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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나쁜 사회라는 것은 사회 전체가 부익부 빈익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평등하지 않는 사회를 의미한다. 미국은 흔히들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사회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11년 미국의 한 조사기관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백인의 순자산 규모가 흑인의 20배, 히스패닉의 18배로 집계되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우리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강남부자라 불리는 그들은 일반인이 상상 할 수 없는 부를 누리지만 가난한 자들은 살 곳조차 마땅치 않아 판자촌과 노숙을 대신한다. 부자들은 부가 점점 불어나지만 가난은 물귀신처럼 헤어 나올 수 없다.
다행히도 작가는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책 말미에 마련해 두었다. 불평등한 사회는 자연법칙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현상으로, 인간이 만든 제도와 장치, 국가의 개입을 통해 나쁜 사회는 좋은 사회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전대통령 룰라가 소득층 생계 보조 프로그램인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를 통해 브라질의 기적을 만들어 냈듯이 말이다. 우리 모두가 그 같은 사회를 꿈꾼다면 평등한 기회의 땅은 가능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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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언제나 공평한 것은 아니라는 이 당연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는다"(167).
월가 점령 시위가 한달째 지속 되는 것에 맞춰, 인터넷을 중심으로 반금융자본 시위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 금융심장부도 시위대에 '점령'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한국에서도 소수만을 위한 금융자본의 탐욕과 불의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듯이 <나쁜 사회>의 저자 대니얼 리그니는 "미국의 경우,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언제나 그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곤 했다. (...) 앞으로 이런 저항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181)라고 전망했다. 로버트 머튼이 명명한 '마태 효과'를 중심으로 사회적 불평등의 역학을 파헤친 저자는 이 책의 의의를 이렇게 요약한다. "마태 효과와 그 치명적인 결과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광범위하게 퍼진다면, 우리 시대의 사회과학자들과 정책입안자,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 보다 진지하고 수준 높은 논의가 진행될 것이며 그에 따라 21세기에 더욱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에 맞서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양극화에 대한 진지하고 수준 높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시점이며, 우리는 지금 올바른 선택과 행동의 기로, 그 한 가운데에 서 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손에 <나쁜 사회>가 던져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저자는 우리가 처하게 되는 사회적 불평등을 이렇게 비유한다. "어떤 사람들은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산다"(25). 얼마 전, '대기업에 들어가는 방법'이라는 풍자 개그 대로, 10시간씩 시급 4320원을 받고 숨만 쉬고 일하는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30세에 손쉽게 상무가 되는 회장 아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쁜 사회>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위는 더 나은 우위를 가져오고 열위는 더 못한 열위를 가져옴으로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계속해서 커질 수밖에 없다. 저명한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이러한 현상을 '마태 효과'라고 불렀는데, 마태복음 13장 12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을 빌려온 것이다"(13).
머튼의 연구는 '과학 부문의 보상체제'를 연구하는 데 초점이 있었는데, <나쁜 사회>는 누적 우위 연구를 과학사회학 분야로만 제한했던 장벽을 허물고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마태 효과를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탐구의 장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자평한다(45). 저자는 과학과 기술 분야의 마태 효과, 경제 분야의 마태 효과, 정치와 공공정책 분야의 마태 효과, 교육과 문화 분야의 마태 효과를 분석하며 이러한 시도가 "서로 고립되고 단절되어 있었던 연구 분야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담론으로 통합하는 과정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나쁜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는 마태 효과의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에 주목한다(47). 다른 말로 하면, 마태 효과의 역기능에 보다 중점을 두고 불평등 현상이 진행되는 매커니즘과 심화 과정 탐구이다.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의 역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마태 효과'는 반드시 끼워 맞춰야 할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라고 역설하는데, 마태 효과가 폭노하는 불평등이란 일단 존재하게 되면 영속적이고 자가증식적인 특성을 발휘하게 되고, (외부의 힘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 결과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더 커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문제는 선취가 우위가 자가증식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쉽게 '복리'에 비유하여 설명하는데, 이러한 자가증식적 고리를 가진 '우위 누적'은 우위가 다시 우위로 이어져 수혜자들의 기회구조를 확장하고, 그럼으로써 더 많이 가진 자들과 더 적게 가진 자들 사이의 격차를 넓히는 원인이다. <나쁜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은 보다 큰 성공을 불러오고 실패는 더욱 큰 실패로 이어지는 경향을 분석한다. '성공할 기회가 있다는 것'과 '성공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실감나게 배울 수 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처럼 초기의 조건 자체가 불평등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특권이 주어진 조건에서 명백한 우위를 선점한 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은(미국인들의 의식만 이런 것은 아니리라) 자신이 평등한 기회의 땅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살고 있는 데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부자는 부지런하기 때문이라는 식의.) 왜 그럴까? (미국인의 경우 그들의 오랜 종교적 신념이 그 기저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비밀'이 폭노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은 이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애초에 이렇게 생겨먹은 사회라는 자각은 희망을 거세하고, 희망을 빼앗긴 마음은 힘 없는 분노에 시달려야 할 테니 말이다.
