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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All Ages Classics)>이라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번쯤은 읽은 이효석의 대표적 단편소설로, 표지의 장면은 우리 머릿속에 뚜렷이 박혀있는 허 생원 일행이 달밤에 메밀꽃 핀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이지만, 그의 다른 작품을 이야기하라면 글쎄, 선뜻 대답을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아마도 ‘돈(豚)’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박수를 칠 일이요, 더 기억한다면 ‘산’ 정도일 텐데 그런 사람도 상당히 드물 것이다. 이제 이 단편집을 읽으면 이효석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지금은 잊힌 우리말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우리 기억 속에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문장을 적어보자면 위와 같은데, 이 단편집에는 '메밀꽃 필 무렵' 외에도 '산'과 '돈' 등 모두 10편의 단편이 1부와 2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그런데 작품을 분류한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기왕이면 발표연도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엮은이가 다른 기준을 적용해 분류한 것인지를 일러두기에 밝혀 놓았다면 작품집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1부에 실린 작품은 ‘사냥’과 ‘고사리’, ‘수탉’, ‘들’, ‘석류’이고, 2부에 실린 작품은 ‘메밀꽃 필 무렵’과 ‘산’, ‘돈(豚)’, ‘도시와 유령’, ‘개살구’인데, ‘도시와 유령’ 한 편을 제외하고는 도시가 아닌 시골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냥’과 ‘고사리’, ‘수탉’, ‘들’, ‘돈’은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들이다. 아직 아이다운 순수하고 순진한 세계에 속한 그들은, 노루 사냥에서 몰이를 담당하지만 가여운 짐승을 차마 잡지 못하고 놓치기도 하고, 어른들의 세상을 동경하다 처음으로 이성과 육체관계를 맺는 무서운 경험을 하기도 하며 조금씩 어른들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 중 ‘사냥’을 제외한 모든 작품들에서 이성에 대한 욕망은 일정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뒤에 ‘메밀꽃 필 무렵’에서와 같이 성에 대한 욕망이야말로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감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꽃다지, 질경이, 나생이,딸장이,민들레,솔구장이,쇠민장이,길오장이, 달래,무릇,시금치,씀바귀,돌나무,비름,능쟁이. (‘들’에서) 산오리나무 물오리나무 가락나무 참나무 졸참나무 박달나무 사수래나무 떡갈나무 피나무 물가리나무 싸리나무 고로쇠나무, 골짝에는 산사나무 아그배나무 갈매나무 개옻나무 엄나무. (‘산’에서) 한편 수록되어 있는 작품 중에서 ‘들’과 ‘산’은 주제면에서 가장 가까운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들’에서 학보는 학교에서 퇴학을 맞고 들로 내려오고, ‘산’에서 중실은 머슴을 살던 집에서 새경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 산으로 찾아든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들과 산에서 홀가분함과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두 작품은 곳곳에서 여러 풀이나 나무들의 나열하며, 자연 속에서 느끼는 기쁨과 감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표현하고 있다. 다만 두 작품 모두 자연이 지닌 생명력을 긍정하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 없이 자연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한편 ‘석류’와 ‘개살구’는 다른 책에는 거의 수록되지 않은 작품을 발굴한 것이라고 한다. ‘석류’는 결혼에 실패한 여교사가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야기이고, ‘개살구’는 박달나무로 돈벼락을 맞은 형태가, 한 살림 마련해 주고 첩으로 데려온 서울집과 욕망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빚는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한편 작품집에서 가장 이질적인 이야기는 ‘도시와 유령’으로, 사회적인 주제의식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다. 작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표면에 드러나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만나게 되는 유령이 가난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독자의 자각과 지혜와 힘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분명히 표출된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역시 이효석 하면 ‘메밀꽃 필 무렵’, 또는 ‘메밀꽃 필 무렵’ 하면 이효석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단편으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져 수필이나 소품 같은 느낌을 준다면, ‘메밀꽃 필 무렵’의 유려한 문체와 달밤에 핀 메밀꽃이 빚어내는 서정적 분위기는 우리 소설사의 백미라고 말할 수 있다. 허 생원과 조 선달 그리고 동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봉평에서 대화로 이어지는 밤길을 걷는 느낌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얀 메밀꽃이 피어 있는 봉평의 이미지가 한 번쯤 찾고 싶은 문학적 고향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작품집을 읽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우리말 단어가 무척이나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가리산지리산이나 열적다, 두남두다, 원족과 같이 알고는 있지만 잘 쓰지 않는 낱말은 물론이고, 쥐알봉수, 되술래잡다, 가살스럽다처럼 우리말을 더 풍부하고 다채롭게 할 수 있는 말들이 100년도 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그냥 사라져버린 듯하여 매우 아쉬웠다. 그런 점에서 주석을 통하여 낱말의 뜻을 밝힌 것은 좋았지만, 실제로 책을 읽으며 맨 뒤에 실린 낱말을 확인하기에는 상당히 번거로운 편이었다. 만약 지금 정도의 낱말만 주석을 달아놓을 것이라면 해당 단어가 있는 쪽에 주석을 다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요즘 쓰이지 않아 뜻을 잘 모르는 단어가 주석을 달아 놓은 단어의 2~3배가 된다는 점에서, 주석을 좀더 늘렸으면 하면 지나친 욕심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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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무렵은 가을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옷깃을 잔뜩 여미게 만드는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으니 읽을 때의 감흥이 꽤 사라진 뒤다. 한창 햇볕은 쨍쨍하고 공기는 건조한 전형적인 가을날에 문득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났다. 왜, 가을이면 메밀꽃이 하얗게 피지 않던가 말이다. 게다가 당시 1930년대 작가들의 동화를 읽다가, 별다른 반전이나 강한 효과없이 잔잔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메밀꽃 필 무렵>이 그리워졌었다. 마침 그때 이효석의 작품이 실린 이 책을 읽었으니 우연치고는 참 신기하다.
