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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창이 있다. 가로 1800의 서랍이 세 개 달린 책상 하나가 있고 읽으려는 책 두어 권이 놓여 있기도 하다. 의자는 두 개. 빛이 들어올 때 방은 웃는 표정을 잠시 짓는 것 같기도 하다. 어둠이 시작될 때 방은 구석의 빛을 껴안으려 안간힘을 쓴다. 문을 닫고 사라진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를 읽는다. 한때 와글와글 떠들며 이야기를 나눈 그들은 알 수 없는 장소로 떠나갔다. 남은 것은 그들이 한 생애를 위해 썼다는 기록 그리고 빈 방. 문을 열면 바닷가로 통하는 방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 방은 바다를 통해서 들어올 수 있다. 단 하나의 방을 가진다면 당신은 그 방을 선택할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바닷가 방'을 모티브로 쓴 소설 「바닷가 방」은 사라짐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다들 그렇게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 수 없는 생에서 그림과 소설은 만난다. 빛으로 환한 방 안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퍼는 에드워드 호퍼와의 인연을 말한다. 호퍼가 작업했던 스튜디오에서 나온 불빛을 회상한다. 그의 캔버스에 등장했던 벽돌과 지붕의 경사. 소설가는 기억을 붙들고 그림을 노려보며 문장을 쓴다. 대서양으로 사라진 아틀란티스의 후예들이 살아가고 죽는 비밀스러운 서사를 펼쳐 놓는다. 문장은 호퍼의 캔버스를 지나 책상에서 당신에게 한 권의 책으로 도착한다.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다가 유일한 입구인 방으로 들어온다. 건축가와 목수가 작업하지 않아도 매해 방이 하나씩 늘어나는 집이 있다. 그 현상에 대해 설명하자면 설명할 수 없음이 정확하다. 카먼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설명할 수 없어서 더 진실하고 강력한 것임을 이해'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의 증조할머니가 쓴 『바닷가 방』을 읽으며 집과 늘어나는 방에 대해 납득한다. 약한 뇌졸중으로 바다에서 어머니가 죽고 카먼은 세네갈 출신의 요리사 파비우스와 방이 늘어나는 집에서 지내는 것이 힘들다. 시내에 아파트를 얻어 그림 작업을 한다. 파비우스는 말하자면 입주 예술가로 어머니 칼레타와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었다. 여러 국적의 언어를 하지만 자신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는 사람. 요리를 하되 식탁에 앉지 않고 사생활을 보장해 달라는 것으로만 요구 사항을 말한 사람이다. 카먼이 그의 뒤를 몰래 따라가 방으로 가려 했지만 집이 움직여 차가운 돌벽으로 둘러싸인 방에 갇혔다. "번역가가 삭제했던 대목이 뭐죠?" "어떤 바스크인들은 두 번 죽는다는 것." (니컬러스 크리스토퍼, 「바닷가 방」中에서, 『빛 혹은 그림자』 수록) 한 번 죽지 않고 두 번 죽는다.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가 물속에서 일 년을 다시 살아간다. 그 후에 비로소 죽음은 완성된다. 파비우스는 자신의 방을 남겨 놓고 떠난다. 카먼은 그 방을 보고서야 집을 떠난다. 집은 매해 방이 늘어날 것이고 바다로 면해 있는 방에서는 죽음과 탄생이 동시에 일어나리라. 기록은 사라지지 않은 채 해독되기를 기다린다. 우리 모두는 삭제된 고대 언어의 전설로 살아간다. 우리가 물속으로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우리를 읽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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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7월 22일, 뉴욕주 어퍼나이액에서 태어나 1967년 5월15일 뉴욕시티 워싱턴스퀘어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사망했습니다.미국인의 삶과 고독, 상실감을 탁월하게 그려내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기쁨을 얻는 사람이건, 이야기를 들려주며 기쁨을 얻는 사람이건, 우리는 어느 순간 에드워드 호퍼의 팬이 되고 만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호퍼는 캔버스 위에 펼쳐진 시간 속의 한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거기에는 분명히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지만,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 자신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아름다은 그림을 감상하면서 17편의 소설을 읽어 내려가게 됩니다.
