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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제9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朴正熙·1917~1979)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여 그의 생일인 11월 14일에 박정희 전집이 발간됐다. 여기서 한 가지 먼저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대통령으로의, 정치적 색깔로의, 그의 공과 과에 대한 문제의식에 바탕하는, 맞느냐 틀리냐하는 모든 인식을 배제하고 『박정희 전집』의 <박정희 시집>을 바라보고자 한다. 방해하는 요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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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朴正熙·1917~1979)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여 그의 생일인 1114일에 박정희 전집이 발간됐다. 여기서 한 가지 먼저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대통령으로의, 정치적 색깔로의, 그의 공과 과에 대한 문제의식에 바탕하는, 맞느냐 틀리냐하는 모든 인식을 배제하고 박정희 전집박정희 시집을 바라보고자 한다. 방해하는 요소를 모두 걷어내니 필요하지 않은 잡음이 가시고 오롯이 대상에만 집중하게 된다. 시집이라고는 하나, 그가 쓴 일기(日記)도 들어 있다는 것에 일단 주목하고자 한다.

 

일기(日記)란 무엇인가. 엣센스 국어사전[특장판]을 찾아보면 일기는 날마다 겪은 일이나 느낌 등을 적은 개인의 기록”(민중서림, 2015, pp.2067)이라고 정의 돼 있다. 이것으로는 정확한 의미가 와 닿지 않는 듯하여 일본의 코지엔[広辭苑]을 뒤적여 본다. “날마다 겪은 일이나 감상 등의 기록. 일반적으로 일지(日誌) 보다는 사적이고 개인적.”(岩波書店, 2015, pp.2135) 이라는 설명이 따른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사전을 통해 되짚어 본 일기의 의미는 매일매일 일어난 일, 느낌을 적어 넣은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매우 개인적이라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 일기는 누구든지 남에게 흔쾌히 보이고 싶은 것이 못된다. 자신만의 생각과 느낌을 적은 기록이기에 일단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으로, 이런 사적(私的)이고 주관적인 일기의 특성은 일기를 쓴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예부터 일기는 문학의 한 범주에 속해 있으며, 많은 문인들이나 유명인들의 일기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곧 책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왔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박정희의 일기가 박정희 시집에 동시에 실리면서 한 세대 이전의 국가 지도자였던 그의 일기를 아주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됐다. 기존에 알고 있던 박정희에 대한 이미지와 고정관념을 버리고 얇은 한 권의 책에 집중해 본다.

 

보통 시()라고 한다면 문예지를 비롯하여 문단(文壇)에 등단하는 과정을 통해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시는 그의 일기장에 운문 형태로 메모를 남긴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것들을 과연 시()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형식과 과정에 대한 이해 문제가 선결적으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등단하여야 글을 쓰고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등단을 한다면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있어서 포괄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등단하지 않고도 취미삼아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시를 쓰는 사람도 있다. 아마 박정희도 그랬을 것이다. <박정희 시집이라는 단행본이 전집에 묶여 나온 의도는 박정희에 대해 우리가 기존에 몰랐던 부분-시를 쓰고 기록을 남겨 왔다는 것-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알았으면 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기장에 서른 편 분량의 시()가 발견됐다고 한 것으로 볼 때, 처음부터 시를 쓸 작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기를 쓰면서 들던 감정을 주욱 이어 내면서 시라는 형태의 글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는 전문 시인이 아니었다. 따라서 국어시간에 배울 법한 작품의 개념을 갖고 칼같이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시라는 그 글 자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건설하는 아침(pp.28~32)이라고 이름 붙이고 옆에는 ()라고 제법 임팩트 있게 적어 놓은 한자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해머 소리 요란하게 창가에 들리고/’로 시작하는 이 시는 1968121일에 썼다. 재미있게도 이 날은 정말로 일요일이었다. 창작을 위해 가공의 장소와 임의의 시각을 설정한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밀려 드는 감정을 바로바로 글로 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구중궁궐 청와대 관저에서 참으로 해머 소리가 들리겠냐마는, 망치(해머)를 두들기며 무언가를 만드는 일조차도 산업 역군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넓게 멀리 쭉쭉 뻗어나는 큰 길/ 우뚝 우뚝 솟은 공장/ 물결처럼 달리는 차량/’에서는 요즘에는 매우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들이지만 산업화가 막 물꼬를 트던 1960년대 후반으로서는 그야말로 소위 조국 근대화의 혁명적 상징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정부는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전력·수력·석탄·시멘트·수산·정유·비료·교통·통신 등)을 이미 성공적으로 마치고 2차 계획을 추진하고 있던 때였다. 제철과 고속도로, 기계공업이 주력 개발 분아였다. 공장과 도로, 그리고 자동차는 당시의 트렌드(Trend) 이자, 시대정신(Zeitgeist) 그 자체였다. 이 해(1968) 벽두에 박정희의 모가지를 따러 왔다는 말을 남긴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의 대남 도발, ‘1.21 사태가 벌어지면서 박정희는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말을 남겼다. 이는 곧 정부의 국시(國是)로 격상되었다. 북한의 도발에도 우리는 그것을 일일이 내치면서도 경제개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기였다. 그러나 이 시() 건설하는 아침에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 구절이다.

