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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소진! 당신의 기운은 절대 소진하지 않아요~
"아아, 소진! 당신의 기운은 절대 소진하지 않아요~" 내용보기
아아, 소진! 간만에, 당신을 만납니다.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눈속의 검은 항아리를, 영풍 문고에서 만나, 제가 입 딱 벌어지고, 울어버렸던 게. 왜 나는 당신이 죽었던 걸 몰랐을까요. 지방에 있었으니까, 하고 핑계대기는 좀 시시하군요. 얼마전에, 문학동네에서 당신 전집이 나왔군요, 아쉬운 사람. 나보다 겨우 10살도 채 더 먹지 않은 형이면서, 이렇게 금방 가다니. 눈속의
"아아, 소진! 당신의 기운은 절대 소진하지 않아요~" 내용보기
아아, 소진! 간만에, 당신을 만납니다.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눈속의 검은 항아리를, 영풍 문고에서 만나, 제가 입 딱 벌어지고, 울어버렸던 게. 왜 나는 당신이 죽었던 걸 몰랐을까요. 지방에 있었으니까, 하고 핑계대기는 좀 시시하군요. 얼마전에, 문학동네에서 당신 전집이 나왔군요, 아쉬운 사람. 나보다 겨우 10살도 채 더 먹지 않은 형이면서, 이렇게 금방 가다니. 눈속의 검은 항아리는 그 제목만으로도 당신의 죽음을 나타내는 듯 합니다. (저는,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을 떠올리곤 합니다)여전히 걸렁걸렁한 유년의 당신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당신이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것을 신풍근 베이커리 빵집을 지나며 나타냅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하나, 울프강의 세월도 그 작품집에 들어있었던가요? 그 작품은, 이상문학상 후보에도 올랐었죠. 서민의 허풍이 보이던 작품이죠. 부엌은 말이에요, 그 적나라한 묘사가, 성인이 되는 과정이 살짝 감도는 그 묘사가 아주 소름이 끼치는 작품이었죠. 전체적으로 작품은, 당신의 개인적인 소사에 멈춰있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었요. 하지만 개인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사회 아닌가요. 개인의 고통과 개인의 즐거움이 만들어내는 것이, 이 더럽기도 하거니와 미련하기도 한 한국사회를 밑바탕이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정치권이 아니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어요. 아아, 소진, 저는 아직도 책장에서 당신을 찾곤 해요, 이렇게라도 만나서 반갑군요... 물론, 형수님의 글도 가끔 읽고 있답니다, 책장에 '행복'을 나란히 꽂아놓았답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h******n 2002.08.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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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내용보기
김소진 소설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90년대 중반, 35세로 운명을 달리한 작가를, 나는 그가 이 땅을 떠나고 난 뒤에야 그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는 데에 대해서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의 글에 묻어 있는 풍부한 토속어를, 앞으로 펼쳐질의 문학세계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더 안타까워했다는 것이 지금에서야 부끄럽다. 그는 얼마나 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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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소설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90년대 중반, 35세로 운명을 달리한 작가를, 나는 그가 이 땅을 떠나고 난 뒤에야 그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는 데에 대해서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의 글에 묻어 있는 풍부한 토속어를, 앞으로 펼쳐질의 문학세계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더 안타까워했다는 것이 지금에서야 부끄럽다. 그는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그의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그의 문학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덤덤히 말하지만, 당시 소설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읽고 나는 자랑스러웠다. 그의 소설이 어찌나 재미나던지, 그리고 풍부한 우리말글이 담겨 있는 그의 문체는 또 자랑스러워했던지 모른다.  사흘 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를 도서관에 반납하고 곧바로 서점으로 가서 그의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가방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장석조네 사람들>이 들어 있었다.

 

  김소진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스승을 박완서님, 이문구님이라고 밝혔다. 그분들의 작품을 노트에 옮겨가며 습작기를 보냈다는 것을 밝혔다. 그래서일까. <장석조네 사람들>은 이문구 선생의 <우리동네>를 서울 변두리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두 작가의 문학적 소견이 같은지는 아직 진단 내리기에는 내가 어리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역시 그러한 특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소시민의 사람겪기, 없는 자들의 갈등구조로 파악하는 것은 표면만 파악하는 것일뿐 더 심층적인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깨진 항아리를 눈사람 속에 숨기고 아침에 야단 맞을 것을 잔뜩 두려워하지만, 아무 일이 없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부엌에서 관계를 가지는 젊은 남녀를 몰래 훔쳐본다. (부엌) 김소진의 작품에서는 외소한 서술자가 지레 겁먹고 몸 사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은 이미 폭력성에 한 번, 그 이상 노출되었음을 뜻한다.

