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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28. 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모악시인선의 여덟 번째 시집 [너무 멀지 않게]는 권오표 시인의 시집으로 처음 만나는 시인이다. 1950년생의 전북 순창 출신으로 30여년 간 전주완산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한다. 1992년에 이미 등단을 했으며, 1997년 첫시집을 낸 후, 20년 만에 그간의 침묵을 묶어서 2017년에 시집을 낸 게 [너무 멀지 않게]이다. 유강희 시인은 "외다리 김씨, 홀아비 박씨, 소박맞은 소실, 얽배기 방물장수, 이장집 영감, 늙은 무당, 문둥이. 과수댁, 점례, 함석대문 집 아이, 단발머리 계집, 당골네 아들, 뒷골방 할머니, 누님, 막내고모, 당숙모, 큰 아재 등 아픈 목숨들이 그 검고 군둥내나는 속에서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고 잊힌 고향의 혼으로 말을 건넨다"며 지극한 시심의 애틋함과 따뜻함을 들어서 시에 무방비로 감전되듯 전해오는 감동을 말하고 있다. 다양하면서도 깊은 아픔 하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닌 군상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모진 세월을 견뎌온 상처와 인내의 연속이다. 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마루의 내력(來歷)
소소한 바람에도 뒤란의 대숲은 불티 날리듯 소란스럽다 대숲을 빠져나온 바람은 곧장 처마 끝에서 갈라터진 흙벽을 껴안고 휘파람 소리로 집과 함께 운다 부엌으로 가서는 돌쩌귀를 움켜쥐고 부엌문과 함께 삐걱삐걱 운다 그 울음이 끝내는 마루에 켜켜이 쌓인다 어느 집이나 마루는 그 집의 내력을 품고 늙어간다 누구나 가슴 속에 마루 밑의 자루 빠진 낫처럼 서러운 내력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햇볕이 구걸 온 걸인처럼 기웃대는 한낮이면 마루는 검게 입을 다문다 춘삼월에는 때때로 연분홍 살구꽃잎 몇 낱 검은 마루 끝에 내려와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 16p.
예전 기와집이나 초가집의 마루는 요즘 아파트의 거실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방문을 여는 순간 마루가 있고, 그 마루는 곧 마당과 만나고 있어서 바깥으로 통한다. 마루에 나오는 순간 하늘도 보이고 땅도 보이고, 담도 보이고, 담너머 숲이나 이웃집이 보일 수도 있으며, 대문이나 쪽문이 보일 수도 있다. 마루 밑에는 빗자루를 비롯한 이런저런 기구들이 숨어있을 수 있고, 때로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누구나 가슴 속에 마루 밑의 자루 빠진 낫처럼 / 서러운 내력 하나즘은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것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온 식구가 모이는 마루이며, 온 식구가 밟고 지나가는 마루이기에 온 식구의 이런저런 속사정을 다 알고 있는 마루이기도 하다. "햇볕이 구걸 온 걸인처럼 기웃대는 한낮이면 마루는 검게 입을 다"물게 되는 이유는 마루도 이미 이 ,식구의 일원으로 식구들의 비밀을 속에 품은 채 말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런저런 소리와 사연들이 "켜켜이 쌓인"마루는 가끔 "연분홍 살구꽃잎 몇 낱"이 내려와서 "잠시 쉬어가"게도 해주는 넉넉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마루의 내력(來歷)"은 곧 이 식구들의 내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에 마루에 누워서 하늘을 보다가 잠시 낮잠을 청할 때의 한가로움과 평온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안온함 일거라고 잠시 미루어 짐작해 보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너무 멀지 않게
너무 멀지 않게
봉숭아 씨앗이 터지는 거리만큼만
풀여치 날갯짓 소리만큼만
노루오줌꽃 연둣빛 그늘만큼만
시누댓잎에 쌓인 봄눈만큼만
밥 짓는 저녁연기 기웃거리는 발치만큼만
토란잎에 그네 타는 이슬만큼만
네 돌아앉아 가만히 들썩이는 귀밑 볼 솜털에 맺힌 햇살만큼만
너무 멀지 않게, 너무 멀지 않게 --- 27p.
