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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몰락을 예견하는 책들의 다수 출간. 이것이 최근의 주요 흐름이다. 비전문가의 눈에도 미국의 경제, 문화, 군사적인 면에서의 이상 현상들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물론 미국의 앞날에 대한 의견은 세계를 호령했던 강대국들이 그랬듯 미국도 흥망성쇠(興亡盛衰)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보는 쪽과, 미국 자체에 위기를 극복할 잠재력이 충분하기에 비관적이지는 않다고 보는 쪽으로 나뉘는 것 같다. 원제가 Empire of Illusion인 ‘미국의 굴욕’은 퓰리처상 수상작가이자 현역 언론인인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 1956 - )가 큰 맘 먹고 쓴 미국 비판서이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은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며 이런 흐름을 가로막기는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대단히 어려운 과제라고 단언했다. 저자가 나눈 미국의 환상은 지식의 환상, 사랑의 환상, 지혜의 환상, 행복의 환상, 미국의 환상 등이다. 미국이 보인 환상의 병증(病症)은 사실 한 둘이 아니다. 미국은 이미 빚을 얻어 너무도 호사스러운 잔치를 벌이면서도 누구도 비용 지불을 걱정하지 않은 과도하게 낙관적인 파티(2008년 경제위기)를 즐겼고 자유시장경제라는 맹신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재정과 무역 양자에서의 가공할 적자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다른 모든 군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광포한 군국주의 국가이다.(본문 238 페이지: 미국은 전 세계에 761 개의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가계, 국가할 것 없이 ‘가불(假拂)경제’ 체제에 빠져 허덕이고 있고 인구의 20%가 정신질환을 앓았다.(2009년) 대중은 프로레슬링과 섹스에 빠져 대면하기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고 환상적 만족을 얻고 있으며 소비중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지구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포르노그래피를 사랑이라 믿으며 엘리트주의와 돈에 물든 교육이 높은 문맹률과 저급한 대중문화를 낳고 있다. 대중 매체의 담론 수준은 10살 나이에 맞추어져 있다. 부와 권력은 대물림되고 있고 부패는 홍수를 이루고 있다. 모럴 해저드도 심각하다. 아무리 낙관적인 사람도 미국이 건국 초기에 지녔던 청교도적인 가치관이 자취를 감추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경제, 금융 정책, 저급한 대중문화를 교본으로 삼는 나라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나는 ‘미국의 굴욕’을 읽기 전까지 미국의 프로 레슬링을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쇼 비즈니스와 해프닝 정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때의 이슈와 흐름에 따라 구체적인 시나리오에 기반한 퍼포먼스로 대중들의 현실감각을 무디게 하고 대면하기 어려운 현실을 잊게 하는 마취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의 환상편에서 저자는 포르노그래피 산업의 비참하고 충격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본문에 의하면 적나라한 드러냄을 특징으로 하는 포르노는 여성을 상품 및 기계로 취급하는 것을 통해 마약, 살인, 강간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비판적 지식인인 쥘 리포베츠키의 주장은 심각한 낙관주의이거나 무지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제3의 여성’이란 책에서 “포르노그래피는 남성우월주의의 찬사가 아니라 남성 리비도의 환상을 과장하여 보여주는 눈요깃감일 뿐”이며 “포르노그래피는 여성해방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지만 그것을 방해하지도 않는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조작된 것, 거짓인 것, 연극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것, 진정한 것, 자연발생적인 것을 대체했으며 결국에는 현실 자체가 무대기술로 전락했다고 분석한 다니엘 부어스틴의 논의를 소개한다. 미국의 유명인 문화의 중심에는 죽음에 대한 부정 즉 불멸에 대한 환상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수많은 유명인들을 숭배하는 다신교 사회이다. 저자의 논의에 의하면 미국은 이미지의 포로가 된 사람들의 나라이다. ‘미국의 굴욕’은 저자의 통렬한 자기 비판이다. 저자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문화는 멸망한다고 단언한다. 환상의 문화는 곧 죽음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가장 위험한 적은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타락한 이데올로기를 파는 자들이다. 이는 엄청난 빈부격차와 표리를 이루는 카지노 자본주의를 낳았다. 문제는 가장 똑똑한 대통령인 오바마도 군사대국화, 군산복합체의 구조로 이루어진 미국의 시스템을 상속받은 사람일 뿐이라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만들어낸 의식과 동일한 수준의 의식에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세계를 새롭게 보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는 “문명이 만든 병은 절대 문명이 못 고친다.“는 한 한의학 박사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 이제 (미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근본적 차원의 자기성찰과 실천일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클 것이다. ‘미국의 굴욕’은 내가 읽은 미국 관련 책들 가운데 가장 속시원한 책이다. 저자의 진정성을 높이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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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론은 인간이 일생 동안 지하 동굴에 묶여 있어 어둠밖에 모른다고 상상한다.인간의 시선은 동굴 벽에 머물러 있고, 그 벽 위에 지상의 세계가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람들은 명멸하는 그림자들의 현실이 이라고 믿는다. 만일 한 죄수가 동굴에서 풀려나와 햇볕 아래로 나온다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거라고 의미가 곧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다. 그리스 철학자의 이 비유가 오늘날 거대공용 미국을 비롯하여 자본주의를 체택하고 있는 나라들에게 절묘하게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의 엘리트집단,정치권력자,정부를 휘어잡은 기업가들,문화창조자들에 의해 미국인들은 환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그들의 환상은 거들의 주거공간, 뿜어내는 뉴스,연예인을 비롯 영웅들,비현실적인 드라마와 방송채널에 꽁꽁 묶어둔다. 1%의 권력들은 99%의 인간의 삶을 동굴 벽에 머무러게 하고 있는 셈이다.
