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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초: 70년대 서민들의 삶과 애환
"부초: 70년대 서민들의 삶과 애환" 내용보기
얼마 전에 제가 좋아하는 한 지인의 홈페이지에 놀러 갔다가 교보문고에서 작성했다는 [건국 이후 베스트셀러 50]이라는 문건(?)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그 중 몇 권이나 읽었을까 50권의 책 제목들을 읽어내려갔는데, 의외로 제가 읽은 책들이 많이 있어서 기뻤습니다.그런데 읽다 보니까, 2005년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사람들, 혹은 잘 모르겠다 싶은 책
"부초: 70년대 서민들의 삶과 애환" 내용보기

얼마 전에 제가 좋아하는 한 지인의 홈페이지에 놀러 갔다가 교보문고에서 작성했다는 [건국 이후 베스트셀러 50]이라는 문건(?)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그 중 몇 권이나 읽었을까 50권의 책 제목들을 읽어내려갔는데, 의외로 제가 읽은 책들이 많이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까, 2005년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사람들, 혹은 잘 모르겠다 싶은 책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일종의 의무감 및 사명감(?)을 띄고... 그리고 [건국 이후 베스트셀러 50]에 드는 책을 한권 정도는 읽어보시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은 작가와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한수산씨의 [부초]라는 작품입니다.

1977년에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니...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는 이 작품보다 늦게 태어나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네요.

책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작가에 대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한수산]이라는 이름 석자가 낯선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소개하는 게 가장 좋겠죠? 한수산씨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소설로는 <해빙기의 아침>(1973), <부초>(1977), <4월의 끝>(1978), <바다로 간 목마>(1978), <욕망의 거리>(1981), <밤에서 밤으로>(1984), <거리의 악사>(1986), <모래 위의 집>(1991), <벚꽃도 사쿠라도 봄이면 핀다>(1995), <말 탄 자는 지나가다>(1998) 등이 있고 <젊은 나그네>(1978), <저녁에는 그대여 아침을 꿈꾸어라>(1986), <이 세상의 모든 아침>(1996) 등의 수필집과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2000) 등의 산문집이 있습니다.
이 작가의 경우 외모도 썩 잘 생겨서 7-80년대에는 여성 팬들이 아주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최근엔 흔히 '베스트셀러'라고 할 만한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고 계십니다.
최근 작품에는 [까마귀]라는 장편 소설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일본 나가사키에 끌려간 한국인 징용공들의 비극적인 삶의 처절함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소설의 내용 소개에 들어가겠습니다.
[부초]는 '일월곡예단'이라는 유랑극단(일명 서커스 극단)을 소설의 대상으로 합니다. 즉, 한 유랑 극단의 단원들의 이야기가 [부초]의 주된 내용입니다.
'부초'라는 단어의 뜻이 상징하듯이 유랑극단은 한 곳에 상주하면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계절에 따라 이 지역 저 지역을 옮겨다니면서 공연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을,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공연을 하다가 봄이 되면서 서울쪽으로 올라오면서 공연을 하는 삶을 계속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살다 보니 흔히 말하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술을 배워서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 서커스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학력도, 백도 없는 사람들을 순순히 받아들여줄 만큼 세상을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명'이라는 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명은 같은 유랑극단의 '지혜'를 사랑합니다. 원래 같은 곡예단 단원들끼리의 연애는 금지되었기에 사람들 몰래 연애를 할 수밖에 없지만, 하명은 지혜와의 사랑이 결실이 맺기를 꿈꿉니다.
그러나 가슴 한켠으로는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곡예단에서 만나 결혼을 해서 계속 곡예를 한다면, 가정을 이룬다 해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고, 아이에게 결국 이러한 삶을 물려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늙기 전에 기술을 배우러 서커스를 나가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일월곡예단에는 '윤재'라는 나이 많은 마술사가 있습니다.
'윤재'는 곡예단 사람들에게는 '아버지'같은 존재이지만, 또한 곡예단을 떠나지 못한 그들의 '최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윤재'는 마술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깐깐한 성격이기 때문에 '돈 몇 푼' 벌기 위해 약장사들을 따라 다니는 손쉬운 방법 대신 곡예단을 고집하는 사람입니다.

