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여행의 기술을 읽고~~
"여행의 기술을 읽고~~" 내용보기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여행 에세이!!   왜 여행을 떠나는가? 존재론적, 철학적인 물음을 던져주는생각이 깊은 책. 여행에 관한 여행을 통한 커다란 물음과 삶의 철학들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책!   단지 여행의 과정을 여행지의 소개나 간단한 표현이 아닌 무언가의 의미심장한 것이 들어있다. 그런면에서 기존의 것과는 커다란 차별성이 있다.   영혼의 성장을 느끼며
"여행의 기술을 읽고~~" 내용보기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여행 에세이!!


 

왜 여행을 떠나는가?

존재론적, 철학적인 물음을 던져주는생각이 깊은 책.

여행에 관한 여행을 통한 커다란 물음과 삶의 철학들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책!

 

단지 여행의 과정을 여행지의 소개나 간단한 표현이 아닌

무언가의 의미심장한 것이 들어있다.

그런면에서 기존의 것과는 커다란 차별성이 있다.

 

영혼의 성장을 느끼며

그것에 대한 확실성도 확고하게 그려주었던 책!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의미는 깊어진다.

공감적인 측면들..역시나 맛깔스런 재해석으로 표현해 내고 있으며

천재적 예술적 창조물을 만든 책 안의 예술가들의 사고와

표현력의 감성은 나에게 또 다른 영감을 주었다.

 

너무 좋았던 여행의 기술,

내 여행의 기술적인 영감을 많이 받은 책이다!^^ 

p****1 2008.05.1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보통 읽기 2] 여행의 기술 ②
"[보통 읽기 2] 여행의 기술 ②" 내용보기
[6] On the Sublime  ‘숭고’(고상함)라는 단어는 그리스시대 때부터 있었으나 18세기 미학 용어로 비평에 사용되며 사전적 의미가 정리되었다. 5장에서 워즈워드가 풍경 감상이 영혼을 고양시킨다고 주장했었다. 보통 거대하고 비어있는 공간을 가리켜 숭고미 가득하다고 말한다. 사막이나 거대한 산, 해안, 석양, 벼랑, 동굴 등의 장소가 여기에 속한다. 이런 공간은 종교나 시에 가깝
"[보통 읽기 2] 여행의 기술 ②" 내용보기

[6] On the Sublime

 

 ‘숭고’(고상함)라는 단어는 그리스시대 때부터 있었으나 18세기 미학 용어로 비평에 사용되며 사전적 의미가 정리되었다. 5장에서 워즈워드가 풍경 감상이 영혼을 고양시킨다고 주장했었다. 보통 거대하고 비어있는 공간을 가리켜 숭고미 가득하다고 말한다. 사막이나 거대한 산, 해안, 석양, 벼랑, 동굴 등의 장소가 여기에 속한다. 이런 공간은 종교나 시에 가깝다. 토머스 그레이는 시에서 알프스 산은 열 걸음마다 탄성이 터져 나온다고 찬양했다.

 

 18세기 영국 철학자 에드문드 버크는 숭고와 미에 대하여에서 숭고미로 두 단어가 뒤섞이는 것에 구분을 두었다. 아름다움과 달리 숭고함은 힘있는 풍경 앞에 인간이 나약함을 느낄 때 적용된다. 이런 곳은 인간의 의지에 반대하는 공간들로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순진하고 위험성 없이 인간의 의지에 순응하는 소를 ox와 미에 대입하고, 파괴적인 힘을 지닌 소를 bull과 숭고함에 빗댄다. 시나이산의 거대하게 비어있으면서 어둡고 끝없는 공간에 대해 우리는 아름다움 이상의 숭고함을 느낀다.

 

 어떤 거대한 대상 앞에 왜소함과 작아짐을 느낄 때 경우에 따라선 절망이 아닌 즐거움에 더 가까울 때가 있다. 강력한 힘에 대해 우리는 분노와 분개를 느끼기도 하지만, 반대로 경외와 경탄을 부르짖기도 한다. 비열한 힘 앞에 모욕감을 느끼지만 고상한 힘에 대해서는 경외심을 느낀다(We are humiliated by what is powerful and mean but awed by what is powerful and noble. 165). 앞서 말한 ox는 피라냐처럼 사악하고 포식성이 있는데 반해 bull은 악의 없는 숭고함을 지닌다. 전자는 일차원적으로 위험하지만 후자는 새롭고 이롭다.

 

 줄여 말해, 숭고한 장소는 인간의 취약함과 일시적임(유한성)을 상기시켜 겸허히 한계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숭고한 공간은 강력한 힘으로 인간을 으깨거나 뭉개는 게 아니라 자극을 준다. 그런 까닭에 거대한 장소나 자연은 창조자 신의 작품으로 해석된다. 시나이산 역시 출애굽기의 모세와 결부되어 숭고한 경치이면서 순례의 종교적의미를 갖는다. 무신론자조차도 논쟁 없이 신을 떠올리게 하는 경외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미국 초절주의의 사상가인 에머슨은 자연론에서 고귀한 자연은 신의 형상을 띤다고 설파했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은 절대신을 거치지 않고도 세상 속에 연대와 결속을 느낀다. 그런 이들에게 자연은 곧 바이블이요 최고의 벗이다. 기독교신에 대한 믿음이 주춤할 때 숭고한 경치는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숭고한 경치를 보며 우리는 자기 안의 신을 만난다.

