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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부터 평생 학습해야 했던 조선 시스템, 사회에 지적 긴장감을 불어넣지 않았을까.
"왕부터 평생 학습해야 했던 조선 시스템, 사회에 지적 긴장감을 불어넣지 않았을까." 내용보기
왕관을 쓰게 한 뒤에도 공부를 멈추지 않게 만들었던 경연을 보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참으로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그것도 하루에 네차례나 왕에게 공부하는 시간을 일정으로 잡았다는 것은,  결코 조선사회의 지적 토대가 허투루 볼 수 없을 정도로 제법 단단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원자도 두세 살부터 교육을 시작하는 조기교육 체제를 가동시켰고,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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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쓰게 한 뒤에도 공부를 멈추지 않게 만들었던 경연을 보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참으로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그것도 하루에 네차례나 왕에게 공부하는 시간을 일정으로 잡았다는 것은,  결코 조선사회의 지적 토대가 허투루 볼 수 없을 정도로 제법 단단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원자도 두세 살부터 교육을 시작하는 조기교육 체제를 가동시켰고, 원자가 5세가 되면 보양청에서 본격적인 왕이 되기 위한 공부에 돌입했던 것을 보면 조선의 왕가 교육은 엄격했고, 체계적이었다. 지덕체(知德體)를 기르는 전인교육을 지향했고, 현군과 성군의 자질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유학경전과 역사를 통해 성리학에 기반한 성군이 되기 위한 학습은 기본이었고, 그리고 그 배움을 실천하기 위한 덕을 갖추고, 격구 등을 통한 체력까지, 현대 교육 이론에 비춰 볼 때도 결코 뒤지지 않는 교육 내용과 방식을 추구했다. 

 

경연은 세자와 왕을 성군으로 만들기 위한 조선의 시스템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효과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조선 사대부에 지적, 학문적 긴장감을 불러넣어 주었다는 것과 군신 관계를 떠나 학문에 대해 열린 풍토를 진작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상해봤다. 왕과 신하가 책을 읽고 해석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군주 사회에서 왕과 신하가 배움을 받고 가르치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인상적인가.

그런데 왕도 왕이지만 신하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영광의 꽃방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경연에서 왕과 대면하며 가르침을 준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큰 영광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왕도 공부하는 사회, 그 왕을 가르치는 신하 역시나 책을 멀리할 수 없었을 것이고,또한 왕과 신하가 경연의 자리를 통해 격의없이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순간만큼은 왕과 신하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터놓고 의견을 개진하는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성됐으리란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것이 조선사회, 특히나 사대부와 학문적 풍토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됐다.

공부를 멈추지 않는 왕, 그것이 왕이 되기 위한 바탕이었고, 더 나은 왕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 표방하는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필자가 조선왕조가 5백년 이상을 지탱할 수 있었던 비결을 왕의 공부에서 찾았던 것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비록 점점 공리공론에 치우쳐 변화의 흐름을 놓치게 됐지만, 조선은 분명 왕부터 평생 학습해야 하는 공부 권하는 사회, 관료 또한 책과 멀리 해서는 결코 인정 받을 수 없었던 학구적인 사회였던 것이다.

 

e****0 2014.01.08.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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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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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도현신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9월   한 시대를 풍미한 개인이나 국가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족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후대의 평가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역사 곳에서 찬란한 귀감으로 남거나 모욕적인 수치를 남기고 사라지기도 하다. 역사를 평가하면서 과거를 현재 속에서 찾아 주목하고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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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도현신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9월


