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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 ]
어떤 나라에 '눈사람 택배'라는 게 있다 하네요 눈이 내리지 않는 남쪽 지방으로 북쪽 지방 눈사람을 특수포장해 보낸다 해요
선물도 그쯤 되면 신비 아닌지요 받을 때 눈부시지만 녹아 스스로 자랑을 지우고 애초에 부담마저 덜어줄 걸 헤아렸겠지요
다시 돌아간다면 그리 살고 싶네요 언젠가 녹을 것을 짐작하면서도 왜 손가락을 걸었던지요
그때 그 반지, 눈사람 속에 넣겠어요
동그라미 두 개가 허공을 품었다 놓아준 것처럼 지우는 법을 가르쳐준 눈사람
그런 선물이라면
그런 아득함이라면
[ 수레국화 ]
오늘 이곳엔 한 사람만 빼고 다 왔습니다
마당엔 옛 주인이 피운 꽃들 한창이네요 파란 수레국화를 보셨나요 그는 이제 올 수 없는 사람인지 파란색, 문득 빈자리의 빛깔 같습니다
기억은 참 자주 밟히곤 합니다 멀리 있는 음식을 집을 때 누군가 접시를 가까이 옮겨주었는데 잠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빛깔을 없는 곳에서 보았습니다
오늘 이곳엔 한 사람만 있습니다
눈에 밟힌다는 말, 밟는 사람이 더 아픈 이런 장면도 있네요 잡담이나 웃음소리들이 겉도는 저 아래쪽은 축축한 그늘 파란 수레, 그 바퀴에 이미 추운 생이 감겨버린 듯 감겨서 굴러간 듯
오늘 이곳엔 나만 빼고 다 있습니다
[ 들어내다 ]
인테리어 기본 요건은 자리를 바꾸고 요소를 덧대는 게 아니라 들어내는 것이라고, 더 좋은 관계를 바란다면 관계에서 나와야 할까 그렇다고 고라니처럼 고속고로에 뛰어들어선 안 된다
분갈이 하는 아저씨는 흙을 더 채우는 게 아니라 뿌리에 있던 흙을 털어내고 있었다 숨쉬게 한다고 했다
언니가 없으면 독방을 차지할 거라 기대했지만 나 먼저 들어낼 줄은 나도 몰랐듯이
들어내도 나가지 않는 게 있고 다 알면서 들어낼 수 없는 것도 있다
고라니가 잘못 뛰어든 곳은 고라니가 들어낸 길이었을까 들어내지 못한 길이었을까
[ 예의 ]
그날따라 정신없이 웃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래도 되는지 옆을 돌아보았어요
예의가 아니었나요 예의는 지나치면 안 되는 것이라 하고 너무 가두어도 어긋나는 것이라 하니
예의는 예의를 말할 수 없는 거겠어요
아무도 웃지 않을 때 웃는 건 그야말로 예의가 아니겠죠 하필 그날, 왜 옆에 있던 대형 유리가 깨졌던 걸까요
미안해요 너무 크게 웃어서
슬픈 다른 사람 생각을 못해서
파편들은 극명하게 아픔을 말해주었어요 웃음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듯
아마 그날, 우리는 웃지 않아야 할 때 크게 웃었던 거지요 웃다가 끝내 울었던 거지요
[ 변두리 ]
신호등은 이제 점멸신호로 바뀌었다 그냥 알아서 해도 좋다는 시간인 것이다 종일 꽉 쥐고 있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이제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해봐 하고 싶은 거.....
신호등 두 눈은 가라는 건지 마라는 건지 애매하게 말하던 사람 같은데 누가 뭐라든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제 생을 점멸하는 거 아닌가
길가 쑥부쟁이들도 깜, 빡, 불빛에 불려나왔다 들어가고
저 시간이 더 길었다면 우리가 그걸 할 수 있었을까?