 

  구약성서에서 욥은 신실했던 자신이 재난으로 자식을 잃자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왜 고통을 받아야 되냐?’고 통곡하며 묻는다. 불운 앞에 우리는 흔히 왜 저인가요?’라고 물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원망한다. 이럴 때 자연의 숭고함 속에 인간은 놓일 필요가 있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지, 대단치 않고 약한지 그 한계를 직시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이해할 수 없는 보다 큰 것의 존재와 섭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의 부당함이 이해되지 않지만 먼지로 사라질 운명 앞에 세상 중심에서 물러나 상황을 인정하기에 도달한다. 불안과 분노에 잠식되기보다는 신의 예비하심을 믿는 쪽을 택한다. 이런 논리는 어떤 면에서 비겁하고 자기 편리에 따른 정당화일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고통이라면 원래 그렇게 되기로 되어 있었던 거로 수용하면 다음 액션이 가능하다(덜 애통하고 고통스러워 다시 사는 쪽으로 에너지를 쓰게 되어 도움이 되더라). 인정과 수용이 문제해결의 시작이다, 아니 반 이상이다..  

 

# Sublime landscapes, through their grandeur and power, retain a symbolic role in bringing us to accept without bitterness or lamentation the obstacles that we cannot overcome and the events that cannot make sense of. (171) 

 

[7] On Eye-Opening Art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몸통을 타고 뻗어나가는 무수한 가지와 거기에 달린 열매가 눈앞에 펼쳐진다. 나는 그가 내주는 그늘과 과실의 달콤함을 즐긴다.. 현장성을 바탕으로 한 땀 한 땀 엮어나간 끝에 완성된 목걸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희귀성을 확보한다. 젊은 날 예술에 심취하면 헤어 나오기 힘든 것이 문학을 읽다가 그림이 궁금해지고 또 음악을 찾아듣게 되기 때문이다. 연동과 파동에 중독되어버린다. 이전까지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를 보고 나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작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에게서 나의 어떤 부분을 발견한 것이고, 취향이나 감각이 일정부분 겹치며 통했다는 암시와 시그널이 담긴다. ‘당신도요 찌릿-

 

  저자는 이번 장에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로 떠난다. 가서 보기 전까지는 별 감흥 없던 곳이다. 올리브나무와 사이프러스, 구름 없는 청명한 하늘, 밀밭.. 은 그저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반 고흐라는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고 이해한 뒤 떠난 아를 지방은 다른 세부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의미를 알 때 단어가 더 잘 들리는 것처럼 그림을 통해 떠진 눈은 풍부한 감상과 이해의 길을 열어 보인다.

 

  반 고흐는 실패한 채 삼십대 중반에 아를 지방으로 흘러들었으나 그곳에서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친다. 프랑스 남부를 그리고 싶었고, 다른 이에게도 그곳을 보게 하고 싶었다. 그는 그곳에서 벨라스케스의 회색 빛을 실제로 보고 경탄한다. 빛이 회색일 수 있음을 눈으로 확인한다. 화가들은 그렇게 이전에 없던 존재를 화폭에 새긴다. 모네의 석양, 렘브란트의 아침햇살, 베르베르의 소녀들..

 

  고흐는 프랑스 남부의 본질적인 모습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그는 사실주의 화풍의 프로방스 화가들과 차이가 있다. 그림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농부를 그리고, 사이프러스와 올리브나무의 색다름을 재차 그린다.

 

  니체는 똑같이 그렸다는 말은 거짓말이며 그림에는 화가의 취향과 기질과 스타일과 가치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화가는 자신이 좋아하고 담고 싶은 것을 그리게 되어있다. 본질을 전달하기 위해서 선별적 그림이 불가피하다. 판박이 모방이 아니라 무엇을 생략하고 또 어떤 것을 더 잘 보이게 할지 선택해야 한다.

 

  저자는 게스트룸에서 반 고흐 화보집을 보게 되는데 그러고 나서 정원의 사이프러스가 눈에 들어온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지니듯 프랑스 남부의 사이프러스는 몸통이 작고 가지가 높이 뻗어나감에 따라 바람에 굽이친다. 가지들이 각기 다른 각도로 흔들리며 바람에 깜박이는 불꽃형상을 띤다. 휘슬러가 영국의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안개를 제대로 보지못했듯이,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와 올리브나무를 통해 비로소 프로방스의 색감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지중해 기후인 프로방스의 자연은 다른 곳과 색감이 다르다. 북부에서 보기 드문 풍부한 원색 초록! 밤하늘도 검정 속 흰 무늬가 점점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색이 뒤섞인다. 그것을 생생이 그린 고흐의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사이프러스와 밤하늘을 사실적으로 보게 된다. ‘본질의 모습.

