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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에서 택시 잡아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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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에 갔다.    길안이 아름다워 나는 울었다.    길안에 어둠이 내렸다.    길안에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길안 바깥에서 나는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생각을 한다.    길안이 불편해진다.    길안이 내 모든 약속을 퍼지르고 앉았다.    길안이 불안하다.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독일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프 코흐의 '무(無) 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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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안에 갔다.

   길안이 아름다워 나는 울었다.

   길안에 어둠이 내렸다.

   길안에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길안 바깥에서 나는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생각을 한다.

   길안이 불편해진다.

   길안이 내 모든 약속을 퍼지르고 앉았다.

   길안이 불안하다.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독일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프 코흐의 '무(無) 디지털 환경 체험기(記)'라 할 수 있는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를 읽었을 때 불현듯 장정일의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란 시가 생각났다. 사실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란 시는 시인이 어떻게 하나의 시를 만들어가는지 그 과정을 그대로 담은 시이지만 그 밑바탕에 흐르는 것 중 하나는 테크놀로지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오히려 테크놀로지에 더욱 종속되어있음을 확인할 뿐인 그런 현대적 삶이 가지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10분에 세 번 꼴로 울리는 시끄러운 휴대전화 벨소리를 향해 '좀 조용하라'며 짜증을 내면서도, 하루 종일 울리지 않으면 점점 불안해 한다. "오늘은 정말 조용하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그러고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반문해본다.(p.17)  

 

 이런 것과 같다. 그래서일까 내게 모든 디지털 환경으로 부터 벗어나 아날로그로만 살아보려하는 이 책의 작가이자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코흐는 정말 그 '길안'에 다다른 여행자로 보였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휴대폰 소리. 24시간 시도 때도 없이 확인해야 하는 대량의 메일들.

 

 세계적으로 매일 약 2억 5천 통의 이메일이 발송되는데 이는 1초당 3백만 통에 달한다. 그중 사람들이 절대로 원하지 않는 스팸메일의 양은 놀랍게도 전체의 90내지 97퍼센트에 달한다. 그러니 전자우편함을 가득 채우는 메일 중에서 정말 의미있고 진정한 의사 소통 수단으로써의 이메일은 거의 없단 뜻이다. 하루에 50통의 진짜 이메일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메일을 약 1000통 가까이 걸러내야 한다.(p. 156)

 

 조금만 인터넷이 안되어도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마음 등등. 그렇게 어느날 자신이 디지털 환경에 얼마나 강하게 속박되어 있는지 깨달은 우리의 주인공 코흐씨는 그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롭고 싶어서 인터넷과 스마트 폰등 일체의 디지털 환경과 결별하고 40일간 아날로그로 살 것을 결심한다. '홀가분한 아름다움'이 있는 길안으로 떠나기를 작정한 것이다. 하지만 쉬운가? 속박은 중독에서 비롯되는 효과이며 중독은 늘 자신의 바람과 의지를 넘어서기에 무서운 것이 아니던가.

 

 "사람들은 누구나 뭔가에 중독되고 싶어 합니다." 안케 크박씨가 설명했다. "그런 때는 아주 철저하게 다 채우려고 하죠. 없는 것이 없도록 말이에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한 남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근느 밤새도록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들을 검색하고 저장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어요. 자신이 도저히 다 읽을 수도 없는 분량을 말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스스로 자제하기란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답니다.(p.198)

 