 

  이 작품, 소설집은 90년대 우리말글을 이야기에 담으려 노력한 한 작가의 마지막 소설집이다. 그의 글쓰기가 우리말글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에 나는 그를 존경하고, 때때로 사전을 찾아서 그의 글을 읽어야 하는 단절성에 가슴 아프기도 했다. 이런 단절감, 위화감?은 이문구 선생의 작품에서도 종종 느끼게 된다.

 

  그가 십년 더 살았다면 하는 아쉬움. 그러나 그것은 허망한 가정일 뿐이다. 무엇에 그리 바빠 아직 읽지 못한 <자전거 도둑>을 언젠가 한 번 읽고 싶다. 읽어야겠다.  

 

 

 

k****t 2007.07.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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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의 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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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짧은 삶의 살다간 김소진 작가의 유고작이다. 그가 죽기 전에 몇 편의 작품을 읽어 보았지만, 그렇게 빨리 고인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밑바닥 서민의 삶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결코 절망스럽다거나 청승스럽지 않은 해학에 꽤나 낙천적인 생을 사는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386세대이면서도 그 세대 작가들이 주로 다루는 사회적인 이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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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짧은 삶의 살다간 김소진 작가의 유고작이다. 그가 죽기 전에 몇 편의 작품을 읽어 보았지만, 그렇게 빨리 고인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밑바닥 서민의 삶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결코 절망스럽다거나 청승스럽지 않은 해학에 꽤나 낙천적인 생을 사는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386세대이면서도 그 세대 작가들이 주로 다루는 사회적인 이슈라든가, 계급 투쟁이라든가, 아니면 감성어린 심리묘사를 앞세운 도회적인 삶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산동네, 지방 소도시에 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민초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자신이 겪은 경험과 주윗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유쾌한 한 편의 작품으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그럼에도 부인인 함정임씨 소설과는 참 다르다. 그 점이 내겐 늘 수수께끼다) 너무나 재능있는 작가를 90년대 후반에 잃어버렸다. 앞으로 대중성이나 인기에 부합하지 않고, 삶의 모습을 그대로 직시하며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주는 작가의 모습을 또 만나기 바란다.
i****3 2003.09.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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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들의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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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을 읽게 되면 자연스레 제목을 내용과 연관짓게 된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땐 언뜻 책 속의 내용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눈사람과 항아리는 어떤 관계일까?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 이런 제목을 지었으며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층 빌딩에 모든 것이 최첨단화 되고 있는 이 휘황찬란한 시대에 작가는 미아리 산동네에서 소소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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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을 읽게 되면 자연스레 제목을 내용과 연관짓게 된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땐 언뜻 책 속의 내용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눈사람과 항아리는 어떤 관계일까?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 이런 제목을 지었으며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층 빌딩에 모든 것이 최첨단화 되고 있는 이 휘황찬란한 시대에 작가는 미아리 산동네에서 소소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이 글을 썼다. 가난에 짓눌린 어린아이가 있고 그 상처는 책 전반에 걸쳐 느닷없이 곳곳에서 자주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 상처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미아리 산동네에 삶을 부리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견디는 모든 장삼이사들의 것이며, 나아가 세계의 폭력성에 치이고 억눌린 사람들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그 같은 상처를 영혼의 저 안쪽에 품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양하고 풍부한 삶의 표정을 가지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시민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가가 담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강북에서 마지막 남은 그 산동네가 이제는 재개발로 철거된다는 것이다. 