 

 니체의 말대로 실재는 그 자체로 무한대라 그림에 전체 그대로를 재연하기란 불가능하다([R]eality itself is infinite and can never be wholly represented in art. 200). 화가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선택, 굴절과 생략과 대체와 과장을 거쳐 유사성에 가닿는다. 있는 그대로의 복제보다 임의적인 색상을 택해 더욱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렇게 그림에 화가의 시그니처가 남게 된다. 화가는 풍경이나 인물의 대상이 갖는 가치 있는 자질을 찾아내 다른 이도 보고 경탄하게 이끈다.

 

 18세기 전까지 유럽 시골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부족했다. 하지만 이후 문학이나 그림에 자연과 풍경이 담기면서 사람들도 진짜를 보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술가가 쓰고 그리면 그곳은 이후 여행지가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예술가의 손을 빌어 우리도 전에 없이 무언가 풍부하게 감상하게 된다(그러니 가까이 둘 것). 

 

[8] On Possessing Beauty

 

 아름다운 풍경은 손에 잡힐 듯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만다. 소중한 장면을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고 몰래 이름을 새기거나 기념품을 산다. 아름다운 장소에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의미를 남기기 위함이다.

 

 19세기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은 아름다운 장소를 소유하는 법을 탐구했다. 어린 시절부터 시각적인 것에 예민했던 아들을 배려해 부모는 아름다움을 위한’(나중에 그의 유명한 미학 논리가 되는) 가족 여행에 나선다. 여행지에서 풍경을 감상하며 그는 아름다움을 식별해낸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는 시각적인 요소와 심리가 복잡하게 작용하며, 인간에게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소유하고픈 경향이 있다. 기념품 구입이나 사진촬영의 소유 방식을 넘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글과 그림으로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깊은 이해가 가능해진다.

 

 러스킨은 드로잉의 핵심은 잘 그리고 예술가 소질을 드러내기 위함보다 얼마나 잘 못 보는지를 깨닫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리기는 소수를 위한 예술 장르가 아닌 만큼 스케치를 만인에게 대중화시키고자 한다.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기 위해선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세부적으로 주목해서 봄으로써 형성 과정까지 이해할 수 있다(True possession of a scene is a matter of making a conscious effort to notice elements and understand their construction. 220). 그는 여행자들이 제대로 봄과 사유 없이 빨리 멀리 다녀오려고 속도경쟁을 하는 점을 문제시한다. 그는 진정한 소유와 감상을 고민한 끝에 스케치를 통한 적극적이고 의식적인보기를 제안한다.

 

 드로잉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끄는 풍경과 건축의 존재 이유를 파악할 뿐 아니라 우리의 (미추 판단) 취향도 헤아려 미학적 향상을 추구할 수 있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처럼 세세한 점까지 파악함으로써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림 외에도 워드페인팅, 즉 글쓰기가 있다. 드로잉과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장소를 글로 전달하지 못하는 데에는 글솜씨 없음보다 성의 없음과 게으름이 더 크게 작용한다. 경험을 진실하게 재연하기 위해선 충분한 질문이 뒤따라야 하고 본질과 감상을 정확히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O]ur failure to do so is the result merely of our not asking ourselves enough questions and not being precise enough in analysing what we have seen and felt. 227). 주의를 기울이거나 집중하면 전에 모르던 것을 세부적으로 알게 되어 놀라움에 경탄하게 된다. 왜 그 장소가 감동을 주는지 스케치나 말로 자세히 답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깊은 이해에 도달한다.

 

[9] On Habit

 

 리뷰에서는 세부적으로 9장으로 나눠 다뤘지만 여행의 기술은 떠남, 동기, 풍경, 그림, 귀환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여정의 마지막은 습관에 관해서. 제목에서도 예상되듯이 관성화된 습관에서 벗어나 느리게 다른 시각에서 주변을 보는 습관을 들일 것을 권하는 파트이다. 저자는 연일 비가 내리는 지긋지긋한 영국을 떠나 환상적인 섬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니 여전히 비가 내린다. 내가 사는 이곳이 세상 끔찍하게 느껴질 것이다.. 다시 떠날 이유가 된다.

 

 언젠가는 여행에서 돌아와 현실에 복귀해야 한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자기 방에서 고요히 지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썼다.

 

 풍선 기구에 도전하며 멋진 타지를 방문하던 그자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방으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번거로운 짐과 지참물 없이 잠옷만 있으면 떠날 수 있다. 새로운 눈으로 가치를 재발견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일상의 무력증을 떨쳐내기 수월하다. 여행은 떠나는 목적지보다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니까([T]he pleasure we derive from a journey maybe dependent more on the mind-set we travel with than on the destination we travel to. 242; 저자 강조).

