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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나 고백할 게 하나 있어! 뭔데? 나 사실, 시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 뭐라고? 여태껏 쓴 시는 뭐고, 여태껏 시집 보고 쓴 리뷰들은 다 뭔데? 그거? 나도 몰라. 그냥 쓴 거야. 알고 쓴 거 아니야.
"센티멘털 야간통신 가을호 목차에 의하면 / 꽃보다 말줄임표 애호가 / 이토록 잘 쓴 시는 거의 없다 /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등이 있다" -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일부
모르고 어떻게 써? 그냥, 느낌대로? 흠.... 나 머물러도 돼? 흠...
"서울고용노동청 깃발이 황사바람에 펄럭인다 / 어쩐지 당신은 울고 싶다 / 교차로 사색 신호등은 허공에 걸린 한줄의 선 / 누가 허공을 건너 저편으로 간다 / 멸시당하고 싶은 날이 있다 / 마음이 아프기 전 몸이 먼저 눕고 / 누운 몸을 따라 눕느라 마음은 아프다"
- <종의 기원> 일부
나 사실, 알고 싶어서 읽는 거야. 그런데 계속 봐도 모르겠어. 그럼, 아는 건 뭐야? 시가...그냥 좋다는 거? 야!!!!!!! 화났어?
"너도 죄가 많아 / 얼마나 많은 짐승들이 / 네 가슴에 쓰러져 / 눈물을 뿌리며 울다 가는지 / 네 슬픔의 얼굴은 본 적 없으니 / 스스로의 슬픔으로는 울 줄 모르고 / 눈밭에 뿌려진 싸이나 취한 새들이 / 겨울 숲으로 툭 툭 떨어지네"
- <숲을 뒤에 두고> 일부
그래, 내가 죄가 많아, 그러니 네가 그런 말을 하지! 아니, 왜...화난 거 아니야? 화 내면 뭐해? 모르는 사람에게 화낸다고 알게 되나? 삐졌구나. 흥!
"한뉘, 바람이 많이 부는 저녁이면 멀리까지 날아가는 거미들이 보이네 / 희고 반짝이는 줄을 타고 여행하는 거미들의 비행시간 / 밤에 부는 바람 소리는 이승을 바라보며 서성이는 죽은 이들의 발소리 / 밤의 씨앗들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다 함부로 멈추네 사무치는 사사로움 // 한뉘, / 결국 아무것도 아닐 것이네" - <탐닉> 일부
아무것도 아닐 거야. 그치? 흥! 귀엽네. 야!!!!!!
"도화 이피리 눈발처럼 날리거든 / 간다고 전해라 // 추운 사랑의 온도 저 너머 / 사랑이 뿌리처럼 젖어 있는 곳 // 사랑의 온도 꽃으로 피어오르는 그곳으로 / 간다고 전해라"
- <녹색 마차> 일부
그만 갈까...? 어딜? 간다고 전해라.... 흥! 그곳으로 간다고 전하래. 어디로?
"야자나무가 다 베어지고 나면 / 항아리가 묻힌 뜰을 떠나 또다른 곳으로 가겠지만 / 그러나 아무도 농경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 문장 한줄을 쓴다 // 가령 당신의 루주는 언제나 붉지 않다" - <당신의 루주는 언제나 붉지 않다> 일부
너의 루주는 언제나 붉지는 않아! 그래서........ 그래서 뭐? 음..... 왜 말을 하다 말아? 앙?
"간신히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너는 말하는구나 // 아직도 옛집 화덕의 불시는 꺼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주렴 // 붉은 매 한마리가 산도화 가지 위에 앉아 있는 꿈을 꾸었지 // 우리의 새가 어둠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꿈 // 너는 곧 북서쪽에서 폭풍우가 운다고 말하는구나" - <건초 수레는 지나가고> 일부
- 아주 오래 전에 꿈꾸던 사람, 아주 오랫동안 꿈꾸던 사람. - 그 꿈 속에서 나눈 대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나, 사실 시에 대해 잘 몰라. - 나, 사실 너란 시에 대해 잘 몰라. - 나, 사실 너가 시였는지 몰라. - 시가 나랑 데이트를 한다. - 그것도 아주 오래된 연인인 척!
가난하고 아름다운 사냥꾼 딸이 꿈을 헐어 전나무에 물을 주고 큰 배로 만들 때까지
같은 리듬으로 하루하루
여행은 계속되는 거란다
2017년 가을 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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