첫시집을 내고 20년을 침묵한 시인이어서일까. 시집 제목을 [너무 멀지 않게]라고 지은 게 의미심장하다. 사실 이 시인의 시를 기억하는 독자는 얼마나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리고 그게 20년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시인이 시집의 제목과 같은 표제작에서 "너무 멀지 않게"를 반복하고 있다. "풀여치 날갯짓 소리만크만/ 노루오줌꽃 연둣빛 그늘만큼만 / 시누댓잎에 쌓인 봄눈만큼만"이라는 표현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아슬아슬 예쁘면서, "너무 멀지 않게"뭘 하겠다는 건지 시인의 의지가 궁금하다. "너무 멀지 않게" 그리운 사람을 보고 싶다는 건지, "너무 멀지 않게" 세상으로 나오겠다는 건지, "너무 멀지 않게" 그대가 찾아오라는 건지... "너무 멀지 않게"라는 글이 당부하는 것 같으면서도 조심스럽고, 재촉하는 듯 하면서도 강요하는 것 같지 않아서 부담이 없는 표현인 것 같다. 독자인 나로서는 권오표 시인의 새로운 시집을 "너무 멀지 않게" 만나기를 감히 바랄 뿐이다.
폭설
밤새 마른 계곡에 쓸려 쌓인 눈에 모악(母岳)*의 산그늘이 시리다 산으로 난 덤불길은 발자국 끊긴 지 벌써 오래 너에게 보낸 편지는 번번이 주소불명이다 마지막 버스조차 떠나버린 면사무소 앞 멈춘 지 까마득한 정미소의 녹슨 양철지붕 틈으로 이명(耳鳴)처럼 바람은 웅크린 채 쿨럭이며 빈들을 건너가고 홀로 흔들리는 산비탈 불빛 낮술에 젖은 홀아비 박 씨의 꺼억대는 목울음에 뒤척이던 삭정이들이 몸을 부린다
오늘밤도 또 눈은 쌓이고 쌓여 길을 지울 것이다
* 전주 근교의 산 --- 35p.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오고가는 길도 끊기고, 산비탈 외딴집에 사는 홀아비 박 씨는 낮술에 젖어서 꺼억대며 목울음을 울까. 자식 하나 남기지 않고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낮술에 젖은 걸까, 폭설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외로움에 꺼억대며 목울음을 우는 걸까. 계속 그칠 줄 모르는 폭설이 쌓이는 밤새 홀아비 박 씨의 친구는 "뒤척이는 삭정이" 뿐이 없다는 게 서글프고 또 서글프다.
동구(洞口)2
장에 간 아버지가 거나한 걸음으로 고등어 한 손 들고 육자배기로 넘어오는 곳
들일 갔던 오복이 아재가 소 매어 놓고 봉초 한 대 말아 피우는 곳
당산나무 위에서 까치가 종일 보초 서는 곳
삼 년 만에 친정 오는 누이 맞으러 어머니가 하염없이 손차양하는 곳
농협 빚 독촉장이 우체부 가방에 꼬박꼬박 실려 오는 곳
복수초도 천둥도 폭폭한 눈보라도 상여소리도 잠시 쉬었다 넘는 곳
헛간에서 똥 누고 나오면서도 절로 눈이 가는 곳
열여섯에 시집 온 점례 할머니가 한 번도 넘지 못한 곳 --- 37p.
어린 시절 부르던 "동구 밖 과수원길 /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라는 동요가 기억난다. 동구는 마을 입구로써 누구나 그 마을에 진입하려면 통과해야 하는 장소이다. 마을 속에 오밀 조밀 있는 집들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동구. 그 동구에 이런 저런 얘기들이 서려있고, 이런 저런 바람과 눈빛이 서려있다. "삼 년 만에 친정 오는 누이 맞으러 어머니가 하염없이 손차양하는 곳"이라니... 삼 년 동안 딸을 못봤으니 어머니는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온다는 소식만 듣고, 몇 시에 오는 지도 모르면서, 수시로 손차양을 해서 동구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설레고 애타는 마음이 느껴진다. "열여섯에 시집 온 점례 할머니가 한 번도 넘지 못한 곳"이라는 시구에서는 가슴이 뭉클하다. 오로지 살림하고 자식 키우며 외출이라고는 동네마실 밖에 몰랐을 점례 할머니의 행동반경이 그려지며 얼마나 동구 밖으로 나가고 싶었을까 안쓰러운 마음까지 든다. 꽃같은 열 여섯에 시집와서 한 번도 동구 밖을 나가지 못했으니 결국 점례 할머니는 친정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저 시집가면 그집 귀신이 되야한다고 친정어머니가 딸에게 하던 옛말이 할머니의 가슴에 시퍼렇게 새겨져 있는 건 아닐까. 그리운 고향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채 할머니가 되어버린 점례 할머니의 삶. 그래도 점례 할머니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계실 것이기에 동구는 할머니의 애틋한 그리움까지도 받아 삼키고 있을 것 같다.
