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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그녀들, 열한 번의 감동”
책이란 모름지기 사유와 정보, 둘 중 하나는 담고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사유와 정보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는데다 그것들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저자가 그려놓은 열 명의 매력적인 여성들을 삶을 따라가면 된다. 그곳에 그녀들의 사유와, 그녀들이 살던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또한 남자들과는 달리 억압받을 수밖에 없던 여성으로서의 삶이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 ![]() “청춘아 걸으라 그대의 뼈는 부서지지 않으리니”
삶이 힘겨울 때,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의지하고 싶을 때 필요한 말은 “나도 그랬었어”가 아니다. “그래, 힘들었겠구나”다.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속 열 명의 그녀들은 위선적인 위로를 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말하지 않고 보여주었다. 온 몸으로, 자신의 삶을 통해. 그녀들은 제 안의 억압을, 외로움을, 글이라는 형태로 승화시킨 멋진 작가들이었다.
제인 오스틴 + 조르주 상드 = 사랑
사랑을 믿는 자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그래도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 답을 듣고 싶은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이다.
책 속의 책
작가는 책 속의 책에 적절한 수위로 간섭하며 독자들을 안내한다. 본문 곳곳에 인물 사진, 일러스트와 함께 영화화 된 화면의 캡처 사진이 삽입되어 있어 읽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열 명의 그녀들, 내게 오다
여자로 산다는 건, 아니 사람으로 산다는 건
이 리뷰를 쓰고 있는 나는 서른의 남성이다. 이따금 어머니의 삶을 통해, 혹은 교제했던 여자 친구들을 통해 여자의 삶을 짐작해보고는 했다. 끊임없이 욕망하지만 대상일 수밖에 없는 여자. 오죽했으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까지 나왔겠는가. 언뜻 이 책은 여성 독자를 위해 나온 책 같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그 느낌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남성 독자를 위한 책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왜? 자기 주체성을 찾아 평생을 바친 열 명의 여성작가들을 따라가다 보니 조금은 더 나와 다른 성을 이해하게 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결론적으로 여성과 남성이란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의미다. 이성 친구가 있거나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두 권 사서 그 중 한 권을 선물해 보시라. 표지 일러스트가 예뻐 별도의 포장이 필요 없다. 그리하여 각자 한 권씩 갖게 된 책을 읽고 나면 사뭇 품격 있는, 그러나 인간미를 잃지 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솔로여서 이런 상상을 하게 되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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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띠리링. 카톡 메시지 도착음이 울린다. 친구 녀석이다. 말은 없고 유튜브 URL만 뜬다. 터치해 본다. 유튜브 창이 뜨고 동영상이 재생된다. 이런. 멀리 중동쯤으로 추측되는 곳에서 벌어진 가족 살해 사건에 관한 영상이다. 뭐 이런 걸 다 보내나 싶어 당장 끄고 친구한테 따진다. “이런 거 보면서 친구들한테 퍼뜨리면 재미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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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자학적인 꿈을 꾸고 일어나면 온몸이 아프고 밤새 달리기를 한 것 마냥 피곤하다. 컴퓨터를 켠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들고 집근처 탐앤탐스로 달려간다. 우정도 애정만큼 아프고 친구도 연인만큼 쓰리다는 내 상식을 저버렸던 인간들이였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인간은 갑작스런 사건들과 마주했을 때, 이쯤은 대수롭지 않다 는 듯이 능숙 능란하고 잔잔하게 대처하는 부류이다. 뭐 ,나는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리기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엉엉 울고 한숨만 푹푹 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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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시선을 끄는 한 줄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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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 ‘목마와 숙녀’의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느낌을 생각하기도 전에 버지니아 울프가 떠올려 졌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목마의 방울소리만 그저 맴돌았다. 방울은 무슨 소리였을까? 그래서 읽게 되었다.
한 숨도 쉬지 않고. 가슴을 설레며. 작가,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하고 돈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생계를 위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자신을 위해 위대한 작가가 되고자한 그녀의 삶은 가슴을 아리게 했다. 결국 전쟁과 함께 온 여러 가지 문제가 그녀의 숨통을 조이고 커다란 돌멩이를 주머니에 넣은 채 그녀는 우즈의 강물로 걸어 들어간다. 작가가 조명하는 것은 여성으로서 삶. 특히 가부장적 사회에서 겪는 소외와 차별을 버지니아 울프가 끝없이 자기만의 힘으로 밀고 나갔고, 성공의 여부를 떠나 집안의 천사를 죽이려고 했던 그녀의 노력을 가슴으로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당신은 집안의 천사를 죽이고 있습니까?’라고. 분명 자기 확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특히 여성에게. 남성독자로서도 불편할 수도 있는 진실은 불편이 아닌 공감의 깊이였다. 이 밖에도 제인 오스틴, 조르주 상드, 실비아 플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잉레보르크 바흐만, 로자 룩셈부르크,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시몬 드 보부아르 등 여성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삶을 조명한다. 각 인물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아니면 그 시대가 아닌 오늘날에 많은 의미를 주는 작가들이서 관심이 컸다. 몰랐던 사실들도 알아가고 그녀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시몬 드 보부아르가 장 폴 사르트르의 반려자였다는 사실과 장 폴 사르트르가 바람둥이였다는 것, 제인 오스틴이 평생 한 남자를 그리워하며 낭만적 사랑을 키워왔다는 것, 나를 파괴할 권리에 대한 사강의 이야기, 로자 룩셈부르크의 비극적 결말 하지만 태연했던 그녀의 모습, 조르주 상드와 쇼팽의 이야기 등 평소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놓쳤을 이야기들을 책은 풀어내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읽는 동안 책을 놓지 못했다. 10명의 작가를 만나는 동안 100년을 같이 살았고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고민하게 되었다. 뜨거운 것이 마음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보는 다리 위의 야경 속 붉은 점들이 가끔 말을 건다. ‘힘들지?,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싶으면 핸들을 돌려! 그럼, 모든 것이 편해 질거야’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나는 지금 어디에 있 는 걸까?’‘너는 지금 다리 위에 있잖아.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그 순간, 나와 함께 밤을 새운 수전 손택이 이야기 한다. ‘논 피앙게레Non pianggere, 울지마!'」 강추! 해 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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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힘들게 걸어가서 마침내 완성한 그들의 아픔이 깃든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 가을의 밤을 지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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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에게 지적 유산을 남겨준 열 명의 천재적인 서양 여류작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안내서이자, 여성주의 시각을 담아낸 비평적 성장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읽다 문득 가슴이 꿈틀거리는 걸 느끼고 당황했다. 또, 불현듯 날카로운 비수가 어디선가 나타나 내장을 훅 가르는 통증이 와서 놀라기도 했다. 만만하고 말랑말랑하게 보인 이 책을 읽으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가부장적 편견으로 얼룩진 시대의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거나 궁핍한 가정에서 딸로 태어나 여자로서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 세상에 몸을 던진 용기 있는 여성들을 대면하는 경험은 여성 독자에게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우리보다 한두 세기를 앞서 살면서 남성 중심 세상의 불편한 인식에 맞서 싸운 인생의 멘토들이기 때문이다.