항상 그렇듯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학창 시절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이런 내용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생소하고 때론 낯설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부분이었던 셈이다. 어째 모든 책이 하나같이 그런지, 원. 이효석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단편적이나마 여러 부분이라는 점이다. 봉평을 지나거나 그곳으로 여행 갈 때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이야기, 다른 작품은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이효석을 대표하는 작품이 이 책의 표제작이다.
그런데 이 책 덕분에 그의 다른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이효석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인지 어떤 이야기는 이것이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나 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특히 <들>에서 주인공은 왜, 무슨 일로 학교를 못 다니며 문수는 또 무슨 이유일까 궁금해서 작가의 그 시절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위기로 보아 개인적인 일은 아닌 듯하고, 그렇다고 80년대처럼 그런 이유는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궁금했으나 작가는 끝내 자연만 이야기할 뿐 별다른 인간사를 들먹이지 않는다. 모르긴해도 작가가 시대에 좌절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청소년이 주인공인 단편들을 모아 놓았다고 한다. 전혀 몰랐던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새로웠다. 물론 그래서 좋았다. 간혹 이야기가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마 내가 이효석이라는 작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강미 작가가 써놓은 작품해설을 살짝 빌리자면 <들>의 경우는 초창기의 작품색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어쩐지. 말로는 들을 예찬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좌절과 고통이 배어나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던 터다. 대신 <도시와 유령>은 작가의 사회비판의식이 짙게 느껴졌다. 주인공이 청소년이라고 해서 그것을 청소년소설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굳이 청소년소설만 읽어야 한다고 선을 그을 필요 또한 없다. 즉 어떤 작품이든 읽어도 무방하므로 이 책이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모아놓았다는 것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 이효석의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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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효석 작품을 읽어 볼 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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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메밀꽃을 이효석이라는 작가를 통해서 알게 된 지 오래다.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문학 수업에서 만났던 그의 메밀꽃은 알싸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낯선 어휘들을 외우느라 오히려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는 왼손잡이의 내림을 유전이라고 믿고 싶을만큼 동이와 허생원을 부자지간으로 이어주고 싶었던 마음은 아직까지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해마다 봉평에서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 맘때쯤 평창효석문화제를 연다. 추석 연휴가 끼어 갈 수 있는 행운이 있었지만 추석인 탓에 오히려 아쉽게도 가지 못했다. 대신 다녀오신 친정 어머니께 효석문화제의 프로그램을 받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문학나눔콘서트가 열리고 음악과 시가 어우러지는 무대 위로 타박타박 대화장을 거쳐 제천길로 향할 동이와 허생원의 당나귀가 그림처럼 떠올랐다 사라진다.^^
<메밀꽃 필 무렵>이 그의 대표작이지만 오히려 이 책에 소개된 다른 글들을 보며 이효석이라는 작가를 다시 알게 되었다. 그가 꽤 짖궂은 작가(?!)이며 과감하고 솔직한 작가라는 생각을 한다. 작품 해설자의 글처럼 그는 인간의 성적 욕구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봤다.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고 겂없이 대거리를 하는 망나니 홍수와 인동을 주인공으로 한 <고사리>는 여자를(?!) 알게 되는 겁없는 사춘기 소년들의 이야기다. 순자가 담배보다 갑절 더 무섭다고 하는 인동의 말에 웃음이 나면서도 예나 지금이나 사춘기 소년들의 왕성한 성적 호기심과 막무가내로 덤비는 객기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의 작품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서리를 하고 담배를 피다가 퇴학을 당하고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들>에 나오는 주인공 학보와 문수 역시 퇴학을 당하고 빈둥거린다.(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는 아이들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뭘까? 일제 강점기 하에서 빈둥거리는 것 밖에 달리 할 바를 몰랐던 젊은이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글쎄!!!