정직,투명성,나눔의 미덕은 유명인 문화의 도덕적 허무주의의 프로그램인 남들의 굴욕,고통,약함,배신을 훔쳐보는 은밀한 관음증을 자극하는 리얼티 프로들이 대중들을 철저히 왜곡하고 가두워둔다.
기득권은 플라톤의 동굴의 극대화 시킨다. 그것이 유명인 문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일반대중을 도덕적 진공상태로 빠드리는 것이다. 외모,효용,'성공'하는 능력 외에는 모든 것이 무가치하며 유명문화에서 가장 큰 성취는 부,성적 정복,명성이다. 어떻게 손에 넣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동굴에 갇힌 대중들은 이 환상에 열광하며 무지개를 쫓게 만든다. 영화 스타 숭배가 한 사람의 독특한 아우라(aura)를 유지해주는 것이 아니라 유명인의 매력 즉 상품의 거짓된 매력을 유지해주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미국인들을 비롯 대다수 자본주의 체제하의 대중들은 플라톤의 동굴 속 어두운 벽에 비친 셀룰로이드 그림자에 의해 통제되고,조작되고,주의를 빼앗긴다. 유명인 문화의 환상은 단지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대중들의 저항을 막기위해 철저하게 고안된 것이다.
미국인의 약1/3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능적 문맹인이거나 간신히 읽고 쓸 줄 아는데 매년 200만명 이상 증가하고 있다. 일생의 주기동안 꼬박 9년, 하루 약 7시간을 친숙하고 편안한 상투 문구들과 자극성 이미지들로 구성된 언어의의 환상의 굴레인 TV앞에 매달리며 인생을 낭비한다. 이들을 조작하고 움직이는 자들이 바로 상위 1%의 권력자들이다.
환상문화는 대중들에게서 환상과 진실을 구별할 지식과,언어 도구들을 강탈함으로써 번성해간다.
2012년은 전세계가 선거의 해다. 선거운동의 화려한 수사는 현실을 외면하고,미래에 대한 기만적인 약속과 국가의 본질적 위대함을 들먹인다. 선거운동은 천편일률적이고, 지루하고 상투적인 표현만 되풀하며 유권자들을 미혹하고 감성을 휘어감으며 최고의 권모술수를 발휘한다. 벤저민 드모트가 쓰레기정치라고 묘사했듯이,기회가 있을때 마다 사회경제적 격차와 그 밖의 차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을 말살하려 앙탈까지 부리는자들이 피선거권자들이다.
정치인들은 정치연극과 소비문화의 가장 기본 기술인 책략의 도사들이다. 정치지도자들은 국민과의 가짜 친밀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대충 선전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일관성과 감정적 호소력으로 속임숙에 가장 능한 자들이다.
역대 정치적으로 성공한 자들은 가장 설득력 있는 환상을 창조한 사람들임에 분명하다.아이러니 하게도 앞에 언급했다시피 진실과 허구를 더 이상 구별하지 못하는 대중은 결국 환상을 통해 현실을 해석한다. 대중들에게는 현실이 악화될수록, 이를테면 압류와 실업이 급증할수록 사람들은 환상에서 피난처와 위로를 찾는다.