작가에서 있어 미아리 산동네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가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형과 아버지를 떠나 보낸 고향이 사라지는 것, 그의 소설의 원천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책 내용 중 철거 직전의 미아리 산동네에서 세로로 절반쯤 깨진 큼직한 항아리에 일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극중 인물은 생각한다. "왜 구린내 나는 깨진 항아리 속에서 일을 보고 싶어졌고 늙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이제 막 초콜릿 맛을 안 네 살배기 아이, 이렇게 세 사람의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 비록 속눈썹이나마 이렇게 주책없이 적셔서야 되겠는가, 이제껏 나를 지탱해 왔던 기억, 그 기억을 지탱해 온 육체인 이 산동네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를 이렇게 감상적으로 만드는 게 이 동네가 포크레인의 날카로운 삽질에 깎여가면 내 허약한 기억도 송두리째 퍼내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껏 똥을 눌 뿐인데, 그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 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무엇인가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는 우리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이는 자신을 힘드게 했던 곳, 아버지를 잃었던 것이 그렇고 비참한 현실이 그랬을 지라도 철거라는 사실과 함께 그 모든 기억이 사라져 간다는 것, 이제는 과거의 모든 아픔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는 가장으로써 사소한 일에 힘들어하거나 쓰러져서는 안된다는 책임감도 느껴진다. 그러면서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의 기억이 조금이나마 용서가 될까?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는 김소진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다. 대개의 작품들이 그 자신의 삶을 꼼꼼하게 더듬으며, 반성하고 또한 희망하는 것처럼 이 소설에 실린 작품도 그러하다. 그의 작품들을 읽으며, 나는 그가 절대로 서두르지 않고 곧은 길만 골라 한 걸음씩을 내딛었던 것을 본다. 그는 아마도 더 많은 것, 더 넓은 것, 더 깊은 것을 원했던 것 같고 그 길을 발견해나가고도 있었던 것 같다. 삶의 구석구석을 묵직하게 더듬는 그의 손길, 언어와 문장 하나도 놓치지 않는 치밀한 시선, 삶의 바닥에 대한 끈질긴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채워 넣지도 못한 채 사라져간 그에 대한 아쉬움만 남을 뿐이다.
j*****0 2003.06.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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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항아리..." 내용보기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는 똥이 두 번 등장한다. ― '이빨을 위아래로 서너 번 맞부딪치며 뽑아내는 오줌줄기가 원뿔형으로 딱딱하게 굳은 언 똥에 둔탁하게 달라붙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따스한 오줌 세계를 받은 언 똥이 물컹물컹하게 녹아 내리는 소리를 눈을 지그시 감고 듣다가 김이 되어 무럭무럭 콧속을 파고드는 지린래에 코를 쫑긋거리며 돌아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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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는 똥이 두 번 등장한다. ― '이빨을 위아래로 서너 번 맞부딪치며 뽑아내는 오줌줄기가 원뿔형으로 딱딱하게 굳은 언 똥에 둔탁하게 달라붙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따스한 오줌 세계를 받은 언 똥이 물컹물컹하게 녹아 내리는 소리를 눈을 지그시 감고 듣다가 김이 되어 무럭무럭 콧속을 파고드는 지린래에 코를 쫑긋거리며 돌아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귀밑이 달아오르도록, 용을 쓰느라 기침이 터졌다. 기침이 끝나자 나는 서러운 아이처럼 입초리가 비죽비죽 위로 치켜져 올라가는 걸 알았다. 울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구린내가 나는 두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바짝 쑤쎠 박고 굵은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굵은 황금빛 똥을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 왜 작가는 다른 건 데면데면 넘어가도 이 부분만은 상상의 범주를 넘어 바로 앞에 놓인 실물처럼 실감나게 묘사했을까? 의도가 무엇일까? 「다시 쓰는 문학에세이」에 나온 것처럼 똥처럼 가장 이미지가 선명하고 분명한 것도 없기 때문일까... 아무튼 민망하기 짝이 없는 것을 자꾸 보다보니 저절로 무뎌진다.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넘나든다. 화자의 현재 모습은 미아리 셋집을 찾아가는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면서 이십 년도 더 된 빛 바랜 기억을 더듬으며 과거로 회귀하고 또다시 미아리에 도착해서는 현재로 복귀한다. 그리고 창이형과의 대화 속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또 다시 과거가 등장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두 축은 주인공이 어릴 적 짠지 단지를 깨고 사건을 덮고자 어린 마음에 임시방편으로 눈사람으로 단지를 가린 것에 관한 에피소드와 성인이 된 화자가 예전에 살던 곳에 오게 되어 재개발지구가 되면서 변해 가는 그곳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이야기이다. 어릴 적 항아리를 깬 화자는 알 수 없는 피로감을 느낀다. 육체적인 고단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정신적 흔들림에서 우러난 것이 확실한 피로감. 어른에게나 해당되는 피로감을 어린 화자는 느끼면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피로감을 떨쳐낼 수 없을 것이라는 지루한 예감을 갖는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던, 여태껏 자신을 지탱해왔던 기억, 그 기억을 지탱해온 육체인 산동네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깊은 아쉬움과 허탈함을 맛본다.이렇게 화자는 두 줄기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인생을 어른이 느끼는 피로감으로 정의한 작가의 말에 정말 동감한다. 그런데 그 피로감은 예견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비켜갈 수는 없다. 그 아찔함을 어린 화자는 일찍이 터득한 것이다. 게다가 어릴 적 기억이 개발이라는 허울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에 화자는 깊은 슬픔을 갖는다. 유년의 놀이터는 살아가면서 가끔 떠올리는 안식처인데, 그것이 없어지니 화자의 가슴이 텅 비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화자는 항아리에 볼일을 보았나보다.

