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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역사 중 가장 미완성적인 역사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 바로 가야사가 한국 고대사에 있어서의 가야사는 다른 국가에 비해 연구할 수 있는 사료의 아직까지 명확히 가야가 존재했던 지역과 가야의 구성에 대한 난분분한 이론들, 포상팔국 전쟁과 새로운 시대의 여명, 한반도 남부의 세력권에 대한 판도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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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가야 가야는 한국 고대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가야사는 1천 년 역사라 하는 신라사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중앙집권제 왕권 국가로 나아가지 못 하고 사라진 탓에 그 동안 가야사는 한국사의 중심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신라에 흡수된 국가라는 인식으로 인해 신라사 중심의 한국 고대사의 역사 서술은 자연스럽게 가야사의 배제 혹은 왜곡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아쉽게도 유적과 유물 외에는 구체적 자료나 증거가 부족하여 완전하고 정확하고 가야의 모습은 그려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가야사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한반도 남부에서의 최초 대규모 전쟁이라 할 수 있는 포상팔국 전쟁에서의 가야의 위상을 소개하고, 가야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에 대해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제시하며, 백제와 신라 및 일본까지 ‘국제적’ 관계 가운데에서의 가야사를 조망하고 있다. 특히, ‘변진조선’이라는 용어와 함께 고조선의 왕 위만이 변진구야국의 왕이 되었다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준왕 재임 시절의 고조선 대에는 연에서 위만이 건너온다. ‘상투를 틀고 동이의 복장을 한’ 위만이 준왕에게서 왕위를 빼앗음으로 인해 고조선은 위만조선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시작된 위만조선은 위만의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에 이르기까지 87년간 유지되고, 한 무제에 의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위만이 구 고조선에 머물며 아들, 손자로 정권이 이어지도록 했다는 예상을 이 책은 과감히 뒤집어버린다. 고조선의 왕이 된 위만은 얼마 후,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고조선의 동쪽에 있는 예로 가서 예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위만에 앞서 조선후 회가 예왕을 자칭하던 당시 위만이 조선후 회를 몰아내고 예왕이 되었다. 그러자 조선후 회는 거기서 다시 변진으로 내려가 변진의 왕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위만이 뒤따라 조선후 회를 공격하고 변진 왕의 자리를 또 다시 빼앗았다는 것이다. 위만조선은 후대에 물려주고 위만 스스로는 예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와 변진에 또 하나의 고조선 정권인 ‘변진조선’을 세웠다는 해석이다. 북방 유민들의 남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나, 위만이 직접 내려와 변진조선을 세웠다는 해석은 새롭게 다가온다. 고조선의 정통후예들이 변진이고, 가야라는 것은 한국고대사에서 가야의 위상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고조선-삼한-삼국으로 서술되는 우리의 고대사에 가야를 중심에 내세워야 한다는 것으로서 고조선-가야-삼국과 같이 가야를 한국고대사의 중심 연결고리로서 다시 연구해야 한다는 것임에 의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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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는 고대 가락국(가야) 영토가 위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가까운 김해 경전철을 이용하니 수로왕릉역이 존재했다. 근처에 내려 멀리서나마 수로왕릉을 보니 하나의 동산처럼 거대하였다. 경남 김해 수로왕릉의 김수로는 김해김씨의 시조이며 가락국의 시조이다. 삼국유사에서 수로왕비 허황옥은 아유타국(인도)에서 왔다고 한다. 가야는 백제, 신라와 함께 동시대에 건국되었다. 기록상 가야가 존속한 기간은 42년부터 562년까지 521년이다. 고조선 멸망 후에 유민이 내려와 변진 지역에 정착하면서 가야가 탄생한 기준으로 보면 가야의 전체 역사는 700년 이상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조선왕조 500년에 뒤지지 않는 가야의 역사이건만, 사료의 제한과 그 외 몇몇 여건으로 말미암아 그간 가야사를 등한시한 경향이 있었다. 1천년 왕국 신라에 버금가는 가야사는 한국 고대사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경남을 중심으로 경북지역까지 미치는 역사로 알려져있으나 이외에도 더 넓은 범위로 섬진강 주변, 그 다음에 광양만, 순천만, 심지어는 남원 일대, 금강 상류 유역까지도 유적들이 남아있다. 가야는 기원 전후한 무렵, 한반도 남부의 낙동강 유역에 흩어져 있던 수국들로부터 출발하였다. 가야는 백제, 신라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건국되어 기원후 562년에 신라에 의해서 대가야는 멸망하였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가야사 연구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의 목적으로 가야사를 새로 쓴 책이라고 한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야마토 왜국이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건너와 백제, 신라, 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설치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했다는 일본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었다는 남선경영론으로 과거 일본인들이 한국 고대사를 왜곡하고 침략 및 일제의 식민지배에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허구이다. 가야시대 임나일본부나 일본부는 실체가 없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없는 사실을 일본서기에 끼워 넣어 날조한 것이다. 현재에 와서는 임나일본부가 존재하지 않았는다는 것을 한, 일 양측이 인정하고 있다고 하니 조금 화가 가라 앉는 듯 하다. 영원한 제국 가야는 함께 출간된 미완의 제국 가야와 실제로는 한 권의 가야사 연구서라고 한다. 새로 쓴 가야사를 자세하게 알 수 있고, 순서에 상관 없이 따로 읽어도 괜찮다고 한다. 약 7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가야사. 아직 그 사료가 부족해서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없어 아쉽다. 언젠가 가야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되고 사극 드라마로도 만날 수 있으면하고 희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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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가야 평소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역사이야기이다. 중학교시절 김정빈 소설 [단]을 만난 이후로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비록 이루지는 못했지만 역사연구자가 되기 위해 국사학과를 가고자 했었다. 그래서 역사이야기를 만나면 가슴이 설렌다. 특히나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대사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영원한 제국 가야] 이 책을 만난 것 또한 가슴 설레는 일이다. 다른 분들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껴보기를 바래본다. 우리 고대사는 존재하는 사료의 부족으로 실제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못하고 많이 왜곡되어 있다. 특히 패배한 역사는 더욱 더 많이 왜곡되어 있다. 가야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왜곡이 심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가야는 임나일본부라는 허구적인 논리의 밥이 되어 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야사는 남아있는 자료의 부족으로 그 진면목을 볼 수는 없지만 단편적인 자료와 유물로만 살펴봐도 그 수준이 결코 얕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원한 제국 가야]를 통해 그 일부나마 확인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대부분 가야사를 처음 접한다는 것을 가정하면 첫머리를 포상팔국 전쟁으로 시작해서 남부의 세력판도변화를 중심으로 다룬 것은 우리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충분하다 그 외에도 고조선의 왕 위만이 변진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가야연맹체에 대한 이야기들은 기존의 역사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남다른 연구성과물이라 생각된다. 이제 가야역사의 연구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이 부족한 자료이지만 끊임없는 학자들의 노력이 이어진다면 그 실체를 조금씩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아쉬운 점은 쓰다 소키치를 중심으로 한 식민사관 주창자들의 논리, 삼국사기 초기 기록불신론이 우리 역사학계의 정설처럼 자리잡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데 그 모습이 책 속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삼국사기기록은 못 믿는데, 삼국지 위지동이전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일본서기, 고사기의 기록은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임나일본부가 일본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지만 교과서에서는 우회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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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면 설명하기 쉽다. 이미 지난 과거인지라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당시 생활하던 물건들을 온전히 볼 수 있다면 연구와 검증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정확도 높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더욱이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국가적 역사서 혹은 개인이 적어놓은 글귀나 일기만 있다면 고증을 거의 완료 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