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귀곡자』에 대한 오해와 변명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적 근거와 자료를 통해 지배자들이 왜 그토록 『귀곡자』를 꺼리고 널리 읽히지 못하게 했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세(遊說)와 낚시질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고 윗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책을 보면 깨닫게 된다. 『귀곡자』를 근본으로 삼은 종횡가가 전국시대 전쟁만 일삼던 군주들의 마음을 움직여 통일왕조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을 보면 귀곡자의 이론과 주장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주로 처세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심리학 도서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이야기 하고 있다.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자신의 주장이 통하게끔 하고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낚는 기술을 언급하고 있는데 2천 년 전에 이미 이와 같은 주장을 통해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이용하라고 주장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은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유가가 종횡가와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맹자는 유가를 발전시켜 집대성한 인물로 유가를 공부한 이들에겐 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맹자님 말씀이라면 덮어놓고 추종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맹자가 낚시질을 미끼를 두고 상대방을 속여서 낚으려는 기만의 수단이라 말하고, 미끼를 던져 물고기를 낚는 낚시질을 증오했다고 한다면 그의 추종세력이었던 유학자들은 낚시질을 가르친 『귀곡자』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당연히 유학자들은 미끼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낚는 기술을 가르친 『귀곡자』를 외면하고 증오했을 것이다. 성인군자였던 맹자가 그토록 낚시질을 사기술 혹은 좀도둑질로 폄하했는데 맹자를 추종하는 세력들인 유학자들이 어찌 귀곡자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겠는가! 맹자가 『귀곡자』의 낚시질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부터 유가와 종횡가는 결코 한 하늘을 지지 못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맹자의 말대로 낚시질은 나쁜 것일까? 미끼를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낚는 낚시질은 상대를 속이는 교활한 사기술이기 때문에 영원히 비난받아야 하는 것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그렇게 따지만 바늘로 군주의 마음을 낚은 주나라의 개국공신인 강태공 여상도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삼국지』의 등장인물인 유비도 사람의 마음을 낚는데 선수였다. 유비는 타고난 낚시질로 관우와 장비의 마음을 낚아 의형제가 된 것은 물론이고 헌제와 조조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유비에게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제갈량도 낚았으니 유비만큼 낚시질을 잘 했던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당대 사람들을 물론이고 후세사람들 치고 유비의 우유부단함은 비판했을지언정 그의 낚시술을 두고 욕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대단하다며 유비의 그런 특유의 능력을 칭찬한 사람들만 가득했을 뿐이다. 이를 통해 보면 『귀곡자』에서 주장하는 낚시술은 그리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귀곡자』가 폄하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종횡가는 지금으로 따지면 외교관으로 세상을 떠돌며 유세를 펼친 사람들을 말한다. 종횡가는 천하의 형세를 잘 알고 여러 나라의 정치 상황과 군사 역량 등에 해박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그들은 각 나라 사이를 분주하게 다니며 주도면밀한 사유와 교묘한 말재주를 수단 삼아, 제후들에게 유세하고 전략을 세움으로써 전쟁이라는 폭력보단 언어의 힘으로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았던 것이다. 진(秦)나라가 왼쪽에 치우쳐져 있으면서도 다른 육(六)국인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를 제압하며 최초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도 종횡가가 주장했던 합종연횡(合從連衡) 덕분이다. 진나라가 단지 무력만을 써서 육국을 제압하려 했다면 결코 통일왕조를 이루진 못했을 것이다. 『귀곡자』는 이런 종횡가의 교과서였다고 하니 당시 귀곡자의 위상이 어떠했으리라는 점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귀곡자는 한(漢)나라 이후 그 특유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로부터 폄하되기 일쑤였고 지배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일쑤였다. 왜 그런 것일까? 