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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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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을 앞세운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한국 가수들이 해외에서 한국 노래를 부르고 세계인들이 K-Pop을 따라 부르는 광경이 그리 어색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이것이 한류의 정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화 전파의 정점은 타 문화를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때 도달한다. 다시 한 번 음악으로 예를 들면, 소녀시대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 영어 음반을 발매하였듯, 외국 뮤지션도 한국 음악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한국어 음반을 발매할 때 문화전파는 정점에 도달한다. 이렇게 외국인을 통한 한국 문화의 재창조가 한류의 정점이라고 본다면, 의외로 출판에서 더 많은 성과를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 불교에 반해 한국으로 출가한 현각의 ‘만행’, 그 어떤 한국인보다 지적인 한국어를 사용하는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있다. 그리고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의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또한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미국인 학자가 한국어로 쓴 책이다.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그 사회에 속해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바라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밖의 사람에게는 너무나 이상하게 보이곤 한다. 책은 대표적으로 한국의 술 문화, 교육 정책, 이야기 소재의 빈약함 등을 지적한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들도 역시 여느 한국인들과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왔느냐, 왜 왰느냐, 김치와 된장찌개는 먹을 줄 아느냐, 술은 잘 마시느냐, 왜 혼자 왔느냐, 애인은 없느냐…. 서로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지만, 대학생들은 초지일관 술과 여자이야기 밖에 없었다.” - P.44 임마누엘의 지적은 그 자체로 옳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한국의 문화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범하는 오류일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옳은가 판단하는 것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고, 그보다는 한국인이 쉽사리 자각할 수 없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다만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 파트와 파트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산만하게 읽히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산만함 속에서도 하나의 키워드를 건져낸다면 그것은 ‘질문’이 될 것이다. 임마누엘은 질문을 강조한다. 심지어 한 파트(2. 질문이 정답이다)를 할애하여 질문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 진행된 교육을 언급하며 질문을 함으로써 세상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큰 자산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질문이 중요한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언급하는 것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많은 교실에서 질문이 사라져 있기에 임마누엘의 지적은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제목을 언급하고 싶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제목, 정말로 멋있다. 왠지 나의 인생 방향을 정해줄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는 않는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이 제목에 낚여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자 책을 집어들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의 소망을 이뤄주지 않았다며 책에 대한 불평도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애초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가라고 말해주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다소 거칠게 방법론은 제시한다. 바로 질문이다.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아야 아는 것이다. 책에는 방향이 없다. 방향은 결국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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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책 제목과 부제에 낚였다. 아니, 그렇다고 이 책이 절대로 부족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름 재미있게 읽었고 저자가 말하는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의 현재, 더 나아가 인생의 목표와 가치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꽤나 파란만장했으니까. 앞서 내가 낚였다고 한 건 책 내용이 아니라 단지 “하버드 대학 교수”라는 요 단어 때문이라고 고백하련다. 이상하리만큼, 아니 남들보다 쫌 심하게 나는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그래도 서울 4년제 대학졸업했고, 대학원도 서울서 나왔음^^) 사회에 나와 보니 학벌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절실히 느꼈지만 이제 그런 열등감쯤은 쿨하게 넘겨주어도 될 나이인데 소위 말하는 SKY앞에서는 괜히 주눅드는 몹쓸병이 아직 고쳐지지 않는다. 