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수의 '무정'. 수없이 많은 얘기들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현대소설사에서 차지하는 가치에 대한 얘기나 작가인 이광수에 대한 평가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는 그런 것들이 아닌 작품의 내용 자체에 많이 집중했다. 신문 연재 소설다운 흥미있는 내용과 주인공 형식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장황하면서도 섬세한 서술, 약간은 허무하고 허술한 작품의 결말 등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어쨌든 이 작품은 그 이전의 다른 작품들과는 확실히 구분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100년전에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당시 우리의 문학 현실을 볼 때 보통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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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무정>. 한국 근대 문학의 첫 장을 열어제낀 작품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대략의 줄거리만 들어 알고있다가, 지금에서야 읽어보았다. 이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읽고난 후의 느낌으로는,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에 기대어 그 문학성이 조금 과대포장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
이광수는 확실히 이야기꾼이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 그의 또다른 작품인 <유정>이라든지, <흙>을 밤새워 읽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무정>의 경우에는, 내 태도가 그동안 많이 달라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딘가모르게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문학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외치는 '문예가' 이광수의 모습과 민족 개조론을 주장하는 '사회 운동가' 이광수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광수의 다면적인 모습이 그의 작품에 여실히 반영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건만, 그것을 새삼 지적함은 권영민이 해설에서 꼬집고 있듯이, 그의 두 모습이 철저히 배치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점은 제쳐두고서라도, 아직 신소설류의 문체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이 작품을 읽으며 눈에 많이 거슬렸던 점이다. 이것은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김동인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중간중간 너무도 빤히 드러나는 작가의 자기 목소리- 물론 이것은 이광수 스스로 주창하였던 민족의 계몽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어떠한 문학적 형상화가 아닌, 그대로의 설교였다는 데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작품이 매일신보에 연재된 소설이었다는 점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을테지만. 즉, 근대로 넘어서지 못한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서의 모습이 이광수의 <무정>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그의 인물 설정에서 보이는 엉성함이 눈에 띈다. 즉 형식은 불우한 몸임에도 불구, 운이 좋아 계속해서 순탄한 인생을 걸어가는 인물로 나오고 있다는 점- 이것은 <홍길동전>, <조웅전>, <구운몽> 등에서 보이는 영웅적 인물의 전개 구조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물론 형식이 홍길동이나 양소유와 같은 일면적 인물이 아닌, 나름의 내면의 흔들림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었다는 점에서는 <무정>의 뛰어난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고 칭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 조금쯤 실망한 것은 어쩌면 '이광수의 <무정>'이라는 이름에 거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문학사적으로도 의의가 매우 큰 작품이니만큼, 꼭 한번은 읽어두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형식은 다시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고 자기의 과거를 생각하였다. 형식은 과연 오늘날까지 일찍 계집을 본 적이 없었다. 이십사 세가 되도록 계집을 본 적이 없다 하면 극히 정결한 청년이라 할지라. 그러나 형식은 진실로 뜻이 굳고 마음이 깨끗하여 이러한 정결을 지켜 온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고 형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찍 동경에 있을 때에 어떤 여자가 주인 노파를 통하여 형식에게 사랑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때에 형식은 주저함도 없이 그 청구를 거절하였다. 그 후에도 두어 번 청구가 있었으나 여전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형식의 마음이 과연 이처럼 깨끗하였던가. 형식의 양심의 힘이 과연 이렇게 굳세었던가. '그게 말이 되오? 못 하지요!'하고 굳세게 거절한 뒤에 형식의 마음은 도리어 이 거절한 것을 후회하였다.무정>무정>구운몽>조웅전>홍길동전>무정>무정>흙>유정>무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