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사회학' 수업을 들으면서 드러커를 좀 다루었었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드러커는 여전히 인기절정이지만, 국내에서 '미래사회학' 수업에는 학생들이 없어서 이제는 개설 자체를 안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지적하고 싶다. 즉, 드러커나 여타의 미래학자들은 이후의 자본주의가 '지식을 가진 피고용인'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기업경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에 따라 생산성 혁명과 조직의 재구성, 새로운 명령과 정보체계, 탈자본주의 정치체제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에는 허구가 많다. 실제로 이런 이론들은 선진국들에서 제시하는 것이며, 자본주의는 여전히 세계체제론과 종속이론을 재생산하고 있다. 제3세계와 후발국은 여전히 침체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또한 정보사회나 지식사회가 도래해도 이러한 정보나 지식접근성은 기득권자들에게만 자유롭게 접근되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권력은 재생산되고 부의 편중도 재생산된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의 논리가 아니다. 우리가 왜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드러커가 주장하는 지식생산성 이면의 경쟁 논리와 권력 구조의 복지부동함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
| 이 책은 '현대 경영학의 비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등으로 명성이 자자한 피터 드러커가 지은 책이다. 엘빈 토플러, 존 나이스비트 등 지식사회론자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지식사회론을 성립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러커는 맑스와 같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이전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구별하지 않는다. '자본'이라는 요소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단지 18세기 이후 단계적으로 '자본의 중요성이 두드러지며 이를 중심으로 사회 성격이 규정되는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고, 일반화되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지식'이라는 요소도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 지식 사회로 이행해 가고 있다. 19세기, '기업가의 시대'에는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기술과 노동력을 쥐고 흔들며 막대한 이익을 창출했고, 정부마저도 그들의 영향력 하에 두었다. 그러나 이미 경제의 실권은 주주들에게 이전되었고, 이제는 '지식근로자'들, 즉 해당 부문의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로 이전되고 있다. 더 이상 자본을 대규모로 투입한다고 성과가 커지지 않는 것이다(그것은 노동도 마찬가지다). 높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지식이며, 그 지식을 가진 지식근로자들이다. 이미 미국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본'은 '자본가 없는 자본', 즉 연금기금만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는 것처럼, 피터 드러커의 지식사회론은 토플러나 나이스비트의 정보-지식사회론에 비해 더 현실적이며, 더 정연한 것으로 보인다. 토플러 등이 정보기술의 발달에만 주목, 다분히 기술결정론적인 분석과 장밋빛 일변도의 예측을 하는 것과 달리, 드러커는 '사람과 경영, 조직이 중요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보가 가공되고 정보고속도로를 통해 유통된다고 해서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지는 않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게끔 정치, 경제, 사회구조의 변화가, 그리고 개인의 윤리와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맑스가 말하는 것처럼 변증법적 발전에 의해 도래한 역사적 단계가 아니라 산업화 초기과정에서의 일시적 현상일 뿐이며, 세계사를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로 볼 수 있는 것에 못지 않게 지식의 역사로 볼 수도 있다는 그의 입장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실 모든 현상에서 자본의 움직임을 찾고, 자본가의 음모를 규명하려는 좌파 지식인들의 태도는 지나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이미 20세기에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21세기에는 지식 사회로 정착할 것이라는 주장, 이미 '자본가'란 사회학적 의미가 없다는 주장은 지나치지 않을까 한다. 드러커는 정보화 사회론이 이윤율 저하에 직면한 자본주의 세력의 마지막 몸부림에 불과하다는 좌파의 분석은 그렇다 쳐도, 엘리트주의 담론에 대해 좀 더 주의해야 했지 않을까 싶다. 정보화, 지식화의 결과 소수 엘리트가 다수 대중을 더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되고, 강대국이 약소국들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이 더 커진다는 분석 말이다. 회사 하나 하나를 보면 모든 회사원들이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평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조직의 경계를 가로질러서 거대한 엘리트 집단, 파워 그룹이 형성될 소지는 다분하다. 국가와 정치에 대한 드러커의 분석도 다소 나이브한 데가 있다. 국가주권에 대한 논쟁에서 주권소멸론 쪽의 주장에만 편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과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19세기에는 지금보다 더 자유로웠으며, 그것은 국가가 허용하고 장려하는 범위 안에서 가능한 것이지, 국가의 통제 범위를 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길핀 등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한, 드러커가 주장하는 것처럼 냉전국가, 유모국가의 기능이 비효율적이라 해도, 현재 막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이들 부문이 쉽게, '합리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까? 드러커의 최대 모순은 '도구적 합리성'과 '공동체성' 사이에 모순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는 데서 연유한다. '근대화'가 논의된 이래 이 두 가지는 모순된다고 여겨져왔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화폐물신성 때문에 공동체가 해체되고 자본의 법칙에 복무하게 된다, 그리하여 보통 사람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갈 곳을 잃게 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드러커는 탈자본주의 사회, 지식사회에서는 공동체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된다고 믿는다. 그것은 지식사회가 그만큼 도구적 합리성을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도 철저한 도구적 합리성을 요구한다. 