 안케 크박씨가 말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별 특별할 것도 없게 다가오는 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중독되었음을 모르는 건 중독 자체가 자각증상이 없거나 아주 뒤늦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코흐씨 처럼. 당연히 그도 중독되어있음을 느꼈고 그래서 그 역시 금단현상을 겪는다. 금단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의지 뿐이다. 그리고 그 의지가 제대로 중독에 맞서 싸우려면 굳건한 신념이 필요하다. 그런데 굳건한 신념이란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느낄 때 나타난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결심한 것이 옳은지 찾아 나선다. 이것은 일종의 구도의 여정과도 같다. 왜냐하면 그 여정중에 그는 많은 이들의 말을 듣고 다양한 이론들을 접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이 변화시킨 인간의 삶과 아날로적 삶의 가치를 희구하는 여러 갈래들의 사유의 선들을 그는 자신의 직접 체험과 버무려 이 책에다 결혼식 뷔페처럼 늘어놓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길안에서 택시가 잡히지 않아서 불안해진 마음을 과연 그 불안을 가진다는 게 옳은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그래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그런 여정의 기록인 것이다. 무엇보다 다큐멘터리 같이 생생한 개인의 체험과 육성을 그대로 녹여두고 있다는 게 눈에 띈다. 아마도 그가 이렇게 개인적인 체험을 온전히 담은 이유는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첫째는 디지털 환경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은 실로 두렵고 어려운 일 같지만 작정하고 덤비면 그것이 가진 인력의 크기가 결코 크지 않다는 것을 독자로 하여금 깨닫기 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그렇다고  독자에게 당신도 '길안에 머물러라!'라고 강요하지 않기 위해서다. 생생한 개인의 체험담은 마치 고백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백은 이런 작용을 한다. 그것이 너무도 개인적인 체험이기에 듣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자기라면 어땠을까 하는 걸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즉 고백은 자신의 모습을 되비추는 하나의 거울이 된다. 바로 이것이 그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책에다 녹여둔 이유이다. 그 생생한 자신의 구도 여정을 통해 독자 나름대로 디지털과 아날로그 삶에 대한 해답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최근에 이런 경향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업무에 불필요한 가중을 가져다주는 디지털 환경을 절제하기 위해 나온 '디지털 단식'이라는 책도 있었고 디지털 환경 아래서 변하는 인간과 인간 관계에 맞춰 전방위적인 이론들로 체계적으로 접근한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디지털 환경이 속도를 부채질하는 자본주의의 특유한 상황의 결과물임을 밝혀 대안에 있어 개인적인 측면과 체제적인 측면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살펴보는 '슬로우'라는 책도 있었다. 책이란 것도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에 이렇게 비슷한 경향을 가진 책들이 일련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은 거꾸로 그 사회가 가진 하나의 징후를 드러낸다. 즉 과도한 디지털 환경이 가져다 주는 폐해가 사람들 스스로 우려할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징후이다. 한번쯤 스스로 저자 코흐씨와 비슷하게 너무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 분들이라면 이 책은 그런 스스로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 되어줄 것 같다. 물론 그 거울이 들려주는 대답은 다들 제 각각이겠지만. 그래도 이 책에 담겨진 풍부한 이야기들은 충분히 벗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더하여 이 쪽으로 좀 더 이론적인 부분을 찾고자 한다면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을 추천드린다.

 

 

 



l****1 2012.07.15. 신고 공감 4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평소 습관조절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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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인간처럼 미련한 동물은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적어도 인간이 아닌 다른 종(그래봐야 동물 아니면 식물이 되겠지만)들이 보면 쟤들은 왜 저렇게 살까? 의문을 갖거나 비아냥 거릴 수 있을 것 같다. 기껏 인간 편하자고 만든 문명의 이기가 그것의 노예가 되어버리고마니 말이다. 그들이 볼 때 인간은 뭐 하나 자연에 순응해서 살아갈 줄 모른다고 썩소를 날려 줄 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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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인간처럼 미련한 동물은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적어도 인간이 아닌 다른 종(그래봐야 동물 아니면 식물이 되겠지만)들이 보면 쟤들은 왜 저렇게 살까? 의문을 갖거나 비아냥 거릴 수 있을 것 같다. 기껏 인간 편하자고 만든 문명의 이기가 그것의 노예가 되어버리고마니 말이다. 그들이 볼 때 인간은 뭐 하나 자연에 순응해서 살아갈 줄 모른다고 썩소를 날려 줄 것만 같다. 꼭 들쑤시고, 파헤치며, 어떻게든지 자기네들 편의에 맞게 만들어놔야 직성이 풀리는 종족이 아니던가 인간은! 