변두리의 밤은 아득하고 쓸쓸하기만 한데
[ 아직도 숨바꼭질하는 꿈을 꾼다 ]
이대로 깜빡 해가 질 텐데 누가 나 좀 생각해주면 안 되겠니
너무 꼭꼭 숨어버려 너희는 나를 잊은 채 새로 놀이를 시작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갈 수 없잖아 벗겨놓은 바나나가 시꺼멓게 변할 텐데
적당히 들켜줄걸 그랬어 들켜주고 즐거울 걸 그랬어
그렇기도 해 너무 꼭꼭 숨는 건 숨바꼭질이 아니지
놀이는 또 다음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선생님은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나를 호명하지 않았고... 내 차례는 더이상 오지 않았어요
어서 가서 감자 넣은 감치조림을 먹고 싶어 붉은 매운 양념을 먹고 싶어
포도나무가 어두워지기 전에.
... 소/라/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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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시집이 출간되고 있다. 밥과 옷이 나올 것 같지 않는데 시인들은 언제나 시를 쓰고 독자들은 때때로 시를 찾아서 읽는다. 계절로 말하자면 여름보다는 가을, 겨울이 시집 읽기 좋은 시절이 아닐까 생각해보다가 그렇다면 시란 축제의 물결이기보다는 내면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위로주 같다는 생각에 멎는다. 짙은 보라색 표지가 가을에 잘 어울리는 시집 한 권을 소개해본다. 맨 앞에 적어놓은 ‘시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 짧은 글귀 안에 시를 세상에 내놓는 시인의 세심한 마음이 들어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여러 번 읽었다. 시인의 말 어떤 그림 속의 도마뱀은 그림에서 나와 다시 그림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 시가 시에서 나와 시로 돌아갈 수 있을까마는 그렇게 된다면 나온 곳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에셔의 <도마뱀>은 그림 속에서 존재하던 도마뱀이 그림을 보는 이의 상상을 통해 현실을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상은 우리가 가진 생각의 능력을 마음껏 발현시킬 수 있는 즐거운 힘이다.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의 문제도 풀 수 있는데, 시 역시 그런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시는 우리 마음속의 상상을 통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멋진 장치인 것이다. 시인은 에셔의 도마뱀이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좀 불만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이 쓴 시는 그 시를 쓴 시인과 읽는 독자 모두가 처음의 현실을 딛고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거라 생각했다. 시인은 일반인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어떤 것들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그 작은 것의 의미가 무언지 기어코 알아차리려 애쓴다. 마치 현미경을 들이대고 개미와 같은 작은 생물에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갖고 있는 개별성과 사회성을 증명해보여 그들의 존재를 귀하게 바라보라고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닌지. 특별한 일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스스로 꼬리를 잘라 목숨을 건지는 도마뱀을 보며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과, 정작 그 사람들이 잡고 싶어 했던 것은 꼬리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속셈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자신 몸의 일부인 꼬리를 자를 수 있는 도마뱀의 용기야말로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 사즉생’ 정신처럼 최선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으면 결코 알아채지 못할 일이었기에 ‘특별한 일’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을까. 시집에 나와 있는 50여 편의 시들은 쉽게 읽히면서도 다 읽고 나면 한 번 더 읽게 하는 여운의 힘이 있다. 남들이 잘 보지 못한, 혹은 보지 않으려고 했던 뒷면을 대신 들여다보고 우리에게 말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쉽게 스쳐 지나가버린 순간들을 밝은 눈으로 포착해서 무심한 듯, 다정히 들려주고 있다. 