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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덴마크 사람인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감독이 1964년에 만든 <게르트루드 Gertrud>를 보았다. 아낙네 한 사람이 제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을 하는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사내들은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만 하는 바보 같은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는 흑백 영화였다.
여기저기를 옮겨가면서 찍은 영화가 아니라 같은 무대 위에 살짝 바꿔 찍은 연극 같은 맛이 났지만, 낯설고 어색한 모습을 넘어서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지 못하게 했다. 존 그레이가 쓴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2.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변호사인 구스타프 카닝(벤트 로테)이 "우리 이야기 좀 하자"며, 제 아내인 게르트루드(니나 펜스로데)한테 말을 건다. "장관의 아내가 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게르트루드는 우스개 같은 말로 되받는다. "어느 장관이 나랑 같이 살고 싶대?" "나, 카닝 장관." 하며 자랑스럽게 아내를 바라보는 카닝한테, 게르트루드는 쌀쌀맞은 소리만 늘어놓는다. "당신이 장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그런데) 언제부터 당신이 정부랑 그렇게 친했어?"
반갑게 맞아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퉁박을 맞은 카닝은 얼떨떨하다. 그런 그한테 아내는 한 방을 더 먹인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어...나는 장관의 아내가 될 수 없어...더 이상 당신의 아내가 아니거든..."
아내는 서로 가락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나누던 때를 떠올리며 그 때 카닝이 한 말을 다시 입에 올린다. "둘 중 한 사람이 자유를 바라는 날이 오면 보내주자고 했잖아. 그 때는 조금 슬펐어.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당신이 날 많이 사랑해줬기에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된 거야."
아내의 "헤어지자!"는 말에 놀란 카닝은 둘러댄다. "나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어. 그런데 나를 떠나겠다는 거야? 사랑해, 게르트루드..."
이미 마음이 돌아선 게르트루드는 담담하게 카닝한테 내뱉는다. "당신은 사랑하는 게 너무 많아. 권력, 명예, 자기자신, 지적 생활, 책, 하바나 시가. 물론 가끔은 나도 사랑하겠지..."
3. 영화는 일에 빠져 사랑에서 멀어진 옆지기 카닝과 헤어지기로 한 게르트루드의 사랑 찾기를 잘 그려내었다. 게르트루드가 만나 사랑을 한 세 사내의 이야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펼쳐진다. 카닝을 만나기 앞서서 사귀었던 시인 가브리엘 리드만(에베 로데)과 카닝과 헤어질 때부터 사랑하게 된 젊은 피아니스트 얼렌 얀손(바드 오베)이 게르트루드와 함께 한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사내들은 모두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게르트루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처럼, 모두가 일로 무언가를 이루려다 정작 값진 사랑을 잃는다. 가브리엘은 이름난 시인이 되려고 하다가 게르트루드의 사랑을 놓친다. 끝내는 큰 이름을 얻고 고향에 돌아와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되긴 했지만. 얼렌은 게르트루드의 사랑을 잘못 받아들인 탓에 꼬인다.
사내들은 게르트루드가 "나랑 같이 살자" 할 때는 꽁무니를 뺀다. 뒤늦게 철이 든 다음에 돌아와 게르트루드한테 "같이 떠나자" "같이 살자" 한다. 이미 버스는 떠난 뒤다. 게르트루드의 마음이 바뀌었으니 돌이킬 수가 없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게르트루드의 모습을 빌려서 얼빠진 사내들을 나무라고 있었다. 가까이 있지만 값진 사랑을 모른 채 헛된 바람에 눈이 멀면 어떻게 되는지를 까발려 놓았다. 파랑새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 집에 있다는 듯이.
이 영화에서 사내들이 일과 이름에 눈길을 주는 탓에 참사랑을 얻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왕가위 감독의 1994년 영화 <동사서독 東邪西毒 / Ashes Of Time>이 생각났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자리만 다를 뿐 사내들의 철부지 사랑은 같은 듯해서다.
자애인(장만옥)의 사랑을 뒤로 하고 무술을 배워 고수가 될 생각으로 백타산을 떠나는 바람에 서독 구양봉(장국영)은 가슴앓이만 하면서 살아간다. 자애인 곁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모래뿐인 곳에서 주막집을 열고 사람을 죽이는 심부름이나 할 뿐. 눈이 멀어져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맹무살수(양조위)도 마찬가지. 아내 도화삼랑(유가령)을 사랑하면서도 그이와 얽힌 제 동무인 동사 황약사(양가휘) 때문에 아내를 떠나서 칼잡이로 돈을 버는 일을 하며 쓸쓸하게 죽어갈 뿐.