이전에는 기업 안에서 사원들의 관리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러나 지식사회의 조직에서 '사원들의' 관리는 필요없다. '직무의' 관리만 필요할 뿐이다. 이것은 최고경영자와 전문가들만 남고 중간관리직이 일체 사라진 조직을 남긴다. 그러면 이로써 발생할 엄청난 실업 문제({노동의 종말}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드러커는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지 않다. 보다 근본적으로, 토플러 등이 미래의 지식사회는 누구나 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사회가 되리라고 낙관하고 있는 반면, 드러커는 초기의 지식화에 의한 격차가 결코 극복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면 뒤쳐진 자들의 복지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공동체가 책임진다'라고 드러커는 말한다. 지식근로자들은 직무 이외에 지역사회에서 행하는 무보수 봉사활동에 삶의 보람을 찾을 것이며, 이를 통해 봉사받는 자와 봉사하는 자가 모두 인간적인 기쁨을 느끼는 '공동체'가 진작되리라는 것이다. 지식인과 경영인이 하나로 조화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전문지식을 열심히 연마하는 지식근로자가 동시에 일반교양과 연대의식을 가진 지식인이 될 수 있을까? 자신만의 세계, 배타적인 동아리 속의 쾌락에 몰두할 가능성이 없는가? 드러커의 이론은 복지국가에 반대하는 신자유주의 담론에서 긴요하게 이용되었다. 이것이 가진 자, 강한 자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드러커는 자유주의에 근거한 공동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실제의 역사는 자유주의의 확산이 문명의 이름을 빌린 이질성의 배제, 소외계층에 대한 교묘한 탄압, 대량학살과 환경파괴를 배태했음을 보여주었다. 지식의 힘(power)이 정의(justice)를 가져온다는 말은 언제나 힘이 정의다(power is justice)라는 말로 환원될 소지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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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줄평
오늘 맡은 미래의 냄새 ■■■ 평점
9.6 / 10 ■■■저자 소개 ![]() 저자 :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출처 : 구글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철학과 미래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으로 널리 알려진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33년 나치가 득세하기 직전 영국으로 건너가 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에 근무했다.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 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GM, GE와 같은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했다. 1971년부터 캘리포티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교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사회과학을 강의했으며 피터 드러커 비영리재단의 명예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피터 드러커의 저작 전체(한국어판, 원서) / 연보 (업데이트 20. 03. 07.) 더 자세한 정보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NjhW_SP7THWL3GWL75zFu6TCcwpTgN6e8zKFkj2rM5k/edit#gid=0 <td style="border: 1px solid #d8d8d8; font-size: 15px; padding: 8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Malgun Gothic', '맑은 고딕', dotum, 돋움, sans-serif; -webkit-font-smoothing: antialiased; wi
■■■ 자주 사용되는 단어와 그 개념 01. 매니지먼트 - 총체적 의미로의 매니지먼트는 피터 드러커가 최초로 사용했다. - 경영자, 경영업무 등을 포괄하는 단어이다. -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의 관리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이노베이션(혁신)과 경제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 단어를 경영, 관리, 경영자 등으로 나눠 쓰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본래의 의미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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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post-capitalist society 는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83세인 1993년에 출간된 책이다. 벌써 20년도 더 되었다. 그러나 낡은 표지를 열어 책을 읽어보면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피터 드러커는 많은 책을 쓰면서도 탁월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한편 책마다 명확한 주제를 유지하면서도 매우 다채롭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의 책은 항상 현재형이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post-capitalist society 는 이미 나타난 현실을 기술한 책이다. 이 책에서 드러커는 “지식과 지식인 계층의 부상”과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소거법을 통한 미래의 특징들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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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그 빽빽한 텍스트 안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해나가는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어 그는 이익 센터 profit center 에 대해서 자신이 만든 말이지만 잘못 만들었고 기업 안에는 이익 센터가 없으며, 오직 비용 센터 cost center 만 있다고 말한다.
또한 피터 드러커는 자신의 초기 저작에서 지식과 지식인에 대해서 큰 언급이 없는 것은 중요한 것을 놓쳤다고 시인하며, 중기 이후의 책들에서 사상의 중점을 지식과 지식사회로 과감하게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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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post-capitalist society 의 주제는 지식사회, 교육받은 사람이다. 피터 드러커는 처음부터 2020년인 지금도 일반인이 인식하고 있는 많은 개념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토지, 노동, 자본에 대한 개념이다.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생산의 3요소를 자산이 아니라 부채로써 받아들이라 말한다.
이제 토지, 노동, 자본은 예전과 달리 수용할만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생산의 3요소를 생산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지식”이 필요하다.