왜 중국 최초로 대륙을 통일하는데 큰 공헌을 한 『귀곡자』가 당대에선 대우를 받다가 후대에선 폄하되고 외면 받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춘추전국시대에 외면 받았던 학파의 후손들이 한나라 이후 번성하여 세상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귀곡자』가 폄하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한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한무제 유철이다. 한무제는 중국의 영토를 크게 늘린 인물로 강력한 황권을 통해 세상이 안정적으로 지배되길 원했다. 한무제는 황제가 실정을 했다고 해서 혁명이 일어나고 나라가 교체되는 꼴은 결코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한무제는 춘추전국시대와 한나라 초기만 해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유가를 권장하고 종횡가를 비롯한 다른 학파들은 전부 억눌러버렸다. 이로 인해 유가는 겉으로긴 하지만 중국의 통치이념으로 떠올라 청대에 이르기까지 좋은 대접을 받으며 이어져 내려왔다. 반대로 『귀곡자』는 유가가 번성하면서 그들의 후손들로 인해 비판받고 외면 받아 사기술이나 가르치는 형편없는 책으로 전락하여 최근에 들어서까지 별 볼일 없는 책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유(儒)가는 가만 보면 다른 학파나 다른 주의를 외면하는 데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학문이 아닌가 싶다. 조선의 상공업을 억눌러 조선이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데도 유가가 혁혁한 공을 세운 역사적 사실을 보더라도 유가는 지배층의 통치이념으로서는 바람직했을지 몰라도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엔 그리 적합한 이데올로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들어서 『귀곡자』의 가치가 재발견되어 『귀곡자』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학파들에 비해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당히 오랜 기간 핍박받고 폄하 되어 내려왔는데 하루아침에 모든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루빨리 『귀곡자』가 가치에 알맞은 평가를 받아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이론서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귀곡자』가 지배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귀곡자』는 질서 유지와 혁명 이 두 가지를 나눠 본다고 한다. 혼란의 틈이 벌어져 봉합의 조치를 취해 질서를 유지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조치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독자인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때가 무르익었으면 혁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배자들이 좋아했을까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다. 세상이 혼란에 빠지면 혁명을 하라고 부추기는 『귀곡자』를 그 어떤 지배자가 좋아했겠는가! 아무리 『귀곡자』가 군주론에 반대되는 신하론을 주창하며 역린을 건드리지 말고(군주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처세를 잘 하라고 조언했어도 지배자들 입장에선 혁명적 사유의 씨앗이 담겨 있는 『귀곡자』가 결코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귀곡자』라는 문헌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 못하고 민중 속에서만 전해진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전쟁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갈등이 있어도 전쟁보단 대화로 푸는 것이 상책이며 모두에게 이롭다. 우린 지금 휴전 상태지만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김정일이 사망한 지금 우린 전쟁국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김정은이 나쁜 마음을 먹고 전쟁을 일으킨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맛볼 것이고 고통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귀곡자』의 이념을 잘 이어받은 유세객이 등장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갈등을 조율하고 완화시킨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북한은 무력을 통해 싸우려고만 하지 말고 서로의 이익을 잘 대변하고 절충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서로 윈윈하려는 전략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교관을 꿈꾸는 이들은 물론이고 국내 및 국제정세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인상적인 글귀 “유세란 상대를 기쁘게 설득하는 것이다.” “말을 하는 데 꾸밈이 없다면 실천하는 바가 멀리까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고정된 가치란 없고 어떤 일에도 고정된 지도자는 없다.” “순진한 미덕보다 융통성 있는 악덕이 아름답다.”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을 그 사람에게 강제하지 말고 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그 사람에게 강제로 가르치려 하지 말라.” “‘입은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마음대로 말할 수는 없다’고 했는데 말에는 꺼리고 피해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가진 사람과 말할 때에는 그들을 깨우치려 하고,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과 말할 때에는 그들을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설득하기가 힘들다.” “입은 마음이 드나드는 문이며 마음은 영혼이 깃드는 곳이다.” “위기란 기회다”
