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꺼삐딴 리. 본명은 이인국. 직업은 의사. '꺼삐딴 리'라는 칭호는 'Captain'이라는 영어가 성 앞에 붙은 것으로서 8.15 직후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자 '꺼삐딴'이 '우두머리' 혹은 '최고'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불리게 된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부분적으로만 보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이 글을 읽은 후에는 감정이 복잡하다. 착잡한 마음이랄까, 불쌍하다는 마음이랄까, 괘씸하다는 마음이랄까... 일제 시대에서부터 의사로서 살아온 그는 소련군이 주둔하던 8.15 관복 직후부터 남한에 정착할 때까지 자기가 이 혼란스럽고, 위험스러웠던 시대 속에서 탈출할 만한 구멍을 찾고,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굴함을 보여준다. 꼭 쥐들이 담긴 커다란 양동이가 불 위에 놓여있는데 그 양동이에는 구멍이하나 뚫려 있어서, 이인국이라는 약삭빠른 큰 쥐가 다른 쥐들을 밟고 서서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 쥐는 구멍으로 빠져 나오는데 성공을 한다. 다른 쥐들은 뜨거움으로 다치고 죽기도 하는데 말이다. 이인국 박사는 일제 시대 때에도, 소련과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곳에서도, 그는 자신의 목숨과 부가 딸린 일 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았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일본인들이나 친일파들만을 치료해 주던 일, 병원 비를 내기 어려운 중환자를 매몰차게 거절하던 일, 아들을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소련 땅으로 보내던 일, 미국인과 결혼한 딸을 체면이 깎인다고 못마땅해 하다가 자신과 후처사이에 있는 어린 아들까지 아예 미국으로 유학 보낼 생각으로 부풀던 일... 이 일련의 사건들처럼 자신의 나라와 , 민족과, 가족들까지 자신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자신의 삶을 도모하는 이인국 박사에 대해서 나는 가증스럽다는 생각과 괘씸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인간에게는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려는 본능이 있다. 게다가 그 살기 어려웠던 혼란스러운 시대였던 만큼 이인국 박사에게는 생존의 욕망이 절대적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나라를 위해 싸우고 돌아가신 많은 조상님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분명 그분들께도 이인국 박사 못지 않게 자신의 목숨에 대한 미련,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것은 분명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소중한 것처럼 애국과 이웃 사랑,우리 민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분들은 선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가슴속과 역사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인국 박사와 같이 자신의 삶을 위하는 것만을 고집했던 그 시대의 위정자들은 다른 사람의 삶을 짓밟으며 부를 축적했다. 그들은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그릇된 가치관으로 한평생 옳지 못한 길로 걸었고, 앞으로도 걷게 될 이인국 박사에게 가증스러움과 동시에 불쌍함을 느끼는 이유가 아마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나라가 밀려들어오는 외국의 경제적, 문화적 ,물리적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 그래서 일제 치하에서 많을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고생을 하고, 국토는 결국 두 동강이 나고, 문화재는 국외로 빠져나가 되찾을 수도 없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나라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은 이 사람과 같은 매국노들이 활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정기적인 문화재 답사라든지, 국경지대 순방... 과 같은 행사를 벌이고, 고아원, 양로원과 같은 사회복지 시설에 봉사하며, 구역간, 지역간에 정기적인 축제를 벌여 화합을 다진다든지 하는 일들을 시행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이 글에서는 이런 사람들, 즉, 이기적인 마음에 사로잡혀서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주체성을 상실해버렸으며 유리한 편에 붙어 빌어먹는, 비굴한 현대 자본주의 지식인의 모습을 이인국이라는 인물로 비유하여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쓴 작가는 이러한 사람들이 사회에 끼치는 폐단을 꼬집어서 풍자적으로 구성하였으리라.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먼저 우리 나라의 쓰라린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었고,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 또한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목표를 정하는데, 그리고 나의 행동들을 반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
|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혁명이 일겠으면 일구,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구,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 이것은 소설 후반부에 '이인국'이 한 말이다. 이인국이라는 이 인물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다. 일제시대때는 '잠꼬대까지 일본어로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영광을 안을수 있겠소'라는 말을 들으며 '일본어 상용의 가(家)'라는 레테르를 일제 당국에게 받을 정도로 일본에 협력했고, 또 자기 병원은 일제의 고위직 관리자 환자로 채웠다. 그는 기회주의자 뿐만 아니라 배금주의자로서 환자를 받을때에도 '입원할 재력이 뒷바침 되는 녀석일까?'를 먼저 따지고, 아닐것 같으면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서 입원 불가의 철옹성을 쌓는다. 민족사의 태양이 밝아오고, 해방을 맞이했을때, 이 민족 배반자는 당연히 처단당했어야 했다. 하지만 시대는 이인국이라는 인간의 더러운 손을 잡았다. 북쪽에 소련군이 진군하고, 민족의 배반자를 쳐단하자는 목소리가 끓어오를때 이인국도 역시 과거의 씻을수없는 죄과로 끌려 가지만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던 이인국에게 희망의 빛이 내려 쬐온 것이다. 