그나마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주는 것에 대한 후유증 내지는 반작용으로 문명을 거꾸로 돌리는 운동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지만 동시에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에겐 이 책이 그런 느낌을 갖게 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결코 어둡지 않으며 나름 위트와 유머가 곳곳에 베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하는 묘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편지 한 통 받아 보는데 3,4일이 걸리기도 했다. 그땐 그렇게 걸리는 것이 당연했으므로 누구 하나 불만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우린 언제부턴가 이메일이 사용하게 되면서 실시간으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사용하게 되면서 정말 정감있는 편지는 주고 받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어쩌다 장애가 발생하면 그것을 복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못 참아 한다. 한마디로 인터넷은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도록 한다.

 

한때 나는 꽤나 오랫동안 유선 전화기에 대한 신기함과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 없었을 때를 감히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이것없이 어떻게 그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개인 전화기는 물론이고, 개인 컴퓨터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다. 앞으로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집이 얼마나 될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나의 디지털 세상을 본격적으로 열게 된 것은 블로그를 사용하면서부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보다 몇년 앞서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땐 전화 통화나 하고 문자 몇통 받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내가 얼마나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별 실감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블로그가 주는 즐거움, 중독성은 확실히 사람을 잠식시키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처음 이것을 사용할 때만해도 나는 결코 이런 것에는 중독이 안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 컴퓨터가 먹통이 되는 때가 있는데 그러다 다시 온라인과 연결이 되어 사용이 가능해졌을 때의 그 희열과 안도감이란 정말 한동안 숨을 못 쉬다 다시 산소를 공급 받는 기분과 맘먹지 않았을까? 이쯤되면 심하진 않아도 중독이 아니라고는 말 못할 것 같다. 더 이상 블로그에 확인할 댓글도 없고, 읽을만한 글도 없으며, 올릴 글이 없을지라도 항상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그 때문에 집중력도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다소 그 행위에서 멀어진 느낌이긴 하지만 역시 완전히 벗어낫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난 이 책의 저자 같이 온라인이 없으면 업무 자체를 볼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은 아니기에 저자가 얼마나 독한 마음을 품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 오프라인에서 40일 간 지낼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가 없다. 솔직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적당히 쓰면 약이 되지만 지나치게 쓰면 독이되는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인터넷이나 디지털도 그런 것이 아닐까?

중요한 건, 이미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를 이제와서 안 쓴다는 건 좀 어려울 것 같다. 대신 좋은 방향으로 써야겠지. 편하자고 만든 인터넷을 중독이 되어 치료와 예방 센터를 전전하는 것을 보면 분명 서글픈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전하는 것에 이것처럼 유용한 도구는 또 없을지 모른다. 혹시 살다가 알게 모르게 남에게 미안한 짓을 저지르고 직접 대면해서 말할 수 없을 때 휴대폰 문자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반대로 고마움도 마찬가지겠다. 예전엔 꼭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닿아야 만나질 수 있는 사람을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그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든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고 사귈 수 있다. 또한 이전 보다 훨씬 빠르게 같은 취미,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그만큼 뭉치기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땐 익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테러를 당할 확률은 훨씬 높아졌다. 가상 공간에서 테러를 당하고 느끼는 스트레스 수준이 실제 현실에서의 스트레스 수준 보다 훨씬 높을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자살할 확률도 높어지지 않았는가. 

 

나는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만족하지는 못했다. 이런 체험 프로그램은 많다. '~~없이 살아보기' 프로그램 말이다. 요즘 프랑스나 미국에서는 구석기 시대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몰이 중에 있다고 한다. 일상이 무료해지면 그런 모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남이 안하는 일을 해 봤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무시 못하는 것일테니까.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다이어트에서 요요현상을 피해갈 수 없는 것처럼 당분간은 그것을 체험했을 때의 기분을 유지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방 옛날로 돌아가지 않을까? 아예 새로운 것에 나를 적응시키지 않는다면 말이다. 

