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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지압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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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땅이 떠올랐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베트남 전쟁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코 끝이 시렸던 적이 있었는데, 가슴 깊이 돋았던 소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나는 월남 파병이니 하는 단어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제목을 내건 화면 앞에서 꽤 몰입하고 흥분했었기에 스스로에 대한 작은 실망감 같은 것도 일었다. 를 몇 장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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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땅이 떠올랐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베트남 전쟁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코 끝이 시렸던 적이 있었는데, 가슴 깊이 돋았던 소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나는 월남 파병이니 하는 단어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제목을 내건 화면 앞에서 꽤 몰입하고 흥분했었기에 스스로에 대한 작은 실망감 같은 것도 일었다. <천사의 날개>를 몇 장 읽으면서 다시 그 화면들이 떠올라서 잠시 조용해지고 말았다. 일상에 잘 맞춰져 살아가고 있던 박에게 어느날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늘 짐처럼 묻고 살던 시절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누군가의 이름...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박과 장목사가끄집어내는 베트남전의 이야기 속에는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인간의 모습이 들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난 파월 근무 시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스스로들 금기로 묶어 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다시 꺼내어지는 옛 이야기엔 먼지가 수복하니 쌓여 있다. 결코 가볍지않은 먼지다. 그렇게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다. 상가집에 모인 사람들도, 독자들도, 이야기하는 그들 자신도 느꼈을 것이다. 오래된 필름이 돌아가면서 얼마나 생생하게 아픔이 드러나고 있는지를... 정신질환에서 자살로 이어지는 신하사의 모습은 결국 참전했던 군인 모두의 모습이었다. 전투 시에 그렇게 비장하고 잔혹하기까지 한 신하사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의 냉철한 행동들은 순수성의 뒷 면 동전과 같은 것이었다. 극단과 극단은 맞붙어 있기 쉽다. 신하사의 경우에서 그러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순수성이란 것은 적당히 타협하고 유연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하사는 장목사에게 타협을 할 줄 모른다고 나무란 적이 있지만 실상, 타협할 줄 몰랐던 것은 그 자신이다. 그의 내면 자체가 베트남에서의 일을 허락할 수 없었고 결국 부러진 것이다. 부당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나왔을 때 망각이나 해결이나 어떤 방법으로든 이를 극복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망가져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여리고 순수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그러하다. 약해서라기 보다는 부당함을 허락하기엔 순수한 자아가 너무 강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좋은 점은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의 깊은 부위를 꾸욱 눌러준다. 전쟁이라는 것은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역사적인 현상으로 그치기 쉽다. 시간이 좀 흐른 지금, 그저 기록 정도로 베트남전쟁을 접하는 사람들이 역사적 현상 속에서 가슴 저림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 하면 관념적인 남의 이야기 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전쟁과 그로 인한 상처라는 무거운 이야기가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힌다는 것 또한 매력이다. 그 자리에 직접 있어보지 않았어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과 인물의 심리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매우 사실적이라는 점도 독자의 공감대 형성과 이해력을 뒷받침하는 요소가 된다. 과거와 현재를 드나드는 연결부분도 자연스럽고 흡입력이 있다. 전체적으로 소설을 읽은 느낌이 묵직하다. 이렇게 굵은 느낌을 남기는 소설이 그 전개과정까지 흥미있게 느껴진다는 것은 참 부러운 점이다. 두 마리의 살찐 토끼를 한번에 다 잡은 것이다. 꾸욱 깊게 눌러준다. 가슴 깊은 곳을 깊고 굵게 지압해주는 소설이다. 그 시절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이 소설을 읽은 후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이 소설의 결론 부분이다. 수많은 날개들의 그림. 장목사도 박부장도 독자들도 모두 날개를 달고 회복되고 싶은 소망을 갖는다. 천사를 그리고 또 그렸을 한 사람의 손 끝을, 가슴을,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게 한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갈 때와 달리 서울로 돌아올 때는 별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밤샘으로 인한 피곤 때문이기도 했지만, 태민 씨가 자기 어깻죽지에 붙인 날개에 우리 가슴에 쌓였던 옛 기억의 고통까지도 실어날아간 것 같은 숙연함 때문이었다.
m********r 2001.07.0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