|
|
고전공부는 고전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떤 과거를 기억하고, 또 어떤 과거를 망각할 것인가 하는 기억투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치열한 사상사의 쟁점이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의 고전들은 오늘이라는 시대가 선택하고 구성한 것이라 할 수가 있다. 따라서 고전을 읽으면서 고민해야 할 것은 오늘이라는 시대에 선택된 관점이 무엇인가 하는 점 이라고 한다. 이것이 원문이나 번역서를 읽기에 앞서 독법이 분명한 해설서를 먼저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변함없이 삼독(三讀)을 강조하는 신영복 선생님은 추천사에서 말하고 있다. 귀곡자(鬼谷子)에 대해서는 우리는 한번쯤 들어보았을 뿐이다. 거기에 조금의 지식을 더한다면 합종연횡(合從連橫)을 강조한 종횡가(縱橫家)와 관계가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귀곡자는 유세의 기술을 가르친 사람이다. 전국시대 중기(기원전 400년에서 320년 사이에 활동함)를 살았던 실존인물인 그를, 위진 시대에는 세속을 떠나 은둔한 은사로 묘사되었고,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실존인물인지를 의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귀곡자에 대한 초기기록은 서한시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소진열전과 장의열전에서 그들의 스승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전국시대 우리는 합종연횡을 강조한 종횡가에 대해 알고 있다. 여섯 나라의 제후를 설득하여 진나라에 대한 합종책(合從策)을 성사시키고, 그들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되었던 소진(蘇秦)이나, 현란한 유세술로 소진의 합종책을 깨뜨리고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할 수 있도록 한 장의(張儀)의 이야기는 우리가 중국고전을 통하여 너무나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종횡가는 당시 가장 혁신적인 정치능력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정치적 전략가이자 국제외교 협상가였고 또한 언변이 뛰어난 웅변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종횡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서양철학사에서 소피스트를 궤변론자이자 부도덕한 집단으로 폄하하듯, 종횡가도 권모술수와 궤변으로 천하를 혼란스럽게 한 음험한 정치집단으로 평가된다. 공자는 유세의 기술을 교묘한 말재주라고 혐오했지만, 귀곡자는 유세를 상대를 감동시켜 설득하는 기술로 정의하였다. 정교한 전략과 미묘한 언어라는 장치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유세의 기술로, 그것의 핵심은 권모술수와 음모(陰謀)라고 한다. 이들의 사전적 정의는 부정적인 말이지만 귀곡자는 상대가 자신이 설득 당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도록 만드는 설득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유학자들은 이런 귀곡자를 권모술수와 모략을 가르치는 술수가 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였고, 그것이 종횡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결정지었다. 공자 역시 기본적으로 유세가 였다. 그러나 정치영역에서는 실패한 사람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개입하고자 할 때는 저항을 다룰 줄 알고 흔적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고 도덕적인 결백을 강제하는 것은 역으로 상대의 무식과 어리석음을 나타나게 하고, 또한 상대의 도덕적 오점을 밝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공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공자가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았던 거백옥의 역기린(逆其鱗), 한비자의 역린(逆鱗) 그리고 손자병법의 형세(形勢)의 전략이 뜻하는 것이 저항과 흔적을 줄이면서 군주에게 유세하는 방법을 말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귀곡자]를 귀곡자가 유세의 기술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입장을 개진한 저서로 보고 있으며, 귀곡자가 말하는 권모술수와 음모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현대의 정치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기술과 사고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귀곡자]는 모두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부분은 귀곡자가 직접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패합(捭闔), 반응(反應), 내건(內揵), 저희(抵㚀), 비겸(飛䈤), 오합(忤合)과 후에 종횡가 계열의 사람들이 추가한 것으로 보이는 췌(揣), 마(摩), 권(權), 결(決)로 이루어져 있고, 두 번째 부분과 세 번째 부분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지만 부언, 전환(轉丸), 거협(胠篋) 그리고 본경음부칠술(本經陰符七術), 지추(持樞), 중경(中經)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귀곡자는 물론, 종횡가의 사람들, 그리고 장자의 후학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저자는 [귀곡자]의 유세기술을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과 유사하다고 본다. 