섹스는 두 파트너의 공동 행위로 정의한다면, 포르노그래피는 섹스를 촉진하지 않는다. 그것은 친밀성과 사랑을 배제한 혼자만의 자가 흥분을 촉진한다. 포르노그래피는 남을 이용해 혼자 오르가슴에 이르는 행위를 다룬다. 라스베이거스는 환상 위에 세워진 도시답게 포르노를 찬양한다. 그곳은 퇴폐적이고,계획적으로 타락한 미국의 심장이다. 나머지 하나는 월가의 심장이다.
미국 전체가 물질적 쇠퇴,문닫은 가게들과 공장들,붕괴되는 기간시설, 늘어가는 가난에 짓눌려 부서지고 있는 동안에도, 라스베이거스의 거대한 유흥가와 카지노들은 탐욕과 부도덕의 기념비로서 사막 한가운데에서 눈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다. 금융위기속에서도 더 더욱 강한 환상의 빛을 분사하고 있다. 고정관념을 현실처럼 경험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라스베이거스가 제격이다.
포르노는 사랑이나 에로티시즘 이야기가 아님을 대중들은 각성해야한다. 그것은 권력과 돈 이야기다. 2006년 포르노 수입이 970억 달러에 달한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이베이, 야후,애플,넷플릭스, 어스링크의 수입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입이다. 제너럴 모터스가 소유하고 있는 DIREC TV는 미국 가정에 매달 4.000만 건 이상이 포르노를 살포한다. 정부를 통제하는 기업의 막강한 배경이 돈벌이 작업을 하고 있는 사실을 각성해야한다. 성착취의 잔인성과 지배를 미화하는 포르노는 기업적인 권력,제국주의적인 권력에서 잉태한 질병이다.
미국의 환상을 대안적으로 비판하는 지식인들, 노엄 촘스키,하워드 진,데니스 쿠치니크,랠프 네이더 같은 돈에 물든 주류들에게 비판적 지성의 죽음으로 내 몰고 있다.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 소위 엘리트 집단들은 강의실에서 철저히 금융과 정치권력의 중심지와 스마트하게 연결되어 있다. 엘리트 대학들은 정직한 지적 탐구를 경멸하며 1%의 상위그룹을 위해 조직,테크놀로지,사리추구,정보시스템만이 가동될 뿐이다. 교육은 정치 형식들의 이면에서 움직이는 힘들의 사회작용에 대해서는 그 어는 국가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느다. 만일 대중들이 정치 형식들의 이면에서 움직이는 힘들의 사회 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중들은 더 무자비하게 기업 권력에게 즉 소비사회 특유의 계략과 유혹 대신 적나라한 억압을 통해 권력을 휘두르는 힘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속의 그림자에 갇혀 더 이상 빛을 구경하기를 거부하듯이, 신문을 읽고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이면을 읽어내는 힘을 길러내는자만이 플라톤의 암흑같은 그림자 감옥에서 탈출하여 빛을 볼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권력의 마조히즘은 사디즘문화를 더욱 더 리얼하게 지배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에 대한 국가의 통제시스템인 코포라티즘을 더 강화시킨다. 아쉽게도 일반 대중들은 권력이 만들어낸 도구에 함몰되어 비좁고 제한된 게토로 물러나 스스로 눈을 가리고 정경유착이 진화된 법인형 국가의 치명적인 상부 구조를 보지 못하는 플라톤의 동굴의 그림자에 굳건히 갇혀있다.
아쉽게도 학교교육의 현실은 공교육과 사교육은 학생들에게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는 법을 교육하기보다는 금전적인 성공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있다. 상위1%의 공부잘하는 친구들의 들러리 도구로 가방을 끈을 둘러메고 학교에 등교하는 90%의 학생들은 결국 일반 대중들이 죽을 때 까지 은행가들에게 빚을 갚느라 종살이하듯 경쟁의 도구로 따라 다닐 뿐이다.
노동자 계급과 엘리트 계급의 차이는 혼자서 헤엄쳐 가야하는 것의 차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환상을 기 권력자들은 노래한다. 그들만의 잔치가 곧 10:90의 파레토 부의 법칙을 굳건히 한다.
상당한 금전의 힘은 거의 틀림없이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 갈수 있음을 특권힘; 예일대와 미국의 엘리트 대학들, 입학의 대가: 미국의 지배계급은 어떻게 돈으로 엘리트 대학을 들어가는가, 그리고 누가 문 밖에 남는가 를 쓴 조지프A.소어스와 대니얼 골든은 분명하게 풀이해준다.