4. 영화에는 몇 사람이 나오지 않으며 무대도 단조롭다. 카닝과 게르트루드가 제 집에서 오랫동안 말을 나누거나, 얼렌의 집에서 얼렌은 피아노를 치고 게르트루드는 노래를 부르거나 이야기를 한다. 가브리엘의 빛나는(?) 삶을 기리는 무도회 대기실에서 게르트루드를 사이에 두고 세 사내의 모습을 같이 볼 수 있으며, 머리가 아팠던 게르트루드가 파리에서 온 악실 교수한테서 약을 받아 먹거나 할 뿐이다. 무대 밖은 오로지 얼렌과 게르트루드가 만나서 밀고 당기는, 연못이 보이는 공원이 다다.
조금 지겹지 않을까 싶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나누는 말들이 통통 뛰어다니는 덕분에 오히려 빠져들었다. 장관이 될 것이라 들떴던 카닝이 게르트루드한테 입맞춤을 하려고 했으나 게르트루드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을 때 카닝이 하는 말. "입술을 바랬는데 뺨을 주는구나."
아버지도 나라를 위해 일했다며 카닝이 말하자, 어머니가 카닝한테 하는 말도 다부지다. "그래서 받은 게 뭐냐? 훈장 몇 개 뿐이잖아. 카닝, 너는 변호사 사무실이나 잘 꾸려가. 나라 걱정은 하지 말고."
사내들은 일을 버릴 수 없다고 사랑만을 찾는 게르트루드한테 따지는 카닝한테, 게르트루드가 말한다. "내가 바라는 사내는 내 것이 될 수 있는 사내야. 나를 가장 먼저 사랑해주는 사내야. 가끔 마음을 써주는 건 없어도 돼!"
5. 단조로운 영화지만, 카메라는 자리를 잘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닝과 게르트루드가 첫 꼭지에서 서로 다른 마음을 털어놓는데, 두 사람을 같이 화면에 담았지만 말하는 게르트루드의 얼굴과 뒷쪽에서 들으며 놀라는 카닝의 모습이 한 화면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게 좋았다.
게르트루드와 한 때 사랑을 나누었던 가브리엘이 만났을 때도 같이 마주 보는 게 아니라 서로 얼굴을 다른 곳으로 보면서 다른 마음을 드러나게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얼굴을 보지 않고 딴 데를 보나, 하는 생각이 처음에는 들었지만, 그렇게 어색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다른 속마음을 보여주어서 나중에는 감독의 뜻이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 삶에서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닫지도 못하는 카닝한테서 게르트루드가 멀어질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떠났다가 게르트루드의 사랑을 깨닫고 다시 돌아와 뉘우치는 가브리엘한테 게르트루드가 옛날의 모습으로만 대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안쓰러웠다. 얼렌과 마찬가지로 가브리엘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기도 했지만, 뉘우치는 사내한테까지 마음을 열지 않고 쌀쌀맞게 구는 건, 감독 마음이겠지만, 나로서는 마뜩찮았다.
6. 영화 속에서 사내들은 사랑을 하려고 해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먼저 일을 해야 하고 사랑만으로 살 수가 없으니까 다른 것도 해야 한다며, 사랑을 앞세우는 게르트루드한테 따진다.
"사내라면 일을 해야지.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잊으면 안 되지." 사랑이 먼저고, 그 다음이 일이고, 돈이고, 이름 따위가 되어야 한다고 게르트루드가 사내들한테 외친다.
나는 어떻게 받아야 할까? 내 아내가 이런 말을 하면...쉽지 않은 물음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내한테 보이기 싫은 영화다. 별을 넷만 주었다.
나온 지 벌써 쉰 해가 지난 영화라 디뷔디는 그리 바라지 않았다. 볼 수만 있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딱 그런 수준이었다. 흑백 화면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주 깔끔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말 옮김은 어김없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대사가 많아서 옮기기에 힘이 들어서 그랬을까? 덤으로는 예고편조차 없다. 그냥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찍은 사진만 있다.
예스24에서 상품 이름으로 올린 영화 이름은 바꿔야 한다. <게르트 루드>가 아니라 <게르트루드>다. 한 낱말이다. 띄울 게 아니다. 사람 이름이니까. 디뷔디 집에 나오는 소개 글은 영화와 조금 다르다. 게르트루드가 마지막에는 파리에 사는 작가와 사랑을 한다고 나와 있으나, 아니다. 게르트루드는 일이 먼저인 사내들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