  한 시대를 풍미한 개인이나 국가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족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후대의 평가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역사 곳에서 찬란한 귀감으로 남거나 모욕적인 수치를 남기고 사라지기도 하다. 역사를 평가하면서 과거를 현재 속에서 찾아 주목하고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치를 심어 줄 수 있는 그 밑바탕이 되는 것이 교육이며 사회화로 이어지는 문화에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역사에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왕조는 유학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에 있었고, 나름대로 학문을 숭상하고 문치주위로 일관해 온 통치 이념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단편적인 입증이 되리라 본다. 한 예로 전통적으로 토착문화와 유학을 바탕에 둔 한족(漢族) 왕조는 이민족 정복 왕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학문의 뿌리가 얕은 북방 만주족은 이민족을 통치하기 위한 교육 바탕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며 그 왕조의 운명을 달리했고, 결국 그 민족의 정체성마저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수많은 외침 속에서 민족적 자족심을 지켜가며 왕조의 틀을 세워간 조선 왕가의 교육 철학은 이 시대의 지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한 시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선 유학을 근간으로 하는 교육을 중요한 방편으로 삼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통치자로서 나름대로 기본 자격과 권위를 갖기 위해 필히 좀 더 고차원적 교육이 필요했다. 민심을 얻고 백상들의 추앙을 받기 위한 통치자의 기본 자격 요건이 교육을 통해 이루어짐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기에 왕세자  때부터 군왕이 되어서까지 혹독한 교육과 훈련이 이어졌고 교육에 집중하는 본을 보여 왔다. 왕가의 교육 목표를 전인적 군주 육성에 있었고 그 목적에 부합되는 교육 과정 또한 특별할 수박에 없었고, 일반 사대부 교육과는 차별화된 교육 방법이 적용되었으리라 판단된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우리가 일상 생각하는 조선 왕가의 교육 철학과 방법보다 한 단계 더 뭔가 특별한 요소들이 고스란히 이 책에 녹아 있다. 특별함이 다른 무엇보다 더 권위를 갖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재 속에서 역사 엘리트 교육의 현장을 이 책을 통해 경험해 봐도 좋을 성 싶다. 그리고 책 구석구석에 펼쳐진 조선 왕조의 유적 유물을 통해 정겨운 체취들을 느껴봤으면 한다.

 

f****l 2011.10.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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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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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한 나라가 오래 가려면 여러가지 덕목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나 로마처럼 전제 정권이 확립되었던 시대의 나라에서는 왕의 자질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수상과 왕이 동시에 존재하는 나라들 같은 경우에는 내각의 힘이 더욱 중요하다. 수상이 있지만, 내각에서 관료들의 지혜들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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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한 나라가 오래 가려면 여러가지 덕목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나 로마처럼 전제 정권이 확립되었던 시대의 나라에서는 왕의 자질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수상과 왕이 동시에 존재하는 나라들 같은 경우에는 내각의 힘이 더욱 중요하다. 수상이 있지만, 내각에서 관료들의 지혜들도 중요하다. 대통령이 나라의 수장이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의 힘이 내각의 힘보다 커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는 현재의 우리나라나 조선조 왕가들 같은 경우에는 지혜로운 한 사람의 힘이 나라의 전체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 책은 조선조 왕들의 정치를 살펴보면서, 그들이 어렸을 때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한 특징을 적어놓고 있다. 공자와 맹자를 아는 것 뿐 아니라 일방적 주입식 교육 외에도 다양한 주제로 어떻게 토론하면서 공부했는지 열린 교육이 무엇인가 하는 점은 옛 선조들의 지혜에서 찾고 있다. 책만 파고드는 지식이 아닌 예의 범절을 얼마나 열심히 교육받았는지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다. 신하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가장 좋은 길을 모색하는 왕의 모습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왕들의 모습과는 달랐다. 문무를 겸비한 왕이 칭송받았다는 익히 알려진 사실 처럼, 왕은 육예 라고 하여 여섯가지 예술을 반드시 익혀야 했다고 한다. 말도 잘 탔어야 했으며, 그 시대에 행해지는 스포츠 들 (격구 라든지) 을 즐길 수 있어야 했다.

 

