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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세의 증권 중개인 사장 해리스 리처드는, 33년 동안 함께 했던 아내 에블린에게 버림받았고, 회사는 은퇴했다. 그에게는 온갖 연령대의 애인들이 있었으며, 한국여자인 리와 6달 동안 만나면서 결국 에블린에게 꼬리를 잡힌 후 그녀는 더 이상 리처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비서 콘돌리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눈치 챈 에블린의 표정과 머리카락과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젊은 할리우드 여배우들을 변호한 유명한 변호사 밥 셔먼이 그녀의 남자였다.
리처드는 밝혀야 할 신비처럼 보이는 캐나다로 떠나기 위해 <뉴욕 타임스>에 낼 광고 문구를 썼다. "백인 남자가 캐나다 여행을 함께 할 친구를 구함." 그의 은퇴소식을 듣고, 키 웨스트 레스파동 노인센터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틀 뒤 레스파동의 소개 책자를 받고부터 은퇴 생활자의 환상에 빠져든다. <뉴욕 타임스>의 목적지를 키 웨스트의 위니펙으로 바꾸고나서, 그의 광고를 본 실직 중인 화가 존존은 가족을 만나러 가는 참이라며 자동차 여행에 동승한다. 키 웨스트에 도착한 후 존존으로부터 잭슨 가족들을 소개받고, 레스파동 양로원에서 내적 평화를 만끽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에게 리처드는 애착을 갖지 못한다. 일요일마다 잭슨 집안을 방문하며 존존의 아버지 헨리를 만나러 갔고, 잭슨 성을 가진 가족연례 행사에 초대를 받는다. 그날, 존존의 조카 조에를 만난다.
조에는 M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유식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이기까지 한 22살의 아가씨이다. 몇 마디 대화 끝에 그의 한쪽 뺨에 키스를 날리고 간 조에 때문에 리처드는 밤잠을 못 이룬다. 다음날, 점차 세력을 확대해가는 토네이도의 위력으로 인해 주민들 대부분이 조지아 주로 피신했고, 잭슨 집안사람들과 레스파동 노인들도 섬을 떠난다. 리처드는 조에를 찾아낸 후 늦기전에 함께 섬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이틀 뒤, 알라바마 주에 있는 어머니 집에 들렸는데, 조에는 어머니가 기르는 고양이 여러 마리 중 한마리를 갖고 나와 찰리 채플린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조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불평을 하며 보냈다. 그녀는 욕망을 위해 만들어진 여자처럼 쉽게 흥분했고, 매일 한 번씩 관계를 갖는 놀랄 만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리처드에게는 퍽 힘든 일이었으며, 그녀의 과도한 관능은 슬플 때조차 섹스로 위로받기를 바랐다. 그나마 스크래블 게임이 조에의 관심을 섹스로부터 돌릴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조에는 모든 여자들을 질투했다. 심지어 그의 딸 매디까지도.
노루가 자동차 바퀴 밑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멈춰선 가운데 조에는 한 경관으로부터 체포된다. 산타 바바라인 그곳에서 수의사 레나토를 만나 노루를 치료해주고 정착할 곳까지 마련해준다. 그녀의 영주권은 가짜였고 바하마 제도로 추방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리처드는 조에의 석방 조건으로 엄청난 보석금을 요청받고 그녀는 풀려난다. 조에의 손에는 늘 마리화나와 독한 술이 쥐여 있었다. 리처드는 엄청난 나이때문에 몇번씩 조에와 헤어질 결심을 굳히지만 거듭 보고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러던 중 리처드는 예순 살이 되고, 조에는 리처드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산타 바라라를 떠나 캐나다 땅에 들어서 타조 사육업자 알프레드를 만난다. 조에는 쾌활한 이곳 사람들과 시골생활에 잘 어울렸다. 또다시 조에와 자신의 은퇴생활로 인해 작별편지를 쓴 리처드는 조에에게 바로 들키고 조에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게 되면서 다시 출발을 결심한다. 그의 아파트에 안착하고 난 어느 날, 살사 클럽에 간 조에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고 리처드와 함께 했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는 에블린의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끊고 나서 거실 한가운데 서 있는 조에를 발견하고, 이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엄숙한 약속을 한다. 아기를 낳자는 조에에게 보스턴테리어를 데려와서 딘 마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딸 매디는 남자친구 오언의 아이를 낳는다. 그것도 쌍둥이 남자아이를. 