중요한 건 인터넷을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사용하되 좀 더 지혜롭게 사용하자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이 책은 쓰여졌을 거라고 본다. 실제로 이 책 말미엔 그런 것들이 나름 일목요연하게 나와있긴 하다. 하지만 이대로 지켜질 수 있을런지는 좀 의문이긴 하다. 참고는 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사 보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겠지만 평소 습관조절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린 때때로 필요이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이것을 사용 안해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면 이것을 사용 안할 때 나는 무엇을 해 볼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계획하고, 개발시켜 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m****9 2012.07.02.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휘둘리는 것과 활용하는 것, 그 절묘한 간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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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로 살아보자! 라는 운동이 최근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개인적으로도 얼마 전, IPTV를 뒤적이다가,  달콤한 로그아웃, 아날로그 날다 라는 SBS의 방송을 관심 있게 본 적 있습니다. 너무도 깊숙하게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버린 인터넷. 특히 최근 엄청난 속도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그 혁명적인 편리함에 익숙해져버린 우리들이지만, 그 부작용이 상당하다는 것도 무시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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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로 살아보자! 라는 운동이 최근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개인적으로도 얼마 전, IPTV를 뒤적이다가,  달콤한 로그아웃, 아날로그 날다 라는 SBS의 방송을 관심 있게 본 적 있습니다. 너무도 깊숙하게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버린 인터넷. 특히 최근 엄청난 속도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그 혁명적인 편리함에 익숙해져버린 우리들이지만, 그 부작용이 상당하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몇몇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를 실험하는 그런 방송인데요, 구미가 당기는 분들은 한 번쯤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운동은 비단 국내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기 마련이니까요.
이 책,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는 멀리, 독일에서 유력 일간지와 잡지사 등에 인기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토프 코흐 라는 작가가 쓴 또 한 번의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실험에 대한 체험기인 셈입니다. 
그것도 꽤 잘 쓴.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아날로그'로 돌아가보려는 실험을 자꾸 하는 것일까요?
사실 앞서 언급했던 SBS의 다큐나 이 책의 소재가 된 이 '아날로그'에 대한 실험은 그리 독특한 주제는 아닙니다. 상당히 빈번히 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도 최근의 기술 혁신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또 잘 활용하고 있구요.
무언가 알고 싶을 때, 그저 스마트폰의 '검색'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편리한 사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가볍게 통화 버튼이나 SNS 혹은 카카오톡같은 메시지 어플로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그런 편리함 말입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그런 기술 혁신을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만끽하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동전에는 앞면과 뒷면이 있습니다.
책의 저자는 '인터넷이 우리에게 시간을 절약해주는 것처럼 느끼지만, 절약을 해주는 시간만큼을 다시 빼앗아간다'라고 충고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참 맞는 말입니다. 
1~2분의 통화로 해결될 문제를 수십번의 메시지로 해결한다거나, '송파구 맛집'을 찾으러 들어갔다가 관심조차 없었던 한 연예인의 결혼 소식까지 보고 나오는 경우, 원치 않게 쌓여가는 엄청난 스팸 메일을 정리하느라 보내는 시간....  생각해보면 끝이 없습니다.

저자는 이사를 하면서 끊어진 인터넷 서비스의 이전이 예상치 않게 늦어지면서 패닉 상태에 빠져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디지털'에 대한 욕구(라고 쓰고 중독이라고 읽던가요?)'에 놀라며, 40일간의 아날로그 라이프를 꿈꿔봅니다. 그리고 과감히 여자친구에게 선언하고 시작하게 되지요. 스마트폰에 인터넷까지.

그렇게 시작된 체험기는 처절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보낸 메일은 물론이고 스마트폰까지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주위 사람들과의 연락이나 일에 큰 고통을 겪게 되지요. 당연히도 그럴 것이, 이미 메일과 스마트폰이 사회적인 도구로 일반화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로 인한 불편함을 이해해주기란 쉽지 않은 것이니까요.

하지만 좌충우돌, 참 힘들게 아날로그의 삶을 지켜나가면서 과거에 갖고 있던, 하지만 잊어버리고 살던 것들을 새삼스럽게 얻게 됩니다. 연락 없이 찾아간 친구의 집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라든지 또는 '마음까지 편안한 주말의 휴식' 같은 것 말입니다.

