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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아, 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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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개 짖는 소리-민구평상에 누워 있는데그가 으르렁거린다눈 녹은 봉우리 위로 털을 세운다나를 보고 입맛 다시며 저수지에 포개놓은 잉어를먼저 채가진 않을까 강물에 앞발을 담근다안절부절못해서 혼자 커다란 산을 뛰어다니고누런 이를 드러내며 바위에 오줌을 갈긴다벼락 맞은 소나무 위에 올라타 내 눈을 응시하며이상한 자세로 들썩거린다나를 덮치고 싶지만목은 단단한 줄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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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개 짖는 소리

-민구



평상에 누워 있는데

그가 으르렁거린다

눈 녹은 봉우리 위로 털을 세운다

나를 보고 입맛 다시며 저수지에 포개놓은 잉어를

먼저 채가진 않을까 강물에 앞발을 담근다


안절부절못해서 혼자 커다란 산을 뛰어다니고

누런 이를 드러내며 바위에 오줌을 갈긴다

벼락 맞은 소나무 위에 올라타 내 눈을 응시하며

이상한 자세로 들썩거린다


나를 덮치고 싶지만

목은 단단한 줄에 매여 있다


부아가 치밀어서 벚꽃과 개나리

막 얼굴을 내민 어린잎들을 더럽게 질질 흘린다

검은 나비 흰나비 개떼처럼 몰려와서

식사를 마치고 짝을 지으며

이리와 너도 껴, 꼬드긴다


너는 오가지 못하고 심드렁하게 누워 있다

지난 겨울 빙벽을 허물던 앞발을 들어 힘껏 휘두르지만

사람들 머리 위로 선선한 봄바람

어디서 개 짖는 소리


복날까지 이제 석 달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개는 졸고 있었다

겨울을 이기고 난 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단단한 목줄에 매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아니라

집 앞에 누워 이 거리를 이 봄을 지켜낸다는 듯이


살아남아라,

힘껏


봄 가고

여름 되어도

s*****m 2019.02.26.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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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가는 달-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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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가는 달-민구달이 기어간다산꼭대기에 허물을 벗고 똬리를 틀던 달이 서울 시내 한복판으로 스멀스멀 기어내려온다달리는 덤프트럭 바퀴에 밟힌다납작해진 가죽, 양화대교 아래 떠 있는 꼴이 우습다물장구치는 달, 굶주린 새가 쪼아도 끄떡없는 대가리바짓가랑이에서 고추를 내밀고 내게 노상 방뇨하는 달집에 오면 부엌에서 접시를 핥다가 찬장 구석으로 숨는 앙증맞은 달못 본 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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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가는 달

-민구


달이 기어간다


산꼭대기에 허물을 벗고 똬리를 틀던 달이 서울 시내 한복판으로 스멀스멀 기어내려온다


달리는 덤프트럭 바퀴에 밟힌다


납작해진 가죽, 양화대교 아래 떠 있는 꼴이 우습다


물장구치는 달, 굶주린 새가 쪼아도 끄떡없는 대가리


바짓가랑이에서 고추를 내밀고 내게 노상 방뇨하는 달


집에 오면 부엌에서 접시를 핥다가 찬장 구석으로 숨는 앙증맞은 달


못 본 척하면 먼저 와서 안기는 귀여운 달


어느 날 내 눈에 알을 까고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네


아직도 잠에서 깨면 팔베개를 하고 있는 여자


술 깨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사라지는 달



연필로 옮겨적는 시는 내 마음을 옮겨 공책에 옮기는 일이라 여깁니다. 꽁꽁 숨긴 마음을 풀어서 옮겨 적고 마침표를 찍습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나의 서툰 감정을 시는 알아챕니다. 고속버스 안에서 안쪽의 어둠과 바깥쪽의 어둠이 구분가지 않는 그 시간에 달은 바깥을 서성입니다. 달이 나를 쫓아오고 내가 어둠속으로 밀려가는 그 밤에 부재를 견뎌내는 것으로 목적지를 향해 갑니다. 


s*****m 2018.05.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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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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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 가끔 그런 기분을 느낀다.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배는 사공이 많은 배도 아니고, 사공은 나 하나뿐이고, 내게는 두 개의 노가 있는데 말이다.그럴 때면 의기소침해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배 째라는 심정이 된다.배가 강으로, 바다로만 가야 하나? 산으로 가면 어때? 어디로든 가라고 만들어 놓은 게 배 아닌가?그렇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쓰고 싶은 대로만 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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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 가끔 그런 기분을 느낀다.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


이 배는 사공이 많은 배도 아니고, 사공은 나 하나뿐이고, 내게는 두 개의 노가 있는데 말이다.