요새 아이들은 수행평가를 대학생들에게 의뢰해서 자신들은 책상 머리 앞에서 공부만 한다고 한다. 과도한 수행 평가는 물론 폐해가 있겠지만, 수행 평가 자체의 목적을 그릇된 방향으로 잡아가는 부모들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 범절이 뛰어나고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할 줄 알고, 정신의 상태가 올바르며, 체육 활동도 잘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왕들이 왕이 되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경연' 이라는 것을 통해서 계속 공부를 했던 것 처럼 (연산군은 이 경연을 매일 빼먹었다고 한다..^^) 우리도 어른이 되고 전공 과목을 마치고 나서도 사회생활에만 주력한다 라는 것을 훈장으로 삼지 말고 자신의 분야를 매일 갈고 닦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c*****1 2011.09.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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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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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라는 지리적 여건과 중국이라는 만만찮은 강국을 이웃으로 둔 조선은 끊임없이 외세의 침입을 받아야 했지만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물게 오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평화와 번영을 누린 휼륭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왕실만의 전인교육이야말로 조선을 긴 세월동안 존속시킨 비결이라며 왕가의 교육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역사 드라마는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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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라는 지리적 여건과 중국이라는 만만찮은 강국을 이웃으로 둔 조선은 끊임없이 외세의 침입을 받아야 했지만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물게 오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평화와 번영을 누린 휼륭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왕실만의 전인교육이야말로 조선을 긴 세월동안 존속시킨 비결이라며 왕가의 교육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역사 드라마는 시청률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실보다는 대중적인 흥미를 높이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편집하여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역사 공부를 소홀히 하여 올바른 역사를 알지 못하거나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 자칫 언론이나 방송 매체로 인해 잘못된 역사관을 가질 수 있을까 적잖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신하들의 시중을 들며 장금이처럼 미모와 뛰어난 요리 솜씨를 갖춘 궁녀들이 차린 잔칫상을 받으며 맛난 음식 먹고 한가하게 후원을 거니는 임금의 모습이나 붕당정치를 통한 좋지않은 사대부들의 모습을 보며 조건은 낙후되고 폐쇄적인 유교 국가란 부정적 시각이 강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며 세자 땐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인 서연(書筵)과 왕이 되고 난 후에도 경연(經筵)을 통해 성군이 되기위한 공부를 멈추지 않았으며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왕도정치를 실현코자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왕자들은 보통 밤 11시에 잠들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에 네 번, 아침 조강과 정오의 주강, 저녁의 석강 및  야대라하여 야간에도 공부에 전념하였으니 어디 빈둥거릴 틈이나 있었을까 싶다. 하루에 길어야 네 다섯시간 밖에 못자고 공부에 매진하였으니 세자시절릉 오롯이 지금의 고3 수험생처럼 보내야 했을 것이다. 왕자들의 교육 방법을 살펴보면 단순히 지식만을 암기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식이 뛰어난 신하들과 함께 토론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는 토론식 교육을 펼치며 유교 경전과 역사들을 공부하였으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했다. 이러한 서연을 통해 왕자들은 신하들과 나라 안팎의 사정이나 최신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으며 세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장남으로 태어나면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당연하듯 장남이 왕이 될 수있다고 생각하지만 역대 왕중 장자가 왕이 된 것은 27명 중 7명에 불과하였다. 서연을 마치고 평이 좋은 왕자는 순탄하게 왕위에 올랐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왕자라 하여도 궁에서 쫒겨나야만 했다.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처럼 권력이 싫어 자신보다 유능한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준 미담과는 달리 서연 학습을 게을리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 조선 최초의 폐세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또한 대중 매체에 의해 잘못 알려진 역사의 일부이다.

왕이 되고 나서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다. 경연 장면을 보면 왕의 잘못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조목조목 지적하고 왕은 이에 수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보며 우리의 토론 문화가 수백년 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연을 빼먹거나 게을리하는 왕은 연산군처럼 왕의 자질이 부족하다 여겨 쫓겨나기도 했다. 저자는 서연과 경연을 통해 지, 덕, 체를 갖춘 훌륭한 인격자로 탄생한 왕의 교육이 조선을 5백년이라는 세월 동안 평화와 안정으로 이끌 수 있었던  조선의 '힘'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관료가 되지 못하는 왕족들도 종학이라는 왕실 종친의 교육을 맡아 실시하는 교육기관에 나가 공부해야만 했으며,
수업을 빼먹거나 게으르고 불성실한 자는 왕에게 보고를 올리고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역대 조선 왕들이 남긴 훌륭한 명언과 어록을 통해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왕조의 모든 것을 기록에 남겼기 때문일 게다.
 ““백성은 제왕에게는 하늘처럼 소중한 것이고, 곡식은 백성에게 하늘처럼 소중한 것이다. 나라에 백성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 구실을 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곡식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순조