전세계 엘리트 학교들의 천박한 부자 숭배는,아무리 공익을 들먹이며 고상하게 수사법을 구사한다고 해도 학생들의 눈에는 훤히 들여다 보인다. 목적으로 이끄는 삶은 돈을 버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 교육기관들은 수십억 달러의 기부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기증과 끊임없는 기금 조성 캠페인에 열을 올린다. 이 끊임없는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유한 동창생을 생산하는 것이다.
조폭과 정치권력자 그리고 기업의 CEO의 차이는 무엇이든가? 조폭하면 대중들은 나쁜 사람들, 깊이 대상이다. 그러나 대중의 정신과 착취를 하는데 있어서 가로챌 수 있는 것을 머리의 힘으로 가로챈다고 해서,주먹의 힘으로 가로채는 것보다 덜 사악한 것은 아니다.는 사실을 대중들은 깨달아야 한다.들은
긍정심리학이 내 놓은 허구와 조작된 행복, 문제를 만들어낸 의식과 동일한 수준의 의식에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하는데, 일반 대중들은 끌어당김의 법칙과 자기계발서의 긍정과 꿈에 함몰된다. 좀처럼 가시지 않는 깊은 소외감 그리고 거짓 열정과 쾌활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끊잉없는 압박은 진실한 인간관계를 파괴하는데, 해고당하거나 병이 들면 아무리 긍정적인 태도를 지녀도 실제로 효과가 없을 거라는 두려운 느낌은 애서 잊어버리고 억눌러야 한다.
외부 현실이 어떻든 긍정적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사람은 어딘가 병이 든 사람이다. 실패하기를 배우지 않는 사람은 배우기를 실패하는 사람이듯이, 대중을 긍정으로 이끄는 기득권적 사고는 포르노와 엘리트 교육의 산물이다.
정부를 인질로 잡고 있는 기업 권력은 강력한 상징물,언어들은 자유를 옹호한다고 대중들에게 주입시키지만 자유를 자유시장으로 정의한다. 지배계급은 무한한 힘과 권력의 부조리한 환상 때문에 현실을 보지 못한다. 절대 다수의 대중의 아픔을 아우러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자신이나 가족을 부양할 최저 임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을 왜곡한다.
2017년이 되면 미국인의 지출하는 돈의 5분의 1이 의료비로 지출된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파산의 절반은 일반 가정이 의료비를 갚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엄청난 실업,파산,부동산 가격의 하락,상점과 공장의 폐업이 미국전역을 쓰나미처럼 휩쓸 것이다.
기업은 인간적인 삶,공익,기업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설계된 집단이다. 기업(법인)의 정관의 기업 임원들에게 주주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하도록 법률적 의무를 부과한다
미국 법률은 기업도 개인과 똑같은 법적 권리를 갖는다. 그들은 후보자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한다. 그들은 워싱턴에 상주하는 35,000명의 로비스트들과 각주에 있는 수천 명의 로비스트들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기업 친화적인 법률을 제정하고 규제 기관들을 없애게 한다. 그들은 방송,인터넷,신문,잡지에 자기네 상표를 친근한 얼굴로 홍보하는 광고로 가득 채운다. 그들에겐 거대한 법률 팀, 수만 명의 종업원, 국민이 그들의 용무나 소송에 주제넘게 나서는 것을 막아주는 수십 명의 엄선한 공무원이 있다.
이들은 지배계급을 보장 받기위해 성장과 번영의 환상을 조장하기 위해 통계 수치와 데이터를 조작한다. 그 모든 권력은 국민의 세금으로 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철저히 지배할 뿐이다.
일반 대중이 피라미드 구조의 상층 지배계층에 진입하는 것은 우사인 볼트가 100미터 세계 신기록을 세우는 일 보다 더 벅찬일이다. 지배계층은 현실을 차지자하는 대다수의 대중들이 추악한 현실에 빠져 들 수록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 유명인들의 몰락,뒷공론,잡동사니 정보를 꾸미고 조작한 지저분한 의사사건들에 둘러쌓여 문화의 방탕한 술잔치의 나락에 빠져든다.