 

먼 훗날에 슬기로운 조상이었다고

우리 후손들이 이야기할 수 있게끔

위대한 조상이었다고 자랑할 수 있게끔

 

마지막 구절은 박정희가 건설하는 아침을 통해 시()라는 형식을 빌려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당대가 아닌 먼 훗날, 그리고 지금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 아닌 먼 미래의 후손, 그리고 조상으로 불릴 유보적인 단어 사용. 유달리 박정희는 재임 중 자신과 정부의 평가에 대해 민감해 했고, 이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따위의 발언과, 1967년 새해에 대통령이 메시지를 보내는 연두교시에도 드러난 바 있다.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

-1967년 대통령 연두교시에서-

 

박정희가 1967년의 연두교시에서 밝힌 것과 건설하는 아침말미의 종결을 놓고 보면 공통된 부분을 찾을 수 있으리라. 핵심 키워드는 후손, 조상, 후손의 생각. 박정희의 입장에서 후손은 지금 2017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일 것이라는 틀림없는 사실. 5~9대 대통령으로의 박정희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미래의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 박정희는 생전에 자신의 평가에 미래 유보적이었다. 당대의 평가는 스스로 차치(且置)하고 미래와 역사 앞에 평가를 받겠다는 강한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다시 생각해 본다. 1960~1970년대의 그들은 슬기로웠는가? 아니면 어리석었는가? 그들을 위대한 조상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는가? 그들은 소위 조국 근대화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할 수 있는가? 아니면 후손들에게 피해를 주었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각자 모두에게 돌린다. 한 가지 개인적인 생각을 첨가해 본다면 박정희가 말했듯이 그가 역사 앞에 평가받기 위해선 앞으로도 더 100, 200년이 지나야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

 

남들은 무심할 제 님은 나라 걱정했고

남들은 못 미친 생각 님은 능히 생각했소

거북선 만드신 뜻을 이어 받드옵니다.

거북선(pp.36~37)

 

