따로 설정하지 않고 푼 창작품 –을 짜깁기 해서는 저작권을 주장하는 경우도 종종 보이고.. -ㅁ-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라는 뭐 그런 것이죠. 갑작스레 생각난 것으로는 MS사의 베이직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입니다. 베이직이라는 게 빌게이츠가 발명한 프로그램은 절대 아닙니다. 소스는 공공연하게 돌아댕기고 있었고 빌은 이 소스를 활용하여 짜깁기해서 자신의 베이직 프로그램을 만들고 저작권을 주장한 것이죠. 조금은 찌질했던 면이 보입니다. - 이렇게 만든 베이직 프로그램을 남이 사용하면 저작권법 침해로 고소했다고 합니다. 양심에 좀 찔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 저작권이라는 개념자체가 자연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혹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권리를 산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애매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해적판 스캔들은 런던의 서점과 스코틀랜드 애튼버러의 서점주인과의 저작권과 관련한 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런던 서점 주인들은 영구적인 저작권을 주장했고, 애튼버러의 서점주인은 과거에 설정된 저작권 기간이 지나면 저작권은 풀린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알고보면 ‘적당히’ 라는 것을 얼마나 지키는가에 따라서 좋고 나쁨이 결정됩니다. 영구적인 저작권.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나는군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핑계아래 영구히 비싸게 책을 팔아먹으려고 한 런던의 서점 주인들은 참... 다행히도, 결국은 런던의 서점주인들이 해적판이라고 주장한 ‘저작권 시기가 지난 출판물’은 합당한 권리라고 결론이 나서, 저작권이 영구화 되지 않은 듯 합니다. 영웅으로 칭하기엔 다소 부족한.. 수익목적으로 값싼 책을 만들었던 상인이었지만, 애튼버러의 서점주인. 알랙산더 도널드슨에 경의를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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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저술이라는 개념은 수천년 전에 등장했지만,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몇백년밖에 되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세라는 제도가 도입된 것은 불과 몇백년 전의 일이다. 인쇄술이 없어 모든 책을 일일이 손으로 필사하던 때에는 저작권과 인세란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그 때의 책이란 부유한 후원자가 개인의 사명감이나 흥미를 위해 책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문인을 후원할 때에 만들어지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인쇄술이 도입된 뒤에도 한동안 저자와의 계약 없이 무단으로 책을 찍어내는 경우가 대세였다. 책이 팔리면 저자에게 그에 따른 대가가 돌아가야 한다는 개념이 생긴 것은 훨씬 뒤였다. 하지만 저작권이 생겨나자, 이번에는 새로운 논쟁이 생겨났다. 저작권을 영원히 인정해야 할까, 아니면 유효기간을 두어야 할까? 문화 진흥을 위해 바람직한 길은 어느 쪽일까?
<해적판 스캔들>은 '사계절' 시집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송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해적판은 저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출판한 서적을 일컫는다. 당연히 해적판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저자에게는 인세가 돌아가지 않는다. 원론적으로만 보면 해적판은 출판계의 시장을 침해하는 암적 존재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해적판 스캔들>의 소송사건에 나오는 해적판은 경우가 달랐다. 당시 법에는 출판된 지 28년 동안은 저작권을 법적으로 보호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는데, 그 28년이 지난 뒤 해적판이 출판되었던 것이다. 저자에게서 저작권을 사들인 서점주는 저작권은 기한에 상관없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해적판 출판업자는 저작권을 영원히 인정하는 것은 공공 대중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법정은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에는 그저 출판계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나 여겨졌겠지만, 이 재판은 저작권 역사에서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하는 세기의 재판이 되었다. 저작권의 개념을 대대적으로 확립한 동시에 저작권에는 유효기간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못박은 것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책은 저자의 소유가 아니라 공공의 소유가 되며, 저작권자에게 인세를 주지 않는 만큼 저렴해진 가격의 해적판을 출판 유통시킬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저작권에 기한이 있기에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출판사도 신인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며, 이 일이 저술출판계의 분수령이 되었다고 평한다. 