그럴 때면 의기소침해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배 째라는 심정이 된다.


배가 강으로, 바다로만 가야 하나? 산으로 가면 어때? 어디로든 가라고 만들어 놓은 게 배 아닌가?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쓰고 싶은 대로만 쓰면 공들여 쓴 소설보다 좋은 평가를 들을 때가 있다.


민구 시인의 <배가 산으로 간다>는 그런 재기발랄한 뻔뻔함이 가득한 시집이다. 




새가 빌딩 두 채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것 같은 기세로 머리와 날갯죽지를 번갈아 움직인다 저 하찮은 들썩임이 페루로 가는 차편이었다니,

(중략)

공중에 흥건한 새의 부력을 마지막으로 박박 문지른다 산성비를 뿌려 뒤처리한다, 지워진다, 새, 전부 지워져서

새가 새의 가죽을 벗고 그림자만 남는다 그림자가 바벨을 들고 있다


- <바벨 드는 새> 일부




첫 머리부터 독자로 하여금 헛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고작 새 한 마리에게 "빌딩 두 채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것 같은 기세"를 부여하더니,


로맹 가리의 명작 <새들은 페루로 가서 죽다>를 끌고 오는 대범함을 보인다.


그런 엄청난 새가 날갯짓을 하고 나면 공중에 새의 부력이 남는 모양인지, 


시인은 '공중에 흥건한 새의 부력'을 박박 문지른 뒤, '산성비를 뿌려 뒤처리'하기까지 한다.


그러고서야 새의 흔적이 지워지고, 새가 사라진다. 아니, '가죽을 벗고 그림자'를 남긴다.


상상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에는 그림자가 바벨을 드는 것이다.


가장 연약한 생물체 중 하나인 새와, 거기서 나아가 물체가 빛을 가렸다는 증거일 뿐인 그림자에게


어마어마한 '근육'을 실어줌으로써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힘'의 사슬 관계를 꼬아놓는다.


 

그렇다면 그림자보다 더 무(無)에 가까운 것이 있을까? 그림자와는 달리 형상조차 없는 것.




너의 귀를 만지면

번지는 허공


수은 가닥들이

쏟아지는 그곳으로

부드럽게 스미는 너의 잔뿌리가 보이지


너는 보이지 않아

투명한 포자만 촉수를 바르르 떨어


- <공기 -너는> 일부




그것은 공기다. 공기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그 아이러니에 깊이 매혹된 모습을 보이는데,


각기 다른 부제를 단 <공기>라는 제목의 시가 아홉 편이나 된다는 것이 그 점을 증명한다.


공기는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 0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가 가능하다.


'포도'라는 부제를 달았을 때는 "사라진 정원의 포도나무"의 이야기가 되고,


'오리'라는 부제를 달았을 때는 "태어나지 않은 알의 오리들"의 이야기가 된다.


<공기> 이상으로, 열 여섯 개의 각기 다른 부제를 가진 <房>도 마찬가지다.


방(房)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기 위하여 벽 따위로 막아 만든 칸이다.


공기가 허공에 흐트러져 있는 존재(라고도 할 수 없지만)라면, 방은 그 공기를 압축시켜놓은 공간이다.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갈 수 없다

거기에는 그가 살고 있다

방에 딸린 조그만 부엌,

벽에 걸린 식칼이

몸을 수그리는 나를 찌른다


나는 노크를 하며 말한다


계십니까

부르셨습니까

등에 번지는 핏자국


<房 -투숙객>




달리 말하자면, 방은 벽이 있는 공간이다. 외부와 차단된,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나의 목소리를 가장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공간에서 시인은 살아가고, 일을 한다. "투숙객"에게 노크하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알"을 만진다.


방은 "꿈"처럼 흐릿했다가, "촛불"처럼 품에 안겨 자지러지기도 한다.


벽으로 막혀 있는 공간이지만 벽 너머에는 무한대의 소재가 있다. 


시인은 그 소재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행동이, 그 끈기가 독자에게 다시 묻는다. 배는 강으로, 바다로만 가야 하는가?


산으로 가면 어떤가? 어디로든 가라고 만든 것이 배가 아닌가?


지금 이 순간, 그의 배는 산으로 갔다가 방에 머물고 공기 중을 헤엄치고 있다.

s*****l 2014.12.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