리처드는 불안이 사라지고 행복감이 밀려드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조에를 위한 꽃>을 읽기 전에 저자 안토니아 케르의 이력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17세 되던 해부터 4년에 걸쳐 썼다는 이 작품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지 일주일 만에 책으로 출간하자는 전화를 받았고, 내용상의 어떤 수정도 요구받지 않았으며 일사천리로 책이 출간됐다고 한다. 스물 한 살 나이의 작가가 육십 세에 이른 남자를 주인공을 설정한 것도 획기적일 뿐더러 그 연령대의 사고방식과 심리상태를 이해했다는 1인칭 관점부터가 이채롭다. 주인공 리처드의 사랑스런 여인의 나이가 작가와 비슷한 연령대인 스물 두 살의 젊은 아가씨이고 같은 여자로써 그녀의 행동반경이라든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정신세계는 다소 우리 문화와 괴리감이 적잖게 들지만 적절하게 잘 버무려 묘사한 듯하다. 로드무비를 통해 여러 사람과 여러 공간을 여행하면서 삶의 의미를 조금씩 터득해가는 당차고 유쾌한 조에라는 젊은 아가씨와, 상대는 어쩐지 생뚱맞고 엇나간 느낌의 육십세 리처드의 사랑이야기라는 독특한 소재로 경쾌하고 가볍게 읽혀서 좋았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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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에를 위한 꽃은 프랑스의 젊은 작가 안토니아 케르가 쓴 소설이다. 책의 주인공은 60대 남자 리처드. 그리고 20대 여자 조에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시점은 60대 남자 리처드에 맞춰 진행된다. 불륜을 저지르던 리처드에 지쳐 새로운 연인을 찾은 아내와 헤어진 리처드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같이 동행할 사람을 찾던 중 존존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의 친척인 조에를 보게 된다. 그 후로 리처드와 조에는 같이 여행을 떠난다. 고양이 채플린도 함께.
사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이가 60이나 먹어서 불륜?! 근데 또 20대 여자랑 여행?! 하면서 컬쳐쇼크의 연속이었다. 아마 우리나라와 정서가 달라서 그런 거겠지 싶었다. 조에와 그냥 여행을 같이 할 뿐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둘은 서로 사랑에 빠지기까지 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조에가 그냥 아름다운 여자인 줄 알았는데 조에는 그것을 넘어서서 육체적인 관능미와 야생의 미까지 겸비해 리처드를 가만 내버려두지를 못하는 여자였다. 리처드는 조에와 결국은 이어지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헤어지려고도 하지만 조에는 리처드를 사랑한다고 하며 둘은 계속해서 같이 지내게 된다.
아마 이 책이 프랑스 문단에서 7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세상에 나오게 된 건 이 작가가 2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60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또한 리처드와 조에가 떠나는 여행과 글의 흐름이 지겹거나 어렵지 않고 쉽게 잘 읽힌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컬쳐쇼크도 받았지만 한 편으로는 현재와 과거의 회상을 넘나드는 리처드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건 뭐지 싶으면서도 유쾌한 소설이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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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출판사의 설명이 없더라도 읽으면서 스토리의 큰 구조는 나보코프, 다소 발랄하고 톡톡 튀는 언어적 표현은 아멜리 노통브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소설이다. 21살의 젊은 나이에 [조에를 위한 꽃]은 작가의 등단작으로써 프랑스 문단의 찬사를 받으며 기대주로 떠오르는 작품이다.
[조에를 위한 꽃]은 '여로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잘못 표현하면 지루할 수도 있는 부분을 작가의 톡 튀는 글쓰기로 그러한 면은 크게 느낄 수가 없었다.
뉴욕 맨해튼의 증권거래소 중개인으로 살아오던 화자인 리처드는 결혼 생활 속에서 아내 몰래 바람을 많이 피워, 결국은 삼십삼 년간 이어오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즈음 그의 삶에 찾아오는 회의를 달래고자 캐나다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을 통해 뜻하지 않은 친구를 만나게 되고, 처음 계획대로 가고자 했던 캐나다의 여행은 다른 방향으로 바뀌게 되면서 운명 같은 사랑 조에를 만나게 된다.