에필로그 부분에 담겨있는 저자의 체험이 담긴 '조언'.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디지털'의 삶 속에서 한 번 생각해볼 거리가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40일간의 아날로그 라이프를 '견뎌낸 뒤' 다시 저자는 '디지털' 삶 속으로 복귀합니다. 분명 40일간의 아날로그 속에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겠지만, 사실상 그렇게만 산다면 '고립'일 테니까요(물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아미시 사람들 같은 분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선택의 문제겠지요).
그리고 다시 '컴백'을 하긴 했지만, 아날로그를 겪었기에 달라진 자신만의 몇 가지 원칙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저금 더 충실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반적인 책은 꽤 재미있습니다. 황당한 도전답게 여러 문제들도 발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들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을 뿐 아니라, 기자답게 마크 주커버그나 클레이 셔키와 같은 IT 관련 지성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해서 책 전반에 이런 디지털 인터넷 문화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을 채워나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흠, 과연 나라면 이런 '아날로그 체험'을 하고 싶을까... 라고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용기는 나지 않습니다.
우선 사회적 합의라는 부분에서 이미 아날로그로 살아가기에는 '업무'나 '사회'라는 면에서 너무 큰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니까요. 특히 국내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저자의 생각에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론은 심플합니다.
'휘둘리느냐' '활용하느냐'의 사이지요.
과연 나는 저 둘 중 어느 쪽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드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r***o 2012.03.0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날로그적 삶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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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사는 30대 중반의 한 저널리스트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 생활한 40일간의 기록을 책으로 엮어냈다.  이른 바 '~없이 살아보기' 체험은비교적 쉽게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책이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기에도 적절한 아이템이다. (다소 식상한 감도 없지않다)그래도 꽤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없이 생활한다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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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사는 30대 중반의 한 저널리스트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 생활한 40일간의 기록을 책으로 엮어냈다.  

이른 바 '~없이 살아보기' 체험은
비교적 쉽게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책이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기에도 적절한 아이템이다.
(다소 식상한 감도 없지않다)

그래도 꽤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없이 생활한다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저자의 일일 기록을 따라가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된다.

매번 친구와의 약속시간과 장소에 먼저 가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을 방문하거나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 무작정 헤매야하며,
영화나 공연 등 여가를 위한 정보를 찾기 위해 직접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야하고,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간단한 통계를 적어내기 위해 암산을 해야하며,
오랜만에 연락을 하려던 친구의 번호를 찾아 케케묵은 전화번호부를 찾아야 하고,
여행의 목적지 확인을 위해 학창시절 지리과부도를 꺼내야하는 등등의
온갖 사소하지만 매우 귀찮고 불편하고 번잡스럽고 비효율적인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얻는 것도 많다.
'언제 밥 한번 먹자'며 본의아니게 차일피일 만남을 미루던 소중한 사람들-
친구, 가족, 동료 등과 직접 만나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하고
조용히 혼자 사색하는 시간 등 잊고 지냈던 아날로그적 가치를 재확인하게 된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다양한 취재원과 각종 통계자료 및 연구자료들은
저자의 '주관적' 실험에 객관성과 시사점을 더해준다.
읽다보면 유럽 사람들의 시각-미국과는 조금 다른-을 느낄 수 있다. 

40일간의 실험을 무사히 마친 후에도
저자는 일주일에 하루, 오프데이를 정해서 자신만의 원칙들을 계속 지켜나간다.  
적어도 그 날 만큼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구속에서 벗어나
아날로그적인 자유를 만끽하자는 의도다. 
그러나 '특별한 상황'이 닥치면 언제든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이 전제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과거로의 무조건적인 회귀나 예찬이 능사는 아니다. 
불편함을 억지로 감수해야 한다면, 그 인내심에는 곧 한계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자신만의 룰을 정하고 실천하되, 어느정도의 융통성은 필요하지 않을까.  

책을 다 읽고나니,
기계문명의 편리함과 효율성을 아무런 필터없이 흡수하고 있는 내 일상에도
몇 가지 원칙을 세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너무 엄격하지는 않게. 

