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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뒤에
나는 해가 지는 모습이 너무 좋아. 우리 같이 보자. 그렇지만 해가 지기를 기다려야 해.
어른들도 해 지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기다리질 않는다. 해 지는 걸 좋아하면서도 해 지는 것은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려 주기만 하면 우리도 날마다 해 지는 풍경이 된다는 걸 어른들은 모른다.
어른들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진득하니 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면 서쪽 하늘이 멋진 풍경으로 물든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어느새 그걸 잊고 지낸다. 내가 날마다 일하는 터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합치는 곳이다. 두 강이 만나 널따랗게 흐르다 보니 바다처럼 넓다. 강 건너편에는 마을이 있고 산이 있으며 하늘이 높다. 해 지는 곳에서 날마다 일하면서도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풍경을 거의 보지 못한다. 컴퓨터에 코를 박고 일하다가 사람을 만나러 서울로 가거나 사무실에서 퇴근할 경우에도 하늘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일 줄 모른다. 또 다른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변명이다.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해 지는 걸 좋아하면서도 기다리지 못하는 것처럼 아이가 해지는 풍경이 된다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기다리지 못한다. 자신에게도 아이에게도 풍경을 돌려주지 못한다. 아이의 말이 비수처럼 따끔하다. 어른들은 크기와 깊이를 미리 정해 놓고 그에 맞춰 아이를 키우려고 한다. “고무줄도 너무 잡아당기면 / 끊어진다는 걸”(「상상의 그릇」) 잘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한다. 아이는 “치킨을 먹고 나서 공부하면 / 공부가 더 잘되는데” 어른들은 “공부 다 하고 나면 / 치킨을 시켜준다”(「순서」)고 한다. 사사건건 어른들은 아이와 어긋난다.
어른들이 끊임없이 부르는 노래는 공부다. “7박 8일 해외여행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가 보고 싶어 아빠랑 인천 공항까지 마중 나갔더니 / 너 공부 안 하고 왜 왔니?”(「엄마 마중」) 하고 말할 정도로 심각하다. 그렇더라도 아이는 꿈을 꾼다. “길 잃은 쇠기러기 / 길 찾아 주려고 / 히말라야를 넘어가고 // 오는 길엔 / 길 잃은 청둥오리들 / 이끌고 오는 / 철새 안내자”(「멋있는 직업」)가 되려고 하고, “오늘도 장대로 별을 털어 / 감자랑 구워 먹”(「별을 구워 먹었다」)는다. 그런 “우리나라 모든 어린 왕자들에게 오후 4시의 놀이터를 되돌려 주고 싶”(「시인의 말」)은 바람이 바로 이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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