그러나 종횡가의 유세술이 그리스의 수사학과 마찬가지로 자료가 충분하지 않고, 또한 유학자들의 뿌리깊은 적대감정으로 인해 그것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어서 연구에는 장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수사학이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필요한 정치기술이듯, 귀곡자의 유세학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리스의 그것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중국에서는 최고권력자에게 했다는 점이라고 한다. 또한 수사학이 엄밀한 논리위주였다면 유세술은 상징과 비유를 통한 은유와 함축이었다고 한다. 귀곡자가 말하는 유세방식은 엄밀한 논리로 상대에게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은밀함과 함축성과 완곡함으로 우회적으로 설득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방어하는 기술적 방식으로 이는 고대중국의 정치체계나 예법 질서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서양의 정치인중 권모술수로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마키아벨리를 들 수가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것은 현실정치 이었다. 이념과 순수성을 잃은 기회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출발한다는 것, 현실의 지형과 객관적 조건을 냉정하고 면밀하게 파악하여 거기에서 가능성을 만들 수 있는 현실적 전략을 구사했다. 일반적으로 미덕과 악덕은 쉽게 구별 가능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순진한 미덕처럼 보여도 현실에서는 미련한 옹고집이 될 수가 있고, 교활한 악덕처럼 보여도 현실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융통성 있는 지혜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러한 악덕을 감당할 수 있는 자만이 현실정치를 감당할 수가 있다. 귀곡자의 권모술수와 음모의 전략은 이러한 현실의 형세와 관련이 되어 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냉정한 태도이며, 그 현실에 대처하는 전략이자 인내였던 것이다. 또한 그것들은 상대의 조건을 이용한다는 점과 상대가 모르게 한다는 점이 그 속성이다. 그 속성의 근본적인 원리는 인(因)이며, 인이란 상대의 현실적인 조건과 정보를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고 유세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설득의 기술로서 공자는 풍간(諷諫)을 좋아했다고 한다. 풍간이란 군주의 마음을 헤아리고 완곡한 표현으로 빗대어 말하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고 듣는 사람은 깨닫게 된다고 한다. 유세는 신하가 군주를 설득하는 기술이다. 자신의 전략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심리상태와 주변상황에 따라서 그가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고대 중국은 군주의 말 한마디에 죽어 나갈수도 있는 정치지형이었다. 신하를 견제하려는 통치술을 담고 있는 [한비자]에는 이런 유세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세난(世難)편에 나오는 역린(逆鱗)이 바로 그것인데, 용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하는 역린은 절대로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약점이나 상처 혹은 치부를 나타낸다. 군주의 역린을 거스르지 않고 유세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귀곡자]에서 말하는 유세의 기술로는 패합술(捭闔術)과 췌마술(揣摩術)을 들 수가 있다. 패합이란 열림과 닫힘 혹은 드러냄과 감춤이라는 뜻으로 마음을 제어하는 기술 즉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감추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패합술은 주도면밀함과 은밀함, 그리고 모호함으로 상대의 정보를 캐내는 기술이고, 췌마술은 유세에 가장 필요한 상대방의 정보와 의도를 파악하고, 상대의 마음을 다루는 기술이다. 즉, 미끼를 던져서 상대가 흥분해 속내를 드러내게 만드는 것으로, 그러나 상대가 낚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귀곡자]에서는 유세술의 기술로 음모와 권모술수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에게 어떤 자극을 주어 그의 반응을 유도하고, 그 반응을 통해 그의 정보와 의도와 파악한 후, 그 마음을 어루만져 상대를 설복하는 기술이다. 개인에게 혹은 자신의 사익을 위해 사용한다면 유가의 비난대로 사기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군주에게 행하는 설득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천하를 움직이는 전략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귀곡자는 또 저희(抵㚀)편 에서는 배반의 기술을 말하고 있다. 저희란 틈새를 봉합한다는 말로 혼란해져 혹은 군주와의 신뢰가 깨져 틈새가 벌어진다면 봉합의 조치를 취해, 제대로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봉건 군주사회에서 [귀곡자]가 후대에 제대로 전해질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된 것이다. 저자는 귀곡자의 유세기술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가들이 이를 제대로 알고 적용할 수 있다면, 국제관계나 여야관계나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귀곡자]의 해설서인 이 책을 읽으면서, 종횡가가 노자, 장자의 도가나 병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어찌 보면 이 책과는 반대의 입장에서 쓰여진, 군주의 통치술이라 불리는 [한비자]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