 

그 밖에도 여러 인간 군상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난쟁이 어릿광대 '칠룡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았지만, 남자 집안에서 '광대는 창녀나 마찬가지'라고 반대해서 결혼을 할 수 없었던 석이네 등이 그렇습니다.

지혜나 석이네에 대한 묘사를 읽다보면, 아마도 상당한 거부감이 들기도 할 겁니다.
지혜는 하명을 사랑했지만 강간을 당하고 자살을 기도하다(자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살이라고 할 수 있는) 곡예단을 떠나고, 석이네는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던 아들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주고 나서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합니다.

21세기의 정서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여성들의 모습이지만, 그것이 1970년대의 전형적인 여성들의 모습이었다고 본다면, 불과 30여년 사이에 사람들의 정서나 인식이 급변했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난쟁이 칠룡이는 참 정감가는 인물인데요... 오래 가지 않은 그의 로맨스도, 가슴을 애잔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부초]라는 작품은 '곡예단'이라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집단의 사람들 이야기만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요?

작품의 중반 이후로 가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바로 곡예단과 단원들을 아끼던 단장이 쓰러지면서 그 동생이 새 단장이 되면서 일어나는 갈등인데요, 이전 단장과는 달리 새 단장은 '곡예단'을 단지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합니다. 따라서 알게 모르게 단원들에게 줘야 할 돈들을 빼돌리고, 싸게 쓸 수 있고 자기 말을 충실히 잘 듣는 새로운 단원들을 데리고 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기존 단원들과 새로운 단원들, 그리고 기존 단원들과 새로운 단장같의 갈등의 원인이 되고 맙니다.
곡예단을 단지 '돈벌이'로 생각하는 새단장에게는 단원들이 가진 기술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이 작품을 이렇게 평가했더라구요.
"유랑연예인들 나름의 인정에 가득한 인간관계를 그린 것으로, 작자는 그들을 애정을 가지고 다루고 있다. 서커스라는 특수하고 폐쇄적인 사회집단과 또한 그런 사람들의 삶이 매우 기이한 듯이 그려져 있겠거니 생각되지만,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른바 이농민이라든가, 도시 변두리의 빈민이라든가, 부랑 노무자라든가, 여하튼 근대화의 물결에 밀리고 소외된 사람들 이 겪게 되는 삶의 뿌리 없음과 인정스러움과 고통스러움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매우 정확하게 이해하고 평가했다고 생각하기에 그대로 인용해봤습니다.

즉 [부초]라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곡예단'은 단지 조금은 독특해서 이야기거리가 될 만한 희한한 소재가 아니라, 근대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하명의 입을 통해서 작가가 하는 말을 통해 이러한 작가의 생각이 매우 잘 들어납니다.

하명은 늘어나는 아파트나, 불이 환하게 켜진 집들을 보면서, 그들과 자신의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점점 늘어가는 텔레비전 안테나를 보면서 '곡예단'의 말로가 다가옴을 느끼며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물론 '근대화'라는 것이 그 발전의 수혜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날빛보다 밝은 천국'이었겠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그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계층들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매우 지난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부초와 같이 정처 없는-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초]를 통해서 근대화 과정과 그 와중에 소외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초]는 단순히 곡예단이라는 소외된 집단의 고통과 애환, 슬픔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곡예단 천막은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맙니다. 그야 말로 시대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곡예단의 말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명을 비롯한 단원들은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자신들의 새로운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조라는 것은 인간 개개인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한 개인은 그 앞에서 보잘 것 없고 하찮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사회에 대한 믿음과 희망,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결코 좌절할 만한 것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소박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이 책을 읽으셔도 좋겠고,
근대화 과정에서 서민(민중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들은 어떻게 소외될 수밖에 없었나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은 결국... 작가의 것이나 비평가의 것이 아닌, 독자의 것이니 만큼, 읽는 사람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만큼이 그 작품일테니 말입니다.

 

 



c*****g 2008.10.13.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