게다가 어린 시절 에릭시걸의 “닥터스”를 읽은 후 사랑도 공부도 몸살 나도록 정열적으로 하는 대학생, 아니 바로 “하버드 대학생”에 대한 환상이 뼛속까지 박혀 있는 상태가 아직 그대로인 것이 틀림없다. 이런 연유로 “하버드”가 언급된 어떤 것이라도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가고 귀가 커져 온 정신이 그쪽으로 집중되어 버린다. 이번 책 역시 출간소식과 함께 책 소개 글을 보자마자 “이건 읽어야 돼”라고 이미 마음을 정한 터였다. 책의 저자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로 한국 이름은 이만열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 책은 외국인이 쓴 책을 번역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역자가 없이 저자 이름만 달랑 보여 좀 당황했는데 내용을 읽고는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인 편집자가 손을 보았는지는 몰라도 모든 문장, 단어사용, 게다가 동양학적 뜻과 풀이까지... 도저히 외국에서 나고 자란 외국인의 글이라고 생각되지가 않았다. 학벌은 또 어떤가! 말 그대로 엄친아 저리 가라다. 예일대, 동경대, 대만국립대, 서울대,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라 한다. 여기에서 또 한번 저자에게 홀딱 빠져 버렸다. 본문을 보면 흔한 외국인들의 한국 체류기처럼 이 책 역시 저자가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이질적인 한국문화에 대한 속내, 여러 해 동안 살며 겪은 좌충우돌 에피소드등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런 흔한 한국체류 에세이류와 확연히 다른 점은 바로 저자의 독서노트라고 밝힌 부분과 인문교육의 위기로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나아가 그 대안을 제시한 부분이었다. 특히 독서노트 부분은 쉽게 말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기술한 부분인데 언급된 책들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연암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시작으로 장자의 나비이야기, 홍루몽, 살아남은 자의 아픔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가 깨달은 문학적 소양과 철학적 풀이를 보면 저자의 학문적 깊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그가 한문도 알고 동양의 유수 대학들을 거친 학력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한 것도 있겠지만 이 독서노트를 읽노라면 문학과 동양사상을 총체적으로 연결시킨 독자적인 시각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빨리 빨리 경쟁에 너무 몰입한 대한민국 교육, 더 나아가 인문학이 부재된 현재 상태에까지 시각을 넓힌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독서교육과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물론 저자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 그냥 쉽게 읽고 지나가는 에세이가 아님을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세상의 이치를 통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인문학의 부활이야말로 찬란한 한국 문화유산을 빛나게 해 줄 원동력이라는 그의 말이 점점 깊이 각인되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제목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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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마치 졸업식에서나 들을 수 있는 선생님 말씀 같은 제목을 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하였다. 아직까지 방황하는 어떤 이에게 멀리 되돌아 온 것도 값진 인생이며 방황하기에 청춘이라는 식의 위로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책은 한 교육을 잘 받은 오리엔탈에 대한 환상이 있는 미국인이 바라 본 한국과 한국에서의 생활, 거기에 대한 감상, 자신이 받은 교육을 말하고 있었다. 글은 독자를 중심으로 기획되지 않고 독자가 아닌 작가의 이야기를 그냥 풀어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드는 생각은 제목과 책의 미스매치였다. 미스매치. 인터넷을 통해 이 책에 관련된 서평 중 거의 대부분이 지적하였고 우리의 인문독서패널과정에서도 가장 많이 이야기 다루어 졌다. 제목은 '하버드 박사의 한국표류기'가 적당할지 모른다. 저자의 말을 읽어보면 어쩜 이 제목이 원제였을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이 멋지고 거창한 제목은 출판사의 마케팅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속도'이고 무엇이 '방향'인지 다시 목차를 읽었고 다시 접어둔 부분을 펼치며 찾아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양적인 발전이 질적인 발전으로 쉽사리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축적된 경험들이 발효되어 세계로 문화적인 향기를 뿜어내지 못한 채 그저 보고 감탄하는 여행에 그처 버린다. (p35) 그런데 외국인들이 궁금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백제는 어떤 나라였는지, 무령왕릉만의 특별한 것은 무엇인지, 당시 백제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또 외부 세력과의 역학관계는 어떠했는지를 더 궁금해 한다. (p36) 전반부의 이 두 대목을 가지고 '속도'는 '양적 발전'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겉치레, '방향'은 진정 나아가야 되는 어떤 '질적 발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우리는 어느 대학에 갔는지, 어느 회사에 들어가는지, 토익점수는 얼마고, 어떤 스펙인지, 연봉은 얼마이지 이런 잣대들에 익숙해 졌고 이런 잣대들에 자신을 맞추어 가기를 강요받는다. 비단 대학생 뿐 아니다. 직장인들은 근무평가와 그에 따르는 성과급, 심지어 판사와 경찰과 같은 가치를 추구해야 되는 직업마저도 우리 사회는 점수화하고 측정하며 경쟁시킨다. 사회는 양적 발전만을 추구하고 개인은 양적 발전을 강조하는 사회에 생존하기 위해 적응해야만 한다. 왜 배우는 지 어떻게 쓸 생각으로 배우는 지 이런 고민은 없이 끝없는 학습에 내몰리며 무한으로 평가받고 잠시라도 한 눈 팔면 잉여화 되는 사회. 