예술가 남편을 미행한 아내의 일탈 혹은 새로운 삶의 시작하는<누드 쇼>, 신을 믿지 않지만 종교인으로 살아온 목사의 이야기<직업인의 자세>, 자신의 아파트 창문으로 건너편 아파트의 여성 입주자들을 관찰하는 남자의 소설 <밤의 창문> 다음날 자살을 예고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여자 <햇빛 속의 여인>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17편의 단편은 그 자체만으로도 “절대적으로 뛰어나며 최상급”이다. 호퍼의 그림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 속 어느 한 장면을 마치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낯선 모습으로 그려낸 것처럼, 이 책에 실린 단편들도 때로는 익숙하게 때로는 낯설게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호퍼 그림이 그려진 20세기 초중반의 사회상, 특히 여성의 삶이나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표지의 그림 <케이프코드의 아침>도 있습니다.
p.157 (11월10일의 사건 중에서) 그는 우리 조국에서 부흥하고 있는 예술에 대해 설명하면서 혁명의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분투하는 소비에트의 예술가들을 치하했습니다. 그는 가족들에게 레닌 동지 이후 우리 문화의 특징으로 자리잡은 사회주의리얼리즘 운동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우리 조국의 가치관을 떠받치는 4대 기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당성, 이념성, 계급성과 진정성을 훌륭하게 실현하고 포용하는 작품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논의했습니다.
p.413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 중에서) 당연히 5센트를 더 쓰는 편이 나았다. 엘프리드의 경멸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그녀가 무얼 먹는지 그게 얼마인지 그는 알지 못할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희망이고 한편으로는 두려움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죽음과 함께 끝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 고매한 이성, 날카로운 지성, 풍자적인 유머는 그 나머지가 전부 땅속으로 들어가고 난 이후에도 어떤 존재의 차원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것 같았다.
<빛 혹은 그림자> 책 제목이 매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호퍼가 형체와 색, 특히 빛과 어둠을 그리는 데 전념했기에, 소설가들은 그의 그림에서 빛과 그림자를 지닌 삶을, 그리고 강렬한 이야기를 거부할 수 없이 읽어내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가을과 참 어울리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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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혹은 그림자..이 책을 읽기 전 우연히 마크 스크랜드의 빈방의 빛을 읽었고 그 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푹 빠지게 되었다. 몇몇의 출판사에서 그에 대한 책이 있었으나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가 어려웠다. 빛 혹은 그림자는 그의 그림에 관한 소설이다. 단편을 읽으면서 호퍼의 그림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책을 만난건 행운이다. 아껴읽고 싶은 그런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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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기획과 매력적인 단편들, 그리고 호퍼! 작품성 뭐 그런걸 알아보는 눈 따위 없는 무지랭이 이지만, 호퍼의 그림 한장 한장과, 각 그림에서 창조된 세계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 그리고 다른 그림들을 보고 이야기를 풀어내보고 싶은 욕심마저 들게 하는 단편들. (하지만 나는 창조력 따위 제로이기 때문에 택도 없는 욕심) 호퍼의 도록을 사서, 어린 시절 처럼 이야기 만들기 놀이를 하면 그또한 즐겁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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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해요 요즘엔 광고에도 나와서 많이 유명해졌지만 그 전부터 좋아하던 그림을... 저만의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공유하려니 질투가 나기도 했어요 사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표지 때문이었지만 실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다시 보고 싶기도 했었고 문인들은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소설을 썼을까 궁금하기도 했었고 참 여러 가지 이유로 샀네요 아직 보고 있지만... 느낌은 아주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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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처럼 어떤 시절을 함께하는 화가들이 있다. 샤갈이 뭉크가 클림트와 에곤 쉴레가 그러했고 그들의 그림이 카페에 액자로 걸리고 책의 표지를 장식하곤했다. 그리고 근래에는 에드워드 호퍼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듯 보인다.