60세를 맞이하는 리처드와 22살의 어디로 튈지 모를 발랄함과 드라마틱하기까지 한 조에의 분방함이지만, 두 사람의 불같은 사랑은 시작된다. 자동차로 캐나다, 멕시코 등지를 향한 여정 속에서 이 커플의 기묘함은 주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거 숱한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익히 바람둥이 임이 입증된 리처드이지만 나이로 인해 받게 되는 육체와 정신의 피로는 어느새 조에에게서조차 느끼게 되고, 결국은 에너지 넘치는 그녀 곁을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 곁을 또다시 찾게 되고, 조에를 위해 그의 사랑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조에를 향한 리처드의 사랑에 대해서 허망함도 갖게 되고, 그의 기이한 생각이나 행동에서 문화적으로 갖게 되는 불편함도 느꼈다. 딸보다 어린 여자를 사랑할 수 있고,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줄 수 있다는 자체가 사랑에 있어서 내가 너무 속물인가 생각되기도 했지만 내 편견은 어쩔 수 없었다.
헐리우드의 연예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 다소 가볍게 읽어질 수 있는 소설이지만, 리처드를 통해 삶에서 느끼게 되는 노년의 회환이나 생각들은 21세의 젊은 작가 답지 않은 깊이 있는 통찰력도 갖추고 있어 그러함을 극복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조에를 위한 꽃], 한 편으로 작가의 많은 면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작가의 톡톡 튀는 소재나 표현이 더욱더 잘 다듬어진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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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남자가 갓 스물을 넘긴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져 길을 나선다. 단순히 소재만 놓고 본다면, 여성 독자에게는 도둑놈 심보를 가진 남자 주인공에 대한 혐오감으로, 남성 독자에게는 일종의 외설적 기대감으로 다가올 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저자는 당연히 남자’라고 단정지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전자의 입장에서 종종 심기가 불편했었다. 실제 저자는 20대 초반의 여성이다. 나는 책 뒷편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저자가 여자임을 알고서 놀라운 반전에 휩싸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안토니아’라는 저자의 이름이, 책 맨 앞 표지에 쓰인 ‘21세기의 아가씨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자연스러움’이라는 문구가 명백히 여자임을 밝히고 있었는데, 나는 어쩜 그리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까? 분명 저자의 이름도 책 표지도 읽었었건만, 미스테리다. (때로는 무심코 읽는 행위가 뜻하지 않는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기도 한다는 오늘의 교훈을 남긴다.) 저자의 성별이 밝혀진 순간, 남자의 관점으로 바라본 이야기가 삽시간에 여자의 시선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늙은 남자가 애욕에 찬 눈빛으로 철부지 어린 소녀를 바라보던 것이, 다시보니 청춘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여자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남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시선의 방향이 틀리자 내 머리 속 소설은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화자가 리처드(중년 남자)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읽는 내내 그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췄던 나는 이제 조에(어린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정작 저자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화자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눈을 통해 비춰지고 있었다는 것(멍청하게 나만 몰랐던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조에는 저자의 분신이다. 실제로 나이도 같고 그녀에겐 이 작품이 처녀작이기에 나는 이러한 나의 짐작에 늦었지만 꽤나 확신을 갖고 있다. 그렇담 예순의 중년 남자 목소리를 빌어 저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녀는 여자를 말하고 있다.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동안 문득 문득 나를 사로잡았던 문구들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린다. 남자의 시선으로 접하기에 조금은 불편했던 문구들이 이제야 온전한 이해로, 동질감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여자란 무엇일까? 여기 몇몇 문구들을 통해 스물 둘 그녀의 귀여운 외침을 들어보자. 나를 사로잡는, 그리고 여자의 아름다움을 마주한 남자의 전 존재를 삼켜버리는 원초적인 감정들을 내가 그리 오래 억제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행복이 그 슬픈 역설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불행한 여자일 뿐이었다. (75) 갓 세상 밖에 나온 여자는 한없이 여리다. 동시에 세상 물정을 모르기에 두려울 것이 없다.일체의 거침이 없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무한히 아름답고 또 한편으론 처절하게 아프다. 여자는 변화무쌍한 감정의 폭풍 속에서도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기 때문에 마냥 행복하다. 자아도취에 빠져 감정의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그녀는 마치 자신이 화려한 연극 속 여배우인양 살고 있다. 거짓된 몸짓에, 극적인 감정에 취해 있는 그녀에게 ‘행복이 주는 슬픈 역설’은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 무지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시기, 즉 이십대의 여자는 그래서 빛이 난다. (또, 이 유한한 빛이 남자를 ‘어린 여자’에 매료시키지 않나 싶다.) 