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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유령과의 싸움, 그 첫번째 시작--점입가경(漸入佳境)
"아버지-유령과의 싸움, 그 첫번째 시작--점입가경(漸入佳境)" 내용보기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은 잔혹한 병이다. 비록 인구의 1%만 그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정신분열증은 정신병 중에서도 가장 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병이다. 사적 망상의 세계에 사로잡힌 정신분열증 환자는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는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 환시(幻視)나 환청(幻聽)에 시달리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증세는 인류의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다양하다.
"아버지-유령과의 싸움, 그 첫번째 시작--점입가경(漸入佳境)" 내용보기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은 잔혹한 병이다. 비록 인구의 1%만 그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정신분열증은 정신병 중에서도 가장 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병이다. 사적 망상의 세계에 사로잡힌 정신분열증 환자는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는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 환시(幻視)나 환청(幻聽)에 시달리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증세는 인류의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다양하다. 거대한 거미가 되는 환상이나 자신을 모욕하는 목소리에 시달리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례이다. 그리하여 정신분열증환자는 침묵 속으로 도피하거나 아니면 신경쇠약에 걸릴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자신의 말에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 채로 횡설수설(橫說竪說)한다. 김소진의 소설을 말하기에 앞서서 정신분열증에 대한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정신분열증에 걸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김소진이라는 소설가에게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 이름만으로도 정신분열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소재가 되고 있다. "무조건 아버지라는 인간을, 아니 그 말 자체를 이 세상에서 지우고 싶었다."(p. 123)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인양 자신의 몸 속에서 단단한 뼈를 형성한 채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샘솟게 하는 원천이다. "단지 어떤 통증을 예감하고 그 통증으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꼈을 뿐이었다. 바로 사랑니였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솟구쳐 고통만 선사하면서도 얼토당토않은 이름 호사까지 누리고 있는 사랑니 때문이었다. 이 아픔의 실마리가 꾸역꾸역 풀려나 가닿는 기억의 한켠에는 아버지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p. 163) "몸속 어딘가에서 억제할 수 없는 강렬한 외침이 자꾸만 샘솟고 있었다. 이야, 어서 솟아라. 튼튼하고 강인한 놈으로 솟자꾸나."(p. 183) '김소진에게서 '아버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려먹은 질문이다. 그러니 굳이 나까지 나서서 이미 죽은 자에 대해 이렇다느니 저렇다니 말을 보탤 필요가 있을까. [쥐잡기]에 나오는 아버지 '쥐'에 대해서는 쉽게 생각하자. 우리 사회 밑바닥에 뿌리내린 냉전 이데올로기의 환영이라고 해버리자.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아버지·어머니(의 죽음)이 가져온 분열증을 치유하는 방식이다.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에 나오는 부친살해 신화처럼, 그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원죄와도 같은 것으로 남아있다. "―그 신화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우리 허깨비예요. ―나는 자꾸만 목구멍을 벗어나려는 단어를 질기게 잇새에 가둬두고 있었다. 아, 어머니. 나는 그 단어의 끄트머리를 응등거려 물고 놔주질 않았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조그마한 돌멩이를 색동 주머니 안으로 서둘러 밀어넣기 시작했다. 한 순간 노을은 사위고 용두각을 향해 땅거미가 함성을 지르며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들숨으로 한껏 가슴을 부풀린 뒤 탑 그림자가 가라앉아 있는 그 얇은 어둠 속으로 돌멩이가 든 주머니를 힘껏 뿌리쳤다."(p. 208) 아버지(·어머니)는 이미 실체없는 허깨비에 불과한데 오히려 우리가 허깨비라니, 이 무슨 망상인가. 분명 작가는 자신의 망상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작가의 자서(自序)에 나오는 것처럼, 아버지라는 유령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해보았지만 결론은 '어정쩡한 잿빛'에 머물고 말뿐임을. 어쩔 것인가? 김소진이 유령과의 싸움에서 나름대로 악전고투(惡戰苦鬪)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랬을 때, 즉 좋은 세상은 오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은 충분히 나쁘다 하는 비극적 상황에서 우리들 삶을 버티게 하는 건 뭐지? 그건……자존심 같은 게 아닐까요? 그런 게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p. 155) "풍자냐, 해탈이냐. 나는 그 숨막히는 길목에 오늘도 우두커니 서 있는 셈이었다. 그래, 나는 서른 살의 처용이다. 하루에 한번쯤은 해탈을 할 나이다. 그런데 해탈은 어떻게 하는 거지."(p. 243) 햄릿과 김수영이 교차하는 양상. 체념의 삼십대, 그에게 잃은 것은 무엇이고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지기에 그는 아직 젊다. 그에게는 아직 가야할 길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웬지 잘 모르겠지만…… 흥이 안 나는걸. 왜일까? 거기에 가봤자 또 속으로 유세차로부터 시작해서는, 약소하지만 흠향하소서 하고는 상― 향으로 끝내는 식이 될텐데, 그래선 안될 것 같아. 생각할수록 귀신들에게 얼마나 죄송한 일이야? 지고 또 지고, 맨날 제사문이나 씨부렁거리며 쏘다닐 거냐고? 패배한 몰골로. 그러니 자네부텀 가라고. 아직 패배의 책임을 짊어질 세대가 아닌 당신이 이번에 앞서서 가보라구. 그래서 뭔가 희망의 연대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라고."(pp. 265∼6) 결론은 없다. 정신분열증을 치유할 해결책이 아직 그에게는 없다. 어쩌면 영원히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지식인 소설의 한 유형"에서 김윤식 교수는 [처용단장]에 지적 허무주의라는 꼬리표를 달아주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김소진이 아버지라는 허깨비와의 싸움에서 영원히 이기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귀신과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쨌든 그는 이제 막 서른 살의 강을 건넜을 뿐이고, 서른 살의 강을 건넌 김소진은 우리에게 {자전거 도둑}을 내놓았다. "점입가경, 그의 이야기는 바야흐로 흥미진진한 본론에 접어들 참이었다."({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중 뒷표지글에서) 기시감(旣視感)?!

[인상깊은구절]
그랬을 때, 즉 좋은 세상은 오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은 충분히 나쁘다 하는 비극적 상황에서 우리들 삶을 버티게 하는 건 뭐지? 그건……자존심 같은 게 아닐까요? 그런 게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풍자냐, 해탈이냐. 나는 그 숨막히는 길목에 오늘도 우두커니 서 있는 셈이었다. 그래, 나는 서른 살의 처용이다. 하루에 한번쯤은 해탈을 할 나이다. 그런데 해탈은 어떻게 하는 거지.
c******k 2001.01.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