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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계단, 임경섭 시인 첫 시집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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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배우고 쓰는 내내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시를 본 적이 없다. 읽을 때는 오독을 밥 먹듯 했고 쓸 때는 흥에 취해 멋대로 갈겼다. 확실히 내 시는, 읽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시가 아니었다. 그래도 난 시가 좋았고 여전히 읽고 쓴다. 흐릿한 안개 속에 감춰진 실체를 파악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또한 그 안개 안에 뭐가 있는지 상상하는 일만큼 재미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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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배우고 쓰는 내내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시를 본 적이 없다. 읽을 때는 오독을 밥 먹듯 했고 쓸 때는 흥에 취해 멋대로 갈겼다. 확실히 내 시는, 읽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시가 아니었다. 그래도 난 시가 좋았고 여전히 읽고 쓴다. 흐릿한 안개 속에 감춰진 실체를 파악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또한 그 안개 안에 뭐가 있는지 상상하는 일만큼 재미난 일이 있을까. 그 공포와 흥분 속에서 눈뜬장님처럼 더듬거리는 즐거움이 내가 시를 읽는 이유다.


  『죄책감』을 읽는 내내 한 글자, 한 행, 한 연을 더듬었다. 눈알과 손가락, 혀끝으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만지고 맛보며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내 길을 찾았다. 시인의 의도를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길을 걸어봤다'고 시원스레 말한 경우가 별로 없다. 대신 수많은 '내 길'이 생겼다. 그 길 안에는 기억하고 싶은 시구와 읽으며 느꼈던 슬픔과, 또 찾아오라는 표지판이 있다.


  임경섭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첫 시집을 묶고 나서야 모든 말은 오해로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13년 동안 당신을 오역했다. 이것이 내 죄책감의 근원이다./ 무한의 방향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엄마들이 있다. 꿈이다. 꿈만큼 정직한 해석이 있을까?/ 지금은 생시이므로, 내 기록이 철저히 오해되길 바란다.” 오해되길 바란다니, 이렇게 친절할 수가. 시인의 말을 보고 내딛는 발걸음에 용기가 실린 것 또한 나의 오독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죄책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표제시 「죄책감」이다. 시를 읽자 시인의 말이 생각났다. 시인은 13년 동안 '무언가'를 오역했다. 무언가를 시로 생각한다면, 여기서 나온 죄책감은 자신이 이제까지 '오역하지 못했던' 시에 대한 죄책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는 시인이 생각한 의미로도 존재할 수 있지만 각자의 상황과 감정, 읽는 방법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바뀐다. 만약 시인이 지난 시간동안 그 '오해'들을 용납하지 못했다면, 거기에 대한 죄책감이라면, 그는 표제시를 통해 앞으로의 태도를 보여준 게 아닐까.


죄책감

         -천부에서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짐을 부리자마자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만큼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이 계단이라 믿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곳으로 소리도 사라졌다

길이 길이었던 곳으로

계단이 계단이었던 곳으로

우리는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리막이었다

멀리서 벼랑을 때려대는 파도는

몇천 년이고 그래왔다는 듯이

파도였다


우리는 계속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우리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곳이 계단이라 믿으며 계단을 내려갔다’는 부분은 앞으로 오역할 시와 오역당할 시에 대한 입장이라 생각한다. 비록 계단이 아닐지라도 계단이라 믿는 것으로 그곳은 계단이 되고 길이 된다. 시의 매력 중 하나는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인의 의도와 들어맞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의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는 그건 하나의 길이 되고 계단이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시가 재해석 되고 누군가의 내면으로 들어갔을 때 그건 기존 시를 벗어나 단 한사람만의 시가 된다. 물론, 이 표제시는 시간의 무한함과 감정의 하강, 끝없는 애도 등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죄책감』에는 정말 많은 죄책감들이 나온다. 앞서 말한 시에 대한 죄책감부터 시작해서 어머니에 대한 개인의 죄책감, 어머니에 대한 가족의 죄책감, 어머니와 누나, 애인을 비롯한 여성에 대한 죄책감, 남성으로서의 죄책감, 사회를 향한 죄책감도 볼 수 있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이토록 많은 시가 나올 수 있는 것도 놀랍다. 시집을 읽으며 가장 눈에 띈 것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시인의 가족 구성원이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와 형, 자신으로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죄책감』 안에서 볼 수 있는 시적화자는 다섯 명의 구성원 중 하나다. 그 안에서 파생되는 죄책감이 유독 쓰라리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은 가족 구성원, 개인으로 여러 입장에서 표현된다. 가장 슬펐던 시는 「클래식」과 「밑 빠진 독에」였다. 「밑 빠진 독에」을 먼저 읽었을 때 시어며 분위기가 좋구나, 정도로 생각했지만 「클래식」을 읽고 나서 다시 읽으니 이렇게 쓰고 서걱거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좋은 건 많은 거라고 형에게 배웠지