교육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인 오늘날, 우리가 조선 왕가의 전인교육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움이란 문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글에 담긴 뜻을 완전히 이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조광조의 말이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교육 현실을 지적하는 듯 하다. 지나간 역사를 거울삼아 현실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이 있을까 싶다.  



k******2 2011.09.2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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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 왕은 절대 쉽게 될 수 없다.
"[서평]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 왕은 절대 쉽게 될 수 없다." 내용보기
최근 '뿌리깊은 나무'라 하여 세종대왕에 대해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역사상 가장 학문의 수준을 높인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 학문에 대해 열정이 컸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그 어느나라보다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의 영향이 큼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조선시대에 최고 지도자였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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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뿌리깊은 나무'라 하여 세종대왕에 대해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역사상 가장 학문의 수준을 높인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 학문에 대해 열정이 컸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그 어느나라보다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의 영향이 큼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조선시대에 최고 지도자였던 왕들은 어떻게 공부를 했을지 궁금해진다. 다들 강연을 통해서 지식을 넓혔다는 정도는 알 수 있으나 상세한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우선 작은 호기심에 이 책을 선택했지만 만만치 않은 두께에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392년즉위한태조이성계에서1910년마지막임금인순종에이르기까지27명의왕이승계하면서519년간지속되었다. 27명이라 하지만 교육이란게 보통 그 전통이 이어지기 마련이기에 그닥 분량이 많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절대적인 착각이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 당대의 왕들이 얼마나 교육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초입부에 전반적으로 왕들이 어떤식으로 공부를 했는지 설명을 해 주고있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이때까지 왕들이 당연히 계보상 이어진다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장남이 아니었던 세종대왕이 왕이 된데에는 공부에 대한 결과라고 한다. 왕이 되기 위해 세자때문에 행해지는 공부 시간표를 보면 현재 학생들이 그 시간표대로 공부하면 전세계 웬만한 대학은 입학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 정도로 공부량이 지금은 비교도 안되는 양이다. 거의 잠과 밥먹는 시간 외에는 공부에 매진했다. 그것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가 아닌 당대 학문에 대가들과 함께 말이다.