겨울 초상
이번만은 기어이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 북창(北窓)을 할퀴는 눈보라에 산골 마을은 잠들지 못하네 맞장 한번 떠보겠노라고 등뼈를 곧추세운 대숲은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지 연신 가쁜 숨비소리를 내네 이장집 영감님은 새 달력에서 이태 전에 먼저 간 할멈의 제삿날을 더듬고 마을 젊은이들은 사랑방에 모여 하 수상한 시절을 안주 삼아 밤 깊도록 섯다 패를 돌리네 눈 덮인 빈들에서 벼 포기는 단발령에 잘린 상투처럼 연대를 이루어 전열을 가다듬는데 나는 앞강이 쩡쩡 우는 소리를 들으며 식어가는 구들장에 엎드려 통속 소설에 킬킬대거나 수음을 하는 일 지난 밤 꿈에 자작나무 숲으로 사라진 은빛 여우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일 --- 44p.
폭설이 내리는 산골 마을의 한겨울은 한가로우면서도 한폭의 그림처럼 평화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 이런저런 일로 방마다 복닥복닥 시끄럽기까지 하다. 새 달력을 보며 "먼저 간 할멈의 제삿날을 더듬"는 이장집 영감님이 있고, 마을 젊은이들은 모여서 "밤 깊도록 섯다 패를 돌리"고 있으며, 비어있는 들판의 베어진 벼포기들은 "단발령에 잘린 상투처럼 / 연대를 이루어 전열을 가다듬"고 있으니 그 장면들이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다. 산골 마을에 찾아온 한겨울의 초상(肖像)은 한폭의 수채화 같기도 하고, 한바탕 꿈을 꾸는 듯도 하다. "지난 밤 꿈에 자작나무 숲으로 사라진 은빛 여우의 / 안부"는 나도 궁금한데, 숲 속 어딘가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눈이 그치길 기다리고 있을까. 시인의 꿈 속으로 들어가서 하얀 자작나무 숲을 헤매보고 싶다.
목숨
세상의 어머니는 살을 찢는 안간힘으로
눈보라치는 들판에 핏덩이를 밀어 넣는다
꽃나무는 통점(痛點)의 끄트머리에서
툭, 터트려 바람 속에 꽃을 피운다
모든 목숨은 아, 프, 다, --- 57p.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마지막 행에서 "모든 목숨은 아, 프, 다,"라는 표현으로 모든 목숨에 대한 설명 및 해석이 다 끝났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살을 찢는 안간힘으로" 기를 쓰고 "핏덩이를" 낳아서 "눈보라 치는 들판"으로 "밀어 넣"지만, 결코 원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라도 품에 안은 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진실로 그 자식을 사랑하기에 살벌한 들판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어머니가 언제까지 있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세상에 맞설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기에 "모든 목숨은 아, 프, 다,"라는 마지막 행이 단 한 줄이지만, 단 하나의 목숨으로 사는 우리네 인생이 그려지며 아프고 아프게 와닿는다. 한 행씩 소리내어 천천히 이 시를 읽어보면 아픈 목숨들이 피우는 꽃의 의미가 깊이깊이 느껴지며 모든 목숨은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어머니들로 인해서 모든 목숨은 귀하고 귀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눈 오는 밤 - 적막강산 2
푸지게 눈은 오고, 초저녁 두어 숟갈에 굴풋한 늙은 남정네들은 메기수염 구장댁 사랑에 모여 두부 내기 화투에 밤이 깊다 고방에선 벌써 코밑이 거뭇해진 아이들의 가마니 치는 그림자가 너울거리고 아궁이에 묻어둔 고구마 냄새에 처마 밑 고드름은 한 뼘씩 커간다 외딴집 젊은 과수댁 등불이 졸다 꺼지면 불두덩이가 한참 뜨거운 사내들은 며칠째 폭설에 대처로 가는 길조차 지워진 재 너머 강바닥에 온 몸으로 밤새워 처박고 있을 눈발들을 떠올리곤 문득 가슴이 헛헛해져 살얼음 친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씩 부르르 들이킨다 이따금 대숲의 눈더미 부리는 서슬에 놀란 오소리가 뽕밭에서 미끄러지며 산으로 달아난다 --- 78p.
