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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한 실수.
학교 방학숙제로 '박완서'님의 [자전거 도둑]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했습니다. 마침 서점에 가실 일이 있으신 부모님께 [자전거도둑]이란 책도 같이 사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후, 부모님께서 사오신 [자전거도둑]은 박완서님의 그 자전거 도둑이 아니였습니다.
무언가 왠지 살짝 무거운 듯, 어른들의 소설 같은 [자전거도둑]을 읽고 성실히 9개의 단편에 대한 독후감을 학교에 써갔고, 어찌된 일인지 다른 아이들과의 독후감에서 묘한 차이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가져온 책은.. 어린이책 느낌이 나는 [자전거도둑] 이었습니다.
내가 써온 독후감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점수를 포기하기로 하니 편해지고 좋았습니다. (밤을 새가며 써간 독후감이 종이조각이 되버리니 머엉- 했습니다.) 점수 발표가 나고, 의외로 좋은 점수를 받아서 의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제대로 읽지않고 원고지의 두께만 보고 점수를 준게 아닌가..생각도 해봅니다. (자그마치 9개의 단편.. 개당 2장,3장이니 거의 20장 이상...)
재회.
그렇게 짖궂게 만났던 [자전거도둑]을 책장에서 다시 꺼내보았습니다. 전엔 햐얗던 종이가 누렇게 변해버려서 책이 오래되긴 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숨에 소설들을 읽어나가면서 느낀건, 재미있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조금 예전 책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생생하게 묘사되는 이야기에 시간가는줄 모르고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책 뒷부분에 작품의 해설들이 있던데, 거기서 작품들의 주제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풀어 해석을 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해설들이 소설을 더욱 있어보이게 하는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벌어질법한 이야기를 소재로 몰래 하고 싶은 말을 숨겨놓은 듯한 글을 읽고나서 넌 이해 못했으니까 내가 설명해줄께, 하고 "사실은 부르스윌리스가 귀신이야." 라고 말해주는 친구 같아 뒷맛이 살짝 떫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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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벽보 벗기기 작업을 하는 순간만큼은 아버지에 대해서 뭔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아마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불랙홀처럼 주변을 휘감아온 당신의 운명과 어떤 식으로든지 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맞닥뜨려 대결하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아울러 그런 애비의 모습을 아들인 내게 단 한 번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하여튼 그 대결의 끝이 아무리 참달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언제부턴가 모르게 삶이 자꾸 버거워질 때마다 그 벽보 속의 아버지를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인상깊은구절] 차라리 죽은 한이 있더라도 아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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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자전거를 잃어버린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자전거라는 물질적 소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자전거는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가난한 시대에 체면과 경제적 지위를 상징하는 귀중한 재산이었다. 그렇기에 자전거를 도둑맞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물건의 손실이 아니라, ‘가문의 체면과 자존심을 도둑맞은 것’처럼 여겨진다. 이를 통해 나는 가난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욕망을 왜곡시키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우리가 흔히 ‘도둑’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단순히 선악으로만 구분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도둑은 사회적으로 분명 잘못을 저지른 존재이지만, 그 배경에는 가난, 불평등, 억눌린 욕망 같은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다. 결국 도둑은 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시대가 만들어 낸 그림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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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사회와 그 적들} 다음으로 많이 팔린 김소진의 소설집. 하지만 대중들의 소설 구매 행태와는 별개로 내게는 2000년 1월 15일 13쇄판 {자전거 도둑}이 {열린 사회와 그 적들}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흔히 김소진을 일컫는 '90년대 최고의 리얼리즘 작가'라는 칭호보다 그의 삶에 대한 시선과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필력(筆力)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버지-유령과의 싸움에서 진땀을 흘렸던 김소진이 어느새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유령이 사라진 자리에서 유령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으니까. "나는 딸애가 지나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 것인가."(p. 54)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아버지. 