   결국 왕이 되기까지 얼마나 피나게 공부하는지 이 책 한 권으로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두께와 책 한권의 무게에 놀라지만 내용에 대한 경이로움에 두 번 놀라게 해주는 그런 책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i***s 2011.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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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_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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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의 혼란한 치세를 본다면 고려 때 정치가 바르게 세워지지는 않았던 것 같기는 하지만, 여성의 인권적인 면을 봤을 때 아무래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나 일삼은 공자를 따르는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보다는 여성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개가를 하는 등 보다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던 고려 시대가 훨씬 매력적으로 뵈기 마련이다. 물론 고려 시대에도 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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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의 혼란한 치세를 본다면 고려 때 정치가 바르게 세워지지는 않았던 것 같기는 하지만, 여성의 인권적인 면을 봤을 때 아무래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나 일삼은 공자를 따르는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보다는 여성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개가를 하는 등 보다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던 고려 시대가 훨씬 매력적으로 뵈기 마련이다. 물론 고려 시대에도 여성이 정치 판에 뛰어든 적은 없지만 조선보다는 낫지 아니한가. 왜 그 당시에는 그렇게나 편협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젊어서 죽으면 평생을 수절해야 하는 법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만든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남자들은 첩질이나 하느라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으면서 여성에는 너무 가혹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등장할 정도로 유교적인 사상에 뿌리 깊이 내렸던, 그것도 효를 실천한다든가 동방예의지국과 같은 좋은 쪽이 아니라 꼭 여성에게 불리한 것으로만 골라서 응용하는 우리 나라 남자들의 고루한 사고 방식에 더 짜증나는 것일테지만 그 꼬투리를 제공한 조선은 그다지 좋은 모범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 고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은 조선이 전 세계사에서 통틀어 세 번째로 오랫동안 존속한 나라라는 점이었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 제국과 터키의 오스만 제국의 다음으로 조선이 518년을 유지했던 것은 그 유래가 없던 일이다. 솔직히 한반도처럼 작은 반도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런데 저자는 조선의 오랜 존속의 이유를 왕실만의 체계적이고 훌륭한 교육 체계와 공부법에서 찾았다. 사교육의 단위가 억 단위를 넘어가고 교육열 하나만큼은 비상식적으로 뜨거워져 조기 유학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어쩌면 이 열기는 인류학적으로 한국인에게만 흐르는 민족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선 왕실에서 하는 교육법은 지금 훑어봐도 뛰어날 따름이다. 일반 평민들까지 그런 식의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성균관이라는 기관을 설치해 무상교육을 실시했던 것은 복지국가라는 지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무상의료를 표방하여 혜민서를 설치한 것은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따라가지 못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실은 어떤 책 하나를 읽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나서 복식의 색 같은 사소한 규례부터 하나씩 제정해내는 과정을 보면서 상당히 부실한 나라라고 여겼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통치한 시기에 다른 나라를 살펴봐도 국민들의 복지, 보건, 교육 등에서 조선을 앞서가는 나라는 없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봐도 역사적 지식의 부재, 역사적 사유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오해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부족했던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잘못된 오류를 바로잡아 깨우쳐주는 등 조선 왕실의 교육에 대해서만 알려준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다방면에 대해서 한 번씩 짚고 넘어가준다. 얼마 전에 종영되었던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을 폐위시킨 수양대군이 세조로 왕위에 오르고 나서 그의 아들이 죽는 장면에서 세조 다음에 보위에 오를 왕이 누군지 몰라서 가족끼리 한참을 고민했는데 찾아보기도 귀찮아서 내버려두었지만 이 책에는 친절하게도 왕이 받아야 하는 경연의 횟수를 제공해주면서 태조부터 고종까지 한 번에 다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제껏 사극으로 등장했던 왕의 이름을 찾아보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새롭게 발견한 왕이 성종이다. 연산군의 아버지로 안타까운 일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그 자신은 그의 재위 기간 25년 동안 총 9229번 경연에 참여해서 학문도 잘 닦고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펼친 성군이었다. 평균적으로 1년에 대략 369번을 한 꼴이다. 경연이라 함은 신하가 왕을 상대로 학문을 강의하고 가르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하루에 4번, 조강과 주강과 석강과 야대로 구성되었다. 경연관은 당연히 학식은 높아야 하고 인품을 꼭 고려해서 뽑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이는 경연이 단지 학식만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덕과 예까지도 갖추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경연의 교재에는 유교의 경전인 [논어], [소학], [성리대전], 역사서 [국조보감], [정관정요], [자치통감]을 사용했는데 유교는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정치를 펼쳐야 하는 왕은 유교를 공부하야 했고 역사서를 통해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배웠다. 이 때의 방식은 토론하고 문답하는 형식이었기에 주입식으로 공부하는 현재 교과과정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또한 정말 신기했던 것은 공부하기를 즐겨했던 세종이나 성종은 그 생각이 지금에 사용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민본사상에 가까이있다. 절대 군주인 왕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성종은 나라의 근본이 백성에게 있다고 하고, 가뭄이 심할 때의 백성들의 고충을 생각하여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했고 도둑떼도 또한 먹고 사는 것이 막막하여 악한 짓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백성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혜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세종은 죄없는 노비를 죽인 주인에게는 그 노비의 아내와 자식을 석방하여 양민이 되게 하라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제까지만 해도 조선 시대의 노비는 마음대로 희롱하거나 죽여도 어디에다가 하소연할 데가 없는 인권이 유린된 시대라고만 생각했는데 노비도 같은 백성이라는 세종 대왕의 말은 정말로 놀라울 뿐이다. 궁궐에서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갈 수 없었던 임금이 백성들의 실상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은 바로 경연으로 학문에 더욱 정진하고 토론으로 신하에게서 백성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듣게 하고자 했던 조선의 놀라운 정책 때문이었다. 성군이라면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룬 세종대왕과 일찍 죽어 더욱 안타까운 정조대왕만을 알고 있었는데 그 외에 수많은 왕들이 백성을 가엽게 여기고 아끼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이 되면 하는 경연 뿐만 아니라 세자일 때부터 시행해온 서연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 경연을 폐지한 연산군을 보면 이 경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궁궐 안에 갇혀서 현실이 어떤지 알지 못한 왕이 얼마나 비참한 말년을 보내는지 생각해본다면 배움으로써 나라는 다스린다는 가장 중요한 덕목을 지금 대한민국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j*****3 2011.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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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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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가의 세자 만들기 교육은 현재 부모들의 교육열 못지않다. 왕자들은 조기 영재교육을 받았는데 그 시기는 태교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3세 때부터는 정식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서구의 영재교육을 보면 '영재교육에서의 교실문제'라는 제목의 책이 1920년에 출판된 것으로 보아 1920년경에 정식으로 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조기 영재교육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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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가의 세자 만들기 교육은 현재 부모들의 교육열 못지않다. 왕자들은 조기 영재교육을 받았는데 그 시기는 태교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3세 때부터는 정식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서구의 영재교육을 보면 '영재교육에서의 교실문제'라는 제목의 책이 1920년에 출판된 것으로 보아 1920년경에 정식으로 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조기 영재교육은 1400년에 태종이 왕으로 등극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으니, 최소 520년이나 앞서 있었다고 본다.