행복에 대한 고민 없이 점수에 매달리는 사회. 이제는 이런 이야기가 식상한 문제제기 일지도 모른다. 외국인이 시내에 나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며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예전에 TV예능으로 까지 만들어지며 인구에 회자된 지 옛날이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한국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 홍보, 미디어 활동, 전략 기획 및 과학 기술 개발 등과 같은 정부 및 기업 프로젝트를 수행한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 이다. 이런 경험에 바탕을 둔 이야기는 단순히 교환학생이나 여행이나 가벼운 목적으로 와서 부분만을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과는 이야기의 울림이 다르다고 느꼈다. 단지 우리에게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라는 사람이 익숙지 않고 많은 부분 다른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과 다르지 않다라는 선입견이 이 책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비교 문화학을 전공하며 여러 문화권과 여러 나라를 겪은 인문학자인 저자가 여러 문화를 비교해 주며 한국의 모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 주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에 속해있는 한국인 독자들에게 한국문화의 단편적인 부분을 부각해서 지적하는 말하기와 이어 자신이 소위 명문대학을 가기까지의 과정과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야기로 후반부의 대부분을 이끈 부분은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자기자랑이라는 생각이 막 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서로의 생각을 알기 위한 질문은 하나도 없고, 그저 형식적인 영어회화 교재에나 나옴직한 질문뿐이다. 말하자면 외국인을 배려하는 질문이 하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질문에 불과한 것이다. 심지어'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될 질문들도 거리낌 없이 하는 바람에 난감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47p) 질문의 수준만 봐도 그 사람의 학문적 숙성의 정도가 드러난다. 결국 해남여행은 며칠 동안 밤마다 계속 술과 노래로 마무리 되었다. 그들이 어떤 존재이며, 이 세계 속에 그 존재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왜 사는지 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48-49p)
이런 부분은 지적이고 학구적인 온실에서 자란 한 외국인이 자신의 온실과 한국이 다르다는 투정 정도로 들렸다. 과연 그는 자신이 자란 미국에서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다양한 사람을 만났을까? (의문이다/추가) 그는 좋은 교육환경에서 자라왔다. 그가 미국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지적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그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중국과 일본에서도 그가 만난 사람들은 교육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 일 것이다. 그가 예외라고 언급했던 서울대의 박사과정 친구들처럼, 물론 그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일 것이다, 때론 쓴 약처럼 읽혔지만, 자신과 다른 한국의 여느 사람들에 대한 배척이나 불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매체의 추천사와는 달리 이 책은 오랫동안 한국에 살면서 느낀 사회전반적인 문제를 총체적으로 압축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이후의 황무지에서 약 30십 년 동안 초고속 압축 성장을 통해 세계적인 경제발전은 가져왔지만, 상대적으로 인문학적 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삶의 질과 정신적 가치를 그만큼 상실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는 하나 비약이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심도 있는 분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투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가 한 일 겪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은 이러한 반감들의 총합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한 · 일 월드컵을 지켜보면서 한국인의 역동성에 감탄하고 또한 집단이기주의를 우려한다. 친구를 '웬수'라고 부르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고도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반어법에도 주목하고 한국이 더 이상 동아시아의 변방에 자리 잡은 소국이 아니라 문화대국이며 K팝이 아시아를 넘어 뉴욕을 점령할 날이 가까웠다고 찬탄하고 압축 성장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인문학적 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삶의 질과 정신적 가치를 상실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독특한 발효음식문화를 지녔으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날카롭게 응시한다.'된장과 김치 등은 지역마다 맛이 다른 이유는 발효과정에 들어간 미생물이 달라서다. 이런 맛을 표준화, 단일화하자는 의견이 나오는데 이는 몰지각한 언사'라고 평가한 측면을 바라보아야 한다.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마누엘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하다 그렇기에 저자의 학력과 경력,스펙을 보게 되고 그의 메시지 보다는 그에 집중해서 책을 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이 책은 단지 많이 배운 외국인의 자기자랑과 한국에 대한 투정으로 시시하고 고루한 책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 했다고는 너무 많은 부분을 생략하여 저자를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고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많아서 아쉽고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하기에는 날카롭지도 자신만의 프레임을 가지지 못해 아쉽다. 