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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리학은 공간을 중심으로 과거의 지리를 복원하는 학문으로, 나름 지리학에서는 전통이 있는 학문이다. 하지만 역사지리학이란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한 학문일 것이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냥 역사학의 세부 학문으로 느껴질 것이고, 사실 지리전공자들에게도 역사지리학의 저변은 넓지 않다. 역사학과 지리학의 관계에서 지리학의 힘이 너무 약한 것이 원인은 아닐까 생각된다.
이유가 어쨌든 역사지리학에서는 변변찮은 개론서가 없어서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역사지리학자들이 모여 각자 자신의 전공파트를 맡아 책을 썼다. 1장에서는 역사지리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발달과정 및 다양한 방법론을 다룬다. 단순히 역사학을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철학적 기반, 방법론이 있다는 것이다. 2장에서는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과정을 다루면서 고조선과 고구려는 우리 민족이 아니라고 하고, 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닌 과학적 역사관으로 나아가야 함을 제시한다. 기존 역사학계에서는 주장하기 어려운, 민감한 주제를 다루어서 놀라웠다. 세계시민으로서 개방적인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3장에서는 우리 영토와 행정구역의 변화과정을 설명했다. 4장에서는 전통적 자연관으로, 서양의 자연관과 대비되는 우리 전통의 자연관 특징을 설명했다.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지리학에 적합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민족이 공유하는 자연관에 대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5장에서는 고지도의 사회 문화사 및 여러 고지도에서 재현하는 과거 지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저 '옛날 그림'에 지나지 않는 고지도가, 역사지리학자에 의해 분석되면서 과거 지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6장에서는 지리지를 다루고 있다. 서양의 지리학과 별개로 우리 민족 고유의 국토관이 투영된 지리학 저서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랬다. 7장에서는 인구가 역사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지리적 관점으로 본 인구 분포의 변화가 흥미로웠다. 8장에서는 농업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을 공간적으로 보여주었다. 배후습지의 개간 역사가 별로 길지 않았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알았다. 9장에서는 전통 종족촌의 형성 및 영역화에 대해서 다루었다. 10장에서는 우리나라 여러 왕조들의 수도 및 지방도시 구조에 관한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내용이었다. 문헌조사 및 답사를 통해 여러 도시의 구조 및 그 상징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리적 관점으로 역사유적지를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아서 유익했다. 백제 도성의 위치를 추정하면서 과거 제방 부지를 추정하는 것은 거의 탐정 수준이었다. 풍수지리, 주례고공기 도성제 등을 기계적으로 적용시켜 해석하는 방법은 지리적 관점이 배재된 것이라는 생각을 깨달았다.
아직도 복원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 많다. 도시나 교통로, 역원의 분포 등을 역사지리적 관점으로 보는 것도 좋다. 자연과 인문의 종합인 지리학적 관점을 적용해서, 고기후와 관련해서 역사적 사실과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주제도 재미있을 것이다, 역사지리학자들이 계속 노력해 주고 이러한 책을 계속 출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지리학도들이 역사지리학에 관심을 더욱 많이 가지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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