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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죽은 사월-이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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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월-이선욱잠이 든다벚꽃이 핀다한밤의 천변은 화사하리누군가 그곳을걷고 있다면꿈꾸고 있으리라내가 베개에 엎드린 채로직시하고 있는 것들을하얗게 만개한꽃나무 숲속에서흩날리는,흩날리는청춘은 낮이 되고그녀는 찬란해지고숙명은 기쁘게 화답하는때로 인생에는그처럼 신비로운일들이 있었지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오직 꿈꾸는 자만이그 향기를맡을 수 있다니 오,그곳으로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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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월

-이선욱


잠이 든다

벚꽃이 핀다

한밤의 천변은 화사하리

누군가 그곳을

걷고 있다면

꿈꾸고 있으리라

내가 베개에 엎드린 채로

직시하고 있는 것들을


하얗게 만개한

꽃나무 숲속에서

흩날리는,

흩날리는

청춘은 낮이 되고

그녀는 찬란해지고

숙명은 기쁘게 화답하는


때로 인생에는

그처럼 신비로운

일들이 있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오직 꿈꾸는 자만이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니 오,

그곳으로 깊숙이

고개를 묻을 때마다

알 수 있었네


그럴수록

가까워지든

점점 더 멀어지든

선명하기만 했지

한 철의 은송이,

은송이들

이 종이 냄새 같은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을 그대로 맞아주자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 시간이 돌아온다면 잘못을 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다짐하는 바람개비의 하루를 그림자를 바라본다


어두운 책상에 앉아 연필을 움직이는 일로 내일을


다시 사월의 시간을 

견딘다




s*****m 2019.02.21. 신고 공감 9 댓글 7
리뷰 총점 종이책
탁, 탁,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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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이선욱한 부인이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며글자로 그린소식을 읽고 있네변하지 않는 표정 속에비스듬히 앉은 채로낡은 의자처럼삐걱거리며우편함을 매일 쳐다봅니다. 집을 나설 때와 들어올 때. 텅 빈 우편함을 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합니다. 소식 올 곳은 없습니다. 가끔 세금 고지서가 꽂혀 있곤 하지요. 신청한 적도 없는 홍보 책자가 오기도 합니다. 그 자리에서 뜯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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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

-이선욱


한 부인이

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며

글자로 그린

소식을 읽고 있네


변하지 않는 표정 속에

비스듬히 앉은 채로

낡은 의자처럼

삐걱거리며


우편함을 매일 쳐다봅니다. 집을 나설 때와 들어올 때. 텅 빈 우편함을 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합니다. 소식 올 곳은 없습니다. 가끔 세금 고지서가 꽂혀 있곤 하지요. 신청한 적도 없는 홍보 책자가 오기도 합니다. 그 자리에서 뜯어 보고는 바로 분리수거함에 버립니다.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돌아올 답장을 기다린 적이 언제인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우체부의 오토바이를 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 텔레비전의 소리를 죽여 놓던 때가 있습니다. 노랗고 파란 빛깔의 봉투를 받을 때도 있었고 일반 봉투에 쓰인 편지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이곳의 안부와 소식을 묻는 다정하고 따뜻한 말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때로 시는 수신인이 불분명한 우편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인이 부쳐오는 안부의 말들을 읽으며 나는 낡은 의자가 되어 갑니다.


탁, 탁, 탁

-이선욱


그러니까,


가문 벌판이었지


저녁이면 한 무리 염소들은

그늘로 떠났고

목동의 손만 홀로 남아

벌판 한가운데 놓인 탁자에서 타자를 쳤네

타자를 쳤네

캄캄한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솔가지 타는 소리가 허공에 퍼졌고

타자기에선 부서진 사막이

조금씩 흘러내렸다네

다 닳은 잉크처럼

어둠에 날리는 글씨들과 함께

이따금씩 타점이 강하게 울렸으나

휘어지는 바람을 따라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가

달라지기도 했네

목동의 손은 가벼웠지

몸은 없고 손만 남았으므로

말없이 서술하는 시간은

활자판의 중심처럼 칸칸씩 이동할 뿐

꿈꾸듯 망설이는 타법은 아니었네

다만 슬픈 꿈의 오타만이

하얀 털뭉치처럼

바닥에 뒹굴고 있었으니

궁극의 어떤 형상 같았으나

궁극에는 자라지 못할 운명이었다네

자판은 타법에 빠르게 반응하고 있었지

아니면 무언의 잦은 행갈이였을까

어딘가 어둠은 글썽거렸고

그것은 타이핑한 글씨체였다네

때로는 벌판에 도는 메아리처럼

같은 문구를 연달아 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땅금 갈라지듯

목동의 손뼈가

더없이 두드러지곤 했네

사방으로 길이 없는

벌판의 한가운데였지

끊이지 않는 서술의 소리를 따라

손끝에는 굳은살이 피어났고

그렇게 타자를 치던 어느 날이었다네

어둠에 날리는 글씨들은

점점 더 흐려졌고

타자기에선 부서진 낙타의 뼈가

흘러내리고 있었네

연달아 같은 문구들을 치고 있을 때였지

모가 닳은 자판 하나를 

누르는 순간

무형의 뒤늦은 타점이 울렸네

무언가 손등에 떨어졌지

빗방울이었네


가문 벌판에서 목동은 타자를 칩니다. 탁, 탁, 탁. 홀로 남은 목동의 손은 자판 위를 떠다닙니다. 별이 쏟아지고 부서진 사막의 시간에서 글자들은 흘러내립니다. 말은 사라지고 언어는 종이 위에 쓰입니다. 그가 서술하는 문장들, 단 한 문장만이라도 훔치고 싶습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벌판이기에 길은 없습니다. 굳은살이 손가락에 베이고 글자들이 날아가 춤을 추면서 오타와 비문으로 글은 자리를 잡습니다. 같은 말을 쓰고 소리 내어 할 수 없는 말들까지 쓰자 목동의 손등에는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목동의 타자 치는 소리는 곧 빗소리로 전환됩니다. 이 시인의 상상력, 놀랍습니다. '타이프로 친 시도 있고, 시로 친 타이프도 있다'라는 시인의 말로써 추측해 보건대 이 시집은 타자 치는 소리로 타자를 유혹해 내는 진기한 재주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매혹을 느껴보세요. 탁, 탁, 탁.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는 그 소리를 상상해보세요. 


