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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역사>는 상식적으로 그닥 재미없는 책이다. 심지어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가?' 싶을 정도로 지루한 책이다. 그래도 몇 가지 <상식>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을 알게 되어 유용한 책이었다. <상식>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 아니라 '근대정치'가 시작되던 때부터 필요에 의해 태어나게 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면 <상식>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며 불기 시작한 정치권의 태풍이 그의 불출마 선언으로 잦아들긴했지만 안풍은 여야를 긴장시키기며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을 불러왔다. 안 교수는 진보와 보수 대신 상식과 비상식의 이분법을 내세우며,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쪽이든 상식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안보 측면에서는 보수 쪽의 주장이, 경제 측면에서는 진보 쪽의 주장이 상식에 가깝다고 본 안 교수는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상식에 부합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밣혔다. 때맞춰 <상식의 역사>를 읽어보며 저자인 소피아 로젠펠드 교수의 글을 통해 '상식'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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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무엇인가'를 읽고 많은 실망을 했다. 아마 제목만 보고 책을 집어들었기 때문에 더 실망이 컸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상식으로써의 정의에 대해 논하는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사회와 정치와 문화에 직접적인 정의를 구하고자 읽은 책이었는 데 그 책은 현실과 세 발 쯤 떨어진 철학 기본서였다. 정의에 대해 철학에서 답을 구하고자 했다면 아마 크게 실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정의는 무엇인가'를 보고 호평하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책을 잡았을 때의 나의 상식과 그 분들의 상식은 조금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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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역사』를 읽고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평소 생활하면서 상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왠지 좋게 보이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기가 있었다. 왠지 상식이 많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인식되기 쉽기 때문이다. 내 자신 시골에서 힘들게 중학교까지 다니면서 도저히 고등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당시 서울에 있는 국립고등학교를 알게 되었고, 천운으로 합격까지 하는 영광을 안아서 서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유학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내 자신 상식을 많이 갖기 위하여 노력하던 시기였다. 마침 활용한 것이 방송국에서 퀴즈 프로그램이 있을 때였다. 이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 일반상식 공부를 많이 하였던 것이다. 서너개 방송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까지 하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고, 친구들로부터는 ‘노박사’라는 좋은 별명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노박사’로 모든 카페나 블로그에서 일원화하여 사용하고 있다. 상식이란 우리 일반 사람들이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의 사회적 덕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의 내용과 범위는 부분적이면서 좁은 범위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상식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의 범위와는 다르게 종교와 철학이 한 시대와 사회를 지배하던 때부터 현대 정치사의 상식에 이르기까지의 적용 범위가 넓으며 지도자부터 시대의 흐름까지 다양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즉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포퓰리즘과도 맥락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쟁의 정치적 무기로 위력을 떨치는 커먼센스와 포퓰리즘의 함수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우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상식선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 하고 있다. 개인으로부터 사회집단에 이르기까지 상식은 꼭 필요한 개념이라 생각을 한다. 물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식론적인 타탕성과 구체성이 달라지리라 생각도 해본다. 바로 이 책에서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인적 인식론에서부터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 쪽 포퓰리즘에 이르기까지 상식은 다양한 각도와 시각에서 전개 되어 온 역사적인 사실들을 다루고 있다. 현대사회는 복잡성과 전문성, 내부 지식, 도시풍, 전문적 용어, 갈등, 파벌, 토론 등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다. 바로 이런 시대에 상식에 대한 각 층의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르겠지만, 아무리 변하더라도 상식의 원리와 원칙은 변하지 않아야 된다는 점이다. 상식은 어느 특정계층의 잘못되고 삐뚤어진 전유물이 아닌 사회 대다수가 이해하고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지혜와 양식(良識)이 담긴 진정한 포퓰리즘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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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어떤 방법을 통해 포퓰리즘을 낳았을까? 포퓰리즘이란 대중주의라고도 하며, 인기영합주의·대중영합주의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대중적인 인기, 비현실적인 선심성 정책을 내세워 일반 대중을 호도하여 지지도를 이끌어내고 대중을 동원시켜 권력을 유지하거나 쟁취하려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지속적이고 일관된 어떤 정책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선동하는데 우선순위를 두는 정치에서 설득의 한 형태로 보여진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민주주의가 중우정치가 되어 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용어였는데, 이제는 좌파나 우파 모두에게서 들려오는 소리가 되어 버렸다. 이렇듯 이현령 비현령할 수 있는 이 단어는 사실 상식, 커먼센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상식이란 단어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연유했을까?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정치는 일부 지식인의 손에만 달려있는 고급 기술에 속했던 것이다. 그 당시 지식인들은 21세기에 대중들이 정치에 참여할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음이 틀림 없다. 그랬기에 모든 사람들이 식별력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가 동의하고 잘 아는 몇 가지 근본적인 원칙을 공유하고 있다는 현재의 상식에 대한 신뢰를 받아들이기엔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이란 용어는 17세기 말 영국의 명예혁명과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사이에 있었던 인민주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출현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었는데 그 시작은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에 모든 인간은 5가지의 기본적인 감각,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과 그 모든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는 공통된 감각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공통감각의 기능은 다섯 가지 감각들이 받아들인 인상들을 서로 비교 통합하여 이성과는 별도로 감각의 대상물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고 주장했다.