이러한 '마태 효과'의 역효과(역기능)를 축소하거나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몇 가지 대항력(마태 효과를 억제할 수 있는 힘)을 설명하는데, 평균으로의 회귀, 천장 효과, 바닥 효과, 세대 간 분산, 낙수 효과, 평등주의운동, 정부의 개입, 이타주의와 계몽된 이기주의 등의 개념을 배우며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좋았다. <나쁜 사회>는 대중적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이론적 연구서적에 가깝기 때문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 그 재미가 더 하리라 생각된다. 한 가지, 계속해서 지워지지 않는 이 찜찜함은, 더 많이 가진 자와 더 적게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넘어 세계적으로 조직적으로 글로벌하게 진행되고 있는 음모일지 모른다는 불안한 그림자가 스멀스멀 자리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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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복음 13장 12절) 천주교 신자인 나는 이 구절을 들을 때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의 예수님, 은총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은 '믿음'에 관한 말씀을하고 계신 것인데, 믿음이 있는 자는 더 큰 믿음으로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비유의 말씀이다. 그러나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말씀은 무척이나 불공평하게 생각되고, 더 나아가 분노와 반감까지 일으킨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사회적 우위가 더 나은 우위로 이어지고 사회적 열위는 더 못한 열위로 이어짐으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심화되는 현상을 '마태효과'라고 일컫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태효과는 사회적인 모든 분야, 과학, 기술, 경제, 정치, 교육등 우리 사회구조 전반에 걸쳐 나타날 뿐만이 아니라 국가간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부유국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나라는 끝없이 계속 가난해지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이런 마태효과는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가,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통제의 영역인가. 책에서 이 질문을 만났을 때, 나는 주저없이 마태효과는 인간의 악용으로 조장되고 있으며, 이는 이를 통해 득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과격하게 표현해서 마태효과를 통제하거나, 조절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골고루 차별없이 한결같다는 의미의 '평등'과,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르다는 의미의 '공평'은 같은 말이 아니다. 평등은, 누구에게나 똑같이란 의미를 지니고, 공평은, 결과적인 평등을 의미하는 말로 가진자와 덜 가진자에게 배분의 차를 둔다는 의미이다. 우리사회는 평등과 공평의 가치 중 어느것을 더 존중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내생각에) 우리 사회는 평등과 공평 중 그 어느것도 추종하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단 우리 사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유시장을 갈망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불평등과 불공평을 조장하는 사회이다. 불평등을 통해 각자 개인은 만족을 느끼고, 불공평을 통해 조금이라도 약진하려는 욕망을 키운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용인될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한다. 다만 불평등의 정도, 불공평의 정도는 무척이나 중요한 것인데, 바로 그점을 우리 사회는 무시하고 있다. 부자 참가자와 가난한 참가자에게 성공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졌다라고 말하는 것은 오류다. 출발 신호음이 같다라고 해서 평등하다라고 말 할 수 있는가, 기본적인 시작점이 다른 것을. 이는 완전한 불공평이라고 생각한다. 초기의 조건 자체가 명백히 우위인데, 평등한 사회, 공평한 사회라는 신념은 완전한 오해이다. 누군가가 이득을 볼 때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승자와 패자의 득실을 더하면 총합이 0이 되는 제로섬 게임에서, 마태효과는 잔인하다. 패자와 승자의 위치는 변화할 수 없고, 그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배집단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더욱 확고히 다질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마태효과 체제를 설계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경제적 우위는 보다 우월한 정치적 우위를, 정치적 우위는 보다 우월한 경제적 우위를 불러옴으로써, 우위와 열위의 악순환의 고리는 끊이지 않는다. 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게 해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기대하자는 경제정책은 완전히 거짓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이 잘 되야 국민이 잘 산다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부자 감세와 불법행위가 명백히 들어난 재벌의 죄를 벌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 요몇일 트위터에는 '마우스 랜드'라는 동영상이 유행이다. 