저자는 영원한 저작권이 도입되었다면 많은 출판사는 새 책을 내는데 힘쓰지 않을 것이고 많은 독자들은 독점계약된 비싼 책을 울며 겨자먹기로 사야 했을 것이라 덧붙이는데, 오늘날의 독자라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오늘날 저작권은 저자의 사후 50년으로 확정되었고, 최근 사후 70년으로 개정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저작권 시효 소멸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작권 시효가 소멸된 책은 저작권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대중의 인정을 받고 있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은 책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해적판 스캔들>의 재판은 후자의 개념을 대대적으로 인식시킨 사건이었고, <해적판 스캔들>은 재판 과정과 변론 논리를 더없이 명료하고 깔끔하게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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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회는 지식이나 정보를 얼마나 점유하는가에 따라 이윤의 크기가 달라진다. 때문에 특정인이 지식·정보에 관한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한 지식재산권은 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다.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해적(海賊)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하지만 지식재산권을 인정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를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다. 예컨대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나 최근 여러 나라에서 성장하고 있는 해적당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지식재산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적재산권을 악용해 지식과 정보를 특정한 집단이 독점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지식·정보를 생산한 자의 배타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과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의 진보를 위해 지식·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서로 상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산자의 시각에서 보면 자신의 정당한 몫을 가지길 원하는 것이 옳으며, 사회적인 시각에서 보면 지식·정보가 공유되는 것이 사회의 진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저작권 분쟁
<해적판 스캔들>은 앞서 언급한 지식재산권의 딜레마에 관한 고민이 담긴 책이다. 고민을 진전시키기 위한 첫 걸음은 문제의 시발(始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지적재산권의 개념이 처음 법으로 정립된 18세기 영국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저자에 따르면 1710년 영국에서 제정된 ‘앤여왕법’이 최초의 저작권법이라고 한다. 이는 영국의 서점주 조합이 “학문의 진흥을 위해 문학의 소유권을 법률로 정해달라고 의회에 청원(76-77쪽)”한 것에서 연원했다. 앤여왕법은 11조로 구성되어있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책의 저작자 및 저작자로부터 판(版)을 양도받은 자에게는 인쇄의 독점권이 있다. 이미 출판된 책은 1710년 4월 10일부터 21년간, 앞으로 출판되는 책은 공표된 때부터 14년간 보호된다. 제2조 보호를 받으려는 자는 출판하기 전에 책을 서점주 조합에 등기해야 한다. 제11조 14년간 보호 기간이 끝날 때까지 저자가 살아 있으면 인쇄 독점권은 일단 저자에게 돌아가고 다시 14년간 보호된다.(78-79쪽)
앤여왕법은 책의 저작자 및 저작자로부터 판(版)을 양도받은 자에게는 인쇄의 독점권이 있다고 명시한다. 여기서 저작권과 인쇄의 독점권은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저자에게 지급하는 인세의 개념이 없었다. 대신 저작권자가 작품의 권리 자체를 서점주조합에 파는 형식의 지적재산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때문에 서점주가 저작권자의 작품을 인쇄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더라도 저작권자는 서점주에게 작품의 권리를 팔았기 때문에 인쇄로 남긴 이윤의 배부를 요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출판시장에서 서점주조합의 힘은 막강했기 때문에 이러한 관행은 문제없이 횡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앤여왕법이 법으로 보호하는 21년의 기간을 넘긴 작품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점주조합이 해적판이라 부르는 책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주로 스코틀랜드에서 출판됐고, 이를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 알렉산더 도널드슨이다.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유통된 해적판은 서점주조합이 출판한 책보다 상당히 저렴했다.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도널드슨은 사업을 확장했는데, 이러한 도널드슨의 해적판 유통으로 피해를 입은 서점주조합은 도널드슨을 저작권 침해로 제소했다.
최초의 저작권 분쟁을 촉발시킨 책은 제임스 톰슨의 <사계절>이었다. 앤여왕법에 따르면 당시 <사계절>의 법적인 보호기간은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사계절>의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었던 런던의 서점주 베케트는 생각이 달랐다. 저작권은 영구적인 것이라 생각했고 이는 서점주조합의 생각과도 같았다. 베케트를 필두로 한 서점주조합은 도널드슨과의 재판을 통해, 손실을 만회할 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저작권을 획득하려는 노림수가 있었다.