미국의 굴욕이 곧 축소된 우리의 굴욕이다. 정도의 차이가 없이 거의 유사하다. 권력의 두 얼굴을 우리 대중은 보여지는 껍데기에 농락 당했다면 그 나머니 숨겨진 얼굴을 알아야만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 헤지스가 지배계층의 두 얼굴에 가리워진 비밀을 우리 대중들에게 고발한 자본주의의 꽃 뒤에 숨어있는 독버섯을 공개한 교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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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엘리트 계층을 생산하고 배출하는 교육기관들의 탓도 미국사회를 좀먹고 있다고 생각한다.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부터,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붕괴,보편 의료보험의 부재,중동에서 겪고 있는 제국주의 군대의 패주에 이르기까지 실패한 미국의 배경에는 하버드대를 비롯한 유수의 인재들이 다수를 위한 정책과 실행이 아닌 소수를 위한 정책과 실행이 빚어낸 결과이고 이들은 정직한 지적 탐구를 경멸하고,그것은 본질상 권위를 의심하고,지극히 독립적이며,때론 파괴적이기 때문으로 보여진다.즉,소심하고 겁먹고 혼란에 빠진 대중,볼거리와 오락만을 제공하는 선전과 미디어 시스템,초월적 가치를 전달하거나 개인적 양심의 능력을 육성하지 않는 교육제도가불편한 미국의 현주소일 것이다. 어느 나라나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과의 그럴 듯한 친밀감을 만들어내고 부와 명예에만 치중하고 눈이 멀다보니 진실로 유능하고 성실하며 정직할 필요가 없다고들 스스로 양심을 속이는 것이다.정치가들의 정치 연극이 대다수의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는 정치 도구들을 교묘하게 양산해 내고 있으며 돈과 물질,성적(性的)인 정복을 우위에 두고 기업을 이끄는 재력가와 손을 잡고 재력의 힘에 빌붙으며 정치의 생명과 명예를 유지하려 하려는 것이다.이래저래 힘없고 선량한 대다수 국민들만이 생채기를 입을 뿐이다.미국이 안고 있는 지식,사랑,지혜,행복,미국은 그저 커튼 속에 가려져 밀실에서 모의하고 기획되며,그럴 듯한 구호와 외침으로 대다수 국민들만 무지개 빛 환상을 쫓아가게 하는 꼴이다.사회가 이분법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한국도 미국과 비스무레한 점이 많다고 생각이 든다.말 그대로 소수의 권력과 금력에 의해 대다수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그래도 진실은 있는 법이고 희망을 버리지 않기에 대다수는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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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무이한 초강대국으로 세계를 지배를 하고 있는 나라인 미국의 문화 현상을 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보여준다. 1. 지식의 환상 많은 청춘들이 대학에 입학을 하고 실제적으로 글을 읽을수가 있는 사람들의 범위는 많아졌지만 그러한 현상속에서 감추어진 진실을 들어내서 말을 하고 있는데 많은 미국인의 정신을 만들어 내는 방송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미국인들이 얼마나 문맹의 모습을 간직을 하고 있고 글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알려는 모습이 없는지를 알려준다. 프로 레슬링과 버라이어티쇼를 예로 들어서 보여주고 있는데 두가지의 프로그램들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뇌리에 얼마나 많은 환상을 안겨주고 그들의 머리가 단순화가 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면서 글에 감추어져 있는 진실을 파악을 할수가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눈으로 보여지고 귀로 들려오는 시청각적인 문화에 길들어서 자극만을 주는 세계속으로 자신들을 몰아넣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자극적인 프로그램의 난립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의 문제도 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살수가 있는 공간이 갈수록 혐소 해지면서 사람간의 관계가 아닌 자신의 문제에만 침작을 하면서 개인주의로 흐르고 있는데 개인들이 즐길수가 있는 문화가 적다 보니까 대체재로 방송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많은 시청자들을 모아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말초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환상을 사람들에게 안겨주어서 현실을 잊게 만드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것 같다. 2. 사랑의 환상 미국의 법으로는 포르노가 불법이 아닌 합법이고 그러한 영상물을 제작을 하는 것이 많은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이 되는데 과거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내고 테이프를 구입을 하여서 시청을 하여서 간단하게 많은 이익을 얻을수가 있었지만 현재는 인터넷을 이용을 하여서 공짜로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자신의 행위를 찍어서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등 예전과는 다른 사업환경으로 인하여서 포르노를 제작을 하는 사람들도 더욱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게 되었는데 영상에 등장을 하는 장면들은 현실이 아닌 환상속의 장면이라는 사실을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지만 영상 시대를 맞이 하면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더욱 자극적인 영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자신이 보는 영상을 실제로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성범죄가 늘어나고 포르노를 촬영을 하는 배우들의 처지도 갈수록 나빠지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포르노의 범람으로 이라크의 교도소에서 벌어진 추행사건등을 설명을 하고 있는데 계속하여서 자극적인 영상을 보면 그것을 현실로 인지를 하는 부작용이 발생을 하는데 그런 부작용이 어떠한 모습으로 현실에 등장을 하고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준다. 3. 