쥐들의 나라에 권력자인 검은 고양이들은 쥐들을 위한 정책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정책으로 국민들인 쥐들의 원성을 듣는다. 이에 쥐들은 투표를 통해 검은 고양이들을 몰아내고, 하얀 고양이를 권력자로 뽑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고양이들은 처음부터 고양이였을까, 권력자가 되고 나자 고양이로 둔갑하게 된 것일까. 후자라고 하면, 쥐들의 미래에 더이상 희망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권력자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와 정책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다 알아서 해주리라는 믿음은 다 알아서 착취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마태효과는 분명, 극단적인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마태효과는 절대적인 자연 법칙이 아니며, 인류가 만들어낸 사회적 결과이므로 언제든 임의적 조절이 가능하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언제나 그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곤 했다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노예해방 운동이 그렇고, 뉴딜, 인권운동, 양극화에 저항하는 사회운동 등이 그렇다.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에서는 월가 점거 시위가 3주째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 경제체제에 반대하는 시위는 전세계 곳곳에서 빈발하고 있다. 자본주의로 증가하는 사회 불평등과 자연과 문화자원의 파괴를 통한 성장의 집착에 대한 불만에서 소수로 부터 시작된 시위들은 혁명적인 개혁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싶은 진실이 이 책에 있다. 내 자신의 위치가 우위이거나, 열위이거나를 떠나 언제나 한결같이 내 경우에만은 열외이길 기대하는 마음이 마태효과를 용인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또 한편으로는 상속제를 폐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사람의 수명이 다하면 일정액 이상의 상속을 금지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적 우위가 자녀에게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위가 더 나은 우위로 이어지고 열위가 더 열악한 열위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경제며 정치에 밝지 않은 나는 이 책을 읽는데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저자가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는 전문적이지 않은 개론서를 목표로 이 책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우위가 우위로 이어지고 열위가 열위로 이어져 아무리해도 달라지지 않을 뿐더러 더욱 살기가 팍팍해지는 현 사회 시스템에 의문을 갖은 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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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흥부전》과 《콩쥐팥쥐전》을 읽으며 자라난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전래동화의 논리에 우리는 통쾌함을 느낀다. 동시에 놀부와 팥쥐와 같은 나쁜 사람들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런저런 '착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난 우리들은 결국 선이 악을 이긴다는 대단원에 언제나 가슴후련한 도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한다. 그리고 이런 도덕적 카타르시스야말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선하다는 성선설을 지지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우리는 전래동화를 헌 인형 버리듯 잊어버리는 그런 나이가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그저 옛날 이야기로 치부되고 만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건 다 어른들이 꾸민 이야기라는 인식이 팽배해진다.
세상에 나온 우리는 나쁜 사람이 복을 받고 착한 사람이 벌을 받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아니, 자신의 눈과 귀로 접하게 된다. 권선징악을 담은 동화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라난 우리에게는 이런 현실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어른들은 재벌들과 연예인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빈익빈 부익부'를 말하고 지식인들은 토론에 나와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구조적 문제점을 떠들어대고, 신문방송은 연일 청년실업과 노인들의 자살을 보도하기에 분주하다.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는 권선징악을 도덕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간주하고 승자독식이라는 나쁜사회의 생존법칙을 수긍한다는 의미일까?
