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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제국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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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는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습니다만 최근 들어서 가야사 복원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경상남도에서는 가야사 복원에 대한 예산을 확보함과 동시에 체계적인 발굴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37년까지 발굴한다는 프로젝트아래 1조 2천억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에 따라서 가야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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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는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습니다만 최근 들어서 가야사 복원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경상남도에서는 가야사 복원에 대한 예산을 확보함과 동시에 체계적인 발굴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37년까지 발굴한다는 프로젝트아래 1조 2천억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에 따라서 가야사에 대한 큰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미완의 제국은 가야가 400년 광개토대왕이 신라의 내물마립간의 요청으로 군대를 보내면서 가야, 백제, 왜 연합군을 격퇴하면서 동시에 가야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영향이 얼마나 컸으면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구분이 될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기도 하였으며 또한 가야의 맹주가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 바뀌는 역사적인 큰획을 그린 사건이 바로 광개토대왕의 파견이었습니다.

그 파견은 이제 곧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가야의 꿈을 접어야하게끔 만드는 사건이기도 하였으며 국제적으로 교류하기 편하던 김해의 금관가야지역에서 내륙으로 거점을 이동해야할 만큼의 타격을 준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야국이 뭉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각각의 가야국이 워낙에 강대해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통합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삼한 중 진한 마한이 한번에 신라 백제로 바뀌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마한은 십제국이(후에 백제국으로 바뀜) 진한은 사로국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면서 주변의 국가를 병합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삼한시대기 때문입니다. 변한에 속하였던 가야는 어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아우를 수 있는 월등하게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가 없어 중앙집권체제가 아니라 연맹왕국에서 마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연구보다 가야에 대한 연구가 두드러지게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삼국사기에서 백제기에 관한 내용이 눈물 날 정도로 열악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열악한 사료가 바로 가야사에 대한 사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반도에서 존재하였던 국가였으나 지금 우리 정규 교과과정에서는 가야사에 대한 내용은 단편적인 내용만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가야사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져 좀 더 탄탄한 과정으로 한반도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덮었습니다.

r****2 2017.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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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제국 가야 -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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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에 대해서 알아보자가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몇 안될 것이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가야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극히 적다 물론 가야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 드라마도 거의 없기에 더욱더 가야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 검색창에 ‘가야’라고 검색을 해도 크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저자는 가야에 관한 유물과 서적과 자료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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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에 대해서 알아보자


가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몇 안될 것이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가야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극히 적다 물론 가야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 드라마도 거의 없기에 더욱더 가야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 검색창에 ‘가야’라고 검색을 해도 크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저자는 가야에 관한 유물과 서적과 자료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가야사를 집필 했다

고구려.백제.신라와 함께 ‘제4의 제국’으로 불리는 가야에 관해서 이 책은 총 11장으로 구성 되어 있고 책도 400페이지가 넘는 결코 얇은 책은 아니지만 일관되게 가야의 모든 것을 총마라 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가야에서 발굴된 수 많은 유적, 유물들의 실물 사진과 발굴 과정, 현재 위치를 사진으로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높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기엔 나의 사전 지식이 너무나 부족해서 막힘없이 술술 수월하게 읽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저자가 최대한 읽기 쉽게 설명함으로써 더디지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한국인의 뿌리를 찾아가는 노정의 한복판에 가야와 가야사가 있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의 가야는 한국인의 형성과정을 추리해볼 수 있는 표면적인 대상이 된다 저자는 3세기 중반경까지의 함안과 김해를 포함한 변진의 역사는 고조선 유민들의 역사다 고구려.백제.등과 달리 가야(변진)는 그 구성원의 상당수가 고조선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부여인을 포함하여 선비계 및 흉노인 그리고 일부 고구려 사람들이 섞였을 것이라고 하면서 가야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였을까?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었으며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그들의 말과 글은 어떠했으며 마을과 사회, 나아가 국가는 어떤 체제를 갖고 운영되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제1장 : 가야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에 상세히 설명 되어 있다