그런 인식이 11세기 페르시아 철학자 이븐 시나와 스콜라 철학으로 이어져 내려와 결국 17세기의 인민주권과 결부되어 지금에 이르는 상식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식은 그 시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해왔다. 17세기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은 영국에 폭넓게 퍼져가는 회의주의와 무신론에 대해 자신들의 신앙과 진리를 지키기 위해 상식을 동원했고 반면에 유럽에서는 주로 진보주의자들이 현상 타파를 위해 상식을 내걸었다. 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상식이 전투명령이 되어 미국혁명의 불씨를 제공했고, 그 20년 뒤 프랑스에서는 혁명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상식을 내걸고 혁명을 공격했다. 이렇듯 상식은 보수주의자들의 기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급진주의자들의 현재의 정치질서를 뒤엎거나 다시 세우기 위해서 이용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미국혁명에 불씨를 제공했던 급진적 사상가인 토마스 페인이 사용했던 상식의 의미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시작되었던 상식과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 양쪽 다 상식을 하나의 보편적인 능력이자 역사의 밖에 위치해서 변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페인의 상식은 역사를 초월하지도 보편적이지도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페인의 상식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줘서 세상을 다시 시작할 미래 지향적인 무기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에 의해 미국혁명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프랑스 혁명에서 사용했던 상식의 의미는 오히려 혁명 전으로 돌리기 위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니, 이성을 공격하는 상식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이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의 의미가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상식이 점차 공격을 받아 사라지던 시점, 제2차 세계대전과 원자폭탄 시대에서도 상식은 다시 부활을 맞았으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의 개념은 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 ·이해력 ·판단력 및 사려분별로 여겨지는 상식의 의미가 또 어느 때에 어떤 의미로 쓰일지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용어 하나에 명확한 정의가 내리지 못해 분쟁이 일어날 수 있으니 항상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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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속에서 너무나 많은것들을 당연시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당연시 하는 인간의 삶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 것이 상식이라는 두글자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누구나 통상적으로 떠올릴수 있으며 쉽게 떠올릴수 있는만큼 극히 자기 주관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상식의 특징이라 할수있다. 이처럼 보편적이며 누구나 공유할수 있는 관심사를 끌어낼수 있는 평범한 상식이 이책을 읽어가는 동안 미쳐 생각지 못하고 있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음을 되새기게 하였다. 상식이라는 것은 상식이라는것에만 국한되어 있는것이 아니라 상식적이지 않는 또다른 이름인 편견의 다른이름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사고를 움직이어 정치적, 문화적으로 영향을 끼쳐왔음을 알수있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날에도 상식적이란 단순한 개념이상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마음의 창을 잘 움직일때 정치가이던 사업가던 성공의 반열에 올라있다고 한다. 눈만뜨면 접하며 살아가는 상식이라는 것을 시사적으로 재해석해봄으로써 인류가 걸어온길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사조까지 어느것하나 가볍게 넘어갈수 없음을.. 책에 무겁게 실려있는 글들의 비중이 말하고 있다. 인간사를 조절하는 법률의 문제역시 예외가 아님을 알때 공동의 문제를 사회의 미덕으로 해결하는 것이야 말로 지극히 합리적인 현상임을 다시금 생각게 하는 서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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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성원으로서 지극히 기본적인 판단능력과 인성 등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보유하고 있을 무언가가 있다. 물론 동일한 사회현상, 개념에 대한 본인과 타자와의 시각차에 따라 그것의 결과는 천차만별 일테지만.. ‘상식’은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판단능력과 지성, 그리고 인성이 어우러져 외부 현상에 대한 해석 기준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상식에 포함된다. 하지만 근대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보면 ‘상식’은 그러한 사전적 의미와는 동떨어진 이력을 보인다. <상식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상식이 과거 영국의 명예혁명과 프랑스 계몽운동 시기를 지나 근현대 유럽과 미국에서 어떻게 받아 들여지고 이용되어 왔는지를 설명해 주는 책이다. <상식의 역사>을 보면 ‘상식’은 결코 당연히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할 지식의 범주를 벗어난다. 당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과거 도시에서 인쇄 매체에 접근할 수 있는 한정된 엘리트 계층에서 정의한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었다. 즉, 노동자, 농민 등 비엘리트들의 평범한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으니 상식이라고 말하기에 겸연쩍은 것이다. 게다가 상식은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이나 구성원들의 논리와 주장을 무력화 시키기 위한 무기로 동원되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심화시키기까지 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곰곰이 곱씹어 보면 대부분의 구성원들의 합의가 이뤄진 사회라면 굳이 상식을 운운하며 자신의 논리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을 것이기에 이해가 간다. 특히 복지문제와 관련해서 ‘포퓰리즘’을 거론하며 상대방을 거세게 몰아 붙이며 지지를 호소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 사회에서 상식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상당히 유의미하다. 저자 역시 <상식의 역사>에서 포퓰리즘은 상식을 바탕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마치 ‘대중은 이렇게 생각하고 판단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는 말을 서슴치 않으며 자신의 관점,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의도는 당연히 상대방이 지극히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의 상황도 마찬가지이고.. 이렇게 보면 ‘상식’은 포퓰리즘과 연계되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마치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과 동일한 생각을 하고 판단한다는 짝사랑의 한 표현이다. 그렇기에 어느 한 시대를 놓고 볼때 대중 선동적인 자들의 프로파간다가 일정 부분 성공하여 상식으로 비춰질 지 몰라도 모든 사람들의 동의는 구하지 못했다. ‘상식’은 ‘상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포퓰리즘과 상식에 대한 지은이의 언급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을 인용함으로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상식은 우리 모두가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으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과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할 수도 있다” 결국 서로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원인이 ‘상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상식=아전인수’로 사전적 의미가 바뀌어도 그게 타박할게 못될 것이다. 