 

  습관화가 눈멂을 초래하니 밤하늘도 적극적으로 올려다볼 일이다. 자기 방으로의 여행은 단독 여행이라는 특징이 있다. 여행 파트너가 있을 때는 이상해보이기 싫으니 상대를 의식하여 호기심이 발동된다(Our responses to the world are crucially moulded by the company we keep, for we temper our curiosity to fit in with the expectations of others. 248). 하지만 혼자 떠나는 동네 탐방은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며 (존 러스킨의 풍경 소유에 따라) 스케치와 워드페인팅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그렇다.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멋진 곳으로 이동할 수 있듯 사소한 일상의 재발견도 생활 속 여행이다. 현재라는 층에는 겹겹의 역사가 흐르고 있으니, 우리가 사는 거리와 이웃도 그 음미할 풍경(장소) 중 하나이다.

s********d 2020.08.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보통 읽기 2] 여행의 기술 ①
"[보통 읽기 2] 여행의 기술 ①" 내용보기
[1] On Anticipation   언제부턴가 휴가철이 장마와 겹치는 것 같다. 자연의 응징인가. 폭우에 피해를 입은 분들도 많던데 이런 글을 올리려니 송구스럽다. 6주 넘게 부츠를 신고 지내다 벗었더니 겪지 않는 자는 도통 알 수 없는 고충이 새삼 느껴진다(엎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 따위는 하지 말자). 코로나로 그러지 않아도 힘들 텐데 다들 무탈하셨으면 좋겠다.    외부적으로는 전염
"[보통 읽기 2] 여행의 기술 ①" 내용보기

[1] On Anticipation

 

  언제부턴가 휴가철이 장마와 겹치는 것 같다. 자연의 응징인가. 폭우에 피해를 입은 분들도 많던데 이런 글을 올리려니 송구스럽다. 6주 넘게 부츠를 신고 지내다 벗었더니 겪지 않는 자는 도통 알 수 없는 고충이 새삼 느껴진다(엎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 따위는 하지 말자). 코로나로 그러지 않아도 힘들 텐데 다들 무탈하셨으면 좋겠다.

 

  외부적으로는 전염병 사태로, 내부적으로는 절뚝거리는 상황이라 이동이 쉽지 않다. 그런 내게 여행~이라는 단어는 이전과 다른 농도로 다가온다. 말 그대로 달콤한 망상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안다, 여행에 따르는 사전 준비와 기차나 비행에 묶이는 시간과 온갖 감수해야 할 번거로움과 불편함에 대해. 그러나 그런 걸 따지면 떠날 수 없다.

 

  책은 귀족이자 인간 혐오론자(그때는 지금과 다른 뉘앙스)였던 한 남자의 여행 없는삶을 언급한다. 지금과 달리 짐도 꾸려야하고 이동도 쉽지 않았던 시대의 유럽 여행이니 수고로움이 상당했을 것이다. 풍경화에 빠져 찾아간 네덜란드는 그림에서 접한 그곳이 아니며, 디킨즈의 소설과 여행 책자의 말에 솔깃해 나선 여정은 실망만 안긴다. 결론은 그림은 박물관에서, 집을 여행지처럼 장식하고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는다. 상상을 현실로 훼손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그는 자발적인 은둔자가 된다.

 

  저자 알랭 드 보통도 이에 동감한다. 그림 같은 풍경에 이끌려 찾은 그곳은 낙원이 아닐 때가 많다. 여행지에 대한 기대도 기억처럼 단순화되고 선별적인 장면들로 편집된다. 그곳까지 가는데 쏟는 시간과 몸 고생은 생략하고 현지에서 맞닥뜨린 문화 차이와 당혹감도 지운다. 그리고 여행지로 일단 떠나면 다 해소될 것 같던 불안과 되찾을 행복은 잠시만 주어질 뿐 잘 곳과 먹을 곳과 갈 곳을 정하며 날카로워지고 우울해진다. 그래서 여행할 목적지보다 왜?와 어떻게?를 묻는 사고가 필요하다.

 

  깜찍한 저자는 고백한다. 미학적이고 유물적인 대상을 즐기고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만족하고 행복을 누리기 위해선 감정적 심리적 만족감이 뒤따라야 한다고([T]he key ingredients of happiness could not be material or aesthetic but must always be stubbornly psychological. 25). 사람의 기분은 변덕스럽다. 별거 아닌 것에 심사가 뒤틀리고, 몸이 피곤하면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어 있다. 꿈에 그리던 풍경 속에 있건만 여행 파트너와 트러블을 겪는다. 아마도 여행에 대해 품었던 기대가 빠르게 변질된 결과일 것이다. 애초에 품지 않았으면 실망할 일도 없을 그대 이름은 앤티시페이션.

 

[2] On Travelling Places

 

 운전을 안 하니까 주유소/휴게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장거리 운전 후 땅거미가 지는 시간에 혼자 초콜릿바와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바라보는 바깥풍경은 어떤지 몰랐던 것이다.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나 숙박도 즐기지 않는 편이라 저자가 말하는 공항과 항구와 기차역과 모텔의 의미가 처음에는 생소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접하는 보들레르의 시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무지를-어쩌면-좋아.