PS. 
앞표지에 실린 저자 크리스토프 코흐의 사진,
어딘가모르게 제랄드 버틀러를 연상시킨다.
(덥수룩한 수염 때문인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s******c 2011.09.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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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좋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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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사람들을 유혹한지 꽤 되었다. 디지털 기계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무시받아도 변명할 수 없는 시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 늘 따라붙는 말, 디지털 인간. 그래, 과학기술의 총집합이라고 하니 잘 쓴다면 분명히 좋기는 할 것이다. 빠르고 편리하고.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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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사람들을 유혹한지 꽤 되었다. 디지털 기계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무시받아도 변명할 수 없는 시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 늘 따라붙는 말, 디지털 인간. 그래, 과학기술의 총집합이라고 하니 잘 쓴다면 분명히 좋기는 할 것이다. 빠르고 편리하고.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 다 알고 있으면서 디지털은 디지털대로 아날로그는 아날로그대로 필요한 영역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디지털 쪽으로 몰리곤 한다. 그쪽으로 가지 않으면 마치 이 세상에 낙오되어 버리고 마는 것처럼 당황스러워 하면서.

 

내가 지금부터 며칠 동안 디지털과 이별을 하라는 과제를 제시받는다면, 음, 나는 작가만큼 힘들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개인적인 일로 두 차례 경험해 본 적도 있고, 해 보니 별로 힘들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간을 다투면서 꼭 알아야 할 일이, 꼭 연락해야 할 일이, 생각만큼 많지 않았던 탓이다. 아니,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아무 일이 없었다. 최소한 10일 정도는.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디지털이라는 기술로 인해, 빠르고 편리할 것이라는 겉치레에 속아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러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더 많이 놓치고 더 많이 소홀하게 대하고 더 많이 잃고 있는 것은 아닐지.

 

청소년 추천도서라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거의 디지털에 홀랑 빠져들어버린 이 시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아날로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 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대신에 손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여 보내자고 하면, 즐거워할까? 이 문제는 더 생각해 볼 일이다. 

 

81

인간의 자존감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과의 밀접한 인간관계에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웃과의 친절한 대화나 청소년들이 밸런타인으로 맺어진 친한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일처럼 사소한 순간 말이다. 단적으로 말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본능적으로 소통을 갈구하는 존재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도무지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순간을 넘기는 비법 역시, 혼자서 조용히 있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만약 다른 사람과 교류가 적거나 전혀 교류할 일이 없는 경우, 인간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며 우울증에 빠지는 것이다.

 

100-101

“훌륭한 작가는 3퍼센트의 재능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97퍼센트는 인터넷에 휘둘리지 않는 능력이다.” -사이러스 파리바르

 

104

휴식은 (프루스트의 마들렌이나 무릎 사이에서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아이디어처럼)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하거나, 새로운 해답을 찾거나, 해결책을 내어놓아야 한다면 정말로 필요하다. 더욱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어느 시점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한다. 휴식을 하고 싶어도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휴식이란 꼭 특별하게 시간을 내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9

“우리는 빠른 템포와 느린 템포를 자유로이 바꿔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멀리 내다보면 둘 중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종종 재촉 당하며 여유 없이 바쁘게 지내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한편으로 가끔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강요할 필요가 있으며, 그에 따른 지루함도 극복해야 합니다. 만약 지루한 걸 견디기 힘들어 가끔씩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주는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흥에 겨운 순간조차 더는 즐길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로버트 레빈

 

133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은 이러한 사회자본을 서로 다른 두 개의 개념으로 분리했다. 하나는 이른바 ‘결합자본’이고 다른 하나는 ‘연결자본’이다. 연결자본이란 얼마나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돼 있는지, 그러니까 그 연결고리에 어떤 다양한 계층과 영역의 사람들이 속해 있는지, 그래서 소위 우리의 ‘인맥’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 결합자본이란 강한 유대감이 관건이다. 얼마나 그 관계의 믿음이 확고한지 그리고 서로에 대한 평판은 좋은지 즉, 어쩌면 자신의 친구 목록에서 ‘진정한 친구’를 과연 몇 명이나 열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연결자본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 묻는 것과 같고, 결합자본이란 그들 중에서 당신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냐고 묻는 것이다.

 

143

“어떤 사람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겠지만, 행동양식은 조금씩 변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에게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향을 끼칠 수 있다.”