엄마의 병이 깊어지자


기타 연습할 시간이 많아져 형은 좋았네

엄마의 부재가 깊어지자

집 곳곳에 공의 검은 그림자처럼 굴러다니는 머리카락들


이게 도대체 사람 사는 집구석이야? 이놈의 여편네는 왜 청소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거지?


엄마가 죽을병에 걸린 걸 알면서도 형이 지껄이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걸어나오네


아버지가 있지도 않은 집안에서

「클래식」부분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슬픔과 힘겨움이 그대로 묻어나면서도 가족들이 그녀의 고통에 지쳐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습관처럼 아픈 어머니가 서울 병원에 입원을 하고, 가정은 해체되었다. 가족 구성원의 아픔을 지겨워하는 일만큼 미안한 일이 또 있을까. 또한 화자는 ‘엄마가 죽을병에 걸린 걸 알면서도 형이 지껄이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걸어나오네’라고 말한다. 형과 아버지를 한 묶음으로 두고 화자는 ‘지껄이다’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선택하여 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다. 그러나 화자는 거기까지만 할뿐 더 이상 나서지 않는다. 한 발자국 물러선 방관자적인 입장은 화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가장 소중한 존재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 마음껏 슬퍼하지 못하는 그 감정을 죄책감이라고 불러도 될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계시네 아버지

잔물결에 젖어 떨고 있는 별들

옹기 깊숙이 빠져드네


니 엄마가 많이 춥구나


아버지 슬픔을 홀짝홀짝 들이붓고 계시네

난 흠집 하나 없는 옹기처럼 장독대에 서서

아버지 동공만치 뻥 뚫린 하늘 쳐다보며

그믐달은 왜 저 무성한 별들

벌초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밑 빠진 독인데 자꾸만

물 부으시네 조각들은

별이 되고 난 후였네

손을 떠난 물수제비마냥

밤을 튀어다니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만큼 허무한 일이 없지만 아버지는 계속해서 물을 붓는다. 여기서 밑 빠진 독이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독에 물을 붓는 행동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거듭하여 슬퍼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별과 별이 된 조각, 손을 떠난 물수제비로 표현되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닿을 수 없는 것들이다. 아버지가 그것들에 닿는 유일한 방법은 끝없이 물을 붓는 행위다.

  

  여기서 화자는 ‘흠집 하나 없는 옹기처럼 장독대에 서서’ ‘그믐달은 왜 저 무성한 별들/ 벌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흠집 하나 없는 옹기라는 것은 밑 빠진 독과 다른 이미지로 아버지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그 슬픔을 회의적으로 보는 화자를 떠올리게 한다. 하는 말도 그렇다. 어머니라고 볼 수 있는 별을 왜 잘라내지 않는지 고민하는 것과 ‘밑 빠진 독인데 자꾸만/ 물 부으시네’라는 구절이 합쳐져 아버지가 하는 행동이 모순적이며 부질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과연 그 부정적인 시선이 아버지 개인에게만 향하는 것인가, 생각해보니 슬퍼졌다. 슬퍼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 할 만큼, 죄책감의 뿌리가 깊었던 걸까.


  이런 죄책감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을까. 가슴 한쪽이 뻐근하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은 죄책감을 뿌리내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미안해야 할 일이 많은 걸까.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그 말들을 숨 쉬는 것처럼 내뱉어야만 살 수 있는 곳인가.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마치 끝이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처럼 내려 가다보니 내가 내려가던 건지, 올라가던 건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계단은 계단이었고 계단은 위로도, 아래로도 갈 수 있었다. 계단으로 만들어진 나의 길에는 ‘걸쭉하게 불어오는 북서풍의 은밀한 이야기’와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핀잔’과 ‘스스로 선택한 길이 길이 아닌 길’이 있었다. 시집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은 그 옆에 달랑거리며 흔들리고 있었고 표지판은 “또 와!”라며 반짝반짝 빛이 났다. 길을 빠져나와 뒤로 도니 계단은 모두 ‘죄책감’이었다.