다시 또 눈 오는 밤의 풍경이다. "굴풋한(배가 고파 무언가 먹고싶은) 늙은 남정네들"이 "메기수염 구장댁 사랑에 모여" 내기 화투를 치고, 청소년들은 고방에서"가마니"를 치며 "묻어둔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고, 젊은 사내들은 "외딴집 젊은 과수댁 등불이"꺼지자 "강바닥에 온 몸으로 밤새워 처박고 있을 / 눈발들을 떠올리곤 문득 가슴이 헛헛해져 / 살얼음 친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씩 부르르 들이"키는 눈오는 밤. 나이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 다른 그 옛날 시골 남정네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그래도 다들 순하고 선한 이웃이기에 "외딴집 젊은 과수댁"을 찾아가거나 괴롭히지 않고 생각만으로 속을 태우고 있는 모습에 슬며시 웃임이 난다. 또한 시인이 "강바닥에 온 몸으로 밤새워 처박고 있을 눈발들"이란 표현은 은근히 젊은 사내들의 불같은 열정을 부추기는 듯해서 짓궂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럴 때 "살얼음 친 동치미 국물"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사내들의 타는 가슴을 이보다 더 시원하고 서늘하게 달래줄 것은 없을 것 같다. 헛헛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동치미 국물, 건조하고 기나긴 겨울밤의 허기와 입마름을 달래줄 동치미 국물, 오래 전 할머니가 담가 주시던 그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문신 시인은 책 뒷편의 해설에서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무언(無言)으로 스스로의 귀를 틀어막고, 무심(無心)으로 눈을 감아버린 '돌멩이'를 어루만지는 것과 다르지"않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적소(適所)에서 20년을 들어앉았던 권오표 시인은 그간의 침묵을 시로써 말하고 있다. 정갈하면서도 투박하고, 아득하면서도 은근한 뜻을 품고 있는 시어(詩語)들의 향연은 읽는 내내 호흡을 멎게 하기도 했고, 낮은 한숨이 나오게도 했으며, 가슴을 찡하게도 했고,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도 했다. 이미 흘러간 지 오래된 풍경들의 고즈넉함에 살포시 젖어들기도 했다가, 그 시절을 묵묵히 살아낸 순하고 둥그런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난한 세월에 괜히 울컥하기도 했다. 권오표 시인은 20년 간 적소에 들어앉았던 침묵을 깨고 이렇게 멋진 시집을 내어 놓았으니, 다시 또 적소를 찾아서 20년을 들어앉지는 않을 지 궁금해지면서 덜컥 걱정도 된다. 20년은 너무 길다. 이건 독자의 욕심이지만, 이렇게 좋은 시를 몇 년 안에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간 쌓인 깊은 내공이 있으니, 20년의 수행은 한 번으로 족하다고 본다. 다음 시집은 "너무 멀지 않은" 시간 안에 꼭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래 전 시골에 가면 볼 수 있었던 풍경과 그 풍경 속에서 풍경의 일부처럼 살아가는 우리네 순한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 시집 [너무 멀지 않게]이다.
* 이 리뷰는 블로그 이웃인 아자아자님의 히트 이벤트에 당첨되어 선물로 받아서 읽고 쓴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시집을 선물해 주셔서 읽게 해 주신 아자아자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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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20 미처 못 걷은 빨래가 밤새 울더라 ― 너무 멀지 않게 권오표 모악, 2017.11.6. 저물도록 미나리꽝에서 놀다 나온 어린 거위 떼가 양 날개를 풍선껌처럼 한껏 부풀려보더니 밥 짓는 저녁연기 오르는 고샅을 향해 노란 주둥이를 벌리고 일제히 꽥꽥 우네 (목련 질 무렵/13쪽) 2011년 여름에 전남 고흥에 깃들며 처음 들은 아랫녘말은 ‘싸목싸목’입니다. 