 

  보들레르는 여행에 대해 평생 양가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햄릿과 비슷한 성장기를 치른 시인은 집으로부터, 기숙학교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인도로의 여행을 꿈꾸던 시인은 배 고장으로 섬에 발이 묶이자 무기력과 슬픔에 빠져 중도 귀국해버렸다. 밖으로 나가서도 관성적으로 권태로움을 느끼는(그곳도 이곳으로 만들고) 인간 심리를, 다인실에 입원한 환자가 다른 침대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것에 비유한다. 저기라면 좀 다르겠지. 그러나 옮겨 봐도 별로 시원찮다. 작고 단조로운 일상을 떠나기 위한 떠남을 꿈꾸는 우리인 것이다. 보들레르는 시인의 운명으로도 사는 곳보다는 이동하는 장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저 멀리로 데려가다오~” 

 

  나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에 속하나보다. 비행기를 보며 그것이 거쳐 왔을 공기와 땅과 운동성(이동과 역사)을 고려해본 적이 전무하다. 사람들은 공항 이착륙 전광판을 올려다보며 들뜨고, 방랑벽이 도지면 공항에 가서 있다오곤 한다던데.. 사람 많고 정신없는 곳을 그냥 가서 있어볼 깜냥이 못 된다. 저자에 따르면, 비행기는 정지와 구속에 맞서는 "영원한 움직임"을 상징한다. 그는 공항을 생각하면 언제든 어디론가 떠나는 비행기가 있고, 보들레르의 어디든! 어디든! 시구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마지막 대사인 세 군데 지명이 메아리쳐온다. 나도 유럽에서 태어났으면 달랐을까

 

  보들레르는 떠나고 당도하는 장소뿐 아니라 멀리 실어 나르는 기계에 대해서도 경탄했다. 거대하고 복잡한 큰 배가 우아하게 물살과 바람을 가르고 나가는 모습이란. 저자 또한 대기 중으로 능숙하게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보며 단호한 변화에 자극 받고 비상을 꿈꾼다며 내밀한 심리적 즐거움을 고백한다. 구름 위에선 기내식도 특별해진다..

 

  도로를 잇는 주유소 얘기로 돌아가, 주유소는 여행자의 영역이며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간이식당에서 마주한 고독은 그리 나쁘지 않은 외로움이다. 대화할 상대도 없고 사랑이 좌절된 말 그대로 웃음을 잃은 상황일지라도. 이런 정서를 담아낸 화가가 바로 에드워드 호퍼이다. 호퍼는 보들레르의 시를 사랑하며 빈 방 있음. 티브이와 욕실 겸비라는 네온 간판에 이끌려 자가용으로 미국횡단을 즐겼다고 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고독과 도시생활과 모더니티와 밤의 위안과 여행하는 경유지를 작품에 담았다. 집을 떠나 상처 입은 듯 보이고 상념에 빠진 얼굴들 혹은 이동 중에 조우한 빛과 어둠의 경계를 화폭에 동시에 담는다.

 

  저자가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상상할 때 소름끼쳤다. 소설가 로렌스 블록이 호퍼의 그림을 토대로 여러 작가들의 단편집 빛 혹은 그림자를 기획했기 때문이다. 열린(보이는) 공간에서의 고립은 비통하면서도 매혹적인 슬픔을 자아낸다. 집 밖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의 사연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림을 보다보면 안전감과 공포 사이의 혼란이 스치며, 인간적인 접촉이 그리워진다.

 

  그래도 기차는 종종 타봤다고 기차에 관한 이야기는 쫙쫙 흡수됐다. 규칙적이고 적당한 소리와 포착 가능한 바깥 풍경은 사람을 상념에 젖게 만든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가 된다(Journeys are the midwives of thought. 54). ‘움직이는배와 기차와 비행기는 내적 대화를 이끈다. 큰 생각은 큰 광경을 필요로 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공간을 요구하는 법이다. 기차에서의 상념dreaming은 인습과 습관의 옷을 벗고(“가구를 치우고ㅋㅋ) 본연의 자아로 돌아가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고립되고 조용하고 외로운 시간 속에 우리는 자연과 공동체의 참의미를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일상적이고 익숙한 이기적인 안위와 고집스러움과 강경함에서 풀려나 이동하는 공간에서 깨어난 시성을 마주한다. 호텔 방에서나 메모지에 특히 글이 잘 써지는 이유이다.

 

[3] On the Exotic

 

  저자는 암스테르담 공항 터미널 천장에 달린 모던한간판에 꽂히고 만다. 디자인은 그것을 만든 국가를 대변하기에 영국과 다른 미적 단순함에 끌리고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된다. <공간이 만든 공간소설가의 일에 이어 여행의 기술까지 읽으니, 창작자들의 경탄과 의미부여에 놀라며 한편 나에게 없는 요소에 약간 좌절하게 된다(지극히 한국적인 한국인이라는 사실ㅠㅠ). 그들이 얼마나 행복’(얼마든지 다른 단어로 바꿀 수도 있을 듯)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지,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지 생생히 봐버렸다

 

  3장에서는 동양에 대한 선망, 흔히 오리엔탈리즘으로 불리는 심리를 해부한다. 작가 플로베르는 태어난 고향이 싫어 어려서부터 중동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낙타와 모래와 궁정과 태양과 과일나무와 올리브색 피부를 환..적이라 여긴다.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법을 전공해야 할 처지에 놓이면서 그는 더더욱 중동을 갈구한다. 운명의 여신이 그의 편이 되어준 것일까.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에 이집트 여행이 가능해진다.