조선 오백년 집권의 비밀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에서는 조선의 왕자들이 하루에 길어야 5시간 정도만 자면서 네 차례 서연에 참여했다고 전한다. 왕이 된 후에도 경연을 통해 공부를 계속했다. 끝없이 왕과 왕자의 지·덕·체를 갈고 닦도록 한 것이 조선 왕조가 518년을 지탱한 비결이 아닐까.


왕자들은 많은 양의 책을 읽고 암기하며 놀이와 음식도 가려서 먹었다. 각종 교육이 난무하는 시대. 무조건 아이를 끌고 다니며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먹는 것 하나, 놀이 방법 하나에도 신체에 작용하는 이치를 따졌던 과거 조선시대 세자교육법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세종, 성종, 영조, 정조 등 조선의 치세를 이끈 군주들이 남긴 토론식 수업은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조기 영재교육을 실시했던 것이다. 책은 세계적인 정치 리더 세종, 정조, 성종 등 수많은 현군을 탄생시킨 조선 왕실의 전인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또, 조선의 왕들이 남긴 주옥같은 명언들도 수록했다.


조선 왕가는 오늘날처럼 단순히 돈벌이에 필요한 취업 교육만 시키는 변질된 교육이 아니었다. 지혜와 예절, 건강을 모두 갖춘 훌륭한 인격자가 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는 전인교육을 해왔다. 이러한 교육법이 있었기에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존속하면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이라 여겨진다.


책은 4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1부에서는 왕이 되기 위한 교육, 2부에서는 왕이 되고 나서 하는 교육법, 3부에서는 왕실종친 관리를 위한 재미있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4부에서는 조선의 왕들이 남긴 주옥같은 명언들이 수록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태조 이성계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역대 조선 왕들이 남긴 훌륭한 명언들을 보면 조선의 왕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백성을 염려하고 사랑하였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잡스의 죽음이 하루 종일 뉴스를 장식하는 오늘, 우리가 조선왕가의 교육법에서 배울 것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할 부분이다.

h*****1 2011.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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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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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방송에서 조선 시대 왕자들의 일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절대 권력 왕의 아들, 왕자의 삶은 편안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만 할 것 같았는데 새벽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모습을 보고 참 많이 의외였다. 특히 아주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스승과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는 모습에 놀랐었다. 그중에서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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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방송에서 조선 시대 왕자들의 일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절대 권력 왕의 아들, 왕자의 삶은 편안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만 할 것 같았는데 새벽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모습을 보고 참 많이 의외였다. 특히 아주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스승과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는 모습에 놀랐었다. 그중에서 매우 인상적인 장면은 왕자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아침 세수 시간에 대야에 물을 담아서 얼굴을 담고 숨을 오래 참는 연습을 시키는 모습에 한동안 아이들에게 따라 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조선 오백 년 동안 행해졌던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을 읽고 나면 이 시대의 진정한 교육에 대한

 

그럼, 조선 왕가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우선 왕이 되기 전의 세자 책봉을 받은 왕자에게는 서연을 교육한다. 경사, 경서, 사서를 익히고 유교적인 소양을 쌓게 하는 교육으로 세자만이 받을 수 있다. , 서연에 참석한 세자는 회강이라는 시험을 정기적으로 치러서 실력을 확인받았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나이가 2~3세에 불과해도 공부를 가르쳤다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의 왕가에서 얼마나 교육에 정성을 들였는지를 알게 하는 부분이다.