가르쳐주세요. ... 사내란 모름지기 한때는 웅크리며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단다. 말하자면 풍뎅이처럼…… 알간? 그게 필요할 때가 있는 게 인생이야. 그렇게 해서라도 살다보믄 거저 맹탕으로 걷어치우는 것보담 낫단다. 버러지가 돼도 좋다는 데까지 가봐야 한다이!"(p. 151) 어디 그뿐인가. 이젠 아버지라는 유령을 잊고 세상살이의 고달픔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일상의 삶이란 바로 자신을 희생양 삼아 전개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보여주는 메타포로서의 페이스 메이커 혹은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우리들 삶의 자화상을 보여주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맞서는 것이 작가의 사명중의 하나라면 분명 김소진은 이제 문학을 통한 시대와의 불화를 시도하고 있다. 작가로서의 역할에 눈을 떴다고 할까. [경복여관에서 꿈꾸기]라는 제하(題下)에 작가가 펼치는 시대와의 싸움은 보편성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만 하다. 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이 시대에 아내와 불화하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감히 아내라는 여자와 불화할 생각을 먹는단 말인가? 차라리 시대와 불화한다면 몰라도. 시대와의 불화라……? 거 참, 멋들어진 말이긴 한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딱히 뭐라고 이름붙일 만한 시대도 아니질 않는가. 설령 요즘이 무슨 시대라 해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일 염(念)이 없으니 불화 운운하긴 역시 어쭙잖다."(p. 185)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는 시간적 구도에서 이제 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과의 싸움으로 전장을 옮기고 있다. "여기가 바로 뱃속, 고래 뱃속이지. 세상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모이는 곳, 바로 고래 뱃속이라우. 커어, 우리는 삼켜졌지만 이렇게 살고 있지. 세상은 우리를 버렸지만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버리지 않았으니……"(p. 231) 그러면서 그 지나온 시간과 자신의 현재가 위치한 공간을 하나의 시공간으로 묶어 세운다. "나의 무능함마저도 사랑하는 아내라니! 그런 여자와 내가 불화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불화가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어찌 새로운 절망의 시작이 아닐 수 있으랴! 왜일까? 내가 한때 뭔가와 불화했거나 적어도 불화하는 시늉을 했을 때, 사실 그것은 거꾸로 세상과의 화목을 목마르게 꿈꾸었기 때문이 아닐까? 경복여관에서처럼. 하지만 이제 경복여관을 또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p. 236)
무능함마저도 사랑한다는 아내! 불화마저도 불가능한 그녀와의 관계에서 무슨 꿈을 꿀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항상 김소진이 좋아하는 구도는 이런 식이었다. 작은 내부 공간이 바깥을 향해 튀어나오려 발버둥치는 묘사불가능한 공간이다. 왜 그릴 수 없느냐 하면 그 작은 공간이 이미 바깥의 큰 세상을 감싸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세상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로 이 말에 논리적 근거를 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갖다대는 것을 김소진은 분명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헛헛, 알고 보니 같은 길에서 사는 사람들이구먼."(p. 258) 끝이 없는 도중(途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술이 없으면 될 일인가! "한잔 사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을 들어오는지 떠나는지 모를 기적소리가 귓가에 아련히 맴돌았다. 오늘도 길을 떠나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 258) 그리고 김소진 개인으로 본다면 아버지에 대한 작가 자신의 기억은 이제 어찌할래야 어찌할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잡은 상태이다. [자전거 도둑]에서 미혜는 자신의 오빠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 승호에게는 자신의 아버지가 혹부리 영감에게 당한 수치가 남아있다. 자전거를 훔친다는 건 어쩌면 아버지 그리고 오빠에 대한 기억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해설을 암시하는 듯한 장면도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중이었다. 내 정신상태가 정상인 한 나는 당시 개미에서부터 시작해 각종 애벌레들, 메뚜기, 잠자리, 벌, 땅강아지, 각종 거미 등 지표 및 지상 이 미터 범위에서 꿈틀거리는 모든 것들은 예외 없이 아버지의 표적이 되었음을 기억할 수 있다."(p. 137) '내 정신상태가 정상인 한' 기억할 수 있다니 작가는 무엇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육화(肉化)하고 싶다는 소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일까, 김소진은 [작가의 말]에서 이런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리움만으로 이야기를 자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바람부는 황야처럼 맘둘 데 없는 이 시대에 최소한 말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80년대의 그 기억을 동일화한다고 해서 남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기억을 한번 더 기억하는 게 이야기이고 소설이"(p. 271) 아니던가. [인상깊은구절] 이 시대에 아내와 불화하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감히 아내라는 여자와 불화할 생각을 먹는단 말인가? 차라리 시대와 불화한다면 몰라도. 시대와의 불화라……? 거 참, 멋들어진 말이긴 한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딱히 뭐라고 이름붙일 만한 시대도 아니질 않는가. 