 

  알랭 드 보통은 이국적인 작은 요소들에 이끌리는 이유에 대해 고국에 대한 불만족이 낳은 욕망이라고 해석한다(What we find exotic abroad maybe what we hunger for in vain at home. 77).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유럽인이 동양에 대한 품는 판타지를, 특히 그 성적 대상화와 프레임 적용을 끔찍이 싫어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뭔가 알아야지 환상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의문이 든다. 판타지도 어디까지나 가진 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의 감각적 흥분과 아름다움을 식별하고 찬양하는 능력이 뜻밖에 부러웠다.

 

  외국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이국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가치가 있어야 한다. 플로베르가 이집트에 끌린 데에서 그가 고국 프랑스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귀족의 오만하고 속물적이며 편견 가득한 사회에 그는 염증을 느끼고 분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풍자적으로 신랄하게 쓴 주입된 사고 사전이 이를 증명해준다(<악마의 사전이 떠오른다!). 플로베르가 중동에 이끌린 데에는 고국에 부족한 생각과 가치를 외국 나라에서 수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적으로 이집트의 상징색인 자주색과 황금색과 옥색을 사랑한다. 그리고 삶은 근본적으로 혼란스럽고 이중성을 띤다고 믿기에 이집트가 문제될 게 없다. 정신만큼 똥오줌과 성욕 배설(사드 철학)도 중요하다(<마담 보바리에서 shit을 대놓고 외친다). 그는 중동의 상징 동물 낙타에 매료된다. 조용하면서도 강인하고 겸손하고.. 어딘가 슬퍼 보이지만(멜랑콜리) 품위를 잃지 않고 장난기 가득한 눈을 흠모한다.

 

  욕망은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도출한다. 상대를 둘러싼 모든 사연이 알고 싶어진다. 고로 예술가는 다들 이야기 채집가들이 되나보다. 플로베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집트 여행 일지와 서신에 따르면 부둣가의 이집트 여인에게 빨려든다. 그녀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다른 곳이 아닌 여기에 있는 이유 등이 샅샅이 알고 싶어진다. 사랑은 자신에게 없는 결핍된 무언가를 채우는 방식이기도 하다([L]ove is the pursuit in another of qualities we lack in ourselves. 89). 그렇다면 우리가 속한 문화에 없는 가치, 즉 이국적 요소를 만났을 때 소유욕이 발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플로베르는 이집트 여인의 커피색 피부와 청동 물결(주름)에 반해버리고 언어 너머 격정적인 합일을 평생 잊지 못한다.

 

  현대에는 그 같은 증상을 유럽인의 이국적 대상을 향한 춘몽 혹은 백일몽으로 의심할 소지가 있다. 플로베르의 중동 사랑은 여인에 대한 환상에 그치지 않고 언어와 역사와 관습과 문화 공부로 확장된다. 그리고 행색도 현지인으로 보이고 발음하기 좋은 콧수염의 아버지라는 이름도 얻는다. 하지만 플로베르의 여행 동반자였던 이는 그가 이집트에 체류하면서 실망해 여행 일정을 자신에게 맡기고 움직임 없이 우울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일루젼을 가진 적 없기에) dis-illusion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알랭 드 보통도 유년시절의 이상화된 이미지가 좀더 현실감을 찾은 것이고, 젊은 날의 광포한 끌림이 제대로 "아는 사랑"으로 승격되었다고 평한다

 

  플로베르는 임종의 순간까지 푸른 하늘을 찌르는 야자수와 낙타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가 어떤 나라에 또 어떤 요소에 끌렸는지가 그(정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는 출생과 조상의 기원이 아닌 본인이 끌린 곳을 국적으로 삼자고 주장했다. 그런 전제라면 그는 여자이고, 낙타이며 곰일 수 있다. 그는 바람에 의해 옮겨심기고싶었고 모든 살아있는 것의 소올 브라더가 되고자 했다. 그뿐 아니라 소크라테스도 자신은 아테네 출신이 아니며 세상에서 왔다from the world고 자기 정의를 내렸다. 다행히 지금은 외국에서 얼마든지 우리에게 더 맞는 정체성을 찾아 소속을 재정의할 수 있음이 거의 기정사실화되었지만. ^^

 

# For me, my native country is the country I love, meaning the one that makes me dream, that makes me feel well. (Flaubert 97)

 

[4] On Curiosity

 