또 한 가지 박정희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리라. 박정희는 일찍이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 이순신에 주목했다. 이 충무공의 유적을 일제히 성역화하고 일일이 챙기고 직접 방문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장군의 나라에 대한 결의와 고고한 충정을 교과서에 실으면서 조국’(대한민국)에 대한 의미를 교육과정에 넣었다. 또한 한국은행이 1962년에 발행한 10원 짜리 지폐와 1966년에 나온 500원 짜리 지폐의 뒷면에 거북선이 인쇄된 바 있다. 1970년에는 100원 짜리 동전에 이순신 장군의 초상이 채택된다. 최고 지도자의 의중이 반영된 것인지는 알지 못하나, 이윽고 1973년에는 500원 지폐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그리고 뒷면에는 장군의 사당(祠堂)인 현충사의 모습이 인쇄되었다. 그야말로 오롯이 이순신 장군에 대한 주제화(topicalization)로 점철된 이 지폐는 최초 발행으로부터 무려 20년 가까이 인쇄되었다. 이는 한국은행의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만큼 이순신 장군에 대한 민족적 존경은 의미있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는 이순신에 대한 존경심이 강했다. 그리고 장군의 전기(傳記)를 대대적으로 알리고, 성역화를 통한 오마쥬(hommage)를 내보임으로써 내적이든 외적이든 장군과 자신의 합치화(reconciliation), 동질화(homogeneity) 그리고 일종의 동병상련이라는 성정(性情)을 가졌으리라. 매년 장군의 탄신일에는 자신의 연례행사마냥 다례제에 참석해 현충사 본전에 분향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결과적으로는 참패했다해야 할, 영화배우 김진규 제작, 주연의 영화 성웅 이순신(1971)>에 박정희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국민적으로 관람 운동을 벌인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이순신의 우상화에 급급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한 1975년 월남 적화(赤化) 직후의 특별담화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말했던 필사즉생 필생즉사구절을 인용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순신 장군에 대한 헌사(獻詞)로 보일 시() 거북선은 박정희의 이순신 오마쥬가 잘 보여지는 예다. 남들은 무심하나 나 홀로 나라를 걱정하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장군은 능히 해낸 것에 대한 박정희 자신에 대한 감정 이입(Einfühlung)은 필연적인 것이리라. 북한의 노골적인 야욕과 도발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흔들림 없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 막중한 자리에서 그가 기댈 곳은 장군을 학습하고 따라하는 일이지 않았을까. 장군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현창(顕彰)한 현충사 친필 편액을 적폐로 몰아 떼어 내려는 시도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다.

 

박정희 시집에는 그의 일기 30편이 수록돼 있다. 30편의 일기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주로 정치적 이벤트(5.16, 유신, 월남패망), 북한, 그리고 군 출신 답게 국군관련 일기. 그리고 또 하나. 육영수. 박정희에 있어, 그리고 1974년 그 날 이후의 홀아비박정희에 있어 육영수는 어떤 존재였는가. 과연 전과 후가 같을 수 있는가. 홀로 맞는 은혼(銀婚)(pp.113) 이라는 일기는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는 삶의 후회를 비교적 담담히 써내려 간다.

 

“(중략) 남들은 은혼식 금혼식을 올리며, 일생의 반려로 자손들의 축복을 받으며 노후를 즐기는데 아내와 나와의 사이는 어찌 24년 밖에 시간을 주지 않았을까. (중략) 이제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아내와는 유()와 명()을 달리하게 되었으니 인생이란 과시(果是) 무상하도다.”

 

떠나기 석 달 전 아내의 소원(pp.136-137)은 어떠한가. 일부를 보이도록 한다.

 

"아내는 그것이 소원이었다. 그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그이는 갔다. 지금도 지방에 다니다가 나무 있고 바위 있는 아담한 산이 있으면 나는 유심히 그 산을 보게 된다. 그이가 저런 곳에서 살기를 원했는데 하고. 그러나 이제는 누구와 같이 그런 곳에 가서 조용히 살까. (중략) 대청마루에 돗자리 깔고 앉아서 달빛을 바라보는 시골의 풍경을 늘 그리워하였다. 그런 생활을 노후의 유일한 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이는 먼저 갔다.”

 

퇴임(退任)을 염두에 둔 미래는 결국 육영수 여사의 피격(被擊)으로 무산되다시피 하였다. 아니, 어쩌면 산산조각이 났다 해도 심한 말이 아니었을 것. 5년 남짓 뒤에는 자신도 10.26이라는 변()으로 퇴임하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悲鳴)에 갔다. 행복할 미래를 꿈꾸던 아내가 황망히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고, 이를 지켜보는 심정이란.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데 대한 박정희의 담담한 어조(語調)는 글로써 다하지 못할 슬픔의 감정을 담고 있다. 슬픔의 정제된 표현 사용(‘그러나 이제는 누구와 같이 그런 곳에 가서 조용히 살까’, ‘그러나 그이는 먼저 갔다)으로 절제된 감정을 본다. 아들의 육사 가() 입교를 위해 태릉의 화랑대에 내려주고 돌아온 박정희는 청와대에 걸어놓던 육영수의 영정 앞에서 아들의 앞날을 잘 돌봐줄 것을 고한다. 이 장면에서 노국대장공주를 떠나보낸 후 그 영정 앞에 살던 고려 조() 공민대왕이 떠오르는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박정희의 일기대로라면 그는 가히 세기의 로맨티스트일 것. 그러나 항간에는 마치 정설처럼 박정희와 육영수는 하루가 멀도록 치고 박고 싸워 육영수와 박정희가 싸우는 걸 육박전이라 한다는 허무맹랑한 야담(野談)도 전해지는 사실. ‘육박전이라는 다소 과격한 단어에 최고 권력자 내외의 성을 딴 조크(Joke)에 불과한 사사로운 철지난 개그가 반대 진영이나 반대론자의 입을 타고 마치 그것이 사실인 양 정설처럼 여겨진 것처럼 보인다. 육영수의 행동거지와 성품으로 보건대, 덜했으면 덜했지 먼저 나서길 좋아하는 타입은 못 되었다.