책을 펼쳐 제일 먼저 읽은 소설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인 <바닷가 방>이었다. 저런 방에 한번 쯤은 들어가보고 싶은 기묘하고 쓸쓸한 느낌의 그림인데 소설도 꽤 흥미롭고 재미났다. 스티븐 킹의 <음악의 방>은 과연 스티븐 킹 다운 짧지만 한방이 느껴지는 이야기였고 조이스 캐롤 오츠의 <창가의 여자> 조너선 샌틀로퍼의 <밤의 창문>도 흥미로웠다.
호퍼의 그림들을 감상하며 여러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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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단편집. 에드워드 호퍼라는 화가의 작품을 각각 보고 쓴 17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 기획 단편집이다. 스쳐 보기만 해도 '아 이 사람' 하는 생각이 드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각 소설의 앞에는 해당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담고 있는데, 로런스 블록이 이 단편집을 기획한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스토리에서 잘라낸 한 장면' 같은 그림들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인지, 각 소설의 분위기는 상당히 정적이고 차분하다. 강렬한 반전이나 감정적 동요는 적다. 그래서 일견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 또 이런 글이 나올 수밖에 없구나 하고 납득이 된다. 나는 단편집을 꽤 좋아하는데, 틈틈이 읽기에 부담이 없는데다가 잘 쓴 단편은 때로 장편보다 여운이 길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읽은 글도 있고 그럭저럭 읽은 글도 있지만, 틈틈이 읽기 좋은 단편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어떤 식으로 소설에서 변주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묘미다. 그림을 보고, 단편을 다 읽고, 다시 그림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하나의 그림에서 소설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점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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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좋아한다. 호텔방, 자동판매기 식당, 뉴욕영화, 바닷가의 방은 특히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그의 그림속에는 거의 여자가 나온다. 마치 나처럼... 뭔가 사연이 있음직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그림안의 스토리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위대한 작가는 관객에게 항상 생각을 요구한다. 작가는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의 의도를 알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을 하면 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좋다. 내 모습이 투영된것 같아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각계각층의 작가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내가 생각한 스토리와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다. 다른 사람은 이 그림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감상이고 문학감상이로군
나도 호퍼처럼 이런 그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접었다. 나의 실력과 나의 생각이 이 위대한 작가의 반에 반에 반도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을 이제는 받아들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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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받고 벗잖아요,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 플레이보이지나 스포츠일러스트레이트에 나오는 여자모델들은 여성인권에대해 문제삼을 만큼 사회적 약자는 아니다. 보통 화가들의 그림들을 보면 가끔 전에 문제가 되었던 벗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관점과 .. 덩달아 보통의 거리를 보통의 시간대를 걸어가도 ... 아무런 관심도 없지만 혹은 관심받아 문제 좀 내볼까 하는 그런 여성 따위는 아니다. (그런 남성 따위도 아니겠지.)
나는 인생을 산만하게 살아왔고 공부도 잘 못하고 그럭저럭 평범한 삶 혹은 그 이하를 살았다고 생각되지만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때는 좀 천재적이었다. 누드쇼를 읽으며 생각났는데 <빛은 어디에도>라는 교도소 소장이 쓴 에세이를 ...그 책을 당시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아버지가 가진 책이었는데 정말 참 재미가 있었다. 책에는 일본의 사형수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떤 사형수는 사형집행 전까지 자신의 여자친구나 와이프의 음모를 받아서 <마메조오리>라는 작은 인형을 만든다고 했다. 참 기이한 이야기였다. 곧 죽을 날짜를 받은 사형수가 자신의 여친의 음모로 여자인형을 만들다니 .....