 저자 은근 귀엽다. 이번 장에서는 보통의 그를 만날 수 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알랭 드 보통도 평범해지고 루저가 될 수 있다. 이래서 비교가 나쁘다. 그는 마드리드 출장 차 유명 관광지를 둘러볼 요량으로 슬쩍 기간을 연장한다. 예상과 달리 혼자 식사도 영 꺼려져 대충 때우고 호텔 침대에서 나오기 싫다. 당장 다음 비행기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다음날 청소 서비스를 위해 세 번째 방문한 직원 탓에 마지못해 밖으로 나와 조각상 앞에 서보지만 왜 거기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와 달리 독일 자연과학자 홈볼트는 남미 탐험을 통해 스페인을 포함해 서른 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했다. 미국 대중 사상가 애머슨은 그를 가리켜 세계인universe man이라고 극찬하기에 이른다. 그는 식물학부터 지형학, 기후 등에 관해 실질적 탐험과 조사를 바탕으로 방대한 과학적 사실을 알아낸다. 종에 관한 그의 물밑작업이 있었기에 찰스 다윈 같은 다음 주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홈볼트는 발로 뛰며 정확한 수치와 측정으로 쓸모 있는사실들을 축적해 여기저기 초대받고 식사 대접을 받는다. <팩트풀니스를 쓴 저자도 무덤에서 그에게 경의를 표할 것 같다. 그의 호기심은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다른 이의 관심으로 번져나간다. 여행을 통해 인류의 삶에 대한for life 앎을 추구한다. 대개 사람들은 여행에서 고차원의 다른 문화를 접하며 무력증에서 빠져나와 기분 전환과 활력을 되찾곤 한다. 이런 삶의 내면적 심리적 풍요로움과 강화를 니체는 삶 증진”life-enhancing이라 말했다. 역사유적지와 위대함을 목도하며 우리는 소속감과 연결성을 깨닫는다. 홈볼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개인적 이동의 경험 너머 세상과 사회 가치 변화에 기여한다.

 

 홈볼트가 속한 시대만 해도 증명된 사실이 부족하고 측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현재는 많은 것이 밝혀지고 다양한 여행 책자나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는 추세이다. 19세기 초 유럽인 홈볼트는 자기 주관과 가치와 관심사에 따라 이동하는 상상의 자유를 누렸지만 알랭 드 보통은 여행 책자의 정해진 안내와 별점에 따라 움직이면 그만이다. 홈볼트의 목숨을 건 탐험과 등반은 즉흥적인 질문이 아니라 시간 속에 진화된역사적 물음을 배경으로 한다. 어린 시절 막연히 품었던 큰 질문을 작은 질문으로 구체화하여 답을 찾는다. 호기심도 진주목걸이와 마찬가지로 꿰어야 보배라 다른 새로운 정보와 연결되지 않으면 무용하다.

 

 생전 홈볼트는 자신을 향해 한꺼번에 너무 여러 가지에 호기심을 발동한다는 지적에 발끈했다. 기후부터 지형학, 식물학, 천문학, 비교 해부 등 안 건드리는 분야가 없었던 그의 확장적이고 주체적인 지식 구축에 태클을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포용해 알고자 하는 욕망이 뭐가 문제냐며 적극적으로 자기방어에 나섰다. 누군가의 여행과 공간 이동은 제국주의적 열망과 야욕으로 의심을 살 정도로 크고 위대하다. 문득 나는 어떤 질문을 하며 진화해왔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ㅜㅜ

 

[5] On the Country and the City 

 

  몸의 감지계가 불쾌지수 최고점을 찍는 장마철이다. 종아리에 덤불처럼 퍼져나가는 땀띠와 눈 다래끼의 가려움까지 더해져 살아 뭐해!’가 저절로 내뱉어진다. 그러다가 이재민과 항암투병 중인 비교도 안 되는 고통들을 떠올리며 진정한다. ‘감사하자!’

 

  5장에서는 저자가 영문학 학도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영국의 낭만주의와 기차 여행사를 파고든다. 앞서 여행파트너였던 엠 여인이 재등장한다. 주로 디저트나 간식과 얽혀 이미지화되는 상대는 뭐랄까 솔직히 좀 별로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삼십대의 알랭 드 보통이 판화처럼 만져진다(?).

 

  이번 파트에 대한 글의 시작을 일상에 대한 감사로 열었는데 그 이유가 있다. 시골과 도시를 다루면서 저자는 영국 호반 시인Lake Poet 워즈워드를 소개한다. 코로나 이후 주거환경의 변화와 단기 시골살이가 거론되는 시점에 시인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된다. 시의 내용이 도시화로 인한 인간 정서의 훼손과 불안의 증폭, 불필요한 소유와 소모를, 자연으로 되돌아가 회복하는 이야기들이다. 자연의 너른 품과 다양한 생명체들이 공생하는 공간 속에서 인간은 들끓는 욕망과 이기심과 불편한 감정들을 내려놓고, 싸우거나 신경전 부릴 필요 없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신과 주변을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는다.