 

175-176

언제부터 우리는 즐겨 포장하는 문화를 갖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이 컴퓨터 앞에 앉아, 예를 들어 구글 검색창에 무엇인가 입력하는 순간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글이었다. 중요한 것은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예너 보텐슈토프가 ‘행복의 호르몬’이라 명명한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사람은 안정을 찾고 기쁨을 느낀다는 것.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은 바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검색은 인간의 뇌를 자극한다고, 심리학 교수 제임스 올드는 1954년에 이미 확신했다. 스탠포드의 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 브라이언 크넛슨은 한술 더 떠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사실은 결과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설렘은 최상의 기쁨’이며, 동시에 선물을 포장할 때 이미 기쁨이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주는 즐거움을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 우리는 종이로 선물을 정성스레 포장하는 것이고, 그로써 설렘과 놀라움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178

“정리하자면, 무엇인가를 찾는 것과 생존에 대한 강한 호기심은 모든 포유류들이 먹이를 구하거나 안정된 영역을 확보하거나 번식을 위한 짝짓기와 사회활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만일 육체적 욕구가 멈춘다면 이러한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발견하고 지식을 찾는 시스템은 멈추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기쁨은 그에 해당하는 두뇌기능에 의해 충족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인터넷 서핑이 그렇게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상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욕구이기 때문이지요.” -펭크셉 교수

 

188-189

“여전히도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란 점입니다.”라고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교우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분절되지만, 가족은 장기적인 의사소통을 이어가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대가족의 일원인 사람은 적은 수의 친구와 사귀는데, 왜냐하면 가족이 150명분의 좌석 중 일정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일 거예요. 재미있는 것은 가족구성원은 결코 새로 맺은 교우관계에 의해 절대로 침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YES마니아 : 로얄 j***6 2012.10.20. 신고 공감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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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도전,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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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맞으면 온라인 세계로 접속한다. SNS와 이메일을 확인하고 지난 밤 새로 올라온 기사의 제목을 훑어본다. 업무시간 내내 그 세계에 머무는 것은 당연, 하루가 흘러가며 떨어뜨리는 모든 틈새시간―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신호 대기 중에, 화장실 좁은 네모 칸 안에서, 일하는 척 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놓칠 수 없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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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맞으면 온라인 세계로 접속한다. SNS와 이메일을 확인하고 지난 밤 새로 올라온 기사의 제목을 훑어본다. 업무시간 내내 그 세계에 머무는 것은 당연, 하루가 흘러가며 떨어뜨리는 모든 틈새시간―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신호 대기 중에, 화장실 좁은 네모 칸 안에서, 일하는 척 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놓칠 수 없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호한 경계를 수없이 드나들었던 하루의 마무리는 SNS와 이메일과 기사들과 동영상과 쇼핑 찬스를 훑는 것으로. 몇 시간 후 아침, 다시 반복할 그 모습으로.

지구의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패턴일 터. 누구 못지않게 열렬한 충성으로 온라인의 매일을 살아가던 독일의 프리랜서 기자 크리스토프 코흐가 패턴탈출을 선택한다. 스마트폰이 아닌 유선전화로, 이메일이 아닌 우편으로, 인터넷 검색이 아닌 도서관 서책 열람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일상을 살아간다. 성공할 수 있을까?

생존 목표 한 달. 알코올 중독자를 능가하는 금단증상과 함께 막막한 아날로그 삶 시작. 스마트폰을 넣고 다니던 바지 주머니에서 유령진동이 느껴진다. 메시지와 이메일의 도착 알림음이 들린다. 통화하고 만나야 할 상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담긴 전화기가 필요하다. 절실히!

이런저런 우당탕탕 끝에 한 달 생존에 성공한 저자는 열흘을 이어 붙인다. 40일간의 도전소감을 들어보자.

“매일 인터넷 금단증상이 줄어들고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뭔가를 빼먹은 듯 허전한 느낌이 줄어들고 있다. (…) 원고를 쓸 때는 원고를 쓰고, 책을 읽을 때는 그저 책을 읽는다.”