전반적으로 깔린 그의 엘리트 의식은 거북하다. 하지만 경험이 주는 진정성은 분명 있다. 책제목이 주는 .표지 디자인이 주는, 저자의 스펙이 주는 기대감만 줄인다면 이 책을 읽고 실망만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려는 누군가가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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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비추인 책. 제목은 멋있었는데, 내용이 너무나도 부실한 책. 정말로 왜 책을 펴냈는지 알 수가 없는 책. 입시생을 위한 책인지. 책 내용이 수십년전에 자기가 다녔던 학교 자랑이나 어떻게 공부했는지에 대한 건데, 입시생에게도 도움이 되는 지도 의문이고, 그걸 가지고 책을 펴낼 생각을 했다는 것도 우습다. 한국, 중국, 일본의 차이점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책을 펴냈는지 알 수가 없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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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일대와 하버드 대학원을 나온 엘리트가 자신은 기득권을 버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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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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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씨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을 읽고 보통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던 차에 그분의 책중 싸게 나온 책이 있어 한권 샀다. 처음엔 한국인에 대한 용비어천가라 실망했다 덧붙여 한국인은 몽골 흉노계통으로 오랫동안 페르시아와 타밀계통이 섞인 혼혈민족입니다. 이 세상에 단일민족은 없답니다 군시정권 시절의 홍보용 책자같다.♡♡ 일본은 백제가 세운 나라이고 천황은 백제의 담로입니다.(대쥬신을 찾아서 1,2)나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 보십시오 (사마천의 화식열전)백제는 중원에 있었습니다. 한글도 티베트의 파스파문자가 원형입니다.(훈민정음과 파스파문자) 만일 한국인들이 신라사람들이 첨성대,석굴암,불국사를 지었대 그들은 지금 어디갔을까 하면 모두 웃을겁니다.백제인은 중국,한국,일본에 걸쳐있던 황제국이었고 지금 일본인의 직계조상이 백제인입니다.-○○ 단일민족은 닥터인 서재필선생이 최초로 한말로 그는 인류학자도 역사가도 아니었다. 우리는 수많은 피가 섴인 민족이다. 이 책은 단일민족이란 말만빼면 그럭저럭 읽을만하다.(드라비다어와 한국어의 비교연구)읽어보십시오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라도 도덕성으로 무장하고 용기와 상상력을 겸비한 사람들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진정한 실체를 볼 수 있다. 한국인이 못보는 한국병을 조리있게 잘지적해 주었다. 철학이 없는 자기계발은 결국 불행을 낳는다.ㅡ 이책의 핵심이다. 홀로코스트가 가능했던건 히틀러를 뒷받침해주었던 유대인 로스차일드가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팔레스타인 현대사,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 3)읽어보십시오 철학은 있으나 역사의식이 부족한 책이다.♡♡ 봄에 자미원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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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를 지나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사회가 정체의 위기를 맞은 지 오래, 더 이상 속도가 아닌 방향성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 되짚어보게 되는 시점입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의 저자 이만열(한국명)씨는 예일대와 하버드대학원을 졸업한 동아시아 연구 분야의 교수입니다.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에 능통한 그가 10여 년간 한국에 살며 교육현장에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풀어내었고, 앞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그는 중국의 고전작품에서부터 다산 정약용, 21세기 인문학, 무라카미 하루키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분에서 변화하는 세대를 위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사회는 '왜(Why) 사는가?'의 문제보다 '어떻게(How) 사는가?'의 문제가 더 긴급했다. '왜?'는 인문학적 질문이어서 밥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어떻게?'는 실용적 질문이어서 밥을 직접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당장 회사에 들어가 컴퓨터로 회계처리를 해야 하고, 기술적인 조작으로 업무처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학교는 인문학을 포기한다. 철학보다는 경영학을, 사회학보다는 경제학을, 역사학보다는 기술을, 문학보다는 외국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한다. 그런 실용학문을 오랫동안 한국사회가 요구했다. 물론 그 평가도 경제적 성과와 수치로 평가해버렸다. 하지만 21세기로 넘어와 한국경제는 세계 10위권 너머까지 도달했다. 한 마디로 일정하게 먹고 살만한 살림살이가 된 것이다. 그때서야 문득 가슴 속이 크게 뚫려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텅 빈 구멍'의 실체를 알기 위해 자신하게 자문을 한다. 바로 '왜?'