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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건축 되짚기
"한국의 근대건축 되짚기" 내용보기
개화기 전, 서울은 하나의 커다란 마을이었다. 개인이 살아가는 공간은 작고 단순했으며, 지금보다 친숙했다. 하지만 개화기 이후 철도가 깔리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낯선 외양의 교회를 세웠으며 교육, 문화, 주거공간 역시 개인이 경험하는 영역의 확대와 더불어 변해갔다. 이때부터 서울은 '도시'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 뒷표지
"한국의 근대건축 되짚기" 내용보기

개화기 전, 서울은 하나의 커다란 마을이었다.

개인이 살아가는 공간은 작고 단순했으며, 지금보다 친숙했다.

하지만 개화기 이후 철도가 깔리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낯선 외양의 교회를 세웠으며

교육, 문화, 주거공간 역시

개인이 경험하는 영역의 확대와 더불어 변해갔다.

이때부터 서울은 '도시'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 뒷표지 中 -

 

 

 

 

 

이 책은 북노마드의 디자인문고 시리즈 중 하나로, 2009년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발행한 격월간 디자인 잡지 <디플러스> 제3호에 실린 특별기획 '한국의 근대건축'을 단행본 형식에 맞춰 수정, 보완한 것이다.

6명의 학자들이 쓴 글이 실려있고 글 뒤로는 근대건축물들을 제시하며 중간중간 사진이 들어가 있다.

실린 글들은 다음과 같다.

 

 

오창섭 / 근대의 전형, 기차

류동현 / '문화공간'의 탄생과 진화

이승원 / 사서삼경을 다락방에 처박고 시체를 해부하다

김정신 / 공간의 확대와 분절, 근대의 종교건축

이병종 / 명륜동 일본식 목조주택에 관한 기억과 생각

안창모 / 근대건축과 우리의 얼굴

 

 

매끈한 평면은 근대가 자리하는 공간의 모습이다. 그것은 굴곡진 전통적인 공간과 다르다. 굴곡진 공간, 그것은 차이를 가지는 공간이고, 그 차이로 삶의 기억들이 자리하는 공간이다. 전통적인 공간의 골짜기와 봉우리들에는 온갖 전설과 일상의 무용담, 그리고 신비스런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근대의 매끈함은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에서 형태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삶의 기억들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기억이 사라진 그 매끈한 평면 위로 근대는 자신의 형상들을 배치한다. 그 형상들은 이전에 그곳에 자리하던 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표정들을 가진다. 근대도시에 자리하는 기하학적인 형상의 사물들과 엄청난 규모의 빌딩들 사이에 유통되는 것은 신비스런 이야기가 아닌 기능과 합리성에서 파생된 기계음이다.

- 15p -

 

 

근대라는 시대를 떠올리면 이렇다. 초가지붕이 기와지붕으로 바뀌고 기왓집 사이사이가 좁아지고 곳곳에 위락시설이 늘어나고 경제발전이 가속화되는 모습. 사람과 사람 사이가 좁아지고 지역 간 거리가 짧아지는 세상의 도래. 근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방방곡곡이 발전했고 서로 삶을 논할 때 '편리성'의 유무를 따지게 된다. 자연은 인간의 모습과 반비례해 멀어지고 경제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내면은 점차 쓸쓸해지는.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 나는 사실 근대를 이런 색깔로 느끼고 있다.

 

 

서구의 뮤지엄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받아들인 우리는 남아 있는 것들을 '개발'이란 미명 하에 사라지게 하고, 서구와는 반대로 박제되어 있는 뮤지엄만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 스스로의 성찰을 배제하는 우리 모더니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 71p -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거리의 풍경을 보고 흠칫 놀랐던 적이 있다. 백화점 등의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해 있는 공간 안에 신사나 사찰, 신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놓여져 있는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보통 백화점 하나를 지을 때도 우리는 그 곳에 있던 전통과 역사를 허물고 새로 짓지 않던가? 나는 어쩌면 곳곳에서 근대의 느낌을 자주 느끼지 못하기에, 근대를 전통있는 역사의 부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가 생각하기도 했다.

 

 

한국의 근대건축은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근대건축과 사라져버렸으나 다른 건물로 대체하고 있는, 예전의 자리까지 간단하게 알려준다. 6명의 학자들의 글모음집이나 논문과 같은 성격을 지닌 글들이 많아 딱딱한 감이 있었지만 한번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근대로의 회귀를 자극시켜주는데 용이한 책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건축물은 정부가 매입해서 보존, 유지시켜야 마땅한 건지도 모른다. 역사는 과거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진다 할지라도 축적되어 있는 공간은 계속 축적을 위해 지상 위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s*****5 2011.12.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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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건축
"한국의 근대건축" 내용보기
2009년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발행한 격월간 디자인 잡지 <디플러스> 제 3호에 실린 특별기획 '한국의 근대 건축'을 단행본 형식에 맞춰 수정 보완한 책이다.   기차가 다니는 기찻길을 산과 들 강으로 이루어진 곡선길들을 평면의 기찻길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은 매끈한 평면은 근대가 자리하는 공간의 모습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공간과 다르다.   근대는 매끄럽다. 기차는
"한국의 근대건축" 내용보기

2009년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발행한 격월간 디자인 잡지 <디플러스>

제 3호에 실린 특별기획 '한국의 근대 건축'을 단행본 형식에 맞춰 수정

보완한 책이다.

 

기차가 다니는 기찻길을 산과 들 강으로 이루어진 곡선길들을 평면의

기찻길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은 매끈한 평면은 근대가 자리하는 공간의

모습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공간과 다르다.

 

근대는 매끄럽다. 기차는 근대적 신문들과 함께 배치되어 '우리'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기계로서 자리했다.

 

우리나라의 전통건축 문화에 뚜렷한 변화의 징후가 나타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개항 이후 외래의 건축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전통사회에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공간이

등장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교회건축의 충격과 영향이 가장 뚜렷했다.

-P51

 

벽돌을 쌓아올린 구조들과 서양식과 중국의 건축요소들을 한국적인

건축에 조화를 시킨 모습이 보여진다.

 

주요 근대 건축목록과 사진들이 어울어져 있어서 근대건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k*****1 2012.05.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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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의 근대 건축(작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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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섭 건국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류동현 전 월간미술 기자 이승원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 연구교수 김정신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병종 연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안창모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   건축에 대한 이야기 한다. 전문가 6명의 식견을 듣게 된다. 어렵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항상 이야기가 바탕이 되면, 공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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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섭 건국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류동현 전 월간미술 기자

이승원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 연구교수

김정신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병종 연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안창모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

 

건축에 대한 이야기 한다. 전문가 6명의 식견을 듣게 된다.

어렵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항상 이야기가 바탕이 되면, 공감대를 끄집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보배같은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건축에 문외한이 책을 중간에 놓지않게 만드는 힘이다.

 

책도 그리 두껍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처음에 서울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끌렸다.

오창섭의 근대의 전령, 기차편은 기차를 통하여 건축을 끄집어 내놓은 사례이기도 하다.

 

10 서울역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오는 이들은 서구적 표정을 한 서울역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근대도시 서울에 도달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기하학적인 국제주의 양식이 아닌 서양 중세건물의 외양을 취하고 있었지만 당시 서울역은 근대를 가장 함축하고 있는 공간이자 건축물로 경험되었다

 

k****k 2012.05.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