성에 있어서 솔직한 그의 단편들이 청소년들을 황홀경으로(?!) 이끌지 알 수 없지만(오히려 너무 약하다고나 하지 않을까?)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약이 된다면 강하진 않아도 그의 작품들이 꽤 효과있는 처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이 성경이나 불경은 아니니 말이다. 다만 <들>에 나오는 학보나 문수, 옥분이라면 좀 곤란하겠지만. 사춘기를 거치고 나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분명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서 어떤 것들은 만나게 될 지 사뭇 궁금해진다.
<석류>는 준보를 그리워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재희의 마음과 재희가 가르치는 학생 갑남이와 애순이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옛사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낸다. 암퇘지를 교배시키러 갔다가 허무하게 기찻길에서 잃고마는 식이의 모습은<豚> 언뜻 웃음이 나면서도 정작 생각해보면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찰 노릇이다. 한방에서 자며 애지중지 길렀던 돼지를 잃고난 허무함이 전해져 손이 다 시릴 지경이다.
거기에 흔히 나타나는 유령이 적어도 문명의 도시인 서울에 오히려 꺼림 없이 나타나고 또 서울이 나날이 커 가고 번창하여 가면 갈수록 유령도 거기에 정비례하여 점점 늘어 가니 이게 무슨 뼈저린 현상이냐!-본문 <도시와 유령>129쪽 발췌
어처구니 없이 자동차 사고로 다리를 잃고 아이와 동묘 정전에 숨어 사는 모자의 모습을 통해 유령의 모습이 다름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피폐하고 고통받는 모습임을 알려주는 작품을 알게 된 바도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이제껏 널리 읽히지 않았던 이효석의 단편들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는 책이었다. 그가 이끄는 메밀꽃 피는 풍경 속으로 들어 갔다온 여운이 꽤 오래토록 진하게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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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경향으로 시선을 끌기도 했던 1920년대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 가산 이효석 그의 수작인 <메밀꽃 필 무렵>을 타이틀로 보물창고에서 올 에이지 클래식 시리즈로 나왔습니다. 올 에이지 클래식은 청소년부터 성인들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시리즈물인데요, 이효석의 작품 <사냥> <고사리> <수탉> <들> <석류>를 1부에서 그리고 <메밀꽃 필 무렵> <산> <돈豚> <도시와 유령> <개살구>를 2부에 엮어놓고 있습니다. 이효석의 작품은 주로<메밀꽃 필 무렵>만 기억하게 됩니다. 장돌뱅이의 떠도는 삶을 빌어 삶의 한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돌고 도는 인생을, 허생언과 조선달, 동이 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우리의 인생길을 나타내는 것으로 표현하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필체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 에이지 클래식에서는 이효석의 단편 10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메밀꽃 필 무렵> 이외에는 읽어본 것도 있지만 안 읽어본 작품도 있습니다. 보물창고의 <메밀꽃 필 무렵>은 작가의 원전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표현력이라던가 고전에서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어휘를 보는 재미도 새롭습니다.