조선왕실 서연교육의 최고 우등생에 정조를 뽑는다. 사도세자의 죽음 후 바로 세손이 되어 가장 오랫동안 서연을 교육받았으며 공부 또한 매우 성실하게 수행했다고 한다. 영조는 이런 정조의 영특함과 학구적 기질을 자주 칭찬했고 틈틈이 토론식 수업도 가졌다고 한다.

 

왕이 되면 교육은 받지 않아도 된다 

왕이 되면 개인적으로 하는 공부 외에는 더 이상의 교육은 받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왕이 되고 나면 경연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러고 보면 왕이 된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국사를 돌보면서 매일 공부해야 할 할당량이 있다는 것은 많은 부담과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라 쉽지 않았을듯하여 조선의 왕이 다시 보인다.

왕이 되기 위한 공부를 서연이라고 한다면, 왕이 되고 나서 현군이 되기 위한 특별한 교육을 받고 공부하는 것을 경연이라고 한다. 아침에는 조강, 낮에는 주강, 저녁에는 석강, 밤에는 야대라고 하여 하루에 4번의 경연을 하게 된다. 논어, 소학, 성리대전 등으로 학습하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나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 등도 의제에 올려 왕과 신하가 생각을 주고받는 형식의 수업이었다.

 

조선 오백 년 집권의 비밀을 저자는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으로 보고 세자와 왕들의 수업을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일화를 소개하면서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공부법, 역사라는 주제가 다소 딱딱하거나 무거울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소설처럼 술술 읽힐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역대 조선 왕들의 명언과 어록은 좋은 글귀들이 많아서 더욱 재미있게 읽었고 그들이 나라와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가 느껴져서 마음에 담고 싶고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부분이었다.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토론식 수업이었다. 세자와 스승, 왕과 세자, 왕과 신하 등에서 질문하고 답변하는 형식으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지금의 교육 현장에서도 이루어진다면 좀 더 창의적이 개성 있는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여 못내 아쉽다.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에 지금 시대에도 실천해도 좋을 법한 교육이 많이 있다. 이 좋은 교육 아이들 학교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국회에서도 시행되면 얼마나 좋을까?

 

 

y****c 2011.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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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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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라면 늘 최고의 음식과 최고의 옷 수백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신하와 궁녀들. 그리고 그들의 시기 질투 음모를 떠올리게 된다. 왕권다툼과 복잡해보이는 정치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왕의 모습까지도 말이다.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죽고 죽이는 무서운 싸움의 연속이며 또한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늘 긴장해야하며 백성도 보살펴야 하니 그야말로 어려운 자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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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라면 늘 최고의 음식과 최고의 옷 수백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신하와 궁녀들.

그리고 그들의 시기 질투 음모를 떠올리게 된다. 왕권다툼과 복잡해보이는 정치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왕의 모습까지도 말이다.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죽고 죽이는 무서운 싸움의 연속이며 또한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늘 긴장해야하며 백성도 보살펴야 하니 그야말로 어려운 자리인 것이다.

가끔 편하고 여유롭게 한가로이 지내는 왕의 모습도 사극에서 가끔 비치기는 하는데 어릴 적 나에게 왕의 자리는 그야말로 최고의 권력자이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공부 뿐만 아니라 무예까지 익히는 왕의 모습은 지금으로 치자면 엄친아 이상이었을 것이다.

권력과 부의 상징인 왕이 공부 뿐 아니라 무예까지 하니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모습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을 읽으면서 서서히 바뀌었다.

왕이라는 화려한 이면에 공부를 통한 끊임없는 노력과 숨막힐 듯한 교육의 열기.