어른이 된 아이는 왜 이 놈의 세상은 동화 이야기와 정반대인지 놀라게 된다.동화책을 멀리하게 된 우리는 이제 권선징악이 아니라 승자독식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자신의 눈으로 본 놀부들과 팥쥐들이 흥부와 콩쥐를 핍박해가며 잘 사는 모습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다. 인식론적 충격이자 도덕적 충격인 셈이다. 그래서 일부 청소년들은 어른들보다 더한 현실주의자가 된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가진 자는 더 갖게 되고 없는 자는 가진 것조차 빼앗기게 되는 마태효과(The Matthew Effect)를 세상의 법칙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놀부와 팥쥐가 되려고 한다. 이제야말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무릇 있는 자는 더욱 넉넉해지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라는 마태복음은 이제 어른들을 위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
마태효과는 생로병사와 같은 자연법칙일까,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프레임일까? 저자 대니얼 리그니는 《나쁜 사회》(21세기북스, 2011)에서 마태 효과 때문에 일어나는 불균형의 심화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노력을 통해 완화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구조라고 설명한다. 비록 과학, 기술, 경제, 정치, 공공 정책, 교육과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마태효과의 증거를 찾을 수 있기에 흡사 자연법칙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회적 구조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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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폴리란 게임이 있다. 동일한 자산을 가지고 시작하는 보드게임이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자산의 양극화는 심화된다. 즉, 자산을 불리기 시작한 게이머는 불어난 자산으로 인해 자산을 늘리는데 더 수월해지지만 자산일 잃어 버린 게이머는 이를 회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하늘이 내린 운과 솜씨가 있어서 적은 자산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해도 거금을 거머쥘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확률이 낮다. 이와 유사한 예를 자본주의 사회인 우리의 현실에서 찾아보자. 부동산 투기나 증권투자에 있어 큰손과 기관투자가들은 거액을 손해 보더라도 워낙 많은 실탄(돈)을 갖고 있기에 금새 투자수익을 통해 손실을 만회할 수 있게 된다. 죽어나는 것은 그저 주택 실수요자와 개미투자자들뿐.. 이런 사례는 마태복음 13장 12절 “무릇 있는 자는 더욱 받아 넉넉하게 되며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언급한 구절을 연상시킨다. ‘마태효과’는 바로 이 구절을 통해 극단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이로 인해 없는 쪽이 결국 파산하고 마는 현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지난 1986년 미 컬럼비아대 사회학 교수인 로버트 머튼이 마태복음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수십 년 동안 사회·경제학·정치학·교육심리학, 심지어 생물학에서도 마태 효과와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고 한다. <나쁜 사회>는 바로 마태효과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와 그 내용들을 소개해 주는 책이다. 우선 이 책이 요즘 출간되었는지 그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경제가 활성화 되어 사회 각부문의 곳곳마다 피(현금)가 원활하게 돌면 각 경제주체들도 최적의 경제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게 되고 그 부는 어느 한편으로 편중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되면 위기가 닥치게 된다. 우리는 지난 IMF위기 시절 이를 직접 목도했다. 펀더멘털이 튼튼한 소수 대기업은 IMF위기를 잘 이겨내면서 경제 회복기에 타 기업들이 도저히 따라오지 못할 수준의 거대 그룹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중견기업들은 자금압박은 물론 사업마저 불투명해짐에 따라 몰락의 길을 걷는다. 개인도 다를 바가 없다. 경제위기 시절 불어난 빚을 갚기 위해 헐값에 집을 처분할 뿐만아니라 소중한 직장마저 잃고 마는 불운까지 생기고 나면 더 이상 종전의 중산층의 지위마저 되찾을 수 없게 된다. 반면에 이 시기 헐 값에 집이나 토지 등을 구매한 부자들은 경제 회복기에 어마어마한 시세 차익을 누리게 되면서 더 큰 부자가 되어간다. 이런 사례들은 결국 양 극단에 서있는 더 가진자와 덜 가진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와 접근이 결코 자신을 양 극단에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이 무심하게 생각할 주제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바로 그 빈익빈의 편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쁜 사회>의 출간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 준다. 특히 저자는 이 책에서 불균형의 심화가 '자연 법칙'인지 아니면 노력을 통해 완화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구조'인지를 탐구 한다. 그리고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마태효과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3장이었다. 빈부격차와 시장경제의 독과점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불균형이 심화되는 현상을 다루고 있으며 4장에서는 후원금 모금 및 선거에서 유리한 기존 정치인의 원리, 조직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큰 힘을 보유하는지, 왜 복권이 빈부격차를 늘리는 세금으로 작용하는지와 같은 예를 통해 마태 효과가 정치와 공공정책에 끼치는 영향력을 뜯어 본다. 저자의 바램은 하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덜 알려진 ‘마태효과’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은 입문서가 되길 원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얻게 된 통찰력을 인도적으로 실천할 방법을 찾아내길 바라고 있다. 마태효과란 말이 없어지길 바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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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있는 자는 더욱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 마태복음 13장 12절 -
가진 자는 가진 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기회와 후광을 얻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그로 인해 더 많은 기회에서 배제되며 낙인 찍히게 된다.