라는 자기정체성의 질문이다."』 117p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자기계발서가 될 뿐만 아니라 교육관을 정립하고자 하는 학부모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인문학 에세이집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철학, 미술, 음악, 문학 분야를 고루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다양한 소재는 '창의적이고 사고력을 높이는 교육'을 핵심 주제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가정교육으로부터 시작된 토론식 교육과 독서의 힘을 재차 강조합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좌절감이 크게 왔습니다. 이것은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깨우친 부모가 시도한다 하더라도 친척, 사귀는 친구들, 학교 선생님, 대학교의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토론과 독서의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지 않다면 체득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아, 아직 한국은 먼 것인가?'라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사실 외국의 토론 문화는 고대 소크라테스 때부터 이어집니다. 제자와 대중들을 향한 소크라테스의 질의응답법에서부터 외국 교육의 토대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고대 그리스의 벽화나 그림을 보면 어린아이를 성인의 작은 사이즈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등신의 갓난 아기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인과 똑같이 사고할 수 있는 '작은 성인'으로 본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따라갈 수 없는 문화적 차이를 느낍니다. 21세기의 한국사회는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자녀를 부모의 슬하에 두어 성인이 되는 기준점을 늦추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는 결혼중매업체를 통한 합의된 결혼에까지 관여하는 모습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보곤 합니다. 이러한 문화는 '전족'과 같습니다. 중국여성들의 발을 자라지 못하게 했던 전족이 21세기 한국의 교육 문화에 만연합니다. 창의적교육, 자기주도학습 등이 교육목표로 설정된다 하더라도 학생 개인 개인이 독립적인 주체로 성장하여 독립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면 교육개혁은 허공의 메아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혁신적인 교육을 실천하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 점이 흥미롭습니다. 먼저는 이태원의 백해영 갤러리에서 이루어지는 어린이 예술 공방입니다. 관장 소유의 집을 예술창작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개방해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예술인들이 머물 수도 있습니다. 저자가 든 일례로 '행운의 쿠키'를 소개합니다. 아이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플라스틱 소재로 쿠키를 만들어 자신들의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일본 원전 사고로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감사의 인사가 담긴 답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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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창작과 더불어 윤리적 교육, 공동협력을 통한 의사협의과정을 체득할 수 있게 열린 학습의 장을 마련한 아름다운 프로젝트입니다. 또 한 가지 사례는 경희대의 '후마니타스 칼리지' 개혁입니다. 2010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새롭게 개편된 교양 교육과정을 일컫습니다. 인간과 세계의 이해를 기본으로 하여 고전 읽기, 드라마 창작 교실 등 인문학 기초를 기반으로 세계시민적 역량을 함양하는데에 그 목표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인문학으로 유명한 도정일 교수가 새로운 계획에 함께했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겠네요.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에 앞으로도 주목해야겠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저자가 자식 교육에 있어 가장 강조했던 점을 짚어봅니다.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누군가가 이러한 관점에서 그것을 보거든, 너는 그것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어떤 역사를 뒤흔든 순간을 보더라도 그 이면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흐름이 항상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역사의 한 단면만을 보게 되고, 만약 그 역사가 왜곡되어 있다면 거짓된 정보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무지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197-198p 대학교 졸업반 때, 국어국문학과의 고전문학 전공수업을 선택해 수강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교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하셨지요. 칠판에 정육면체를 입체적으로 그리시곤 고전문학을 배우는 이유는, 한 가지 사물을 보더라도 다양한 면을 관찰할 수 있는 사고력을 배양함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오랫 동안 새겼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더라도 활자를 읽는데서 그치지 않으려면 비록 혼자만이라도 다양한 면에서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방향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여러 상황을 통한 통찰과 상상력, 창조력은 미래의 비전을 찾는데 있어 가장 본질적인 요구조건이라고 강조합니다. 세상을 변화하는 힘은 거대한 기업이나 국가, 사회단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학자인 마가렛 미드의 말처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모인 단 몇 명의 사람'에 의해 변화됩니다. 저자는 그 해답을 '사고하는 독서'에서 찾습니다.