지혜의 환상 과거의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자본을 이용을 하여서 교육기관에 투자를 덜 하던 시대에는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연구를 하고 연구결과를 실생활에 적용을 하는 방식이 유행을 하여서 많은 학문적인 성과를 얻을수가 있었지만 자본가들의 자본이 학교로 들어오면서 학교의 교육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모든것을 자본가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하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학생들을 사회로 배출을 하여서 그들이 많은 문제를 야기를 하면서도 해결책을 만들어 낼만한 지식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자본가들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고 그러한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기업에 진출을 하여서 많은 월급을 받는것을 나쁘다고 말을 할수는 없지만 순수하게 학문을 연구를 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말을 할수가 있는 인재를 만들어 내는곳이 대학인데 너무나 많은 대학들이 학문을 연구를 하는 학자가 아닌 배운것을 그대로 쓸수만 있는 획일적인 학생들을 배출을 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서 사회의 지도층으로 사람들이 진출을 할수가 있는 통로를 막고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운 현상인것 같다. 4. 행복의 환상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를 해줄것으로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주는 학문이 유행을 하고 있는데 사회에서 생활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문제들은 긍정적인 사고도 필요하지만 부정적인 사고도 필요하고 그러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수가 있는데 획일적인 사고가 지배를 하는 사회는 공동체가 가질수가 있는 활력을 읽어버리고 정체가 되는데 모든것을 긍정적인 사고만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획일된 사회는 자신의 눈앞에 닥치는 문제를 해결을 할수가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쇠퇴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있다. 사회에 많은 문제가 있고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이 될 방법이 없을것 같이 느껴지는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을 할수있는 방법을 찾을 생각은 안하고 문제를 감추고 모든것이 좋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시민들의 우민화를 불러서 지배계층이 자신들만의 체제를 확고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방향인것 같다. ※ 미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제기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많은 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인것 같다 앞으로 전진을 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을 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고 부러움을 받는 나라에도 많은 문제들이 내재가 되어있고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회가 건강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인것 같다. ※ 이벤트 당첨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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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채널을 돌릴 때마다 나오는 미국프로레슬링 경기는 다른 채널을 보기위해 스쳐가는 잠시의 순간이기는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보면서도 항상 생각하는 것이, "모두 짜고 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열광하는 것일까?"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한물 갔거나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프로레슬링을 미국인들은 왜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미국이라는 나라가 참 희한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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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 : 남에게 억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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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후 초강대국으로 세계를 호령한 미국의 치부를 까발린 비판적 언론인, 크리스 해지스의 자국비판서입니다. 자국비판서는 오마에 겐이치의 “지식의 쇠퇴”나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상은 바보가 되었는가”등 일본의 작가들이 쓴 것은 읽어보았지만 미국인이 쓴 글은 처음이었습니다. 또한 인문학에 대한 폭력에서 정치 경제체제가 파산한 원인을 찾는데 인문학을 경시하는 분위기속에서 지배계급이 미리 결정된 문제에 대한 미리 결정된 해답을 중심으로 교육과 사회조직을 조직해 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p. 174) 인문학이 경시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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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바 ‘새내기’라 불리던 시절. 