이효석의 작품에는 性을 곳곳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 본연의 본성이지만 왠지 性이라고 하면 숨겨야 하는 것, 창피한 것, 은밀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죠. 그런 점에서 이효석 작가는 성과 애욕을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감정으로 여기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이효석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는 바로 일제 강점기였죠. 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센세이션한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효석 작가의 작품을 性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작품에는 제2차 성징을 맞닥뜨린 청소년의 심리가 담겨 있습니다. 어른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맞대는 '홍수'도 있고, 그런 홍수를 보면서 어른 흉내를 내는 '인동'도 있습니다. 능금을 서리하다 무기정학을 받고 속상해 있는 '을손'의 눈에 옆집 닭에게 물어뜯기는 수탉이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아 무의식중에 죽이고 맙니다. 물론 한적한 시골의 정서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성도 역시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이효석의 작품 세계가 궁금해집니다. 1928년 <유령과 도시>를 발표하면서 경향 문학의 동반 작가로 인정받았다. '경향문학이란 일본 식민지 시대에 등장했던 계급문학운동의 창작적 실천 과정에서 비롯된 계급문학 작품을 총칭한다'고 정의를 합니다만, 사실 상당히 깊숙이 공부를 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올 에이지 시리즈의 <메밀꽃 필 무렵>에 수록된 이효석의 작품은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기회를 주고, 자연이 가진 생명력과 그에 대한 깊은 통찰을 살펴보는 독서가 됩니다. 어른의 세계를 미리 엿볼 수 있는 묘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고, 어른들에게는 기억 속에 흐릿해져 가는 청소년기의 감성을 다시 떠올리는 서정적인 독서가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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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부, 2부 각 5편씩 총 1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1부에는 사냥, 고사리, 수탉, 들, 석류 가 실려있고, 2부에는 메밀꽃 필무렵, 산, 도시와 유령, 개살구가 실려 있다. 지난 번 김유정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이번 이효석 작품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시대가 다른 작품들을 가급적 원문에 출실하게 싣는 것이 꼭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러 두기에 보면 "가능한 원문을 살렸으나 이미 사라진 말은 글이 손상 되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 독자들이 읽기 쉽게 오늘 날의 한글맞춤법에 맞게 바로 잡았다." 라고 되어 있고 "설명이 필요한 어휘는 각 작품마다 주석을 달아 표시하고 권 말에 그 뜻을 밝혔다."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작품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는 있다. 그러나 책을 보는 내내 편하지는 않았다. 설명이 필요한 어휘를 각주로 권말에 달았다고 해도 번번이 낱말들에 많이 걸렸다. 각주를 단 낱말을 찾을 때마다 권말을 봐야한다는 것도 불편했고, 국어 사전을 옆에 두고 낱말 찾기에 바삐 움직이면서 작품을 본다는 것도 편치 않았다. 문학 작품을 즐기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원문 그대로 읽는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자나 수험대비로 책을 읽는다면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독자라면 보다 편하게 작품에 접근을 할 수 있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냥'에서 학보는 학교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노루 사냥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사냥을 하는 인간들에 대해 잔인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체 행동에 자신만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노루 사냥을 할 때 학보 바로 곁으로 두 마리의 노루가 도망을 쳤다. 친구들의 비난과 총에 맞아 죽어 나자빠진 노루를 본 후 학보는 병이 났다. 잃었던 입맛을 돌리게 한 음식의 정체를 알게 된 학보를 보면서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든다. 하필 학보의 잃은 미각을 살린 것이 노루 고기였다니 말이다.
'고사리'는 청소년 사춘기의 전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주인공 인동에게 친구 홍수는 우상이다. 홍수는 또래보다 성숙 한 아이고, 어른 세계에 보다 가까이 접근 해 있는 아이다. 홍수는 어른들과 맞서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하고, 아이들 앞에서 으스대며 담배를 피고, 감내집 목욕하는 것을 훔쳐 본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은 또래들과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말들이 너무나 어렵다.
'수탉' 은 누에학교를 다니던 을손이 능금을 서리하다가 무기 정학을 맞고 여자 친구로 부터 퇴짜를 맞은 자신의 처지와 늙고 병들어 초라해진 자신의 집 수탉과 동일 시한 작품이다. '들'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학보가 고향에 돌아와 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상을 적은 들이다. 고향친구 문수 역시 학보와 어울리다 부지불식간에 이에게 영향을 받아 정학처분을 받는다. 학보는 들에서 최근 파혼 당한 옥분을 위로하다가 그와 살을 섞게 되고 학보는 그일로 나름 책임감도 느끼며 괴로워한다. 우연히 문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학보는 옥분과 살을 섞은게 자기만이 아님을 알게 된 학보는 조신하지 못한 옥분의 행동탓으로 자신의 책임 없음을 이야기 한다. 작품을 보면서 시대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영 편치 않은 작품이었다. '석류'는 결혼에 실패한 여교사가 젊은 시절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가 소설가 된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메밀꽃 필 무렵'은 너무 잘 알려 진 이야기고 두번 이야기하는 것은 되레 입이 아픈 일이다. 메밀꽃 필무렵은 봉평장에서 대회 장으로 밤길을 밟아 넘어가며 허생원이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동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이가 자신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이야기다. 다시 읽으면서 내 눈에 띄었던 것은 젊은 동이의 혈기 넘치는 것을 시샘하는 허생원과 암샘하는 늙은 나귀였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성욕과 하얀 메밀밭과 달빛이 어루러지는 조화를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었다. 최근 횡성, 봉평을 다녀 오면서 메밀꽃이 없는 봉평을 보면서 쓸쓸해 했던 기억만이 새롭다. '돈'과 '도시와 유령'은 고단한 서림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효석의 작품을 다시 볼수 있는 계기가 되어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