[인상깊은구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피로감을 떨쳐낼 수 없을 것이라는 지루한 예감이 그날 어슴푸레한 새벽에 덮친 절망감의 핵심이었다. ------p.15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는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위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 p.33
m******i 2003.05.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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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되는 유년의 동네에서 느끼는 '피로감'
"상실되는 유년의 동네에서 느끼는 '피로감'" 내용보기
1. 기억의 끈질긴 힘 「눈사람 속의...」에는 재개발을 앞둔 유년의 동네 미아리에서 현재의 '나'가 느끼는 상실감과 유년의 기억이 교차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나'는 유년의 동네가 사라질 위기 상황에 대해서 어떠한 적극적인 대응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동네가 포크레인의 날카로운 삽질에 깎여가면 내 허약한 기억도 송두리째 퍼내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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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의 끈질긴 힘 「눈사람 속의...」에는 재개발을 앞둔 유년의 동네 미아리에서 현재의 '나'가 느끼는 상실감과 유년의 기억이 교차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나'는 유년의 동네가 사라질 위기 상황에 대해서 어떠한 적극적인 대응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동네가 포크레인의 날카로운 삽질에 깎여가면 내 허약한 기억도 송두리째 퍼내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껏 똥을 눌 뿐이데…… 그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 라는 자조섞인 고백은 "이미 철거가 다 끝난 폐허의 등성이"처럼 쓸쓸함을 전해준다. 그러나 빈집에 들어가 똥을 누는 '나'의 행위에는 유년의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있다. 유년의 동네가 사라짐으로써 "허약한 기억"이 훼손되리라는 위험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억의 끈질감"에 의해 어떤 출구를 찾는다. 현재적 삶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따뜻함이 있었던 유년 시절은 되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시절로 회상되며,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온함을 주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눈사람 속의...」에서도 유년의 기억은 이러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2. 공동체적 삶의 따스함 그렇다면 기억의 끈질긴 힘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 지붕 아홉 가구의 장석조네 집" 풍경이 전해주는 공동체적 삶의 따스함에 뿌리내리고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귀다툼하는 삶의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공동체적 삶의 끈끈함을 전해준다. 하룻동안의 가출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고 고백하지만, 그 낯선 세계는 어떠한 폭력성도 내재하지 않는다. 3. 어른스러운 유년 화자의 시점 「눈사람 속의...」에 등장하는 유년의 화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른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조로증에 빠진 유년의 '나'에게는 현재의 '나'에 의한 편집자적 논평이 많이 개입되어 있다. 어른스러운 유년 화자의 시점 선택으로 인해 「눈사람 속의...」의 유년 시절은 회상적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동화 속 같던 온 세상이 한 순간에 흰빛 절망감의 구렁텅이로 변하던" 순간의 유년의 깨달음은 다시 현재로 오버랩 된다. 눈사람 속에 금이 간 검은 항아리를 감추었던 유년의 '나'가 느낀 '피로감'은 다시 현재의 '나'에게로 되돌아 오고 있다. 김소진은 유년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들임으로써 현재적 '나'의 무력함을 우회해서 얘기하고 있다. "정신적 흔들림"에서 연유하는 '피로감'을 느끼는 유년의 '나'는 사실 현재의 '나'가 직면하고 있는 정신적 상황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세계와 자아 사이의 거리감을 절감하면서 유년의 '나'가 얻은 깨달음, 즉 "이 세계는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깨달음"이나 "나는 결코 주변으로 둘러싸인 중심이 아니라는 아슴프레한 깨달음"은 유년의 동네가 상실될 위기 상황에서 세계의 폭력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재의 '나'의 무력감을 노출하는 것이다. 4. 전통적 터부 의식을 통한 자조적인 야유 김소진의 소설에서는 전통적 터부 의식이 주된 모티프나 소재로 차용된다. 「눈사람 속의...」에서는 항아리에 대한 터부(taboo)가 나타난다. 터부는 일반적으로 금기를 지칭하는 것인데, 어원적으로는 폴리네시아의 미개 사회에서 신성한 것으로 여겨 함부로 손대거나 사용하는 것이 금지된 사물이나 행위·언어 따위, 또는 그것에 대한 종교적 금기를 말한다. 터부를 파기할 경우 동티가 생기게 된다. 동티란 흙이나 돌을 잘못 다루어 지신의 노여움을 사서 받는 재앙,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잘못 건드려서 생긴 걱정이나 불행이다. 항아리에 대한 터부 의식과 동티에 반응하는 양상이 유년의 '나'와 현재의 '나'에게서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을 요한다. 