|
막 읽는 것의 극치를 보여주는 나의 독서생활에 대해서 나름 보이지 않는 원칙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분명 개드립 또는 풍월을 읊는 것으로 간주될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내주위 친한 잡것들의 눈초리가 그렇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믿습니다!의 세상으로 가는 환상열차인지, 뭔가 게슴치레한 눈빛을 이끌어 내는 X파일의 세상으로 가는 타지말아야할 열차인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다. 풍월을 읊는다고 억울하거나 아쉬운건 없다. 믿는자에겐 행복이 의심하는자에겐 불편함이 그들의 마음에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이건 완전 이기적인 생각인듯도 하다. ㅋ~ 귀곡자 교양강의를 보면서 전에본 사기교양강의(중국저자라 약간 동북공정의 내용이 포함된듯해보임)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고전을 술술 읽을 수 있게 한다. 나처럼 영업이란 업의 입장에서는 그 경계선에서 곡예, 조율 또는 널뛰기를 해야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제공하는 제품이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서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고객에게 왜 이것을 안사느냐, 이게 더 좋은 점이 많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고객의 귀에 너는 바보냐, 너는 아는게 별로 없구나로 이해되는 궤리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의 말이란 항상 말하는 자와 듣는자의 두가지의 입장에서 두가지 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무역이 주역만큼 어렵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자꾸 '진짜(정신차려!)'와 '설마(정신을 못차리고 있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아는자가 물러서고 참아야한다는 또 이기적인 생각을 해볼련다. 그리고 귀곡자란 책은 이런 상황에서 꽤 쓸만하다. 물론 공부를 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있긴하다.. 읽는 이의 입장을 많이 고려하고, 그 본의를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많이 가미된 책이다. 신영복교수의 서문도 기가막히게 잘되어 있지만, 구성자체도 짜임새있다. 귀곡자의 실체와 저자의 해석의도를 명확히 하고, 일반적으로 도교와 유교의 궤리를 설명하지만 그 속에서 필요성을 찾아낸다. 또한 소크라테스, 마키아벨리를 통해서 동양고전이 서양의 수사학, 정신분석 또는 심리학등과의 유사성을 설명한다. 물론 동양의 우수성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런 장치와 배치를 통해서 귀곡자의 의의와 핵심인 합패술, 췌마술을 논어, 장자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원문을 남기는 꼼꼼함을 보면 책값이 안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막 읽는 독서와 이해를 통해서 유교와 도교가 그렇게 반목할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옛날 학자들이 글자 하나로 목을 떼라, 붙여라 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내겐 그렇다. 극기복례, 인의예지신과 같이 인간의 천성은 선하고, 그것의 바른 원리를 배움으로 도달해가는 유교는 성장기에 분명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약속인 도덕,예, 제도, 법규등을 따르는 교집합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성장기에 유용하지만 못배운것은 언제라도 또 배워야한다. 하지만 어느정도 배우고 나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기똥차게 기가찬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것이 세상이다. 이런 세파에 충격을 받고 마음을 토닥토닥하기에 유교는 참 아쉬운점이 있다. 네탓이니 공부하렴 이렇게 들리기도 하니까말이다.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서로 사서를 읽는 다는 것..그리고 삼경중 약간 야바위 주역을 읽어본 소감을 보면 분명 우리에게 유효하고 필요한 교육적인 말이 많다. 가슴에 남길 것들이 많지만, 현실속의 고민은 그것이 옳지만 다 실행하고 살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종교를 믿어 신이 될수 없고, 모두가 얼추 비슷해 질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속에서는 종교서적의 말씀이 다 옳지만 현실에서 종종 '아 오늘은 패스', '이정도는 봐주는 것도 있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한편으로 한계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면 인정하는 것도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위선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네, 잘 알겠습니다'하고 계속 어기는 것은 신은 용서해줄지 모르지만, 인간은 의도적(=말이 말같지 않다는 거야!)