나름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다고 자부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심히 부끄러운 짓을, 당시에는 거침없이 저지르고 다녔고, 그야말로 철이 없다는 것과 무지하다는 것의 엄중한 차이를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돌이켜보자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다.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처럼 시간이 결국 신(神)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그 중 지금도 ‘미국’이란 단어를 끄집어내면 자연스레 딸려오는 기억이 있다. 맞다. 바로 그 새내기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갓 생겨난 학과의, 무려 제1기라는 부담과 원인모를 자부심을 함께 지니고 있던 나는, 이른 바 ‘직속 선배’의 부재가 얼마나 큰 손실인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물론 훗날 뒤늦게 휴학-입대-제대-복학생의 수순을 밟아가며, 매일 털리는 지갑을 통해 ‘선배’의 운명과 애환을 절감케 되지만. 암튼 선배의 고마움과 ‘위대함’을 알기에는 아직 덜 자란 녀석이었다. 당시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당연히 음주가무를 통한 호연지기가 주된 활동이었고, 시를 끼적거렸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곳은 선배가 있었다. 선배의 좁은 자취방에 구겨 앉아 다른 친구의 어느 시 구절에 그만 울컥해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 벌게진 눈을 끔뻑거리곤 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당연히 떠오르지 않지만. 그런데 당시 내 어리석음과 치기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오줌을 누러 밖에 나가, 먼 산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일 때였다. “이 자식, 영 글러먹은 녀석 아냐?” 따라 나온 한 선배가 ‘툭’ 하니 던진 말이었다. “네? 선배 무슨 말이에요?”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며 오줌을 갈기는 나의 삼중 동작에 왜 기함을 한단 말인가. 순간 납득이 되질 않았다. “생각이 있는 자식이냐? 양담배에 지포 라이터까지. 네가 양키냐, 이 새끼야?” 솔직히 취기가 번쩍 깨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게 당최 뭔 소리지?’ 하며 어리둥절할 수밖에. 물론 품질 좋은 국산담배도 있고, 삼백 원짜리 일회용(이라 쓰고 수백 번 사용 가능한 놈이라 부른다.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라이터도 있다(거의 다 중국산입니다요!). 나도 안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을 이유로 나를 ‘양키’라 폄하하는 선배에게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고작, 기껏, 겨우 담배와 라이터로 사람을 이렇게 함부로 평가해도 되는 것인가. 나를 그렇게 매도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리고 울 엄마도 아니면서 어따 대고 새끼야!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나는 그만 침묵하고 말았다. 내 침묵의 의미가 아마도 자신의 지적에 대한 부끄러운 수긍이자, 반성의 표현이라 느낀 것 같은 선배는 오줌을 시원스레 갈기고, 역시 시원스레 담배를 빠끔거리다 방으로 들어갔다. “빨랑 들어와 인마! 더 마셔야지!” 한마디와 함께. 스스로 납득을 하지 못했음에도 그 자리에서 선배에게 제대로 된 반박 또는 항의를 하지 않은 이유. 그것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정작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스르르 느껴지는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 설명하기 힘들다. 학교에 오기 전 공부와는 담을 쌓고 대신 조그만 구멍을 뚫어 그 사이로 ‘딴따라 짓거리’에 매진해온 나. 물론 세상 돌아가는 것이나,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온전한 사색 따위도 전무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난 깜빡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육박해온 선배의 힐난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부당한 지적이었다. ‘양키’인 것과 ‘양담배, 지포라이터’는 언뜻 연결되는 것 같지만, 과도한 일반화였다. 지금도 그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케 마신다고 모두 ‘쪽바리’로 매도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난 부끄러웠다. 아무리 뇌 속에 들어있는 것이 빈약한 놈이었다 해도 양담배와 지포 라이터의 상징성을 아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억울해도 참았고, 슬그머니 반성 비스무리한 것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당시 ‘나쁜 선생’을 만나 우리의 참담한 현대사를 비로소 깨우쳤고, 고교 시절 얌전하고 홀로 고독을 씹고 다니던 한 녀석이 건네준 ‘5·18’ 비디오 테잎으로 내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아주 의식이 넘치는 그런 분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알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존재의 복잡 미묘함을.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나름 고민했던 시간을 조금은 가질 수 있었다. 난 이른 바 양키 음악을 좋아해서 딴따라 생활을 했다. 헤비메틀, 락앤롤, 하드락, 얼터너티브, 하드코어, 트래쉬 메틀, 스피드 메틀, 프로그레시브 메틀, 고딕 메틀, 바로크 메틀, 데쓰 메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양키 음악’을 섭렵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급기야는 ‘쪽바리’의 음악까지 다양하게 들었다. 음, 생각해보니 맞아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인 것일 수도…. 곧 죽어도 변할 수 없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분명했다. 예술에는 국경이 없고, 인종도 없고, 빌어먹을 증오와 적대감 따위도 가질 수 없다고. 