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듯말듯한 비가 내렸다.회색물을 잔뜩 먹고 있는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누군가의 말처럼 문뜩 바다가 보고싶어졌다.아니, 순이삼촌을 읽는 내내 제주 바다가 그리워졌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책 한 줄 읽고 현무암빛 검푸른 바다 생각하고 ,또 한 줄 읽고 읽고 쪽빛바다 생각하고... 당장이라도 책을 덮고 달려가고픈 맘이 절실하기까지 했다. 내게 제주도의 첫 인상은 환상의 섬이지 않았나 싶다.그곳에만 가면 뭔가 다 이루어질 것 같은 아름다운 섬. 고통과 외로움도 다 치유해 줄 것 같은 신비의 섬으로. 은빛 갈대가 어서오라고 살랑살랑 유혹을 할 때 난 처음 제주땅에 발을 내딛었었다.육지와는 반대인 이국적인 풍경들에 정신 못차리게 혼미해졌던 그 때 기억들 새롭다.살면서 하나씩 알게 되었던 제주의 아픔들. 화려한 겉모습에만 빛을 발했던 내 눈이 부끄러웠다. 현기영 님의 작품들은 제주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많다.10년 전 읽었던 제주 민란을 배경으로 한<변방에 우짖는 새>, 후에 이재수의 난이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내가 제주에 있을 때 한창 영화 촬영중이었다.그리고 오늘 읽은 <순이삼촌>.1978년에 발표된 현기영 님의 중편소설로 30 여간 묻혀있던 4.3의 진실을 파헤치고 공론화한 문제적 소설(그 당시엔)로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토속적인 제주만의 언어로 맛깔스럽게 풀어낸 이야기들은 책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제주의 사투리가 정겹게만 들렸다.고향의 언어를 옆에서 듣는 양, 그리움이 밀려왔다.제주에서 살 때 난 "요망지다"란 말을 가끔 들었었다. 어감이 별로 좋지 않아서(여우같다는 말로 알아 들었음) 무슨 말이수꽈? 뾰로통해져 뜻을 물어보니 "예쁘다" 는 말이라고 웃으며 말해주던 그때 일이 생각난다.할아버지의 제사에 맞춰 고향인 제주 서촌 마을에 내려간 내가 화자가 되고, 30년전 향리에서 벌어졌던 양민학살의 아픈 과거를 책 제목인 순이삼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제주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들을 남녀 구별없이 일컬어 삼촌이라고 부른단다.순이삼촌은 30여 년 전의 학살 현장속에서 두 아이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그때의 충격으로 평생 결벽증 비슷한 병을 얻고 어렵게 살다가 끝내는 자살을 택하고 마는 인물로 묘사되어있다.작가는 순이삼촌을 통해 제주의 아픔과 4.3의 진실을 말하여준다. 옥빛바다, 샛노란 유채꽃,탐스런 감귤들이 유혹하듯 뽐내는 이 섬이 반세기 전 총성과 비명 핏빛으로 물들었던 현실을 누가 감히 짐작조차 했을까? 소설속의 생생한 묘사가 그때의 아픔이 다시 살아난듯 고스란히 전율처럼 느껴져온다. 오싹해질 정도로.책을 넘기는 내내 알수 없는 울컥함들. 아프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아프게 했던가? 이런 비극이 이땅에 다시는 없기를 바라며. 쪽빛 제주바다를 다시 그리워하며 난 무엇을 해야할지 잠시 눈을 감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