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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현재 초등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해를 보내는 중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요즘 괜히 어떤 작은 어려움이나 시련이 닥쳐도 6학년이니까 잘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쉽게 좌절하곤 한다. 그런 시련이 닥칠 때마다 위축되고, 쉬운 길만 찾고자 했던 나에게 <수난이대>라는 책은 지난날의 생각과 고민들을 다 없어지게 해주었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아버지 박만도와 아들 박진수가 있다. 아버지 박만도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팔 한쪽을 잃는다.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 아들 진수를 군인으로 전쟁터에 내보낸다. 어느 날 진수가 돌아온다는 통보를 받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마중을 나갔다가 한쪽 다리를 잃고 목발을 짚은 아들을 맞는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분노에 떨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온 아버지 박만도는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자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넨다. 아들 진수는 아버지 등에서 희망을 얻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만도 부자가 팔을 잃고, 다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문득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난 작은 시련에도 쉽게 넘어졌지만, 만도 부자와 우리의 조상들은 일제강점기 시대와 6.25 전쟁 때와 같은 커다란 비극 앞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굳세게 일어섰다는 사실이 같은 민족으로서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또 그 고통을 묵묵히 이겨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우린 흔히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고 완벽한 삶만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진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상처를 동반하지만 상처가 삶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앞으로 무너지지 않는 학생, 또는 사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무너진 뒤에도 다시 살아가는 사람을 추구하고, 꼭 그렇게 성장하고 싶다. 앞으로 내 삶에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힘든 시련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또 도망칠 궁리부터 했겠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싶다.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무서워서 도전하지 않거나, 넘어진 채로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다. 앞으로는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쉬운 길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시련이 날 무너뜨릴지라도 아들을 업어 올리던 아버지의 그 단단한 등처럼, 나 역시 내 삶의 시련을 기꺼이 짊어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걸음을 멈추지 않겠다. |
| 나는 한국소설의 고전에 실리는 '수난이대'의 작가란 말에 그 분은 이미 작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약력을 보고 나는 두번 놀랐다. 하나는 그가 나의 무관심한 생각과는 달리 살아 계시며, 또 한가지는 너무나 성실하게 작품 활동을 매 해 하고 계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 분을 이제부터 존경하기로 했다. 왜 유명한 사람은 다 옛날 작가라고 생각했을까. 나의 무식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는 1955년부터 최근까지도 매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젊을 때 한때 작품을 내고 창작시기가 짧다고 하던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성실한 다작에 비해 신문기사나 문예지에 그의 최신작 소개나 사생활은 많이 소개되지 않은 편이다. 그의 대표작은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수난이대(1557)>와 이번에 개정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흰종이 수염(1959)="">이다. 두 이야기는 씌어진 시기도 비슷하고, 내용상에 공통점도 많다. 사친회비를 내지 못해 교실에서 쫓겨난 동길이. 그러나 아버지가 돈벌어 오리라는 믿음에 기죽지 않는다. 외팔 병신이 되서 돌아온 아버지는 여전히 큰소리를 치며, 핵교 보내주꾸마, 한다. 그런 아버지는 참 밝고 긍정적이다. 잘될끼다, 말하는 아버지는 흰 종이 수염을 만들고 있다. 다음날 영화 광고를 하는 광대 놀음에 아버지가 흰종이 수염을 달고 나타나자, 친구 창식이가 놀린다. 동길이는 그런 창식이에게 덤벼든다. 아버지의 불구는 한국 전쟁의 상흔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낙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수난이대>의 아버지도 "발이 없으면 왜 못사노, 니는 안에 일하고, 나는 밖에 일하면 되지" 한다. 그러나 정작 외팔인 동길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광대놀음 뿐이었다. 그런 일을 해서라도 아들의 학비를 대주고 싶어하는 부정이 묻어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슬픈 부성애와 우리 민족의 불행한 과거사를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우리나라에 하근찬이라는 작가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작품으로서 말하기 때문이다.수난이대>흰종이>수난이대(15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