s*****m 2018.02.06.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방벽 안에서 방벽 너머의 푸른 사막을 짐작하며, 지레짐작의 시름으로... 탁, 탁, 탁
"방벽 안에서 방벽 너머의 푸른 사막을 짐작하며, 지레짐작의 시름으로... 탁, 탁, 탁" 내용보기
마음먹었던 것들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는 삶은 외로울까. 그래서 우리들 ‘개인의 역사’는 결국 외롭디 외롭게만 기록되는 것일까. 타인의 시선을 주목으로 느끼지 못하고 결국 주목 또한 결핍의 일원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일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라는 괴테의 말을 되뇌는 동안 언제나 그 날숨이 거뭇해지는
"방벽 안에서 방벽 너머의 푸른 사막을 짐작하며, 지레짐작의 시름으로... 탁, 탁, 탁" 내용보기

  마음먹었던 것들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는 삶은 외로울까. 그래서 우리들 ‘개인의 역사’는 결국 외롭디 외롭게만 기록되는 것일까. 타인의 시선을 주목으로 느끼지 못하고 결국 주목 또한 결핍의 일원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일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라는 괴테의 말을 되뇌는 동안 언제나 그 날숨이 거뭇해지는 것은 이 때문일까.


  “오, 외로운 개인의 역사는 / 철저한 풍경으로만 기록되고 / 그 속의 낯선 얼굴은 // 빛과 바람과 윤곽으로 남았지 // 그러나 저기 / 생생하게 펼쳐진 들판은, /그리고 저 물결의 힘은 위대하여 / 오늘은 조금 더 창백해지리라 / 또 그렇게 숨을 참는다네” - <전원기도> 중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일기장을 몰래 뒤적이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바로 그곳에 적힌 내가 어쩌면 가장 정확한 나일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나는 없고 내가 있을 가망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 철저히 봉쇄된 구역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손끝을 오르내리는 긴 사다리, 오래된 방벽은 한 번도 튼튼한 적이 없지만, 방벽 너머 푸른 사막은 방멱 안의 덥게 흔들리는 허상으로 존재한다.
   

   예술


  정오의 한편에는
  싱그러운 자두가 있고
  자두의 빨간 그림자가 있고
  굴러가지 않는 자두의
  빨간 환상이 있네


  나머지는
  아름다운 구도와
  노란빛의 세계
  때로 우리는 그것을 위해
  존재하고 함께 시들어가는
  예술들


  방벽 너머를 향한 자문은 때때로 자아도취의 척후병과 같다. 예술은 때때로 그 척후병의 입을 통하여 전해진 뜬소문인지 모른다. 예술은 이 세계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생채기이자 흉한 생채기를 뒤덮는 삶에 저항하는 항생의 열기이다. 예술은 피어 본 적이 없어 시드는 방법을 잊은 조화로운 방벽 안의 질서 속에서, 아무도 불러본 적 없는 푸른 사막의 선율을 상상하는 자의 읊조림 같은 것이다.


  “어떤 시름이 / 사랑을 읽고 갔나 // 어디선가 일제히 울기 시작하는 / 한 무리의 매미처럼 / 너는 뒤 없이 / 생각하고 있었네” - <결혼 - 젊은 시절> 중


  반응을 예상하는 자는 꿈꾸지 못한다는 읊조림을 듣는다. 읊조림은 곧 신음이 되고 신음은 곧이어 시름이 된다, 되고 만다. 해석에 낙인찍히지 않기 위하여 발버둥 친다. 시름은 곧 고함이 되고 고함은 곧이어 소리를 잃는다, 잃고 만다. 딱 한 번, 무리를 이룬 적이 있다. 방벽 안에서 외롭게 방패를 들었다. 가두거나 보호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당하였다. 나는 무리를 보호하기로 작정하였으나, 정작 나 자신은 보호받지 못하였다.


   박수


  박수를 칠 때마다
  순탄하게 살았던 전생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삶이 문득 겹치고
  사랑이 옛사랑과 자리를 바꾸고


  한 박자 통증 같은
  그런 타이밍과는 무관하게 
  소리가 뒤늦게 손을 찾아오거나
  반으로 갈라진 외계를 발견할 때


  바람은 죽고
  바람은 굳은
  굴곡만 남아 있었지


  텍스트에 대한 믿음이 온전치 못한 즈음이다. 눈이 자꾸 어긋난다. 나는 오드 아이를 원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서로 다른 초점을 가진 두 개의 눈이 될 수 있겠다, 싶으니 헛웃음이 나온다. 초점이 맞지 않는 두 개의 눈으로 상상하게 될 세상을 짐작한다. 그리고 짐작은 내 기억을 넘어설 것이다. 윤곽으로만 남은 방벽 안의 폐허라는 기억을 하나의 눈으로, 방벽 너머 푸른 사막의 진실에 대한 짐작을 또 하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중이다.

 

 

이선욱 / 탁, 탁, 탁 / 문학동네 / 159쪽 / 2015 (2015)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6.02.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