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용이나 주역을 보면 도덕경, 한비자, 귀곡자처럼 도교, 법가등 일명 황노사상과 유사점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물론 사람이란 대상을 공부하기에 그렇지만 아무리 가르치고, 계발한다고 하더라도 동적인 사람의 마음은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머리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차가운 마음이 들고, 마음은 콩닥콩닥 벌렁거리지만, 머리가 경고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설파법과 같이 대상을 끊임 없는 질문으로 핵심을 파쇄하여 '넌 모르는 거야'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면 그의 말이 옳다고 머리가 '빙고'라는 싸인을 주지만, 마음속에 용솟음치는 분노가 머리를 쉬게한다면 주먹과 얼굴의 강렬한 접촉이란 참화를 빗게되니까 말이다. 물건싸고, 품질이 좋지만 가게주인이 재수가 없으면 잘 안가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좋은 물건이 좋은 시장을 만들어 간다는 측면과 현실적 이익이 된다는 측면에서 당면한 상황을 잘 만들어갈 능력에 대한 귀곡자의 말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 과정에서 언어를 설명하고, 말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도(분명 다들 기술이라고 이해하기가 쉽다고생각한다)을 설명하는 것이다. 분명 입으로 연명하는 직업과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듯 하지만 조심스럽다. 사람의 마음을 살줄 안다는 말은 버릴줄도 알며, 사람의 마음에 빚을 남겨 우려먹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상당부분 말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진다.(물론 표정, 몸짓, 주먹질등도 전달이 가능하다..) 유교는 이렇게 교육과정을 통해서 옳은 것을 계발해야지, 주어진 상황에서 얍삽하게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사람을 사기치는 가장 큰 방법은 그에게 최대한 성실하고 이익을 주도록 행동하고, 그것을 한번에 빼앗는 것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악용될 소지에 대한 우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교란 교육을 통해서 옳고 그름에 대한 그릇을 만들고, 황노사상이 이야기하는 사람의 마음을 운용하는 법을 알아간다면...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의 한계상 약간의 부작용은 있을 것이고, 하지말라고 하면 꼭 하는 놈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최소한 옳바른 교육과 공부를 마쳤거나,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유교의 우려에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한계가 안배운다고 구현이 안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알고 방지하고 실천하고하는 것이 나쁜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점에서 귀곡자는 전략적인 사고와 목표의식을 갖고 접근하는 의도성을 내포하기에 어떻게 상황을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현대인들에게는 필요한 점이지만 반드시 스스로의 성품을 좋은 방향으로 계발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한다. 유교의 대표적 인물인 공자, 맹자, 주자는 도교에 대한 말을 조금씩 남긴듯하다. 그리고 도교를 말하는 노자, 한비자, 귀곡자들을 은유적으로 유교에 대한 말을 남겼다고 생각하고 그들 상당수가 유교를 공부한 것으로 기술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둘 모두 시경을 말하는 것을 보는 것은 공통점이다. 같이 걸어가는 갈림길이 헤어짐이기도 하지만 또 원대한 꿈, 이상, 목표를 향해 가는 같은 길이라고 보면 순서의 적절함이란 생각도 하게된다. 다양한 정보, 전략, 심리, 수사등에 대해서 볼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되고 '청진기 대면 진단 나와'라는 말에 웃음과 내정함을 느끼게된다. 아마도 유교가 조선의 역사에서 사화등으로 구시대적이고 잔인한 면의 역사도 보여줬다면, 도교는 은도끼 금도끼의 친근한 산신령같은 상상을 하지만 더 냉정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기에 가끔 무섭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도 시경을 한번 봐야하나라는 생각과 원래 막 읽는데 그렇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
|
승리비결 鬼谷子 귀곡자
본인은 영화를 보면 장르를 따라가면서 영화를 감상하고, 책 또한 장르를 따라가면서 책을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책읽은 경력은 많지는 않지만, 이 <귀곡자>는 처음 읽는 책 치고는 술술 잘읽히고, 놀랄만큼 내 마음속에 와닿았습니다.
6월, 뜨겁게 더운 날 부채를 부치면서 땀이 비오듯 흐르는데도 '엇 추워, 엇 추워;' 를 연발하고 있었다. 주체는 이렇게 사신을 속이고는 거사를 준비해 계속해 나갔다. 마침내 1399년 7월 쿠테타에 성공을 하게 되는데, 그 방법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영락제는 일의 성공을 위해 비밀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지극히 중요한 일은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기밀유지에 실패하여 일을 그르친 경우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