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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을 처음 만났던 유작 산문집이었다. 나는 그전까지 김소진을 만나지 못했다.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땐, 이미 김소진은 없었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정확하지도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며 간혹 훌쩍였던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어떤 공통된 마음이 있었으리라. 아버지와 아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그 숙제 같은 것. 창고를 뒤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짱박아놨는지도 모를 저 책을. 우연찮게 오래된 목욕탕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온 탓이다.
그랬다. 영화를 핑계로 고향을 찾았다. 이젠 거의 이방인처럼 간혹 낯설게도 느껴지는 고향. 부모님도 그곳을 떠나신 마당이니, 내 고향은 그저 추억으로만 충전해놓고 방전시킬 뿐이었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여전했고, 영화는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내 살던 동네에 발을 디뎠다. 예기치 않았던 방문.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던 차였다. 무엇이 날 이끌었을까. 전날의 과음 때문이었을까. 전날 목욕을 못해 찌뿌둥한 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쉬고 싶어서? 목욕탕이 떠올랐다. 그 오래전 목욕탕은 그대로일까, 아니면 다른 용도로 활용되고 있을까. 궁금했다. 아니, 그 목욕탕이 아직 그 자리에...
그 오래된 목욕탕이 아직 같은 이름으로 숨쉬고 있었다. 주변 서식 환경은 온통 바뀌었는데, 홀로 독야청청이 아니던가. 호기심이 일었다. 내부는 좀 바뀌었을까. 저런. 구조는 똑같았다. 근 20년 이상된 목욕탕이었다. 그곳을 드나들었던 첫 시기가. 그리고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드나들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묘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평일이라서 사람은 그닥 없었다.
탈의를 하고 욕탕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멈칫했다. 아버지가 내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그래, 아버지... 아버지가 거기 계셨다. 이제는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도 좋을만큼 훌쩍 연세를 드신 아버지가, 갈퀴를 휘날리며 초원을 누비던 그 모습으로 있었다. 어린 나와 동생의 때를 밀어주고 있는 아버지...
그래, 아버지는 그때 젊.었.다. 용.맹.했.다. 아버지의 등은 크기만 했다. 밀어도 밀어도 때는 계속 나올 것만 같았고, 고사리손을 한 나는 아버지의 등이 미웠다. 늘 그건 내 몫이었다. 동생은 나보다 더 작았다. 주말마다 아버지는 우리 두 아들을 목욕탕에 함께 데리고 다녔다. 아버지는 간혹 목욕이 끝나고 나면 맛난 음식을 사주시거나, 신발이나 옷을 보러 가기도 했다. 그래 목욕탕에 가는 건 좋았지만, 아버지의 등을 밀어야한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물론 고사리손이었을 때까지만.
그 목욕탕에서 우리들의 순서는 늘 정해져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순서를 따라갔다. 동선도 따랐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지만, 그 목욕탕만은 시간이 멈춘 것일까. 모든 것은 떠나게 되어 있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이미 다른 시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지 않던가. 한때 우리 곁에 머물렀던 그 무엇들은 하나둘 우리를 떠나갔는데...
며칠 전, 아버지가 힘이 빠진 모습으로 쉬이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하던 순간이 생각이 났다. 그 말을 들은 직후엔 짜증도 났다. 하지만, 당신은 그 말을 얼마나 힘들게 꺼냈을 것인가. 나는 어떻게 훌쩍 이렇게 자라났을까. 그 고사리손들을 이끌고 목욕탕에 갔던 아버지. 내 어린 모습보다, 아버지의 젊은 모습이 수증기와 함께 먼저 찾아왔다. 눈시울이 무거워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저 목욕탕이 아직 있는 것이 신기했을 뿐인데...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그 목욕탕을 찾은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그 목욕탕엔 아버지가 있었다. 계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거기 있.었.다. 나는 더이상 등을 밀어주지 않고 있는 아버지의 등이 그리워졌다. 그 자리에서 예전처럼 밀어주고 싶었다. 이젠 나는 고사리손이 아니고, 아버지의 등은 쪼그라들었다. 아버지의 등이 문득 그리워졌다. 오래된 목욕탕에서 만난 아버지는 정글의 왕처럼 용맹해보였다. 그런 아버지는 이제 이빨 빠진 맹수로 기력이 하나둘 빠지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나이에 다가가고 있다.