가야인들의 농업과 식생활, 가옥 구조, 의복과 장신구, 언어와 습속.음악, 수렵과 어로생활, 죽음과 장송의례, 종교와 믿음, 문자생활과 정보교환, 병장기와 전쟁에 관해 하나씩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또한 고구려.백제.신라와 함께 가야는 고대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원형을 일구어낸 나라였다 성장기의 가야는 인접국 백제에도 꽤 많은 영향을 주었고, 신라에 병합된 뒤로는 신라 문화의 원형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고구려와 신라의 연합군이 가야를 정벌한 가야 대전 전쟁으로 고구려와 신라는 백제.가야.왜의 연합세력을 약화시켰으며, 김해가야(임나가라)가 쇠락하고 가야권은 여러 지역 세력으로 분산되었다 전쟁 이후 한반도 남부지방에서의 패권은 가야에서 신라로 옮겨갔다 전쟁 뒤에 북에서는 고구려, 남에서는 신라가 부상하게 되었으며, 고구려는 후연을 멸망시키고 서쪽으로 진출하여 북경 이남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아울렀다 이는 과거 고조선 영역의 상당 부분을 회복한 것으로 저자는 주장한다 가야 대전 이전의 가야는 신라보다 월등한 힘과 국력을 갖고 있었지만 가야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까닭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약한 데 있던 게 아니라 외교적 실패에 있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가야의 지배층이 가 계급층이었으며, 가야 사회는 이들 가 계급을 중심으로 한 소국들의 분립체라는 견해를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가야는 6세기 중반까지 영남지방에 존속했던 한국의 고대 국가이다 그러나 가야는 하나로 통일된 국가를 완성하지 못한 채, 신라에 통합되었다 그래서 가야를 ‘미완의 왕국’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야는 3~4세기 이전에 이미 한국 남부 지방에서 풍요로운 문화를 일구었으며, 2~3세기에 영남의 패권을 쥔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가야 사람들은 해양과 대륙의 문화를 매개로 하여 새로운 금속혁명을 주도 하였다 그들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철의 생산과 교역을 주도하였다

동래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은 경주 다음으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종류또한 다양해다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토기류이며 그 종류 또한 가야 지역에서 가장 많고 모양도 특이한 것들이 많다 토기류 ,철기류, 청동기류에 대해서 각각 사진과 설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책에서 뭉클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제9장 : 가야 소녀 ‘송현이’와 창녕의 지배자들 을 읽으면서 당시의 가야인의 삶을 엿 보았다 주인공은 경남 창녕에서 발견된 16세 가야 소녀 ‘송현이’이다 그녀의 유골은 온전하게 발견이 되어서 12개월의 복원 작업 끝에 그녀의 삶을 추적할 수 있었다 특히 뼈를 통해서 이 어린 소녀가 살아있을 당시 다공성뼈과다증을 겪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빈혈을 만성적으로 앓았다는 것, 정강이뼈와 종아리뼈에 툭 튀어 나온 부분을 통해서 매일 무릎 꿇고 시중 들며 살아서 뼈가 툭 튀어나오게 된 사실을 밝혀냈다 그녀는 1500년전 창년 지역을 다스리던 지배자의 시녀였다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든 질병을 몇 차례 앓았으며 뼈 빠지게 일하며 주인을 섬겼다 여러 개의 충치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치통을 견디며 살았던 것 같다 

이 책 한 권이지만 가야에 대해서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제자는 다른 책 <영원한 제국 가야>를 통해서 가야의 흥망성쇠를 이끌었던 철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 한다고 하니 다른 책도 기회가 되면 읽어 보고 싶다



c*********g 2017.12.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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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를 새롭게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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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를 새롭게 만나다한국 고대사에서 '가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구려, 백제, 신라 중심의 한국 고대사에서 동예, 옥저, 삼한 등 다소 소외된 지역의 역사가 많다. 그중에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과 상당한 시기를 함께 해온 가야도 포함된다. 가야라고 하면 우선 기원을 전후로 한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6세기 중엽까지 존재했던 국가로 주로 금관가야(김해), 아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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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를 새롭게 만나다

한국 고대사에서 '가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구려, 백제, 신라 중심의 한국 고대사에서 동예, 옥저, 삼한 등 다소 소외된 지역의 역사가 많다. 그중에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과 상당한 시기를 함께 해온 가야도 포함된다. 가야라고 하면 우선 기원을 전후로 한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6세기 중엽까지 존재했던 국가로 주로 금관가야(김해), 아라가야(함안), 고령가야(함창), 대가야(고령), 성산가야(성주), 소가야(고성) 등의 6가야를 말한다.

 

막상 '가야'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리 많지 않다. 고령의 무덤군이나 유적지 발굴에서 나온 금관과 기마인물형 토기를 비롯한 몇몇 토기와 토이, 마구 등이 전부다. 철의 제국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그 바탕에는 가야사를 통사(通史)로 구성할 수 있는 기본 사료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그 가야의 이야기를 지금까지의 가야사 연구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라는 시각에서 완전히 새로 쓴 가야의 이야기를 서동인의 미완의 제국 가야를 통해 듣는다. 저자 서동인은 한국인은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고대 한국인의 형성과정과 한국인의 원류에 대한 성찰이라는 맥락에서 가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미완의 제국 가야’·‘영원한 제국 가야를 내놓게 되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책 미완의 제국 가야.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에게 그동안의가야는 어쩌면 잊혀진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저자의 이번 책이 가존 가야사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도 구체적으로 와 닿지 못하는 것은 저자의 문제가 아니라 책을 다해는 독자의 가야사에 대한 일천한 지식이 기반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일반적인 가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제시한 가야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기반으로 나아가 한반도 최초 대규모 남북전쟁으로 표현되는 고구려와 신라 연합군의 가야 침공 그리고 가야 소녀 송현이와 창년의 지배자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간 일천한 가야사에 대해 하ᅵᆫ발 더 나아간 이해를 돋고 있어 흥미롭게 접한 부분이다.