 

박정희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5.1610월 유신. 그의 숙명(宿命)이자 굴레. 하나 더 말하자면 10.26의 변(). 5.16에 대해 말해고자 한다. 1976년의 일기5.16혁명 15주년(pp.121~123)에서 박정희는 아래와 같이 써 내려갔다.

 

“15년 전 새벽, 이 나라의 젊은 군인들이 기울어 가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들고 궐기했다. 오늘 새벽 동이 틀 무렵 전차부대를 선두로 하는 1진의 혁명군 부대가 결사의 각오를 굳게 간직한 채 새벽바람 찬 이슬을 마시며 숙연히 한강대교를 도강(渡江)했다. 고요히 잠든 수도 서울은 역사의 새로운 장이 바뀌는 이 순간까지 적막 속에 초여름의 피곤한 잠을 이루고 있다가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략)”

 

수록된 30편의 일기 중에서 5.16에 대한 감상은 15년이 흐른 1976년의 일기 한 편이 전부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5.16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간극(間隙)은 마치 어떠한 정치논리와 정치진영간의 이념에 대한 리트머스시험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지난날 일본의 막부(幕府) 시절, 기독교를 탄압키 위해 기독교도를 가려내기 위한 방편으로 예수 십자가상을 새긴 판때기를 발로 밝고 지나가게 하는 것. 5.16을 앞에 두고 혁명이냐 쿠데타냐를 가림으로 하여 니편 내편 규정 짓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슬픈 사건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5.16의 인식이 장관 청문회서 필수적 통과의례가 된 지금, 지하에 있는 박정희의 한 마디가 궁금하다. 한 때 혁명쿠데타사이의 이른바 완충지대역할을 두기 위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성 고려의 결과로 군사정변이라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5.16이 혁명인지 쿠데타인지에 대한 규정짓기는 우리 세대의 지상과제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고, 그리고 그 논쟁에 참가하거나 관여한 모든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새로운 세대가  메우면서 자연스레 평가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적 민주주의(pp.125)라는 일기에서는 박정희가 생각한 코리안 스타일의 민주주의에 대해 짧은 언급이 있다. 학생혁명으로 군정(軍政)이 종식되고 민정이 들어섰으나, 그마저도 무혈 군사 쿠데타로 인해 도로 군정으로 돌아간 태국의 사례를 먼저 제시하면서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불신(不信)을 있는 그대로 보이고 있다. 그리고는 공산주의의 위협이 있는 나라에서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신념을 강하게 피력(披瀝)하고 있다. 유신체제를 위시하는 이른바 한국적 민주주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학생들에게 교련(敎鍊)을 지도하는 강력한 군대국가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권탄압을 통한 강력한 경찰국가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최고 권력자의 영구집권인가. 유신을 놓고 말이 많아지자 박정희는 유신 3년차 되던 1975년에 자신의 재신임 여부와 유신의 찬반(贊反)을 묻는 국민투표라는 도박을 하게 된다. 투표율 79.8%에 찬성 74.4%는 무엇을 말하는가. 절대 부정 엄단과 말단 과잉 충성분자의 비위(非違)를 우려하는 모습은 냉혈한으로 비춰지던 박정희의 이미지에 어떤 색채가 덧 입혀지는가. 국민투표의 결과가 나오던 그날, 박정희는 ()은 또다시 무거운 책임을 맡기셨다고 일기에 썼다. 이윽고 10월 유신이 4년차로 접어들던 19761017일의 일기.