설령 요즘이 무슨 시대라 해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일 염(念)이 없으니 불화 운운하긴 역시 어쭙잖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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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을 손에 넣게 된건 순전히 영화때문이었다. 단순히동명의 영화때문에 끌렸을뿐, 나는 김소진이란 작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책을 덮으면서,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표지에서 미소를 짓는 그를 보았다. 그의 단편들 하나하나에는 우리시대의 아버지가 서글프게 그려진다. 정말 화가나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도 사실주의적이다. 그의 이야기는 늘 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에게 기억하기 싫은 기억들을 들추어내는 그런 글들뿐이었다. 우리들 중에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사람이 얼마나 될까? 숨을 쉬고 있다는것만으로도, 목숨이 붙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희망임을 느낀다면 김소진은 좋아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상깊은구절] 너는 벌레가 무어라고 생각하니? 차분히 들여다보면 그것들도 너히들처럼 움직이고 뭔가를 결정하고 기분좋고 언짢은 것도 똑같이 느끼는 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게될게야. 하지만 벌레들은 무조건 더럽고 추하고 밟아 죽여도 시원찮은 것들이쟎아요? 어떤생명이든... 만약에 조물주가 계시다면, 그런 쓰잘데 없는 건 애초부터 만들지도 않았을 게다. 버러지는 우리 인간의 눈에만 버러지 같은거지. 그럼 그런 생명체를 왜 잡아 먹어요? 원래 생명이... 생명을 먹고... 그것이 또 생명을 낳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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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의 자전거 도둑 '자전거 도둑'이란 제목을 가진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에서 본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의 자전거 도둑을 같은 제목의 다른 이야기들보다 인상 깊게 읽은 것 같다. 자전거 도둑. 과연 그녀는 무얼 훔친 것일까? 자전거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마음을 훔치는 것일까? 뭐 대충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내용이었다. 한남자가 있고 그 남자에게는 자전거가 있었고 그런데 그의 세워둔 자전거에 어느날부터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탄 흔적이 있다.
그러다 우연히 자전거 도둑을 발견하게 되는데.. 자전거 도둑인 그녀와 그는 이탈리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을 함께 보면서 각자의 유년시절을 상상하게 되고 그녀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듣고 난 순간 그들은 멀어지게 되고 다시 그녀를 보게 되지만 이제 그녀는 그를 아는체도 하지 않는데 그녀는 다른 자전거를 타고 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돌며 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녀... 그녀는 과연 어떤 자전거를 원하는 것인지.. 다른 글들도 괜찮았지만 역시 자전거 도둑이 가장 괜찮은 내용인 듯하다. [인상깊은구절]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나온 뒤론 거진 달포쯤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사건이 많이 터져 신문사 일에도 바빴고 왠지 그녀를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그때 들은 오빠 얘기 때문인지, 자구만 그녀가 나에게 함정을 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녀는 또다른 자전거가 생겼구나. 그렇지! 다른 자전거를 훔치는 도중이군. 내가 그걸 왜 몰랐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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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하나쯤 마음에 응어리 진 것이 있다. 잊기엔 너무나 가슴아픈 일을 반추하며, 그러나 그것을 다른 누구에게도 털어놓으려고 하지 않고, 풀려고 하지도 않으며 묵묵하게 살아나간다. 사실 한이 맺힌 일을 남에게 털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김소진의 단편 자전거 도둑에서는 자전거를 통해 만난 두 남녀가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헤어지는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남자는 기자이며 아직 젊은 데도 약간 머리가 벗겨졌다.
그는 항상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을 보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자전거 도둑에서 나오는 능력없는 가장을 보면서, 아버지의 가엾은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여자는 같은 영화를 보며 간질을 앓고 있는 청년의 모습에서 간질을 앓다가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죽은 오빠의 모습을 본다. 이 둘은 결국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 때문에 멀어져버린다. 인간 관계가 유지되려면 될수 있는 데로 서로의 너무나 깊은 곳까지 알아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인상깊은구절] 그녀는 분명 나를 봤지만 아주 차가운 눈길로, 아니 차갑다기보다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눈길로 스쳐갔다. 실수였을까? 그러나 난 그녀가 타고 스쳐간 자전거에 물끄러미 눈길이 닿는 순간 퍼뜩 깨달았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나와 그녀를 향해 움직이려다 중동무이로 멈춰버린 내 오른손바닥을 뒤집어 맥없이 바라봤다. 자꾸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아하! 그렇구나. 그녀에게 또 다른 자전거가 생겼구나 그렇지! 다른 자전거를 훔치는 도중이군. 내가 그걸 왜 몰랐을까. 나는 서둘러 허둥지둥 자전거 전용도로를 벗어나 달아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