풍경 다섯 시간을 달려와 20분 동안 감상하라니 이 풍경들을 다 어쩌냐 어쩌냐, 연신 셔터를 누르지만 풍경을 어떻게 가져간단 말인가 누가 아무리 우겨도 같은 풍경은 없고 이미 풍경은 너무 많으니 우리 풍경으로 남지 않기를 또 옮기나보다 내가 머물지 않는데 나에게 무엇이 머물겠는지 다섯 시간을 건너와 20분을 만나거나, 전생을 건너와 파란을 맞는대도 우리가 만나는 건 순간일 뿐 오래지 않아서 가져갈 수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스쳐가고 오는 동안 처음이고 나중인 풍경 너, 아니었는지 삶은 때론 우물처럼 서늘한 깊이로 심각하게 다가오고, 혹은 좌불안석의 불안과 함께 다가온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묵직한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될 수 있으면 가볍게, 아무 일도 아닌 듯 보려고 한다. 원래 우리가 빈 몸으로 왔으니 애착할 것이 크게 뭐가 있겠는가 하는 달관의 자세다. 청송 사과 전화로 주문을 했더니 그 남자는 먹기엔 그냥 괜찮다며 흠 있는 사과를 보내주었다 흠, 흠, 내 흠을 어떻게 알고서 어제오늘 이미 여러 차례 떨어진 내 하관은 바닥이니 거리에 떠다니는 삼엄한 얼굴은 또 무슨 생각들을 놓친 낙과냐 비나 번개를 안아 저 흠들은 자신의 몸으로 모서리를 삼킨 거지 말도 못하고 심중에 울음을 넣은 거지 그렇게 견딘 시간은 울퉁불퉁 붙고 아물어 과도의 끝이 닿자 이제야 길었던 통점이 떠나가고 뭐, 큰일이나 날 것 같았던 당신의 법도 잘려나가고 자른 채로 잘려나간 채로 그냥 묻어 살기에 괜찮으니 도리어 면면하니 흠 있는 존재, 단물까지 나는 이 서사의 사랑스러움을 견딜 수 없으니 오십여 편의 시를 시시때때로 찾아 읽었다. 시도 책과 마찬가지로 쓴 사람은 시인이지만 찾아 읽는 사람이 그 시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 것도 나를 위로해주지 못할 순간에 어떤 시들은 딱 한 구절로 내 마음을 고스란히 안아줄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시는 계속 생산되어야하고, 나는 자주 시를 읽을 것이다. 시를 읽을 때면 늘 안도현 시인이 한 말이 먼저 생각난다. “시를 읽어도 세월은 가고, 시를 읽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시를 읽지 않아도 세월은 똑같이 가겠지만 시를 읽으며 보낸 세월은 어쩌면 삶의 이면을 깊숙이 들여다본 시간은 아니었을까. 무거움을 가볍게, 나만 바라보기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보는 그런 삶을 살게 했던 건 아닐까. 그런 거라면 앞으로도 계속 밥을 먹은 뒤 차를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된 것처럼, 잠자기 전에 시 한편 읽고 생각에 잠겨 잠들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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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집은 제목에 이끌려 구입을 했습니다. 작가분의 경험담이 담긴듯한 생생한 목소리와 서정적인 슬픔을 느껴 저도 따라 일상속 사물을 보며 글을 깨작깨작 작성해보곤 하였습니다. 최선은 무엇일까요 그 한계가 있는가. 모든 이에게 위 책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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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시인의 최선을 그런 것이에요에 대한 리뷰입니다. 최선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기에 이 시집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인은 내내 담담하고 담백하게 서술하지만, 그 담담함은 사소한 풍경을 대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여러 필사시집을 읽어 왔는데, 시집으로만 된 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꽃 피는 날에 전화를....이 구절을 좋아하다보니 이규리 작가님의 시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잔잔하고 애틋한 감정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우울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고 싶을 때, 이 시집을 다시 찾아보며 감상할 것 같습니다. 좋은 시집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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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결국 시 아닌 것을 제외한 나머지의 총합이다. 소리로 가득하였던 제외되었던 시간이 지나면 그제야 온전한 시간들이 나타난다. 홀연히 나타나는 잃어버린 제국처럼 안개를 뚫고 솟아오른다. 나는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본다. 나를 향한 고백은 바람처럼 자연스러워 눈치 채지 못한다. 나의 중심을 두고 굳이 가장자리에서 자라고 있던 것은 꼬리, 를 뚝 떼어 뚝 바치고 싶어진다.
이규리 /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 문학동네 / 116쪽 / 2014 (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