모두에게 벌거벗겨진 삶이란 ....이판사판 볼거없다. 나죽고 너죽자는 심리라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 ... 얼마전 대낮 대로변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칼로 찌르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는데 그 당시도 그 범죄자들이 모두에게서 벌거벗겨진 <네이키드> 같다고 생각했다. 눈먼 새도 종자를 이어간다는데 ... 일본의 사형수들은 그렇게 종자를 이어가나 ....
사실 ... 유명 모델들은 그냥 시장바닥에 서 있어도 돈이 굴러들어오는 우월한 유전자이다. 이런 벌거벗겨진 순간적 찰라에도 어떤 삶은 그 노출된 찰라에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어떤 삶은 자신이 부끄러워 무차별적 흉기를 들이댄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우린 똑같다고...
사실... 똑같지 않다. 우리는 이 차이를 알아야 한다. ... 모자란 내가 생각해도 그건 단순이 우월한 유전자 때문도 아니고 ...차별도 아니고 뭐 기회받지 못한 것도 아니다.. 사실 누드산업도 산업인데 .... 벗으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게 코메디다. 여성모델의 몸값은 높으며 사진 스튜디오 운영비도 만만치 않고 사진사도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헤어아티스트도 조명설비도 진행하는 디럭터도 .... 사실 다 돈이고 산업의 논리로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양의 시스템은 그 차이가 더 벌어진다.
(지나가는데 어떤 놈팽이가 나를 기분나쁘게 쳐다본 거 같다라는 뉘앙스로 변두리여자들은 그 산업의 꽃이라고 스스로 드래그 인하지만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프로야구선수가 될 수 없듯이 그런 여자모델이 변두리 거리를 무방비로 지나갈 일도 없는 것이다.)
착각하지 말자... 나는 프로선수처럼 운동도 하지 않으니까 .... 그래서 나는 아무 이유없이 어떤 관심을 받으려는 어떤 존재들을 사실 잘 이해 못한다. 산업을 산업으로 봐야지 자신의 허영으로 맞추어 질 수는 없는거다. 바지저고리 같은 사람들도 있고 못 난 사람들도 있지만 잘 난 사람도 있으니까 조명 받는 거다. 그리고 이러한 그림을 보면 삶의 태도나 습관의 중요성이랄지 내가 살아온 생활습관을 되돌아보게 한다. 좋은 그림이라서 그런 거 같다. 내 생활을 되돌아 보고 반성하면서 느끼게된다.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밝은 조명아래의 카페에서 어떤 사람들은 빛을 가려주는 모자가 중요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앉은 것처럼 서있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떤 짧은 치마를 입은 여름날의 여성을 보고 긴바지에 흰셔츠를 입은 남성을 보며 호텔로비나 집 거실에서도 유사한 스타일의 사람들을 본다. 우리는 가깝지 않은 관찰자이지만 그들의 의상이나 태도의 뉘앙스로 성별을 알고 있고 주변의 습관이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누구는 시장바닥에서 벗고 서있기만 해도 돈이 굴러들어오지만 누구는 긴바지 말쑥한 정장이어야 한다. 정말 벗고 버는 사람은 1억명 중에 몇 명 안된다. 그리고 통계적으로 벗은 것이나 바지저고리나 다 같다고 할 때 잘 갖춰입는 것은 돈 버는 일이다. 이 책은 그림의 구도나 모델들의 포즈 만으로 많은 사유가 가능하고 전자책으로 보관하기 좋다. 책은 오래되면 버리지만 전자책은 그림의 색도 변하지 않는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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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좋다. 로런스 블록이 호퍼의 그림을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뭔가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등장인물들. 그러한 등장인물들의 뒷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이 모두 한 편씩 글을 내주었다는 것도 멋진 일이다. 제일 재미있었던 글은 로런스 블록의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 이었고, 매건 애벗의 "누드 쇼"도 책의 첫 작품으로 충격적!이자 흥미로웠다. 각각의 작품이 모두 독립적이라 전체적으로 뭔가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시간 날 때 마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한 편씩 읽는 재미가 있었다. 호퍼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장용으로도 매우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북으로 읽었지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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