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쪽 당대 최고의 이탈리아 역사가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는 회고록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춰 주는 등불이다. 현재와 미래의 일은 과거에도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름과 양상이 달라졌을 뿐. 바로 이 점 때문에 사람들은 좀처럼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며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떤 노선을 취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오로지 지혜로운 사람,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사려 깊은 사람만이 이를 간파한다."
25쪽 가령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인간은 원하기만 하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했다.
72쪽 바로 여기서 문헌학은 역사학과 만난다. 알베르티가 말했듯이, "진리의 여신 알레테이아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딸'인 것이다.
133쪽 확실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훌륭한 문화를 일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다음 세 가지다. 자유, 자유, 자유!
짧고 쉽다. |
|
절대적 사상을 뒤로하고 저마다의 사상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쏟아져 내던 근대, 그때에 뿌려둔 사상의 씨앗이 결국 현대를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의 사상에 깊숙이 자리잡고 발현되고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른든, 근대의 사상은 현대를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의 생각을 움직이고 있다. 그 근대정신은 어떤 것이 있었고 왜 하필 그 시대에 동시다발적으로 나오게 되었는가를 살펴보는 책. |
|
르네상스는 일반적으로 서구 중세 말기에서 근대 초엽 고전문화의 재발견과 부흥으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된 것을 말한다. 르네상스는 상투적으로 언급되는 것처럼 중세와는 단절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의 연장선상인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중세는 신앙과 밀접한 시대였지만 개인주의적인 움직임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르네상스 시기에도 교회의 권위는 여전히 살아 있었으나 교회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르네상스란 중세의 전통적 토대에서 고대의 관념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든 것 이라는게 이 책의 관점이다.
이후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문주의, 르네상스 예술, 르네상스의 퇴조를 주제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적 내용들을 서술하고 저자의 견해를 밝혔다. 르네상스의 주요 관념인 개인주의, 인간중심주의, 객관주의 등을 역사적 사실들에 투영하여 설명하고, 당대 사람들이 고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으나 중세에 발전해온 과학기술을 토대로 했음을 언급한다. 르네상스의 변화를 토대로,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점차 퇴조했지만 바로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침으로써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대중서와 같이 르네상스를 중세와 단절된 시기로 보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며, 중세를 암흑시대로 보는 견해도 부정한다. 기존의 학설과 현대 학자들의 견해 등을 간략하게 저자의 생각 등에 표현했다. 이는 독자들이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게 할 것이라 생각되며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잘 정리한 점에 큰 가치를 둔다.
본 서평은 네이버 역개루까페 서평이벤트로 작성되었습니다. |
|
르네상스 시대가 새로웠다지만 마냥 새롭기만 했을까? ... 낡은 요소들도 많이 남아 있지 않았을까? ... 많은 학자들도 르네상스가 14~16세기 이탈리아의 전매특허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르네상스가 유럽에서 12세기에도, 심지어 9세기에도 있었다고 본다. 언뜻 생각해 봐도 학문과 예술이 14~16세기 이탈리아에서만 융성했으리란 법은 없다. 예를들어, 일부 학자들은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을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시킨 카롤루스 대제의 후원을 통해 9세기 유럽에서 고전 문헌 연구가 크게 흥했다고 보고, 이를 특별히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 다른 학자들은 12세기에 중세 대학들이 크게 발전하여 철학과 법학이 심층적으로 연구되며 고대 그리스와 이슬람 세계의 문헌들에 대한 번역 열풍이 분 현상에 '12세기 르네상스'라는 이름표를 붙여 주기도 한다. ... 또한 많은 학자들은 르네상스 시대 이전에 이미 '개인의 출현'을 목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대표적인 개인이 바로 10세기 북유럽 최고의 시인 에길 스칼라그림손(Egill Skallagrimsson)이다. ... 에길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또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일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 여전히 교회 신부님들의 말씀은 법전처럼 떠받들어지고, 마을 교회의 종소리가 소식과 일과를 알리면서 시민 생활을 지배했다. 교회의 권위에 조금이라도 도전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이단들과 지식인들이 화형대의 말뚝으로 보내져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 그만큼 당시는 폭력과 살인이 예사로이 벌어진 시대였다. 그래서 르네상스가 근대의 봄이라기보다는 되레 중세의 가을, 그러니까 낡은 시대의 끝자락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19~23p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이 시기에 들어서 비로소 유럽이 다른 세계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문화적 수준에 겨우 도달했다는 점일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그렇게 수준이 비슷해졌다는 사실마저도 의심하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33p 당시 피렌체의 어린이들은 서로 주먹질을 하면서 깔깔댔고, 심지어 고양이를 산 채로 벽에 못 박아 놓고 머리로 들이받아 죽이는 놀이를 즐겼다. 47p 르네상스 인문주의에는 다음 세가지의 특징이 있었다. 1. 인문주의는 곧 고전 문학 연구였다. 따라서, 인문주의자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한 문헌학자를 뜻했다. 2. 인문주의는 인간을 가장 중요한 관찰, 연구, 사색의 소재로 삼았다. 3. 인문주의는 사회와 정치의 여러 쟁점들을 사고,행동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69p 르네상스를 단지 인문주의와 예술의 발전으로만 보는 것만큼 잘못된 시각도 없다. 르네상스의 진정한 가치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탄생을 준비했다는 데 있다. ... 르네상스는 당연히 근대의 입구라고 말할 수 있다. 13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