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0.0
리뷰 총점 종이책
초기 불교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 『붓다는 무엇을 말했는가』
"초기 불교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 『붓다는 무엇을 말했는가』" 내용보기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기독교라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좀 적은 숫자가 불교라 말할 테다. 하지만 쉽지 않은 질문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통계 조사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를 수치화하여, 그 수치로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양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 일단,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초기 불교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 『붓다는 무엇을 말했는가』" 내용보기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기독교라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좀 적은 숫자가 불교라 말할 테다. 하지만 쉽지 않은 질문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통계 조사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를 수치화하여, 그 수치로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양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 일단,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불명확하다. 가령, 교회에 나가지만 제사를 지내는 집안도 꽤 있다. 이 경우, 이 사람은 유교를 믿는 사람인 동시에 기독교도 믿는다고 해야 하나? 또 다른 문제. 보통 기독교도는 매주, 혹은 상당히 자주 교회에 나가야 자신이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불교도는 아니다. 일년에 한 번만 절에 가도 자신을 불교도라 믿는다.

 

이런 복잡한 요소를 고려하기 싫다면, 그냥 인구 통계에서 잡히는 수치로 따져 보자. 놀랍게도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는 불교다. 불교-개신교-가톨릭 순인데, 뭐 이럴 때 물론 기독교 측에서 반론을 제기한다. 왜 불교도 종파가 각각이지 않으냐고. 하지만 그러기 모호한 게, 한국불교의 절대 다수는 선종이고 그 중에서도 조계종이다.

 

어쨌거나.

 

아주 느슨하게 잡아서, 한국인의 절반은 종교인이고 그 종교인의 40% 정도는 불교도라 한다. 많은 사람이 불교를 믿는다고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길 가는 사람 5명을 붙잡고 불교 교리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말하면 불교 사상 강론이 술술 나와야 하는 게 정상인데 그렇지 않다. 이는 불교계에서 1년에 1번만 가도 당신은 신심 있는 불교인, 이라 호명한 캠페인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불교도 수를 늘리긴 했는데, 불도를 닦는 괜찮은 신도 양성에는 실패했다는 뜻이다. 

 

고등학교까지 성실하게 공부한 사람은 삼법인, 사성제 용어 정도까지 알 것이다. 삼법인에는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일체개고 대신 열반적정을 넣기도 한다)가 있고 사성제는 고집멸도로 이루어진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엄청 소수. 한국불교가 북방불교 - 흔히 대승불교라 말하지만, 이 용어 자체에 가치판단이 많이 개입했기 때문에 되도록 나는 안 쓰려 한다 - 이며 그중에서도 선불교이고 또 그중에서도 남종선 전통이며 간화선 위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더!!!! 소수다.

 

이러다 보니, 교과서가 서술하는 소승-대승 분열은 상기의 한국불교적 맥락이다. 당연히 남방불교를 폄하하고 북방불교를 띄운다. 비단 한국적 특수성만은 아니다. 일본 출신으로 서방 세계에 젠(선禪 대신 선의 일본식 발음인 젠Zen이 세계적으로 통용된다)을 널리 알린 일본 불교학의 입장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학자가 스즈키였다. 붓다가 설한 뒤, 불교에 파벌이 생기고 어느 순간부터 대중을 계도할 마음은 잊은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만 닦더라, 그래서 대승불교가 나왔다. 이런 설명 말이다. 여기서 아라한은 폄하되고, 보살이 등장한다. 나가르주나로 대표되는 공사상, 바슈반두로 상징되는 유식. 이게 모여서 대승 - 소승 대승 구분은 이미 인도에 있었고, 주로 대승 쪽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된다 - 이 형성이 되는데, 공 사상과 유식 특성상 신비주의로 빠진다. 여기서 말하는 신비주의란, 진리는 개념을 초월하며 초월적 경험으로 얻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세계관을 일컫는다. 기독교에서도 에크하르트와 같은 신비주의 사상가가 등장했고, 이슬람에는 수피즘이 있었다. 불교에서 신비주의 경향이 가장 짙은 것은 불립문자, 언어도단, 교외별전 등을 주장하는 선이다.

 

선불교는 불교가 원래 선이었다고 주장한다. 개념을 강조하는 아비다르마는 불교의 타락이었고 붓다가 원래 말한 다르마를 다시 굴린 게 선이라는 식.

 

『붓다는 무엇을 말했나』는 여기에 물음표를 던지는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불교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인데, 역사가 흐르면서 종교는 다양한 형태로 변한다고. 그러므로 특정한 시대에 나타난 분파를 발전 혹은 퇴보라는 틀로 제단할 수 없다고 말이다. 이 책은 함부로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어떤 것이 초기 붓다의 말이었고, 어떤 가르침이 후기불교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서술할 뿐이다.

 

세계종교가 다 그러하듯, 불교 경전에도 위경이 많다. 이 때문에 저자인 데이비드 J. 칼루파하나는 가장 최초에 형성된, 그래서 붓다의 말에 근접하다 평가 받는 초기경전을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아함경 같은 경전 말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

 

초기 불교는 선불교의 주장과 완전히 똑같지 않다. 저자는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 초기불교는 절대주의를 반대했고, 대승에서 선으로 갈수록 점점 절대주의 경향이 짙어졌다고.

 

초기불교가 인정하지 않은 것은 초월적이고 초경험적이며 동시에 표현할 수 없는 실재였다. 열반은 후대 불교에서 이해된 초월과 같은 의미의 초월의 실재가 아니다. 우리는 붓다 사후 불교 내부에서 점차 발전된 절대주의의 경향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만일 초기 교의에 대해 여기에서 설명한 것이 옳다면, 「반야경」은 분명 불교에서의 혁명을 상징한다.(192쪽)

 

왜 후기 불교는 붓다가 그렇게 반대했던 절대주의를 스멀스멀 흡수하기 시작했을까. 저자의 설명을 좀 더 들어 보자.

 

후기불교에서 보살이상이 발전하고 유행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 이상은 비구와 비구니 및 재가신도 모두에게 주어진 이상이었다. 하나는 부파불교이며 학구적 경향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학구적 경향에 대한 반동이었다.(183쪽)

 

뛰어난 통찰이다. 그렇다면 불교의 역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1. 카리스마를 지닌 교주의 등장 (고타마 싯다르타가 붓다로 거듭나다)

2. 교주 사후, 경전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학파 등장. 교단은 점점 아카데미즘으로 물듦 (아비다르마 불교)

3. 난해한 형이상학을 비판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및 초월적 경험을 강조하는 흐름 등장 (자신을 대승이라 칭하는 불교 등장)

4. 초월적 경험을 특히 강조하며 신비주의적 색채 짙어짐 (선불교)

 

물론, 1-2-3-4의 흐름은 한국불교에서 본 것이고 남방불교에서 3번과 4번의 과정은 없거나 상대적으로 약했다.

 

신기하게도 1-2-3-4의 흐름은 다른 세계종교 전통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신비주의가 주류를 차지한 종교는 유례를 찾기가 힘든데 한국불교에서는 그게 통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없음 말고.

 

초기불교, 특히 불교의 풍부한 철학적 업적에 대해 상세히 분석한 『붓다는 무엇을 말했나』. 추천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2.05.29. 신고 공감 4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