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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에서 연암을 읽다, [열하일기 2]
"[열하일기]에서 연암을 읽다, [열하일기 2]" 내용보기
돌베개에서 출간된 [열하일기] 세트는 전 3권으로 되어있다. 1권에는 연암이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만수절 축하사절단의 정사로 떠나는 삼종형 박명원의 개인수행원 자격으로 압록강을 건너 연경을 거쳐 열하에 도착하기까지의 기행문이다. 날짜상으로 6월24일부터 8월9일까지이며 <도강록>, <성경잡지>, <일신수필>, <관내정사>, <막북행정록> 등 5편이 일기체 형식으
"[열하일기]에서 연암을 읽다, [열하일기 2]" 내용보기

돌베개에서 출간된 [열하일기] 세트는 전 3권으로 되어있다. 1권에는 연암이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만수절 축하사절단의 정사로 떠나는 삼종형 박명원의 개인수행원 자격으로 압록강을 건너 연경을 거쳐 열하에 도착하기까지의 기행문이다. 날짜상으로 624일부터 89일까지이며 도강록>, <성경잡지>, <일신수필>, <관내정사>, <막북행정록5편이 일기체 형식으로 실려 있다. 2권은 그렇게 도착한 열하에서의 일들을 기록한 글이다.

 

태학유관록8월초9일 을묘일부터 814일 경신일까지 숙소인 열하의 태학관에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글이다. 열하에 도착하던 날 저녁, 연암은 밖으로 나와 오른쪽 행랑으로 들어가본다. 열하까지 시간에 쫓겨오느라 정신이 없었던 역관과 비장이 한 방에서 얽혀 자고 있다. 모두 코를 우레같이 고는데, 어떤 이는 호리병이 기울어져 물이 쪼르르흐르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톱질을 하는데 톱니가 나무에 먹혀 삑삑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쯧쯧하며 남을 나무라는 소리를 내고, 어떤 이는 쩝쩝하며 원망을 삼키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만리 길을 함께 고생하며 함께 자고 함께 먹으며 왔다. 응당 쌓인 정분이 생사조차 함께할 형제의 관계가 되었을 터인데도, 같은 침상에 자면서도 꿈은 서로 달리 꿀 것이며, 서로의 속생각은 초월의 관계인가보다.’(23-24) 글을 읽으면서 혼자서 킬킬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도, 보이는 것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세밀하게 살피는 연암의 글쓰기에 감탄을 한다.

 

태학관에 머무르면서 연암은 술집에 들어가서는 몽고족과 회족의 생김새며 옷차림을 감상하고,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말들을 보고서는 말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논하기도 한다. 황제가 조선의 사신에게 서번의 성승을 만나보라고 한다. 조선의 사신일행은 유학자로서 중을 만난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워 어찌할 줄을 모른다. 이에 연암은 사신이 안 만나겠다고 상소를 올리면 의롭다는 명성이 천하를 울릴 것이지만 필히 황제의 노여움을 사 운남이나 귀주로 귀양을 갈 것이고, 그러면 자신도 따라가서 구경할 수 있다고 기뻐하며 마두에게 술을 사오라고 한다. 그는 가보지 못한 곳을 구경한다는 것이 사신의 귀양보다도 더 좋았던 것이다.

 

환연도중록815일 신유일부터 820일 병인일까지 열하에서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기까지 길에서 경험한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열하에 갈 때와는 달리 날씨도 좋고 시간에 쫓기지도 않는다. 고북구에서 어떤 퇴락한 절에 들어가 쉴 때이다. 중 두 명이 난간아래 오미자 몇 섬을 말리고 있다. 연암이 무심코 오미자 몇 알을 주어 입에 넣자 중이 버럭 성을 내고 꾸짖는다. 때마침 마두 춘택이 그 모습을 보고 중들과 주먹다짐을 하며 혼내 준다. 연암이 이를 보고 내 학문이 거칠고 얕아서,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바로잡거나 외 밭에서 신을 신는 등의 무심코 한 일로 인해 남에게 오해나 혐의를 살 만한 행동을 함으로서 애초부터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했는데, 이제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었다는 욕을 스스로 받고 말았으니 어찌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견딜 수 있으랴!’(130-131) 자신의 과오를 그때그때 반성하는 모습은 연암의 또다른 면을 보여준다.