이윤의 창출 VS 인류의 발전
지금 논쟁이 되고 있는 영구성은 꺼림칙하고 이기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든 반대해야 할 것일 뿐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식과 과학이 이러한 거미줄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193쪽)
3주 동안 진행된 도널드슨·베케트 재판은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 도널드슨이 승리했다. 얼핏 보면 이 재판이 저작권의 찬반 논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저작권의 영구화를 주장하는 측과 앤여왕법을 유지하자는 측의 싸움이었다. 현재의 카피레프트 운동이나 해적당의 활동도 동일한 맥락에 있다.
권력이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려는 시도는 어느 때나 있어왔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의 생산은 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류가 오랜 기간 동안 축적해온 지식과 정보의 기반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이러한 인식에서 기인한다.
물론 저자의 권리라는 의미로써 저작권은 분명히 중요하다. 분명히 하나의 작품은 누군가의 창작물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의 유산이기도 함으로 그것을 창출해낸 인물의 사후에는 공유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 위대함을 발판으로 사회와 문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인세제도나 한시적인 저작권 제도는 “신이나 하늘이 준 것이 아니라 문화를 독점하는 자에게 도전한 ‘해적’의 싸움에 의해 얻어진 것(324쪽)”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저작권이 보호하는 배타적 권리의 기간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다. 앤여왕법의 21년에서 시작한 보호기간은 이제 저작권자 사후 50년이 지나야 끝난다. 이러한 추세라면 언젠가 지식재산권의 영구화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제 18세기 영국이 했던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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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18세기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한 재판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런던의 서점운영자(당시 서점은 출판 및 유통과 마케팅 모두를 수행하고 있었다) 조합은 특정한 작품에 관한 저작권이 영구적으로 (그 권한을 저자로부터 구입한)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하면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도널드슨이라는 업자가 싼 값에 책을 인쇄해 판매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몇 개의 재판을 거친 후 마침내 사안은 최고재판소인 상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었다. 과연 어떤 저작물에 관한 독점적 권한은 영구적인 것인가, 아니면 일정한 단서를 두고 제한될 수 있는가.
2. 감상평 。。。。。。。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공작시간에 한 어린 아이가 도무지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멍하니 앉아 있자, 선생님이 와서는 다른 친구들이 하는 걸 보고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 아이는 이내 잘 만드는 친구 곁으로 가서 그가 만들고 있는 걸 보고 있는데, 그 친구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드는 걸 흉내 내면 저작권을 침해하는 거야.’
어떤 작품(책, 영화, 혹은 어떤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무엇이든)을 만들어낸 저작자가 그 저작물에 관한 독점적 권한을 갖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공정한 일이고, 그런 금전적인 이익을 줌으로써 더 많은 작품들을 생산할 수 있도록 유인할 수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 다르게 생각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처럼 각종 분야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는, 이전에 만들어진 어떤 저작물로부터 나온 아이디어가 새로운 저작물을 만드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초의 저작자의 권한을 영구적으로 보장한다면 오히려 후속적인 창작을 방해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저작권을 보장함으로써 더 많은 좋은 작품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책에 실린 재판은 주로 법리적인 논쟁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천천히 읽다보면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저작권과 관련된 여러 논거들이 이미 이 시대에 다 등장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은 후 ‘해적판’, 혹은 ‘불법복제물’을 만든 사람들을 뭉뚱그려서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면 나름 유익한 독서를 한 게 아닐까. 요점은 정의와 불의가 아니라, 저작자와 독자 모두의 이익을 위한 적절한 선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는가로 보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일방적인 매도나 범죄좌 취급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런 주제에 관해 이런 연구서를 출판할 수 있는 일본의 출판계의 저력이 부럽다. 확실히 미시사는 일본 특유의 작음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참, 저작권 보호에 관해 좀 더 전향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 책에도 ‘독점계약’, ‘저작권법’, ‘보호’, ‘금지’와 같은 위협문구가 적혀있는 걸 보고 좀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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