j*****5 2014.11.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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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 만큼이 ....한 숨 만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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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한임경섭꼭 자정 넘어서야 애인은잠도 안 자고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았다이만큼이 내 어제야창밖으로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어둠 속에 이미 아버지가 많았다발톱이 버려질 때마다쥐보다 내가 더 싫다며애인은 꼭 비명을 지르고나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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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한

임경섭

꼭 자정 넘어서야 애인은
잠도 안 자고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았다
이만큼이 내 어제야
창밖으로
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
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
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이미 아버지가 많았다

발톱이 버려질 때마다
쥐보다 내가 더 싫다며
애인은 꼭 비명을 지르고
나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핀잔이
오늘을 잉태한다고도 믿었지만

한 번도 말하지는 않았다

고백하자면 애인은
발톱 깎는 시늉에 바쁜 날이 잦긴 했었다

창밖으로

시늉을 던지면

그 하얗던 어제가 밤보다 까맣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던

임경섭 시집 《죄책감》중에서
p . 38 , 39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창 밖으로 내던질 수 있는 하루가
있기나 하면 좋겠어
있는 척 하는 것에도 지쳐
등돌리는 하루가
톡톡 톡 깍아내서 버릴 수라도 있음
그럼 좋겠어
버려질 수나 있음 좋겠어
지난 날도 앞으로 쌓일 오늘도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창 밖으로 스스로나 내 던질까..
그래도 뭘 버릴 수 있는 게 좋지
척, 한 시간이라도 버리니
버릴게 남은 사람은 좋지
하는 동안은 뭔가 있는 거니까
아직 남은 거니까
기가쿠의 하이쿠에선
ㅡ 내것이라고 생각하면
우산위의 눈도 가볍게 느껴지네 ㅡ
라던데...
붙어 있는 숨조차가 무거워
한 숨 만 내쉬는 이쪽은
등돌리며 덜그럭 무거운 몸은
손톱만큼도 발톱만큼도
살아낼 변명조차 없는
어떤 텅 빈 상태

y*****7 2016.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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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저 아래 있다고 믿고 싶다,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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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일본드라마인 <베드로의 장렬>을 모두 보았다.   사기꾼이었던 한 남자가 버스를 탈취한다. 그는 경찰에게 세 명의 '악인'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데리고 오길 바랐다. 그 요청이 들어지기도 전, 경찰이 버스에 연막탄을 던진다. 남자는 자살을 하고 말았다. 남자는 죽기 전 인질들에게, 위자료를 보내준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위자료를 받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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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일본드라마인 <베드로의 장렬>을 모두 보았다.

 

사기꾼이었던 한 남자가 버스를 탈취한다. 그는 경찰에게 세 명의 '악인'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데리고 오길 바랐다. 그 요청이 들어지기도 전, 경찰이 버스에 연막탄을 던진다. 남자는 자살을 하고 말았다. 남자는 죽기 전 인질들에게, 위자료를 보내준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위자료를 받게 되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스기무라는 그 남자에 대해 알고자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남자를 알면 알수록, 자신들이 죄를 짓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위자료라고 받은 돈을 보고서는 욕망과 싸우기도 해야 했다. 그 돈이 온전히 제 몫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기를 해서 번 돈이라는 것을 알고는 섣불리 손을 댈 수도 없다. 스기무라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인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아내만을 사랑했던 스기무라에게, 불륜은 크나큰 죄악이다.

 

그들은 모두 '베드로'였다. 예수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남자 베드로. 그러나 예수는 그에게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란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베드로는 예수를 저버렸다. 위자료를 가질 것인가, 아니면 가지지 않을 것인가. 사기로 번 돈을 가져도 되는 것인가. 인질이었던 자들은 모두 고민한다. 탐욕스럽게 탐을 내다가도 이내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들 안에 어떤 감정이 피어난다. 그들은 떳떳해지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죄책감'이었음을 나는 깨닫는다.