 

<한양에서 열하까지의 여정>

 

일기체 서술은 여기서 끝이 난다. <도강록에서부터 환연도중록까지 7편의 글이다. 2권에는 일기체서술2편을 제외하고도 9편의 글이 더 있다. 모두 열하에 머물면서 청나라 학자들과 주고받은 이야기이다. <경개록은 숙소였던 태학관에서 만난 중국학자나 고관들의 이력을 수록했다. 라마교에 대해 쓴 황교문답>, 라마교의 지도자인 반선의 내력을 기록한 반선시말>, 그리고 반선의 거처인 찰십륜포는 모두 불교의 한 갈래인 티벳 지방의 라마교에 관한 것이다. 황제의 명으로 조선 사신은 어쩔 수 없이 반선을 만나기 위해 찰십륜포로 간다. 연암이 따라가서 구경한다. 사신일행은 가기는 가는데 반선을 만나 어떻게 예를 갖출지 궁금해진다. 지금 군기대신이 사신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사신은 못들은 척하였다. 제독이 사신을 인도하여 반선 앞에 이르자, 군기대신이 두 손으로 공손히 비단을 받들고 서서 사신에게 건네 주었다. 사신은 비단을 받아서 머리를 꼿꼿이 들고 반선에게 비단을 주었다. (…) 사신이 차례대로 다시 나가려고 하자, 군기대신이 오림포에게 눈짓을 하여 사신이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는 사신에게 활불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하는 예를 갖추라는 신호였으나 사신은 모르는 척하였다. 그리고 멈칫멈칫 뒷걸음을 치며 물러나, 몽고의 왕이 앉은 수놓은 흑공단 깔개에 앉았다. 앉을 때 약간 몸을 구부리고 소매를 들어서는 이내 앉아버렸다. 군기대신이 당황한 기색을 띠었으나 사신은 이미 앉고 말았으니, 그 역시 어찌 할 수 없어서 마치 못 본 듯 행동했다.’(259-260) 조선 유학자들의 고뇌가 엿보인다. 황제의 명이 지엄하여 중을 만나기는 했지만, 중에게 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하고 마지못한 척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그들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어찌되었든 군기대신도 못 본 척했으니 연암이 운남이나 귀주 구경가는 꿈은 무산되었다.

 

행재잡록에는 사행과 관련된 문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행재란 천자가 여행하고 있는 곳이란 의미이며, 따라서 행재잡록은 열하에서의 이러저러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천하의 대세를 논한 심세편>, 태학의 수업재에 들어가 악기를 두루 구경하고 숙소에서 고금음악의 변천사에 대해 필담을 나눈 내용인 망양록>, 그리고 태학관에서 함께 기거하던 중국학자 중 곡정 왕민호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필담을 나눈 곡정필담은 지금까지 읽던 기행문과는 달리 어렵게 다가왔다. 고금을 넘나들며 학문과 문화와 정세를 논하는 글은 유학과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연암과 중국학자들 간의 대화는 필담으로 이루어졌다. 필담을 나누면서도 그들은 종종 자신이 쓴 글을 붓으로 지우고, 필담을 나눈 종이를 입으로 씹어 없애기도 하며, 종내는 불에 태워버린다. 아마 그만큼 사상통제가 심했다는 말일 게다. 연암은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을 청하여 마음 놓고 이야기를 터놓도록 유도하고, 겉으로는 잘 모르는 것처럼 가장해서 그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면, 그들의 눈썹 한 번 움직이는 데서도 참과 거짓을 볼 수 있을 것이요,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실정을 능히 탐지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종이와 먹을 떠나서 그들의 정보와 소식을 대략이나마 얻을 수 있었던 방법이다.’(294-295)라고 말한다. 그동안 청나라에 왔던 조선사신들이 그들을 오랑캐라 무시하고, 소중화라며 거들먹거릴 줄만 알았지 청의 정보를 얻을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을 연암은 비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산장잡기는 열하의 피서산장에서 보았던 것들에 대한 글이다. ‘야출고북구기는 북경에서 열하로 올 때 한밤중에 고북구 관문을 통해 장성을 빠져나올 때의 느낌을, ‘일야구도하기는 역시 열하로 오는 도중 한밤중에 한 가닥 강물을 이리저리 아홉 번이나 건넌 일을 기록하고 있다. 요동에서 낮에 강을 건널 때는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건넜다. 물살이 위험한 것을 보지 않으려 그러한 것이다. 그러니 물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러나 밤에 물을 건너니 위험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소리는 들리는지라 모두들 두려워서 부들부들 떤다. 나는 오늘에서야 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도다. 마음에 잡된 생각을 끊은 사람, 곧 마음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되지 않거니와, 귀와 눈을 믿는 사람일수록 보고 듣는 것을 더 상세하게 살피게 되어 그것이 결국 더욱 병폐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505)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근심과 불신의 원인이 바로 선입견임을 연암은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황제가 피서산장에서 연회를 하면서 벌이는 놀이에 대한 글, 만수절 전후로 베풀어지는 연회에서 공연되는 희곡 목록, 그리고 납취조와 코끼리를 보고 느낀 글 등이 실려 있다.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18세기 조선이 처한 상황과 사대부들의 폐쇄적인 사고에 생각이 미친다. 서반의 중을 만나는 장면에서 북벌과 소중화에 사로잡힌 조선 선비들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에 반해 연암의 자유분방한 사고는 분명 그들과 달랐다. 그러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권인 [열하일기 3]에서는 어떤 글들이 나에게 다가올지 기대된다.
k*****1 2019.02.26. 신고 공감 10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