미국 페이스북 본사 사무실 복도에는 "우리는 기술 회사인가?(Is this a technology company?)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배경엔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상상력을 주제로 작품을 그린 사람입니다. 페이스북이 기존의 업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상상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것이겠죠. 세계적 기업인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은 다양한 인문학을 토대로 한 정보기술 분야의 통합적 연구를 혁신의 비결로 꼽습니다. 2011년 구글의 신입사원 중 80% 이상이 인문학도였다는 점이 그 증거입니다. 미래 사회는 점점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보다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속도가 아닌 방향에 초점을 맞춰 우리의 발걸음을 재정립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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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이유는 서양인이 공부한 또는 받아들인 동양의 철학에 대한 느낌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자신의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이 알고 지낸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이다. 마치 같은 '하버드' 대학을 나온 현각 스님이 오래 전에 쓴 책처럼 말이다.
하긴 미국의 주류 사회에 편입할 수 기회를 가진 사람이 아시아의 사회에서 그 사회 구성원조차 이제는 공부하지 않는 학문을 전공한다는 것이 평범한 일은 아닐 것이고 그 길에 들어선 이유와 여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의 '하버드'와 '예일' 이라는 이름에 느끼는 경외심을 매우 크다. 그것은 한국인들의 심리 속에 있는 '서울대'라는 이름이 갖는 힘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울대' 위에 '하버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천하의 도올 김용옥도 '서울대'라는 이름에 갖는 주눅을 해소하기 위해 하버드에 갔다고 당당하게 말햇다. (내 개인적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은 '뻬이징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통과한 경쟁율을 생각해 봐라.)
책 내용 중 내 머리에 꽉 박힌 부분은 미국 대학생의 최상위 10%는 한국의 최상의학생 10%보다 우수하지만 하위 40%는 한국 학생이 우수하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스템의 문제인가 아니면 인구가 많다보니 우수한 인재가 많은 것일까? 시스템의 한계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이 저자와 현각 스님과의 공통점을 느낀다. 일단 엄청나게 공부했고 아직도 헝그리 정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세상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예민'하다는 것이다. 다만 현각스님이 좀 더 세서(radical) 스님이 된 것 같다.
책 서문에는 백악관 TV 중계에 나온 현각 스님의 친구들과 잘 나가는 저자의 친구들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들은 '날리고 있는데' 동양을 선택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삶의 기준이 다르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학자나 교수의 '커리어'가 가장 길고 은퇴가 느리다. 그리고 책을 남겨 오래 기억된다. 정치가들의 책은 시간이 지나면 누가 읽어 볼까? 가장 늦게 은퇴하는 사람들은 성직자이다. 50대 까지 무단히 공부하다가 60대, 70대에 가서 가장 활발히 일(?)하고 사망시기가 은퇴하는 시기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 서양 철학(특히 자본주의 서양 사회에서)을 먼저 공부한 사람이 알게 된 동양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또한 박노자교수처럼 꾸준한 저작활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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