 

나는 크나큰 착각을 했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하게 깨끗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베드로의 장렬>에서 스기무라는 다정하고 가정적이고 성실한 남자로 묘사된다. 그는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결고 '블륜'을 저지를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베드로의 장렬>에서 스기무라는 마노라는 여인에게 흔들렸다. 그녀에게 유혹당했다. 마지막에 스기무라는 울었다. 아내와 딸에게 못할 짓을 한 자신을 자책하며. 그것은 슬프기도 했고 인간적이기도 했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우는 그 남자가 그 순간만큼 인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죄책감을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인간다워보일 수 없었다.

 

 

 

 

<휘날린>

 

휴지를 가지고 다닌다는 건

언제나 더럽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나의 유년은

쌓여 있는 시간들 사이에

숨은,

뽑으면 더러워지고 뽑지 않아도

더러워지는,

한없이 순서를 기다리거나 한순간 구겨져

사라질,

얇은 고백들인 것

 

 

 

 

#

 

꼿꼿하게 몸을 세우려고 해도 구부러진 몸뚱이가 있다. 그것을 보며 추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이다. 구부러진 몸이기에 저절로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잘못했다고 느끼는 순간 숙여지는 고개처럼,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천국은 하늘 위가 아니라, 바로 내 발 아래 있다고 믿고 싶다. 고개가 숙여지면 바로 보이는 바닥 너머에 존재하는 감정이 죄책감이 아니라, 상냥함이라고 믿고 싶다. 어느 누군가를 만나기 전엔 몰랐을 감정들이, 어느 누군가를 만나 폭발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니까, 고개를 숙일 때 느껴지는 감정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정말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따스하다. 내가 나고 자라 만난 얼굴을 떠올리면 그렇다. 부모님에게도, 내 형제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우리는 하루에 몇 개의 잘못을 저지를까. 무의식이든, 의식적이든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 깨끗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가 깨끗하길 바라는 마음은, 결코 모순적이질 않을 것이다. 나는 휴지를 들고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우두커니 서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본질적으로 휴지를 들고 살아왔음을.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태어나면서부터 손에 쥐어진 휴지로 내가 만들어낸 잘못을 닦아내고 다시 잘못을 흘리고 다시 닦아내는 것이라고.

 

 

 

 <죄책감>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따

짐을 부리자마자 계단을 내려갔다

(...)

길이 길이었던 곳으로

계단이 계단이었던 곳으로

우리는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리막이었다

(...)

 

우리는 계속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우리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

 

 

 

 

#

 

 

나는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온기를 전해주고 싶은 그런 생각을 늘 한다. 상냥하지 않다는 것에 대하여 나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어떤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세계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상냥하길 바라면서 상냥해지질 않는다. 그것이 나의 죄책감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 그것은 내가 내 안으로 들어서는 길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어디에서부터 가야 할지 몰라 빙빙 돌다가, 결국 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려간다는 것은 안으로 향한다는 의미다. 나의 잘못을 하나씩 되짚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러면서 자아성찰을 하는 시간. 인간이었던 자가 다시 인간임을 깨닫는 시간. 그것은 고해성사를 하는 것과 같다. 어두운 성당에서 신부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하는 고해성사. 성호를 그으며 신을 찾다가 말아버리는 것.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하나의 인간을 형성한다고 말이다. 죄를 고백하는 것은 성스럽다.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과 마주하여 새로 태어난다.

 

 

<탄성잔효>

 

구름을 새각할 때마다 들리는 음악이 있다

 

너를 녹음한 입자들이 잠들어 있는

 

기슭의 돌드을 모조리 던져넣는다 해도

 

이 시간은 범람하지 않는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바람이 불어오는 시작점은 어디인가. 바람이 사라지는 끝은 어디인가. 나무는 왜 푸른가. 나무의 뿌리는 왜 단단한가. 새들은 왜 하늘을 나는가. 어째서 인간은 그렇게 완전하지 않는가.

 

오늘은 하늘이 무척 파랬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볼 때마다 내 안에 있는 얼룩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하늘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눈이 시큰해서 고개를 돌려야 할 때까지 하늘만 오롯이 보았다. 하늘은 나의 잘못을 알아차린다. 고개가 숙여지고 내 아래 있는 어떤 감정을 들여다볼 즈음, 나는 다시 믿었다. 천국은 저 아래 있다고. 인간다운 감정은 저 아래 있는 것이라고. 내가 바라보는 것은 내가 나를 버리지 않는 것, 나에게 주어진 것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 피하지 말고 바라봐야 할 것들. 그런 것이었다.