마태효과는 한마디로 '부익부 빈익빈'이다. 양극화, 불평등, 금수저 흙수저로도 표현할 수 있다.
마태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복리효과'다. 두명이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더라도 자가증식하는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극명하고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복리효과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문화에서도,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도, 정치와 공공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책을 읽다보면 마태효과가 마치 공기처럼 우리 현실속에 있다는 생각에 가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내 운명이 이미 정해진 것 같아서, 이번 생은 망했다는 체념까지 몰려온다.
하지만 현실 사회가 어떤 기저를 가지고 움직이는지를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거다.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의미 또한 이부분이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던 그동안의 불평등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 주는 것 !
마태효과가 때론 무자비해 보이고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자연법칙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의지'를 가진 인간이기에 얼마든지 마태효과로 나타나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개선시킬 수 있다. 그 의지가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표출된다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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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회 대니얼 리그니 / 21세기 북스
이 책 원제가 The Mathew Effect 즉 마태 효과이다. 마태복음 13장 12절 “무릇 있는 자는 더욱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라는 구절을 발려온 것이다. 성경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고 이 구절만 따와서 ‘빈익빈 부익부’란 뜻으로 사용한다. 우리 사회에는 마태효과가 확실히 존재한다. 요즘 들어 그것이 더 심해졌다고, 부자만 잘 사는 세상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란 것을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마태 효과는 복리의 예로 말할 수 있다. 복리는 보험회사 전화상담원이 설명해 주듯 원금에만 계속 이자가 붙는 것이 아니라 원금에다 그달 이자까지 합한 금액이 다음번에 원금이 되어 이자가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것이다. 원금이 클수록 나중에 돌려받는 돈도 커진다. 똑같이 빌린 돈의 이자 역시 복리로 계산되어 채무자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채권자는 점점 더 부유해 진다. 마태 효과는 이를 말한다. 그런데 이 마태 효과가 경제 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난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유명한 인물들이 명성을 떨칠 기회를 더욱 많이 부여받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대 교수의 논문보다 명문대 교수의 논문이 같은 내용이라도 더 높이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 간다. 경제 분야의 마태 효과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승자 독식 시태에 대기업 경영진과 스타 운동선수, 연예인, 기타 직업군의 지배 계층에 부는 계속 쏠리고 하위 계층은 의식주 해결조차 못하는 시대이다. 규모의 경제, 독과점, 시장 경쟁으로 빈부 격차는 말할 수 없이 커져간다. 정치와 공공 분야에도 마태효과가 존재한다. 정치에서는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우위를 점한다. 사법 계통에서도 역시 계급적 우위가 존재한다. 또한 공공 정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예를 들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말하고 있는 온갖 정책에서도 마태 효과는 빛을 발하고 있다. 교육과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서 든 미국의 예 이외에도 우리나라 사교육과 문화 활동 시장에서 만큼 ‘부익부 빈익빈’이 판치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결국 모든 사회 분야에서 마태 효과는 만연해 있다. 저자는 마태 효과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가 이를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도덕적, 정치적 의지로 이에 개입해 극단적인 불평등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기득권층은 마태효과를 보호하려 하므로 이를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역사상 미국에서는 양극화가 진행되면 이에 저항하는 사회 운동이 터져 나왔으며 이제 그런 저항은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라 말하고 있다. 마태 효과와 그 결과에 대해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21세기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에 맞선 올바른 선택과 행동이 생겨나리라 저자는 말하고 있다. 책에는 ‘나쁜 사회’란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는데 역자가 왜 번역서 제목을 ‘나쁜 사회’라 했는지 궁금했는데 결론의 마지막 페이지에 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자는, 아니 그 누구도 마태 효과가 득세하는 사회를 ‘나쁜 사회’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마태 효과’란 용어에 담긴 부정적인 의미를 우리나라 상황에서 가져오기 힘들었던 듯하다. 하지만 비약이 너무 심했다. 어쨌든 불평등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알게 해 준 책이었다. 하지만 불평등에 항거하는 저자의 주장이 너무 소극적이어서 약간은 아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