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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서구 사회를 모방하려는 거센 움직임이 있었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그 시절, 청나라를 위시한 동양의 고유한 속성에는 모조리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입혀졌다. 되도록 서양의 것을 좇는 것이야말로 진보와 생존을 위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절실한 방법이었다. 허나 그것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뼈아픈 과정이기도 했다. 수많은 반발을 시대착오적인 움직임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로 하여금 나를 부인하라 요구하는 사회에 아무런 동요 없이 적응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니 말이다. 19세기 후반 중에서도 1898년을 저자들이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꼭 그 해여야만 하는 이유가 과연 있는가. 저자는 1898년이 반드시 1898년 한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1876년 일제에 의해 개항을 당한 후 1910년 조선이라는 한 나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까지의 시기는 하나로 묶어도 크게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1898년이라는 특정 시기를 언급하며 나라를 잃은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문명의 전환’이 바로 그 해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하나의 세계가 저물고 전혀 다른 세계가 떠오르는, 대체 1898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독립협회가 주축이 되었다고 하는 만민공동회이다. 아니, 독립협회가 주축이 되었다는 표현은 어쩌면 그른 것일 수도 있다. 초창기 심지에 불을 처음 붙인 것은 독립협회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 불을 유지하고 더 크게 키운 것은 다름 아닌 민중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전까지 민중은 피지배계층에 불과했다. 양반이 아닌 이상 사람들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전혀 갖지 못했다. 양반 역시도 지역사회에서는 떵떵 거렸을지 모르나 저보다 신분이 높은 이와의 만남에서는 비천함을 가장해야만 했다. 그것은 신분제 사회가 사람들에 드리운 굴레이자 족쇄였다. 어느 누구도 반항할 수 없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질서가 조선사회 500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세월 동안 이 땅을 지배하고 있었다. 독립협회가 갖는 역사적인 의의를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계몽의 중요성에 누구보다도 먼저 눈을 떴고, 그 전까지 외면당하던 교육을 표면화시키는 데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그리고 근대적인 질서의 중심에 놓인 소통의 힘을 이 땅에 보급하기도 했다. 허나 그들의 역할은 거기까지 였던 것 같다. 지배 계층이 하나의 움직임을 선도함에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한계점이라 할 수 있는 기득권에 대한 고려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민중들의 목소리 하나하나를 소중히 받아들여 실질적인 개혁을 심는 단계까지 그들은 나아가지 못했다. ‘이것이 옳다’는 당위성이 현실화되는 시점에 있어서 그들은 오히려 주저했고 변화의 실체가 되길 거부했다. 책에 묘사된 만민공동회의 한 장면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오래 흘러도 변화하는 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겨울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그들은 제 체온으로 서로를 녹였고 불을 지펴 추위를 몰아냈다. 가진 건 단결력 밖에 없는 사람들이 부당함을 목도했을 때 촛불을 들고, 때론 맨몸으로 거리에 나서는 것과 19세기 후반의 모습은 크게 달라 보이질 않는다. 만민공동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각계각층이었다. 백정도 있었고 기생도 있었는데, 어느 하나 제 낮은 신분으로 인해 발언을 제약당하지 않았다. 오늘날 민중들이 모이는 공론의 장 역시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거로 치면 양반이라 할 수 있는 권력층만 쏙 빠진 집단, 그 주축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시민이다.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모르는 비정규직과 파견직 노동자들, 값비싼 등록금 마련에 분주한 청년들 그리고 제 자녀의, 가족의 건강을 걱정하는 가정주부들. 세상이 부족하다 말하는 이들이 모여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가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습이 곳곳에서 연출된다. 1898년에도 그랬을 것이다. 새로이 도입된 질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이끄는 헛된 발걸음이 아닌, 다수가 함께 진동하는 거대한 물결이었다. ‘문명의 전환’이라 일컬어도 부끄럽지 않은... 기층에서부터 올라온 변혁의 움직임에 대한 언급과 함께 이 책에서는 진보에 목을 맨, 소위 지식층들에 의해 보급된 새로운 움직임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고 있었다. 한문 표기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띄어쓰기, 위생에 대한 강조와 흰옷 지양 등. 어느 정도 그 필요성이 납득은 가지만 단순한 생활패턴의 변화라기보다는 온몸으로 오래도록 체득해온 제 삶을 뒤흔드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민중들에게 쉬이 포용되질 아니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주장 역시 구체성 면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많았다.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신소설 중에는 모든 갈등이 신교육, 즉 (해외) 유학을 가면 해피엔딩으로 봉합되는 식의 어설픈 결말을 가진 작품들이 꽤 많다. 남들보다 앞서 있다는 지식인 계층의 신문명에 대한 인식 정도가 어쩌면 민중의 변화 속도보다도 더뎠던 것은 아닐지를 묻고픈 대목이다. 현명함을 가장한 우둔함에 더는 속지 말지어다! 생을 등지는 그 순간까지도 매듭짓지 못한 학문에 대한 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전인권 님의 명복을 늦게나마 빌어본다. 동시에, 철저히 외부로부터 이식된 듯한 민주주의를 누구보다도 열렬히 받아들여 제 것으로 만들었던 1898년의 우리 자신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