 

“(중략) 그 원인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대 자각과 단결과 땀 흘려 일한 노력의 대가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이 건설과 성장의 결과는 값진 것이고 보람 있는 것이다. 하늘은 한 민족이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 개척하겠다는 결의와 노력을 경주할 때는 반드시 거기에 응분한 보상을 준다는 것으로 우리는 믿어야 한다. (중략) 10월 유신은 구국의 결단이었다. 우리 국민 전체의 결단이었다. 새 역사의 출범이었다. 근면·자조·협동하는 데에서 새 역사가 하루하루 창조되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단해서는 안 된다. 계속해야 한다. 밝은 내일은 반드시 도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이 일기로 10월 유신의 당위성을 말하고 있는 박정희. 유신은 구국(救國)의 결단이라 비장하게 말하고 있는 박정희. 국민 모두의 결과라고 평가를 돌린 박정희. 멈추지 말고 밝은 내일, ‘약속의내일로 가야만 한다는 박정희.

 

1979년 박정희의 급작스런 서거로 유신헌법에 의거 대통령 유고 시 국무총리의 권한대행, 이후 제10대 대통령으로 최규하 총리가 취임하였다. 그러나 전두환이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제5공화국이 출범하여 사실상 1980, 유신은 종언(終焉)을 고하게 된다. 10월 유신, 100억불 수출, 1000불 국민소득의 기치를 내건 유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앞서 말한 5.16과 비견되는 쟁점의 화두인 것. 시작과 끝. 대한민국 역사상 시작과 끝이 이토록 극명한 적이 있을까. 남북한의 체재대결은 오늘날 보건대 압도적인 대한민국의 승리다. 1974,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561달러로 535달러인 북한을 앞서기 시작하면서 유신 말기에는 1,641달러(1979)5년 새 3배로 커졌다. 분명한 사실은 박정희 자신도 말했듯이 그 혼자 경제를 키운 것은 아니나, 국민경제를 위해 살다 간 인물로 남을 수 없을까. 어떤 이는 박정희를 두고 지독한 악당보다도 못하다고 하며 어떤 이는 영웅이라고 한다. 박정희가 태어난 지 100년이 넘었고, 유명을 달리한지 38년이 지났음에도 대한민국에서 박정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느 집합과 집합이 만나는 교집합을 박정희에게선 찾아볼 수 없다. 극명한 모 아니면 도인 셈. 그 간극이 점차 교집합으로 움직여 공통되는 합점이 생기려거든 미래 100년도 요원할 것. 박정희의 마지막 일기는 19791017, 유신 7. 서거 아흐레 전의 일이었다. 아흘 뒤 펼쳐질 자신의 신변을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마지막을 알았던 걸까. 역사가 나를 평가하라(pp.164)는 일기로 끝이 난다.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대해 심히 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의 마지막 일기를 보임으로 이 글의 끝을 맺으려 한다.

 

19791017

 

7년 전을 회고하니 감회가 깊으나 지나간 7년간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일부 반체제 인사들은 현 체제에 대하

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사가(史家)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

 

 

(2017.11.21)

 

 

v*****0 2017.12.1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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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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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예스 24 온라인 서점을 통해 구매한 박정희 시집이라는 책에서 그가 지은 시들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나라에 대한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책이었다.전쟁 후 폐허가 된 나라, 어느 누구도 지금처럼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그런 나라를 강단있게 이끌어간 국가와 그 가운데에는 국가에 묵묵히 희생하며 발전에 일조한 국민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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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예스 24 온라인 서점을 통해 구매한 박정희 시집이라는 책에서 그가 지은 시들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나라에 대한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책이었다.
전쟁 후 폐허가 된 나라, 어느 누구도 지금처럼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그런 나라를 강단있게 이끌어간 국가와 그 가운데에는 국가에 묵묵히 희생하며 발전에 일조한 국민들이 있을 것이다.
h****i 2023.08.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