 

마음 밑바닥에 숨겨둔 죄책감을 응시한다. 나의 정체성이 그곳에 있다. 나는 이제부터 다시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  

 

 

 

<정체성>

 

한 공간의 이동이 정지한다

한 공간의 규모가 조각난다

 

충돌은 야간에 이루어지지

관측도 야간에 이루어진다

 

관측되지 않은 별은 별이 아니다

어떤 형편과 형편이 충돌하면

때론 거대함만이 살아남는다

 

아무도 위반한 적 없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았다

 

누구도 버린 적이 없어서

버림받지 않았다 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타살이 아니라 했다

 

정체성은 작아지지 않는다

정체성은 다져지고 흩어져 넓어진다

t*****g 2014.1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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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학동네시인선 061 임경섭 시집 죄책감
"[서평] 문학동네시인선 061 임경섭 시집 죄책감" 내용보기
꼭 자정 넘어서야 애인은 잠도 안자고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았다   이만큼이 내 어제야   창밖으로 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 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 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척, 한 부분,    막막했다. 그저 무언가를 덜어내,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고 싶었다. 이 시에 나오듯, 일종의
"[서평] 문학동네시인선 061 임경섭 시집 죄책감" 내용보기

꼭 자정 넘어서야 애인은

잠도 안자고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았다

 

이만큼이 내 어제야

 

창밖으로

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

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

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 한 부분,

 

 막막했다. 그저 무언가를 덜어내,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고 싶었다. 이 시에 나오듯, 일종의 연기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기필코 깎아 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무언가에서 비롯된 죄책감이었을지 모른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묘한 미안함이었을지도, 아니면 어떤 존재나 사물에 대한 애도의 표시였을지 모른다.

 어쩌면, 화자의 애인은 이 날 이후로도 발톱이 자라지 않았을지 모른다. 발톱이란 것은 허울이나 시늉이었을지도, 무언가로 도드라져 보이진 않지만, 나만이 알 수 있는, 형상 없는 어떤 존재는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똑같은 매일이 반복되었다. 비슷하게 남루한 하루하루가 반복될 때마다, 몸은 지쳐 피로해가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오르지는 않고, 줄곧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내려가다 시간이 생긴다면, 계단 중간에 주저앉고도 싶었고, 걷다 난간이 보인다면 잠시 그 곳에 기대서고도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없었다. 아니, 시간은 많았지만, 행동으로 옮길 시간이 존재치 않았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짐을 부리자마자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만큼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이 계단이라 믿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곳으로 소리도 사라졌다

계단이 길이었던 곳으로

계단이 계단이었던 곳으로

우리는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리막이었다

멀리서 벼랑을 때려대는 파도는

몇 천 년이고 그래왔다는 듯이

파도였다

 

우리는 계속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우리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

 

-죄책감,

 

 계속 내려갔다. 내가 길을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말 같지도 않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발을 딛고 서서히 내려가고 있는 이곳은, 계단이고 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계단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걸어 내려갔다. 아득한 어딘가로 소리는 흩어져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내려갔다. 문득, 허기가 지고,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엄마의 품에서 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형은 기타를 연습하네

엄마는 습관처럼 아프고

형은 습관처럼 기타를 연습하네

 

음악 선생인 아버지는 형이 딴따라가 될까봐 장롱 위에 기타를 올려놓았지 엄마가 입원을 하는 동안 형의 키가 자란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야

 

부모가 집을 비울 때마다

숨겨둔 음악이 빈집을 채우네

 

-클래식 부분,

 

 엄마의 품에 울고 싶었지만, 엄마는 많이 아팠다. 엄마에게 있지도 않은 발톱을 깎아 달라 할 것이었지만, 그것은 묘한 죄책감이 되었다. 엄마가 아플 줄 몰랐다. 그 원인이 나였을 수도 있겠다.

어릴 적, 일을 하던 엄마의 눈을 피해,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 밥 빌어먹기 딱 좋은 직업이라고 핀잔을 줬던 엄마였다. 엄마가 미싱질을 할 때, 나는 글을 썼고, 엄마가 먼지 내린 밥을 먹을 때, 나는 책으로 썰썰한 속을 달랬다. 좋았다. 미안함 보단 뿌듯함이었다. 이따금의 반대를 무릅쓰고 글을 쓰며, 책에 정을 두니, 묘한 흥분감이 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는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나는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소식을 전하려 전화를 걸었을 때에도, 엄마는 일을 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야속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에게 미안함은 더더욱 없었다.