적리........감방속에서 이질의 한가지인 적리(赤痢)를 앓고 있는 사람이 생기자 그의 '의사'라는 직명은 그를 파멸의 구렁에서 다시 기어오르게 했다. 감방에서 나와 동무들의 병을 치료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그는 마침내 소련 군의관들보다 뛰어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희망의 빛을 엿본 그는 끈질기게 거기에 매달린다. 감방에서 달달 외어두었던 러시아어 회화 교본의 덕에 힘 입으며 살려는 몸부림의 목표를 눈앞에 두던 이인국은 스텐코프라는 고급 장교의 혹수술을 해줌으로써 거의 모두 빼앗길뻔했던 자신의 잘나가던 '삶'의 일부를 되찾게 된다. 이인국은 그 전의 영광스러운 자신의 삶이 일제 당국에 협력한 반민족적인 행위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고 있고, 또 그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영광스러움을 유지해 주던 지주가 사라지고,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그는 몸을 떨었다. 그리고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아들을 러시아에 유학까지 보낸다. 그는 숨구멍을 드디어 찾아내고야 말았다며 기뻐마지 않는다. 하지만 육이오가 터지자 그는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가 대하는 것은 이제 '성조기'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와 그를 지켜주었던 이국의 언어는 이제 일본어도 아니고 러시아어도 아닌 영어다. 미국의 엄청난 영향하에 있던 남한사회에서 또다시 자신의 영광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미국으로 향할 준비를 한다. 미국에 한번 갔다온 이들이라면 모두가 꾸벅하는 세상이었기에. 그에게는 '민족의 양심'이라는 것이 없었다. 시대의 흐름을 보고 그때 마다 옷을 갈아입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이 바로 이인국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민족 배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자리를 유지한다.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국가에 있어서 이런 인물들은 악종양이다. 그에게는 민족이라는 의식, 어느 나라의 어느 국민이라는 의식 따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인물이지만 그의 인생은 평탄했다. 작품은 미국으로 가기 위해 출발 준비를 하는 부분에서 끝나지만, 그의 삶은 그 이전의 삶과 마찬가지로 평탄할 것이다. 해방전,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모든 것들을 바쳤던 민족 지도자들과 이름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이국에서 목숨을 읽거나 남은 처자식들은 빈핍과 곤궁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친일의 따스한 옷을 입고, 배불리 먹고 같은 민족의 살을 뜯어가며 자신들을 살찌었던 많은 민족배반자들과 친일인들은 한 시대를 거머쥐는 세력들에 영합하며 여전히 자신들의 살을 찌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력들은 그들을 비호해주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 간다. 이인국과 이인국의 자식들과 그 자손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며 자신들의 부와 특권의 원천이 어디있는가는 상관없이 배부른 노래를 불러댈 것이 틀림없다. 시대의 정직성, 그리고 시대 이성에 대한 신뢰는 이인국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혹되고, 갈가리 찢어지고 만다.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시대의 기회주의자를 그렸지만,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이 가증스러운 인물을 통해 과거 한국의 가파른 현대사가 나은 사생아들의 배경과 시대적,민족적 책임에 대한 그들의 행위란 어떻했느냐 하는것들을 깊이 생각케 한다. 이인국이가 바라보는 푸르른 창공은 소름끼치는 미래의 예고다. 변화하는 시대의 한쪽에 기식하며 야금야금 한 사회를 잠식하는 인물들이 거물급으로서 너볏한듯이 버티고 서있는 사회는 불가피하게 뿌리부터 흔들리지 않을수 없다. |
| 등장인물 이인국은 일제 때 의과 대학을 우수하게 졸업하고 회중 시계를 상으로 받는다. 하지만 그는 의술이 뛰어났지만 권력층만을 상대하고 그의 자녀를 일본인 학교에 보내는 것은 물론 관선 시의원에 '국어 상용의 가'라는 칭호를 받는 등 철저한 친일파로 살고 있다. 해방 후, 소련군이 진주해오고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앞날을 알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감방에 돌던 전염병을 퇴치하고 러시아어를 배워 소련군 장군의 혹 제거 수술을 성공리에 마친다. 이에 장군의 신임을 받은 그는 석방되고 소련군 장군의 후원에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보낸다. 6.25 전쟁이 터지자 그는 월남하여 병원을 개업하고 그의 병원은 매우 성공한다. 그는 이제 영어를 배워 미국 대사관 직원과 교분을 쌓아 미국 무성 초청을 받아 미국 길에 오른다. 이 작품은 정신적 지조 없이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쏠린 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식민지 통치, 해방. 6.25 전쟁, 산업화 등 이러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진정한 인간다운 삶이었는지에 대해 한번쯤 반성하게 하는 작품이다. |
| 꺼비딴 리..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린 작품입니다. 간에 붙고 쓸게에 붙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만나볼 수 있죠. 그 작품에서 회중시계가 의미하는 것을 묻는 것이 단골문제랍니다... 하지만, 그런저런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실적으로 잘 쓴 작품입니다. 제가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정한숙씨의 전황당인보기와 이여도입니다. 꺼삐딴 리보다는 좀 생소하다 하시겠지만, 정한숙씨 작품은 참 다양하여 개별 작품을 읽는 맛이 다릅니다. 수능에는 이여도가 출제되었지만 개인직으로는 전황당인보기를 더 좋아합니다. 뭐랄까 전아하고 고아한 맛이 있는 기품있는 단편이라 할까요? 아직은 옛 멋을 잃지 않은 풍류를 알고 기물을 즐길 줄 아는 수하인때문이겠지요. 한번 읽어보세요. 읽으면서, 꺼삐딴 리는 황석영의 <한씨연대기>와, 전황당인보기는 <관촌수필>과 비교해 보세요. 이여도는 물론 이청준의 <어어도>와 비교해 보세야 겠죠? 같이 읽으면 작가의 개성의 차이나 미묘한 뉘앙스가 더 살갑게 느껴진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