그렇게 아버지의 나이에 슬슬 다가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 싱글이고 아이 역시 없다. 아들의 생은 아직 길지만, 아버지의 생은 이제 길지 않다. 살아간 날보다 살 날이 적다는 얘기다. 나는 아직 아버지를 온전하게 이해하진 못하지만, 고향에 다시 같이 갈 기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년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그 오래된 목욕탕을 들러봐야 할 것 같다. 그때까지 목욕탕이 있어줘야겠지만. 아버지는 그럴 때 미소를 짓지 않을까. 예전보다 힘이 세졌다면서... |
| 어린 소년과 역시 어린 그의 누이가 산동네의 풍경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나보다. 반듯한 앞머리에 두 손을 가지런히 바지 섶에 붙인 흑백 사진 속의 소년, 마치 오랜 시간을 만나지 못한 나의 형제, 피붙이인양 가슴을 저미게 하는 그는 김소진이다. 서민들의 질박한 삶 속에서 건져 올린 언어들을 다듬고 어루만져 우리 앞에 그려냈던 故김소진의 유작 산문집 '아버지의 미소'는 1997년 위암으로 마감해야했던 서른 다섯 그의 짧은 생애를 기리는 추모의 뜻으로 간행되었다. 책은 그의 대학시절 학회지에 실렸던 습작들로부터 죽음 직전까지 쓴 산문들로 이루어져 있고 형식은 소설, 시, 책글, 인물글, 대담글, 편지글 등으로 다양하다. 조각난 퍼즐들을 끼워 맞추듯 짤막한 여러 산문들을 통해 그의 성장과 상처, 그리고 미완성으로 남겨진 화해의 몸짓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은 살아남은 독자들에게 행운이며 동시에 짐이다. 작가 스스로 밝힌 바처럼 김소진의 작품은 거의가 과거형이다. 작품 하나를 끝마쳤다는 것은 그에게 기억 하나를 복원해냈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축농증 때문에 냄새를 거의 맡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사주셨던 '달보드레한' 빵냄새를 기억해내기 위해 그는 얼마나 깊은 과거 속으로 침잠하였을까? 한 여름 땡볕에서 일하다 돌아온 어머니의 등물을 쳐줄 때 후끈 달아오른 땀냄새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또…. 남과 북에 처자를 따로 둔 분단 역사의 희생자이며, 경제적으로는 무능력자에 가까웠던 그의 아버지와 '여성'을 잃어버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가난 때문에 배움을 접고 노동자로 살다가 그보다 3년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김소진의 형. 이렇게 평탄치 않았던 가족사와 그가 살았던 산동네 풍경은 그의 작품의 모태가 되었다. 하지만 걷을 수 없이 어두운 그림자만이 기억의 전부는 아니다. 세월이 곱게 채색한 낭만도 있고 그리움과 애틋함도 묻어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내가 있다. 우는 내가 있고 웃는 내가 있고, 똥 싸고 먹고 속임수 치고, 싸구려 사탕을 허벌나게 빨아대는 내가 있다. 그리고 나를 닮은 아버지가 거기 있다. 거기를 갔다 오지 않고서는 앞을 향한 어떤 여행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는 작품을 통해 쉬 아물지 않은 생채기와 같은 유년의 기억들과 하나하나 화해하고 싶었나보다. 김소진은 자신의 기억을 언어로 형상화하는 과정을 진정한 어른이 되는 통과제의처럼 받아들였다.(하지만 기억들마다 손길을 내미는 그의 몸짓을 따라가는 것이 나와 같이 준비되지 않은 독자들에게 적잖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기억하나를 온전한 것으로 완성해내는 것, 그 고통스러운 작업은 - 그것이 대부분 가난, 수치심, 자기연민, 내 가족에 대한 부정이었을 때 - 어느 순간 나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혼돈과 어리석음으로 가득했던 유년의 기억을 덮어둔 채 살아가고 있을 때 김소진은 아버지에 대한 이해에서 한 발짝 나아가 민중을 끌어안고 그 삶을 보듬는다. 비둘기호 기차 모양으로 생긴 집에서 올망졸망 살았던 아홉 가구(장석조네 사람들) 이야기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한국현대사의 무대에서 소외된 다수의 민중이 그의 작품에서는 떳떳한 주인공의 자리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 낮은 곳의 땀냄새와 걸진 입담들이 그의 작품이 나아간 여정의 출발점이며 종착지였다는 것을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버지의 미소'를 이해하기 위해 문학을 시작했고, 그 화해를 넘어 민중의 삶 속에서 부대끼고자 했던 작가 김소진은 이승에 남겨진 일곱 살배기 아들 태형과 아내 소설가 함정임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영원히 남으리라. 그의 묘지에 들러 헌화하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
| 아버지라는 사람은 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그래서 그 그늘에 벗어나기 위해서 그 자식들은 아버지를 수없이 부정하고 동정하기를 반복한다. 김소진에게 아버지는 무능력자였다. 북에 처자식을 두고 내려와 남에서도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 아버지.. 늘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자식을 보시던 아버지.. 김소진은 그런 아버지를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자기가 차라리 고아였으면 하는 마음도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 그 자신이 아버지가 되고 김소진은 아버지를 이해하려한다. 그리고 그 이해가 채 끝나기 전에 아버지는 세상을 뜬다. 이 책은 김소진이 97년 세상을 뜬후 유작산문집으로 나온 책이다. 그래서 그가 대학 시절 학과지에 실렸던 글들과 대담글, 책글, 인물글들이 실려있다. 그의 글쓰기는 미래지향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과거에서 출발하는 글쓰기이다. 그의 글은 과거 기억을 끄집어 내면서 아프게 자기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의 자취를 느끼는데 좋은 기회가 되는 글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