 

  예술작품을 보면 주인공들이 큰나무 아래서 엄청난 감화를 얻는 경우가 많다. 어떤 날씨와 상황에도 원망하거나 불행해하지 않고 풍경 속에 녹아드는 자연섭리가 지친 영혼을 달래준다(자연도 뜯어보면 약육강식과 먹이사슬이 지배하는 사나운 세계지만^^). 하나의 시선에 갇혀 세상을 볼 때 인간의 불행과 불만은 가속화되고 브레이크 없이 질주한다. 좀더 열린 관점에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볼 여지를 자연의 힘이 제공한다.

 

  워즈워드가 자연시를 노래할 당대에 모두가 그의 탈 문명적 이동과 감응을 반겼던 것은 아니다. 바이런 같은 시인은 유약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비판했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동일한 연상과 친화와 흡수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뒤 대중들의 호응을 얻으며 호반 시인의 활동지인 레이크 디스트리트(워즈워드셔)가 지역 여행지로 떠오른다. 시인이 영감 받아 노래한 그곳에서 독자는 시를 낭송하며 시간을 초월해 시인과 합일을 경험한다

  

  알랭 드 보통도 애인과 함께 이미 여행 상품화된 (얼룩진) 현지를 방문한다. 워즈워드가 참 많이 걸었고 나무 같이(움직임 없이) 걷는 시인이라는 별명을 준 곳을 따라 걷는다. 수풀림과 강가 걷기를 통해 평온한  숨을 내쉬며 위협받는 영혼을 달래는 보호막을 확보한다([R]egular travel through nature was a necessary antidote to the evils of the city. 136)

 

 워즈워드는 도시의 삶은 인간에게 해로운 감정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혼잡하고 과잉의 공간에서, 사람은 신분상승 욕구, 시기질투, 타인의 인정 갈구, 과잉 소유와 결핍감, 증오와 욕망에 치이게 된다. 떨쳐내기 힘든 걱정과 불안과 미움을 자연은 잠재워준다. 이런 변화는 눈에 보이고 들리는 소리를 포함해 와 닿는 감촉이 달라진 결과이다. 시끄러운 내면과 조급한 마음이 느긋하고 고요한 세상에 눌려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품어주고 밀어내지 않는 자연 속에서 무조건적인 사랑 혹은 일체감을 맛보는 게 아닐까. 감정도 전염성이 있으니까덜 원망하고 덜 욕망해도 돼.’

 

 일례로 나무는 인내를 상징한다. 폭풍에 성깔을 부리거나 다른 자리를 넘보며 불평하는 일 없이 계절변화에 적응한다. 거목의 묵묵함과 위엄 아래 한낱 바쁘게 요동치던 마음은 물러가고 못참겠던 것이 새삼 견딜 수 있어진다. 함께 해주는 자연이 있는 한. 누구와 함께 하는지에 따라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관대하고 섬세한 자연의 품에 서서히 물든다. 자연은 이렇듯 온전한 제정신과 마음 정화와 영구함을 인간에게 나눠준다(그만큼 도시인이 지키기 힘든 심적 가치들이다!). 차고 넘치기에 내줄 수 있는 거지만.

 

# Natural scenes have the power to suggest certain values to us oaks dignity, pines resolution, lakes calm and therefore may, in unobtrusive(natural) ways, act as inspirations to virtue. (145)

 

 자연을 벗삼는 순간 사람은 그를 닮는다. 꽃의 온순함에 잠든 심장은 깨어나 즐거워하고 양떼의 평온한 식사에 함께함의 의미를 더듬는다. 자연의 시점에서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자기 안에 최선의 선을 도출한다. 그 여파로 세상 때를 벗고 동심으로 돌아가 처음 보듯 경탄하며 환희에 찬다. 이때 보고 듣고 느낀 것은 닳지 않는 보물로 남아 도시 삶으로부터 정신과 마음을 해독하는 비장의 카드가 되어준다. 워즈워드의 메시지는 자연 속에서 경쟁심과 시기질투와 불안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 불만과 불안으로부터 멀어진 위안과 해방감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삼일 동안의 자연 속의 시간이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무참히 약효를 잃음을 고백한다. 그런 우리와 달리 워즈워드는 시간의 점(흔적)”spots of time이라는 개념으로 자연에서 맛본 긍정적인 피드백은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고 한다. 추억의 플래시백 효과로 행복한 순간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소 짓게 되니까. “When high, / more high, and lifts us up / when fallen(Wordsworth 151).”

 

 워즈워드의 동료 시인이었던 콜리지의 평가대로 그는 쉬운 언어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을 자연시로 펼쳤다. 기본적이고 순한 재료로 단시간에 가장 행복에 가닿는 길을 여는 마술을. 다른 때와 비교해서 워즈워드와 5장이 유별나게 좋은 데에는 지금 이대로 행복하고 싶은 소망이 덧대져 더욱 그럴 것이다. 아니면 지치고 닳은 상태를 그만 들켰거나. 그도 아니면 알랭 드 보통스러운 “What makes me me and him him?”♡(여기서 him은 sheep 안비밀ㅋ) 말재주에 빠져버렸거나.

 

s********d 2020.08.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