신은 시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신다고 누가 했던가. 그렇다면 제인 오스틴에게 내린 가난과 독신이라는 시련은 그녀로 하여금 <오만과 편견>을 쓰게 하기 위함이었나. 사랑의 파도를 타고 따스함이 넘치는 글을 쓴 조르주 상드가 느껴야 했던 시련은 자유와 평등, 박애를 위해 사회혁명의 대열에 나서라고 주어진 것인가. 연인과의 이별과 배신으로 죽음의 고통을 느껴야 했던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련은 글로 인습에 맞서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필요한 시련이었단 말인가. 천재성을 지닌 그녀들의 시련이 너무도 가혹해서 차라리 평범한 둔재로 태어난 내가 오히려 행복하다고 여긴 건 나만의 아이러니일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작가이자, 비평가이자,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였던 그녀들-제인 오스틴, 조르주 상드, 실비아 플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버지니아 울프, 잉게보르크 바흐만, 로자 룩셈부르크,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시몬 드 보부아르-은 모두 여성이라는 젠더와 글을 자신의 인생 무기로 삼았다는 두 가지 사실에서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다.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똑똑하고 재능있는 그녀들이 자신의 삶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은 한 마디로 '온갖 차별과 편견에 맞서 투쟁하고 성장한 역사'였다고 하겠다.
"학교의 문턱도 제대로 밟지 못한 버지니아 울프라는, 제인 오스틴이라는, 허난설헌이라는 어미나, 나의 어미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비로소 종이 위에 그들의 각혈을 잉크 삼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고백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라고 믿는다. 이제 그녀들이 못 다 이룬 과제는 오늘을 사는 여성들 모두의 몫으로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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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중에는 그 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 있다. 그런 책들을 나는 멋대로 '씨앗책'이라고 부른다. 씨앗 하나로부터 줄기가 뻗어나와 여러 개의 가지로 이어지는 것처럼 그 책 한 권에서 다른 책들로 독서의 가지가 쭉쭉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가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등장 인물들이 쓴 책을 읽어보고 싶어지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도 책을 다 읽자마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구입했다. 조만간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과 한나 아렌트의 책도 구입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제목만 보아서는 버지니아 울프에 관한 책같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저자 이화경은 <꾼>, <화투 치는 고양이> 등을 쓴 소설가로, 자신에게 많은 영감을 준 매혹적이고 지적인 열 명의 여성들의 삶을 이 책에 담았다. 그 중에는 버지니아 울프도 있고, 제인 오스틴, 조르주 상드, 프랑수아즈 사강, 헤르타 뮐러 같은 소설가와 로자 룩셈부르크,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정치가, 저널리스트, 학자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녀를 비롯한 열 명의 여성들이 '공동 주연'인 셈이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 대부분이 여성주의 논의에 자주 거론되는 인물들이건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중 대부분은 여성주의를 알지도, 의도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인데, 그것이 다른 여성들의 삶에 등불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제인 오스틴은 경제적으로 윤택하지만 굴종적인 결혼생활 대신 가난해도 작가로서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을 택했다. 조르주 상드는 여성 작가들이 가정과 연애 같은 소재에만 천착하는 것을 개탄하며 남성이 향유하는 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남장을 불사했다. 현대인들의 눈에는 이들의 선택이 지극히 당연하고 올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남성들은 물론 같은 여성들에게도 어리석고 위험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고, 가족과 친구, 연인마저도 등을 돌리는 삶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삶을 받아들인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고개가 숙여진다. 더욱 숭고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산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철학과 경험을 작품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의 작품 중 다수가 당대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경제적, 정치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것도 아니지만, 그들이 피땀 흘려 작품을 남긴 덕분에 후세 사람들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윤택해졌다. 여자라는 것이 때로는 삶을 옭아매는 족쇄처럼 여겨지지만, 여자이기에 이런 위대한 여성들의 삶에 귀기울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본받고자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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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책을 이렇게 아껴읽은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책 속 사진의 여인들이 내 옆에 와 있는 것 같아요. 내게 무한 애정과 힘을 주네요. 그 중 닮고 싶은 여인은 수전손택입니다. 동정이 아닌 공감의 힘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라는 그 외마디 외침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내가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는 모든 여성들에게 꼭꼭꼭 강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