 문득, 나이가 들어가니 문득, 엄마의 품에 안겨 울고자 했는데, 엄마는 많이 아팠다. 습관처럼 일하던 엄마가 습관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고장 난 기계처럼, 그렇게 아프기 시작했다. 그 아픔에 대한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엄마의 품에서 울고자 했던 내가 어려보이기 까지 했다.

 내가 한가롭게 글을 쓰고 있던 중에도(분명, 한가롭지만은 않았겠지만요. 8_8), 엄마는 언제 끝날지 모를 그 계단을 쉼 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난간에 기대 설 수도 없었지만, 쉼 없이 내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내려가고 있는 이곳을, 엄마는 이미 오래 전부터 거친 숨을 내몰며 내려가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왜 그 땐 몰랐을까. 왜 미안함이란 것이 없었을까.

 오늘 저녁은, 퇴근하고 오는 엄마를 위해 발톱깎이를 준비해 놓을 것이다. 그 발톱깎이와 함께, 엄마와 침대에 누워, TV를 볼 것이다. TV를 보고, TV를 보다가, 잠든 엄마를 한참 바라볼 것이다. 그러곤 불을 끄고 내 방으로 조용히 흘러 들어와, 또 글을 쓸 것이다. 그 글의 내용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미안함이라는 것, ‘죄책감이라는 것 덜고, 글을 쓸 것이다. 묘한 흥분에 사로잡혀, 학창시절의 그 때처럼 글을 쓸 것이다.

 

 

 

e***3 2014.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임경섭 시집,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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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연락 없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도 안 마셨다는 그 애는 몇 년 전 이야기를 자꾸 꺼냈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이라 별 대꾸를 할 수가 없었고, 듣고만 있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도대체 왜 하는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 애는 대답했다. 미안하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가 이야기를 돌려말했던 게 아니었다.  내게 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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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연락 없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도 안 마셨다는 그 애는 몇 년 전 이야기를 자꾸 꺼냈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이라 별 대꾸를 할 수가 없었고, 듣고만 있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도대체 왜 하는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 애는 대답했다. 미안하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가 이야기를 돌려말했던 게 아니었다. 

 

내게 그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는 행위가 그 애가 할 수 있는 사과였다는 걸 내가 몰랐다.

 

사과를 하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라 그 이야기 자체가 사과의 또다른 형식이었다는 거다.

 

모든 이야기는 어떤 감정, 예를 들면 미안함, 고마움 같은 것들의 본체이다.

 

 

임경섭 시인의 시집 <죄책감>에 실린 시들은 저마다 다른 종류, 다른 형식의 '죄책감'에 관한 시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 죄책감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창밖으로

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

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

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이미 아버지가 많았다

 

발톱이 버려질 때마다

쥐보다 내가 더 싫다며

애인은 꼭 비명을 지르고

나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핀잔이

오늘은 잉태한다고도 믿었지만

한 번도 말하지는 않았다

 

- <척, 한> 중 일부



 

'말'이 필요하지 않은 감정들이 있다. '언어'의 옷을 입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


이 시의 화자에게는 그런 감정들이 차오르고 있다.


애인의 비명을 지르는 행위는 감정이 텅 빈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다. 그래서 화자는 침묵을 지킨다.

 

애인이 비명을 지를 때 화자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화자의 감정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감정을 지키다'니, 이 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추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떤 감정은 너무 연약하거나 점성과 밀도가 낮은 것들이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혹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지키는 것이 아니다. 


불안이나 익숙함, 행복 같은 것들은 빼앗기거나 잃어버릴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니까.


다만 너무 묽어져서 그 색깔이 바래고, 또는 너무 짙어져서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게 될 수는 있다.


소리내어 말하지 않고 감정을 지키는 행위는 감정의 본질을 지키는 행위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것이 감정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은 다음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너의 무릎과 나의 무릎의 사이를 시간이라 해두고

너의 무릎과 나의 무릎의 떨림을 생각하자


(…)


관성적으로 젖혀지는 고개들, 출렁이는 저 외면들이

널 완성하고 있다 촘촘히 쌓인 외면,

그 동음이의어들 사이로

오롯이 떨고 있는 너의 무릎이 보일 때쯤

여자의 무릎이 나의 무릎에 닿았다가 떨어진다

사라진다


다시 무릎과 무릎의 사이를 시간이라 해두자

저기 무수한 간격 사이로 사라진 너를 두고

정차하면 흩어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이제껏 떠밀려 왔다


- <베일> 중 일부




임경섭 시인 특유 '표현하지 않는 감정'의 유려함은 말 그대로 '표현하지 않을 수록' 그 깊이를 더한다.