보수건 수구이건 간에, 진보도 급진 좌파도 자신들의 시각에서 표현의 차이일 뿐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구현하자고 외치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상식의 역사>는 ‘상식’을 둘러싼 근대 유럽과 미국의 사회상과 정치사를 흥미 있게 풀어내고 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상식’과 어우러진 근대상을 읽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만만치 않은 분량에다가 진도가 느리다는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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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최근 유행하는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같은 형식의 책이 아니다. 이는 고대의 상식에서부터 현대의 상식에 이르는 모든 이야기를 일반인이 알기 쉽게 풀어 쓴 글은 아니라는 의미다. 게다가 서문에서 보듯이 저자는 이를 학문적 연구과제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일반인들의 교양을 위한 책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현대의 상식의 정치적 역사 혹은 상식과 포퓰리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근대 혁명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상식의 탄생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상식의 내용의 탄생이 아니라 상식의 개념의 탄생과 그 정치적 쓰임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서문에서 저자가 말하듯이 이것은 철학적 역사로서의 상식에 대한 연구이다.
이처럼 이 책이 근대의 상식의 탄생과 그 정치적 활용을 철학적 연구로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 오늘날 현대 정치 상황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저자가 상식의 정치적 활용을 통해서 보여준 상식의 모순성이 그러하다. 역사에서 보듯이 상식은 전통을 보호하는 용도로도 급진적 혁명을 옹호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이는 상식의 구성요소들이 상호 충돌하거나 모순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주장과 논리를 옹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상식의 내부에 모순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상으로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기본적 인간의 인지력 정도로 볼 수 있는 탓에 그 스스로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에서 문제가 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상식이라는 단어가 객관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없고 또 누구든 접근 가능한 것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상식의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 어떠한 관점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라도 사회 전체의 감정을 대표하는 척 행세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모든 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다.'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상식은 오늘날 포퓰리스트에 의하여 자신의 정치적 관점이 대세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혹은 정책 결정 문제에 대하여 전문가를 공격하고 배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보듯이 상식이라는 개념은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상식이 일반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 논리적 기반이 되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즉, 정치에 있어서 상식의 긍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상식이 포퓰리스트적 정치가와 결합하여 상대를 공격하거나 특정 세력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사용되거나, 상식이 복잡한 전문가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곤란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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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常識, common sense)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타당한 생각을 말한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상식의 본질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과연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당연한 것일까? 상식의 정의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상식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위와 같은 상식의 의미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비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식은 편견의 또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포퓰리즘의 논의와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였음인지 갑자기 상식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 책은 총6장에 걸쳐서 서구 사회에 있어서 상식이 거쳐온 역사적 상황을 통해 상식의 모습을 파헤치고 포퓰리즘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한다. 17세기 영국 보수주의 철학자들은 회의주의와 무신론을 타파하기 위해 상식을 동원하였던데 반해, 유럽에서는 주로 진보주의 철학자들이 현상 타파를 위해 상식을 주장했다고 한다. 또한 토머스 페인을 비롯한 급진적 사상가들은 상식을 부르짖어 미국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 20년 뒤 프랑스에서는 혁명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상식을 내걸고 혁명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위와 같은 역사적 상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상식은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어져 왔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 라고 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고 하면서 상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운지 모르겠다. 최근 국내에서도 무상급식 등 사회복지에 대한 논의를 둘러싸고 포풀리즘이 부각된 적이 있었다. 솔직히 일반 국민들로서는 누구 말이 맞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각자의 신념과 생각에 따라 판단할 수 밖에 없는 문제다. 정치인들은 이런 국민들의 의식 속을 상식이라는 무기로 헤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좌파든 우파든 아니면 보수주의자들이든 급진주의자들이든 모두 상식이라는 것을 반대자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헷갈리는 일이다. 도대체 상식이란 무엇인지? 상식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고 비판을 해야하는 이유다. 상식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책에서처럼 상식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읽을 수 있다면 좀 더 상식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당시 사회의 역사와 그 시대의 철학자, 사상가들이 많이 등장하는데다 생소한 인물도 많아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책의 분량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제까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상식에 대해 좀 더 실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포퓰리즘 논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