잠시라도 숨 돌릴 틈이 있기나 했을까 싶다. 마치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 스파르타식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는 기분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공부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왕자들의 필수 덕목이라는 활쏘기. 말타기와 격구 등도 배워야 하니 나같은 사람은 왕가에 태어났어도 곤욕스러웠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왕이 되기 위한 공부는 출생과 동시에 시작되어 그야말로 쉴 틈 없는 타이트한 생활을 해야하지만 양녕대군은 학업에 몰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조선 최초의 폐세자가 되었다.

조선 왕실에서는 서연과 경연을 통해서 지덕체의 세 가지 미덕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오백 년이상의 문치 국가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무조건 공부만을 강요했다면 어질고 지혜로운 왕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인성교육이 이미 그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학습량이 많아서 조선의 왕자들은 보통 밤 11시에 잠들어서 새벽 4시에 일어나고 하루에 5시간에서 적게는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않고 자투리 시간에도 역시 일정에 맞추어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해야했으니 고단하고 힘든 생활이 아닐 수 없다.

왕의 화려한 이면에 이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대단함과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덕체를 중심으로한 빈틈없는 교육을 받아왔기에 조선왕조가 유지되었던 것은 아닐까.

 

 

 

 

s*******5 2011.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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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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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을 읽고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래 동안 왕에 의해 통치되어 온 나라였다. 물로 시대별로 나름 특징적인 통치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조선왕조 500 여 년의 왕실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부정적인 고정 관념에 대한 과감한 격파와 함께 평화와 번영을 누렸던 조선 왕조의 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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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전인적 공부법』을 읽고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래 동안 왕에 의해 통치되어 온 나라였다. 물로 시대별로 나름 특징적인 통치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조선왕조 500 여 년의 왕실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부정적인 고정 관념에 대한 과감한 격파와 함께 평화와 번영을 누렸던 조선 왕조의 왕과 사대부들이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왕도정치를 실현해 나갔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즉 조선왕조 500년의 장기 집권의 비밀! 수많은 성군을 배출한 왕가의 전인적 교육비법 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왕조의 왕은 장남이 자동적으로 승계하고, 왕이 되면 절대적인 권한이 주어져서 마음대로 집권하게 된다고 하는 기본 상식들이 많이 수정이 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왕실이라면 당연히 폐쇄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보수적이고 나약하며, 왕과 선비는 게으르고 무능했다는 인식이 없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왕의 권력은 '원칙'이 통하는 사회였으며, 왕과 신하의 상하관계 속에서도 일을 결정 할 때는 문무백관의 토론문화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즉 견제와 균형이 조화를 이룬 조선 왕조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원리가 시행이 되는 현대국가와도 크게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바로 조선왕조의 이러한 모습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왕조 나름대로 내려오는 서연과 경연, 종학 등 ‘왕가의 교육법'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자의 교육제도인 '서연'은 출생과 동시에 시작되었는데, 장차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는 성군이 되기 위한 조기교육으로 학문을 익히는 지(知)의 교육과 예절교육으로 덕(德)을 쌓는 교육, 건강한 왕으로 성장하기 위해 체(體)의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밤 11시면 잠자리에 들어 새볔 4시에 일어나서 주어진 임무에 임해냈으니 고단한 훈련과 공부가 이루어낸 결과라고 할 것이다. 선택이 되어져 왕위에 오른 왕들은 '경연'이라는 것을 통해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기 위한 왕의 공부를 계속하였다. 대신들과 함께 하는 이런 공부 시간과 토론을 통해서 국사를 논의하고, 학문과 통치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진정한 왕의 수업 시간이었던 것이다. 또한 종친들의 폐해를 막기 위해 ‘종학’이라는 학문으로 여러 제한을 두기도 하였다. 반도의 위치에서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받았지만, 역사상 드물게 오백년의 역사와 평화와 번영을 누린 훌륭한 나라인 조선왕조는 분명코 왕실만의 전인교육을 통해서 긴 세월동안 존속시킨 비결이라며 왕가의 교육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저자의 해박한 통찰에 박수를 보낸다. 서연으로 왕이 되기 위한 공부와 경연을 왕이 되고 난 후 공부를,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왕도정치를 실현코자 노력했던 모습을 상기할 수 있어 매우 좋았다.

m***3 2011.10.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