단 네 줄의 <가을>과 심지어 단 두 줄의 <너의 장례>가 그랬다.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백을 만든다. 여백은 다시 생각을 낳는다.


<가을>의 네 행과 <너의 장례>의 두 행 아래 너른 여백은 너른 고민과 성찰을 불러들인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다른 감정을 끌어온다는 명제가, 이 두 시에서 성립한다.


이 두 시는 여기서 인용하지 않는다. 시집에서 직접 읽기를 권한다.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쓸 수 있는 네 줄과 <너의 장례>라는 제목으로 쓸 수 있는 두 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이 시집을 펼친다면, 그리고 그 두 시를 만난다면 그 먹먹한 성찰이 두 배가 되지 않을까.



앞서 말한대로, 이 시집은 한 장 한 장 넘길 수록 감정을 쌓아올린다.


임경섭 시인의 언어는 뻑뻑하지 않고 부드러워서 어떤 감정이든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맨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시, 이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죄책감>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짐을 부리자마자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만큼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이 계단이라 믿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곳으로 소리도 사라졌다

길이 길이었던 곳으로

계단이 계단이었던 곳으로

우리는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리막이었다

멀리서 벼랑을 때려대는 파도는

몇천 년이고 그래왔다는 듯이

파도였다


우리는 계속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우리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


- <죄책감 -천부에서> 전문




죄책감은 '책임'을 갖는 마음이다. 책임이라는 것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사랑일 수도 있고, 동정일 수도 있고, 고마움일 수도 있고, 의무감일 수도 있고, 주체의식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감을 갖는다는 건 이렇게 복잡한 마음까지 책임지는 일이다.


책임은 또한 과오를 뒤돌아보는 마음과 열린 결말, 그 뒤의 가능성을 갖는다.


그때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했더라면.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지. 그렇게 되지 않도록.


그러니까 죄책감은 '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책'이 중요한 마음이다.


죄는 과거의 일이고 책임이 현재, 미래의 일이므로. '계속 계단을 내려'가는 일처럼 말이다.


우연이겠지만 이 시집이 이렇게 산뜻한 노란색인 것도 그 점을 생각하게 한다.


우중충하게, 무채색으로, 잿빛처럼 죄의식에 우울해할 일이 아니라


선명하게, 밝게, 강렬하게 책임감을 가지면 될 일이라고.


그러다 보면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이 언젠가 진짜가 되지 않겠느냐고.



이제 나는 다시 그 친구를 생각한다. 맨 정신에도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하던 그 목소리.


나에게는 그 친구의 죄책감은 예쁜 노란색이다. 

s*****l 2014.11.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죄책감, 털어버릴 수 있을까..
"죄책감, 털어버릴 수 있을까.." 내용보기
오랫만에 시집을 읽었다.  임경섭의 '죄책감'. 2000년 이후의 시작품은 처음인 것 같다.  비교적 최근 작품이라 '요즘 시인들은 어떤 시를 쓰나?' 호기심을 갖고 읽었다.    감정을 크게 긍정과 부정으로 나눈다면 죄책감은 부정적인 감정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마음에 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감정이 아니다. 그런데 다양한 종류의 죄책감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는 시들을 읽고 있
"죄책감, 털어버릴 수 있을까.." 내용보기

오랫만에 시집을 읽었다. 

임경섭의 '죄책감'.

2000년 이후의 시작품은 처음인 것 같다. 

비교적 최근 작품이라 '요즘 시인들은 어떤 시를 쓰나?' 호기심을 갖고 읽었다. 

 

감정을 크게 긍정과 부정으로 나눈다면 죄책감은 부정적인 감정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마음에 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감정이 아니다.

그런데 다양한 종류의 죄책감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는 시들을 읽고 있자니 감정적으로 좀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좀 빠른 속도로 읽었다. 

또 그래서 시인의 언어를 놓치는 것도 많았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이 시들을 또 다른 때 또 다른 속도로 읽으면 또다른 느낌이 들 거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또 읽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빨리 도망가고 싶어지는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n 2021.04.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