반대로 지식이 있으면 위 3가지 요소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지식이 유일한 - 최소한 가장 중요한 - 생산자원이 된 것이다.” ![]()
우리는 연일 지식사회, 정보사회라 말하고 있지만 실제 행동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식과 정보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것이 필수이지만, 그렇게 되어있는 기업은 흔치 않다. 지식은 정보가 아니다.
지식은 반드시 사람 안에 있으며 적절히 적용되는 정보다. 현실에서는 기계나 기술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하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같은 기계와 도구를 어떤 사람에게 주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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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대 기업을 통제하기 위한 회계는 원가계산 중심으로 돌아간다.
원가회계에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돈은 인건비, 즉 비용으로 간주된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지식을 가진 사람은 자산이며, 기계도 기계에 따라 수명이 다르기 때문에 감가상각을 일정하게 해서는 안된다며 본인의 저서에서 몇 번 언급하였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기업은 원가 중심의 회계처리를 한다.
우리가 아무리 현실을 똑바로 보고 싶어도 렌즈(도구)가 휘어있다. 팔리지 않는 상품이 자산이 되는가 하면, 유일한 중요한 자산인 능력 있는 사람이 비용으로 처리된다. 드러커가 이 책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post-capitalist society 을 쓴 지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실행하고 있지 못하다. ![]()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해보자면 드러커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논리를 전개한다.
![]() ![]() ![]() ■■■마무리 역시 드러커의 텍스트는 특별하다.
엄밀하면서도 현재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드러커의 책들을 읽다 보면 그가 이미 수십 년 전에 제시한 과제들을 우리가 거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부 해결한 과제와 사람들이 있다면 이미 두각을 나타내며 선두에 선 기업들이라 확신한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는 물론 월마트처럼 정보를 중심으로 자신들을 재조직하여 성장을 계속하는 기업들이다. 다만, 이 책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post-capitalist society 은 누구에게나 두루 권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읽는 사람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러나 모든 어려운 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post-capitalist society 는 가치가 높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미래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며, 방향을 잘못 잡지 않게 된다.
이 책은 경영자, 결정권자들이 읽었으면 한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요약하자면,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post-capitalist society 는 가치가 높은 책이지만 그만큼 인내심을 요구한다. by 홍트리버 이 POST 가 도움이 되었나요?정말 도움이 되었을 때만, <좋아요>, ♥ 를 눌러주세요!관련서평 2019/10/26 - [1. 책] - 일(work) 관점 서평 : 자기 경영 노트 - 피터 드러커 2019/11/16 - [1.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 - 피터 드러커 2019/12/01 - [1.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밥 버포드, 피터 드러커에게 인생 경영 수업을 받다 - 밥 버포드 2019/12/15 - [1. 책] - 일(work) 관점 서평 :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ament - 피터 드러커 2019/12/21 - [1. 책] - 일(work) 관점 서평 : 기업가 정신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 피터 드러커 2019/12/29 - [1. 책] - 일(work) 관점 서평 : 피터 드러커 자서전 Adventures of a Bystander - 피터 드러커 peter f.drucker 2020/01/04 - [1.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단절의 시대 the age of discontinuity - 피터 드러커 peter f.drucker 2020/01/18 - [1. 책] - 일(work) 관점 서평 : 피터 드러커의 다섯가지 경영원칙 - 피터 드러커 외 6명 2020/02/01 - [1. 책] - 일(work) 관점 서평 : CEO의 조건 - 피터 드러커, 남상진, 조광현 2020/02/15 - [1. 책] - 일(work) 관점 서평 : 나의 이력서 my personal history - 피터 드러커, 남상진 2020/03/08 - [1. 책] - 서평 - 산업사회의 미래 the future of industrial man - 피터 드러커 2020/03/29 - [1. 책] - 서평 - 기업의 개념 concept of the corporation - 피터 드러커 https://hong30.tistory.com/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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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 분야의 석학이다. 그것은 그의 이 분야에 대한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증명된다. 본 서는 토인비가 말한 바 역사의 800년 주기설처럼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을 근거로 이제까지의 전통적 생산방식이나 조직체계가 미래에는 더이상 가치가 없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국가나 조직체의 구조가 어떠해야 하는지, 각 개인은 그것에 발맞추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마치 이 책을 읽으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에언서를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너무나 정확한 고증과 합리적인 근거는 저자의 말이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님을 알게해 준다. 저자는 앞으로는 유형의 자본이 자본이 될 수 없고 전문화된 지식이 자본이 될 것임을 주장한다. 저자가 이 책을 1993년에 썼는데, 이 말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확실히 맞을 것이다. 이 지식을 통한 지식 생산성이 각 나라의 경제적 성공, 사회적 성공 그리고 경제적 성과 향상 등에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글로벌 경제, 글로벌 정치 세계에 살고 있으며 더욱 그것이 가속화 될 것이 명약관화한 이 현실 속에서 한국과 개인이 어떠한 준비를 하여야 할지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책은 꼭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