나는 남자가 길들일 수 없는 유일한 동물을 향한 보호본능에 사로잡혔다.(76) (남자만큼이나) 여자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덩어리다. 저자를 남자로 오인하고 있는 동안에는 소유의 대상으로 여성을 치부하는 것만 같아 이 문구 자체가 주는 매혹적인 느낌을 온전히 취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저자가 여자임을 알게 된 순간, 동일한 문구는 매혹적인 느낌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일종의 통쾌함을 선사했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존재로서 여자가 뿜어내는 치명적 매력, 그리고 그 힘에 사로잡힌 남성을 약자로 두고 군림하는 일종의 우월감이랄까. 어쩌면 남자에게 ‘길들일 수 없는 유일한 동물’을 자청하고 있는 것이 여자 스스로가 아니지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그렇게 보여지고 싶은 것이 그녀의, 그리고 우리들의 욕망이 아니겠는가. 위로가 될 만한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나는 저녁이 되면 산타 모니카에 가서 ‘주술 의식’을 하자고 제안했고, 그녀는 받아들였다. 캠프파이어가 좋아서라기보다,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나와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나의 헛된 시도를 동정했기 때문이었다. (148) 여자는 알고 있다. 남자는 결코 자신의 온전한 행복을 실현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을. 아무리사랑하더라도 여자와 남자 사이에는 좁혀질 수 없는 틈이 있다. 그 틈이란 것은, 죽었다 깨도 결코 상대에 의해 채워질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그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착각에 휩싸인다. 그래서 조르곤 한다. 이 빈 공간을 채워달라고. 나는 불행하다고. 사랑에 빠진 남자는 안간힘을 쓴다. 자기라면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무엇이든 하겠노라고. 그런데 정작 그들은 ‘무엇이든’의 존재를 모른다.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위해 안간힘을 쓰노라면 그가 봉착하는 결말은 언제나 비극이다. 그 채워질 수 없는 틈이 만들어낸 절벽 앞에서 소통의 단절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끝에 다다른 순간 그와 그녀에게 이별 이외 주어진 선택권이란 없다. 채워주기를 갈망하지 않아야, 나라면 채울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아야만 지속될 수 있는 것이 그와 그녀의 관계가 아닐까. 『조에를 위한 꽃』은 피워오르려는 꽃망울 같다. 새빨간 립스틱 같다. 강렬한 레드다. (실제로 책표지가 빨갛기도 하다^^) 자극적이고 감정적이다. 또, 즉흥적이고 격정적이다. 가슴 속에 도발적인 카르멘을 품고 사는 여성이라면, 혹은 롤리타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남성이라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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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 [조에를 위한 꽃] 안토니아 케르, 다산책방,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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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 조에를 위한 꽃이 어떤 꽃일까?라는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처음부터 책제목에 대한 의문을 품었어야 맞는데 난 책을 다 읽고나서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장미일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지만 그 꽃이 어떤 꽃인지 책속에서는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책제목에 붙어있는 불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에에게 받치는 꽃'즉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꽃'정도로 해석한다면 이 제목으로인해 골똘히 생각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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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눈길이 간 작가의 이름.... 순간 머리가 멍했다. 여자의 이름.... 다시금 생각난 이벤트 응모때 보았던 22살의 여자 작가라는 점..... 책 속 주인공인 60세의 남자를 22살의 여자가 표현해 냈다는 점에 잠깐 멍했다. 지금 까지 읽은 많은 소설중 젊은 여자가 지은 소설들은 거의 여자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60대의 남자주인공 시점과 20대의 젊은 여자 주인공.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고 다시금 하게 되었다. 60세에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리처드와 항상 자유를 갈망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22살의 조에. 그들은 빛과 같은 속도로 사랑에 빠졌고 서로를 무한히 사랑한다.
언제 그 사랑이 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사랑을 이어가다가 결국엔 여행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리처드의 아파트에 둥지를 튼다.
놀라웠다.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는 우울증에 걸린 60대의 심리와 시점. 생각들.... 이책을 쓰기 위해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 수긍이 갔다.
하지만 역시 문화의 차이일까... 프랑스 소설을 많이 접해 보지 않은 나는 초반에 조금 어려움을 느꼈다. 문체의 차이와 시점들의 변화가 우리나라나 일본의 소설과는 많이 달라 조금은 책 읽는 속도에 더딤을 느꼈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갈 수록 알수없는 묘한 매력에 사로잡혔고 결국은 엄청난 속도를 내며 읽어내렸다.