어떤 일이든 ‘싸게싸게’ 하지 말고 ‘싸목싸목’ 하자는 말을 들었어요. ‘싸목싸목·싸게싸게’는 서울말 ‘천천히·빨리빨리’하고는 사뭇 결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아랫녘에는 ‘천천히’라는 말도 쓰지만 ‘싸목싸목’도 따르고 쓰거든요. 더 헤아려 보면 ‘찬찬히’라는 말도 있어요. 아랫녘에서는 낙숫물을 집시랑물이라 한다 (집시랑물/14쪽) 무밭에서 한소쿠리 무를 이고 온 어머니가 저녁쌀을 씻으러 우물로 간다 (다시 11월/28쪽) 말마다 결이 다르기에 말결이 상냥합니다. 다 다른 말은 다 다른 자리에 알맞게 흐르니 즐겁습니다. 사람도 말하고 같아서, 저마다 다른 마음결인 사람이 저마다 상냥하고, 저마다 즐거워요. 하루가 즐겁다면 어제하고 퍽 다르게 찾아오고 맞이하고 누리면서 살림을 지었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오늘 하루 즐거이 살았다면, 밤에 깊이 꿈나라로 잠기면서 느긋이 쉬면서 새로운 날을 기다릴 수 있을 테고요. 권오표 님 시집 《너무 멀지 않게》(모악, 2017)를 읽으면서 아랫녘 집살림하고 말살림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겨울 한복판인데 어제는 이불을 빨아서 널었고, 저녁에 다 말라서 아이들이 폭신폭신 덮습니다. 겨울 한복판이지만 어제 이불빨래를 마치고서 마을 빨래터에 가서 반소매에 바짓자락을 걷고서 물이끼를 치웠어요. 이동안 아이들은 저희 신을 빨래했고요. 마을 어귀 빨래터에 손을 담근 아이들은 “물이 안 차네?” 하면서 물놀이를 살짝 하기까지 했습니다. 한겨울에도 폭한 볕을 누릴 수 있는 아랫녘이란 고장은 더없이 고운 선물을 받는 터전이지 싶습니다. 이 고운 선물을 너나없이 누리면서 싸목싸목 하루를 가꾸면서 말매무새를 가다듬지 싶어요. 너무 멀지 않게 봉숭이 씨앗이 터지는 거리만큼만 풀여치 날갯짓 소리만큼만 노루오줌꽃 연둣빛 그날만큼밤 시누댓잎에 쌓인 봄눈만큼만 (너무 멀지 않게/27쪽) 서울말로 ‘조릿대’라 해도 되고, 표준말로 ‘신우대’라 해도 됩니다. 그리고 ‘시누대’ 같은 아랫녘말을 써도 되어요. 굳이 모든 사람이 서울 표준말로만 말을 하거나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웃녘사람은 웃녘말을 쓰면 되고, 가운뎃녘사람은 가운뎃녘말을 쓰면 되어요. 저마다 다른 터전에서 길어올린 저마다 다른 살림이 깃든 말을 쓰면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서울에 얽매이면서, 또 지나치게 표준말에 스스로 가두면서, 고장마다 다르고 마을마다 다르며 집집마다 다른 우리 모습을 잊거나 잃는지 몰라요. 더 이쁘거나 더 잘생겨야 하지 않는데, 남하고 비슷하거나 닮은 길로 자꾸 휩쓸리는지 몰라요. 누가 자꾸 문을 두드리는 듯싶어 창을 열어보니 지난밤 빨랫줄에 걸어 놓은 셔츠가 밤새 비를 맞고 있다 천둥 번개도 다녀갔는지 흐느끼며 울고 있다 (곡비哭婢/66쪽) 아침 낮 저녁 밤, 참말로 하루 내내 자동차 지나갈 일이 드문 아랫녘 깊은 시골자락에서 지내다 보면, 귀로 스미는 소리가 언제나 새삼스럽습니다. 마루문을 누가 자꾸 두들기는 듯해서 슬그머니 내다보면 사람은 없이 바람이 스윽슥 지나가는 소리입니다. 누가 왔나 싶어 마루문 쪽을 내다보면 들고양이 몇 마리가 섬돌이며 평상에 옹크리고 겨울볕바라기를 합니다. 들고양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섬돌이며 평상을 디딘 소리가 가만히 스며요. 자그마한 가랑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가볍습니다. 도톰한 동백잎이 문득 떨어지는 소리가 묵직합니다. 고즈넉한 보금자리에서는 딱새나 참새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앉을 적에 나무가 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겨울눈을 들여다보면 잎망울이며 꽃망울이 차츰 굵는 소리까지 들을 만해요. 미처 못 걷은 빨래가 내는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스민 《너무 멀지 않게》를 덮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을까요? 우리는 어떤 소리하고 가깝거나 멀까요? 우리는 어떤 그림이나 숨결하고 가깝거나 멀까요? 우리가 가는 길은 우리 꿈이나 사랑하고 얼마나 가깝거나 멀까요? 2018.1.20.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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