 

우리의 역사를 구성한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모두를 다 알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 기여했던 요소들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미완의 제국 가야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m*****8 2017.1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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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제국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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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배웠지만...머릿속에 남아 있는 부분은 지극히 적다.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되어 자연스레 잊어버린 부분도 있겠으나 가야에 대해서 짧게 스치듯 배운 점도 한 몫 하지 않나 싶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고령지역을 여행하게 되면서, 지산동 고분군 및 대가야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 가야이기에 솔직히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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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배웠지만...머릿속에 남아 있는 부분은 지극히 적다.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되어 자연스레 잊어버린 부분도 있겠으나 가야에 대해서 짧게 스치듯 배운 점도 한 몫 하지 않나 싶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고령지역을 여행하게 되면서, 지산동 고분군 및 대가야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 가야이기에 솔직히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방문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 곳에서 가야 시대의 무덤을 보고, 부장품들을 보며 가야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나 박물관 가까이 위치한 우륵박물관 또한 가야인들의 섬세함과 자긍심 그리고 그들 특유의 문화에 대해서 깊이 감동받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우연하게 가야를 접하게 된 후 ‘미완의 제국 가야’라는 도서를 접하게 되었다. 가야라는 나라를 덩이쇠, 가야금, 김유신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매우 가소롭게 느껴졌다.
  특히나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하여 이 설이 매우 잘못된 일본측의 주장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왜 그들이 그렇게 주장했는지, 그리고 왜 이 지역이 화두가 되었는지 몰랐었는데, 이 책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역사에 과정은 없다지만.. 만약, 가야가 연맹왕국에서 벗어나 6가야를 통합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가 그리하였듯이 왕권을 강화하고, 불교 수용 및 율령반포를 하여 고대 국가 체제를 이루었다면.. 한반도에 삼국이 아닌 사국체제가 형성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혹시, 가야가 신라를 통합하진 않았을까? 이제와 이런 상상이 무슨 소용 있을까.. 싶지만, 혼자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승자의 역사’인지라 역사속에서 가야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들은 당당했고, 상당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손재주 또한 뛰어났다.
  무엇보다도 요즘 들어 가야에 대한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만큼, 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가야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널리 대중화 되었으면 좋겠다.

s******j 2017.1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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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제국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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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금관가야 등 경북고령에서 고분 군을 둘러보며 접할 수 있었던 가야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는 기회는 결코 쉽지 않았다. 사실 역사적 이야기란 것이 남겨진 유물 또는 서적이 많이 있어야 근거가 되고 이야기가 풀리는 것인데, 신라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던 가야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일 것이다.   어쩌면 짧은 지식을 가진 나의 역사 지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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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금관가야 등 경북고령에서 고분 군을 둘러보며 접할 수 있었던 가야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는 기회는 결코 쉽지 않았다. 사실 역사적 이야기란 것이 남겨진 유물 또는 서적이 많이 있어야 근거가 되고 이야기가 풀리는 것인데, 신라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던 가야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일 것이다.

 

어쩌면 짧은 지식을 가진 나의 역사 지식의 한계일 수도 있겠으나, 입시 위주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역사책에 크게 언급되지 않은 가야의 이야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도 어느 정도 작용 했을 것이다.

 

조금 어려웠던 점이 잘 모르는 이름과 배경에 대한 설명을 한번 읽어본다고 이해를 충분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읽으면서도 이것이 진실인지 작가의 픽션이 가미 된 것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가야의 역사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고, 어느 정도 믿을 만 한 것인지 모르겠고, 또한 그 많은 근거자료와 사진들이 크게 와 닫지 않는 다는 점은 아마도 내가 관심이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야의 역사를 탐구하려는 학구적 욕망보다, 그 많은 이름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따분함이 더 컷을 것이다.

 

 작가의 설명은 충분히 이해하지도 또 할 수도 없겠지만, 가야라는 큰 그림을 한번 읽어 본 후에 실제 경북 고령의 고분 군을 방문하여 실물을 본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가야인들이 많지 않지만 남겨놓은 유물들(토기,그릇, 갑옷, 금관등)을 찬찬히 살펴보면 충분히 능력자들이었고, 일본에 철을 제조하는 방법을 알려준 장본인들이라고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신라의 속국으로 전락한 가야였기에 그들의 찬란한 역사를 접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결국 강하고나 유연하지 못하면 사라지는 것이었다.

 

끝으로 역사에 대해서 잘은 모르겠으나, 결국 역사는 살아남은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니던가!, 가야의 역사는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고립되어 이도 저도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야말로 역사의 패배자가 아닐는지….

 

p*****y 2018.0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