유년의 '나'는 눈사람 속에 금이 간 검은 항아리를 감춰둠으로써 자신에게 닥칠 동티를 유보하거나 은폐하려 한다. (유년의 '나'가 아이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은 사실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는 부분에서만 나타난다.) 그런데 현재의 '나'는 폐허가 된 유년의 동네에서 깨진 항아리 속에서 똥을 눈다. '깨진 항아리'는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동티"가 생길 것을 암시하는데 그 속에서 똥을 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왜 구린내가 진동하는 깨진 항아리 속에서 똥을 누는데 울고 싶어졌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나'는 깨진 항아리 속에서 똥을 누며 "서러운 아이처럼" 울고 싶다가도 "구린내가 나는 두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바짝 쑤셔박고 굵은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황금빛 똥을" 쳐다보면서 "왠지 모르게 뿌듯"함을 느낀다. 서러움은 유년의 동네가 없어진다는 데서 오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뿌듯함에 젖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동티" -유년의 동네가 없어지는 위기 상황- 앞에서 똥이라도 누는 것으로써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야유하려는 욕구로 보인다.
a****1 2001.08.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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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를 읽고..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를 읽고.." 내용보기
'눈 속의 검은 항아리'는 오랜만에 미아리에 들려 옛 추억을 회상하는 형식에 내용이다. 어린 시절 변소에 갔다가 실수로 욕쟁이 할머니네 짠지 단지를 깨고, 깨진 항아리를 눈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던 기억을 풀어놓으며 그 때의 미아리라는 공간 속에 보편적인 삶의 군상들을 함께 전달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이 김소진의 다른 작품보다 강하게 기억되는 것은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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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검은 항아리'는 오랜만에 미아리에 들려 옛 추억을 회상하는 형식에 내용이다. 어린 시절 변소에 갔다가 실수로 욕쟁이 할머니네 짠지 단지를 깨고, 깨진 항아리를 눈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던 기억을 풀어놓으며 그 때의 미아리라는 공간 속에 보편적인 삶의 군상들을 함께 전달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이 김소진의 다른 작품보다 강하게 기억되는 것은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공포는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선명하게 훗날까지 남고, 그 시절의 얼마간은 그 사진을 통해서만 기억되는 우리네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모른다.사는 모양이 다르지 않으니 그 시절 이런 비슷한 기억들도 다들 품고 있을 진대 그 추억의 보따리를 함께 풀어 가며 책을 읽으니 그 맛이 어찌 좋지 않으리..인간적인 냄새가 물씬나는 책이다. 예전의 추억을 느끼고 싶은분들께는 추천하는 바이다...
YES마니아 : 로얄 w****f 2000.08.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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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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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이란 작가를 알게 된건 서평을 통해서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높이 평했고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등진 그의 마직막 작품이라해서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눈사람속의 검은 항아리는 이책에 실린 단편중에 첫머리를 장식한 제목이다. 내 기억에도 있는 푸세식 화장실(?) 어릴적 추운겨울 잠을 자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야했던 비애...참 사실적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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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이란 작가를 알게 된건 서평을 통해서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높이 평했고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등진 그의 마직막 작품이라해서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눈사람속의 검은 항아리는 이책에 실린 단편중에 첫머리를 장식한 제목이다. 내 기억에도 있는 푸세식 화장실(?) 어릴적 추운겨울 잠을 자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야했던 비애...참 사실적으로 그렸다.. 공감된다.. 일어나기 싫어서 몸부림치던 기억.. 요강이란 지금은 보기힘든 것에 대한 기억도 떠올리게 하고.... 전체적으로 내가 처음 접한 김소진의 작품은 주 무대는 미아리 산동네다. 작가의 삶이 배어나오는건지... 마지막 작품 내마음의세렌게티는 그의 마지막 미완성작이다. 마무리되지 않은.... 짤막한 단편을 좋아하는 사람은 읽어보시라....
k****0 2003.12.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