한치도 예상할수 없는 조에. 자유를 갈망하며 불쑥 떠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항상 불안함과 우울에 시달리는 리처드. 조에를 위해 조에를 떠났다가 다시금 조에의 중요함을 깨닫고 다시 돌아온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다. 서로 옆에 있을때는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가 옆에 없을때에야 그들의 중요함을 깨닫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책에서도 리처드는 조에를 떠나고 난 후에서야 때늦은 후회를 하고 다시금 조에를 찾아 돌아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때늦은 후회를 하고 난후에는 쉽사리 돌아가질 못한다.
아름다운 사랑은 행복하게 끝을 맺는다. 아슬아슬한 사랑이지만 아름답게 끝나는 결말에 웃음을 지으며 책을 덮었다.
예전에 이 비슷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의 실제 연애사를 적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사랑엔 역시 장벽이 없구나 하는걸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현재 하고 있는 사랑에 위기를 느끼고 있다면 한번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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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에를 위한 꽃 -안토니아 케르 지음
"내 인생에 누군가 들어왔어요."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살아온 아내가 말한다.
곧 60이 되는 늙은 남자 리처드는 어느날 은퇴 후 지낼 수 있는 호화로운 노인센터에 관한 전화를 받고, 한동안 그곳에서 지낸다. 그곳에서 존존의 가족모임에 초대를 받고, 가족모임에서 운명의 여인 조에를 만난다. 그녀는 존존의 조카로 아직 피어나지 않은 햇병아리가 공작처럼 성장해가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리고 그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다. 그리고 조에는 그의 박식함에 반해 둘만의 긴 방랑의 여정이 시작된다.
고작 22살인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반면에자신은 시들어가는 꽃처럼 어두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그녀를 부담스러워하고 걱정하지만 한시도 그녀를 보지않고는 견딜 수없다. 그리고 그녀 또한 자신을 떠나려하는 그의 시도를 느끼고 불안해한다.
지성을 탐하는 여자 조에, 여자의 육체에 흔들린 남자 리처드
아내인 에블린과의 33년간의 결혼생활에서 수시로 여러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고도 수컷들은 나이를 먹어도 여자를 찾는다는 수컷 본성을 합리화하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나, 아내와의 이혼 후 삶과 인생에 대한 회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다. 그리고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의 이율배반적인 남자의 모습도 볼 수있다.
젊은 아가씨가 쓴 소설이라고는 믿기지않는 육십대 남자의 심리가 돋보이는 프랑스 문학 2010년 프랑스문단을 사로잡은 젊은 신예의 작품이라고는 하나,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아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다.
이 글은 다산책방에서 무료로 제공된 도서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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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가리의 책을 읽으려고 산적이 있었다 그의 명성이 너무도 자자하여 그리고 제목도 너무 근사한 책이기에 하지만 사두기만하고 아직도 읽어내질 못하고 있다 프랑스 소설은 너무도 너무도 내게는 어렵다 내 이해력이 부족해서 인지 그들의 문학세계가 너무 오묘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책 조에를위한 꽃도 참 어렵다 60살 노인과 22에 어린 아가씨의 로멘스라는 것도 선뜻 이해는 가지 않지만 문학적인 관점에서 애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어렵다 이책의 표지에는 톡쏘는유머감각과 더불어 진지한 고민과 통찰이 담긴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무엇이 유머인지 그것또한 아리송송하다, 어린 아들에게 마리화나를 넣어서 쿠키를 구워주었다는 리처드의 엄마도 참 이해가 않된다 누가 이 작품을 해설을 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와는 사뭇 다른 결혼관으로 그들은 결혼을안하고 30여년을 살았고 60이 다된 나이에도 다른 사랑을찾아서 서로에게 바이바이 인사하고 쿨하고 헤어진단다, 그리고 이십대의 젊은 아가씨에게 새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조에와 또 여행을 떠난다,우리 동양의 사고방식과는 참으로 다르기에 뭐라 할 말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들의 자유분방한 삶을 동경하지는않는다 조금 의아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그들도 우리의 삶이 어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만 처다보고 사는삶, 모든 프랑스 인들이 이렇게 성에 자유분방할까 ,,그렇지 않을거라는 일말에 기대도 있다 표지의 도발적인 아가씨는 내게 그렇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참 어렵다 그들의 삶도 이렇게 조에를 위한 꽃처럼 어려운 것일까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