나에게 감동을 주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음악이라면, 그 어떤 노래든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덕분에 난 편견과 차별 따위의 단어와는 애초부터 쿨하게 이별할 수 있었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무작정 추종하거나, 묻지마 애호가 아니었다. 지금도 변함없고. 그러니 양담배와 지포 라이터도 나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 고교 2년 당시 나에게 담배를 가르쳐준 아주 아름다운 친구 녀석이 건네준 최초의 담배가 ‘말보로 레드’였다는 구차한 변명도 여기에 덧붙여 본다. 고마운 새끼, 아주 그냥…. 미국은 분명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국가다. 맹목적인 친미와 반미 사이에서 대충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같잖은 양비론을 들이밀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객관적이고,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그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미국이란 국가를 평가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선망의 대상. 피로 맺어진 동맹. 동시에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입각해 한반도를 분단시켜버린 국가. 지금도 한반도의 운명을 마치 체스판의 말처럼 다루는 국가. 여전히 세계 초강대국의 위치를 놓지 않으면서 전 세계를 이익 관철의 장으로 삼고 있는 국가. 암튼 미국은 단순한 평가가 불가할뿐더러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우리와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는 국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녕 미국을 잘 알고 있을까? 이 땅 대부분의 먹물들이 미국 유학 출신이라는 것을 가장 큰 벼슬로 삼고 있고, 그를 바탕으로 카르텔을 형성해 권력의 중심부에 진출하고 또 승계하는, 아주 진부하고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자면 분명 그 중 아주 조금이라도 ‘미쿡 전문가’는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무지하게 찾기 어렵다는 것이 짧은 내 생각이다. 미국을 추앙하고 숭배하고 우러러 마지않는 이들은 널렸으나, 정작 미국을 꿰뚫어보는 이들은 찾기 어려운 현실. 뭐 어쩌랴. 이게 약소국의 팔자려니 해야지, 하면서도 가끔 울화가 치미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저자는 언론인이다. 50개국 이상을 취재한 경험이 있고, 나름 글발도 인정받은 이다. 이런 그가 미국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가 말하는 5가지는 많은 부분 한국의 현실과도 겹친다. 대중연예문화, 포르노그래피 산업(이건 우리에겐 성매매 문제로 더 심각하다), 엘리트주의 교육, 당최 의심스러운 돈벌이 긍정심리학 그리고 금융위기다. 5가지 주제에 대한 소제목만 보아도 저자가 느끼고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식의 환상 - 대중문화의 덫과 문맹의 부활, 사랑의 환상 - 포르노그래피와 인간성의 종말, 지혜의 환상 - 돈에 물든 교육과 비판적 지성의 죽음, 행복의 환상 - 긍정심리학의 허구와 조작된 행복, 미국의 환상 - 법인형 국가의 실체와 껍데기뿐인 제국. 그의 비판은 신랄하다. 프로 스포츠, 연예 산업과 유명인 문화, 리얼리티 예능 프로가 전 국민의 눈과 귀를 홀리고 일상을 규정하는 나라, 소수의 지배층이 권력과 돈,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채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그것들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이용해먹는 나라. 우왁, 어디서 어인 일인지 상당히 친숙하다. 어느 새 우리도 그렇다. 이 엿 같은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스마트폰에, TV에 얼굴을 처박는다. 심각하고 골치 아픈 것은 싫다. 바로 그 심각하고 골치 아픈 것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좌우한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으면 된다. 아울러 그는 지적한다. 자유 시장과 세계화가 한때 전 세계의 번영을 약속했지만, 결국 손쉬운 사기의 두 부분임이 폭로되었다고. 전체주의는 신념의 시대라기보다 정신 분열의 시대라고. 그는 조지 오웰의 말을 인용한다. “사회의 구조가 극악하게 인위적으로 변할 때, 그 사회는 전체주의가 된다. 이때 통치 계급은 자신의 기능을 잃고 무력이나 사기를 이용해 권력에 집착한다.” 미국은 여전히 강대국이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 지위를 놓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국민들이 행복했던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행복하다고 스스로 세뇌시키며 살아온 이들도 이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미국의 저력인지도 냉철히 인식해야겠지만, 무엇이 미국을 무너지게 만들고 있는지도 분명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붕괴 역시 막을 수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과연 우리는 몇 가지의 불편한 진실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들의 눈물과 죽음을 덮고 있을까.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신이고, 그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악의 탄생이다. 때문에 우리는 먼저 우리 내면을 돌아봐야 한다. 어렵지 않게 읽히면서도,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미국을 보라. 무엇이 보이는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모두 어느 정도 미국물이 들어있다. 자의든 타의든. 하지만 그 물에서 어떻게 놀지는 각자의 책임이자 권리가 될 것이다. 아님 뭐 스타일이라도. 아, 여전히 난 양담배를 즐겨 태우고 지포 라이터를 가지고 다닌다. 정답은 없는 것이다. “진실을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파멸에 이를 뿐이지만, 순수함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순수 상태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사람은 괴물로 변한다.” - 제임스 볼드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