“무모한 도전을 마친 후 많은 것들이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왔지만 그럼에도 계속 고집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켜고 한 무더기의 이메일을 체크하고 주요 기사를 읽고 여타의 광고메일들을 휴지통에 버리는 등의 일을 더 이상 안 하게 된 것이다. 그 대신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본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에 놓인 일들 중 반드시 오늘 해야만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아날로그 생존기를 읽으며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에 드나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단절되었던 인간관계가 이어지고 확장된 듯한 기분, 나의 일상에 대한 공감과 응원에서 충만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노라고 고백할 수밖에. 그러나 이내 그 가득했던 만족감을 놓아버렸다. SNS가 달라붙은 (내가 달라붙었던 것일지도) 일상에 피로감을 느꼈고, 자꾸만 따라붙는 ‘쓸데없는’ 이라는 형용사가 불편했다. 페르소나일 뿐이야, 그 세계로부터 걸어 나오던 나의 뒷모습은 무표정이었을 것이다.

크리스토프 코흐는 도전이 끝난 후에도 인터넷 안식일을 가져보려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인생을 좋은 일에만 사용해야 합니다.”

오프라인 경로로만 어렵게 만나야 했던 랍비의 이 한 마디를 그는 ‘하나의 정말 아름답고도 엄격한 규칙’이라고 풀이했었던가.

손가락에 얹어놓은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책을 읽고, 좋아하는 몇몇의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글씨를 스케쥴러에 적어 넣고, 볕이 좋은 날 아직 작은 커피나무 두 그루를 내놓는 일상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다. 어쩌면 ‘지켜’내고 싶다고 소망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지만.

옆자리 어여쁜 후배가 보내온 요즘말을 대략 짐작하며 그래도 나는 계속해 그렇게 살고 싶다고 소망한다.

m******6 2019.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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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로 살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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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는 일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해도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위해 내 영혼과 믿음, 그리고 내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즘 같은 미친 세상에서는 가족과 대화를 나누거나 자기 자신을 돌아볼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의무로만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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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는 일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해도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위해

내 영혼과 믿음, 그리고 내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즘 같은 미친 세상에서는 가족과 대화를 나누거나

자기 자신을 돌아볼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의무로만 여기지 말고

신이 주신 감사한 선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월요일에 크리스토프 코흐의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를 택배로 받고

오늘까지 해서 이 책을 마무리 지었다.

위의 밑줄이 이 책의 내용을 크게 정리해 주는 것 같다.

중간 장 쯤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 후반부에 저렇게 정리를 해 놓았다.

굵고 크게 인용한 건 나의 의도이다.

요즘 같은 미친 세상이란 말에 크게 공감한다.

가족과 대화 할 시간도 자신을 돌아 볼 시간도 주지 않는 미친 세상.

거기엔 무엇 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지대한(?) 역할이 컸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각자에게 다른 세상과 접속하게 만들어버렸다.

얼마 전 쿨한 남자 두 명과 와인을 마셨다.

핫한 이야기들로 왁자지껄 떠들다가도

두 남자는 잠깐의 공백만 생기면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렸다.

그 쿨한 남자 뿐 아니다.

나와 한 집에 사는 남자 또한 쉬는 날이면 인터넷을 붙잡고 살며

심지어 운전할 때도 스마트폰으로 이것 저것 한다.

급기야는 잠 자다가도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다.

나는 어떤가.

며칠 전 책에서도 등장했던 유령청각으로 인해

울리지도 않은 스마트폰으로 향하느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참...

이런 세상에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라니...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가끔씩 인터넷 없이 스마트폰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안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걸 실행하다니.

그것도 무려 40일이나.

처음 며칠의 시도들은 나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기에 공감했다.

그런데

10일이 흐르고 14일 흐르고 한 달이 흐르자

오!

정말!

훌륭해!

감탄사가 쏟아졌고

호기심이 마구마구 당겨졌다.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를 실행하면서

저자는 이에 관련된

여러 명의 관련자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한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인터뷰어는

미시건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켄트 베리지 교수였다.

나 또한 인터넷 검색을 꽤나 즐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인터넷 검색을 즐기는지에 대해

켄트 베리지 교수는

"우리의 도파민 시스템은 불행히도 만족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

컴퓨터 앞에 장시간 앉아 있는 사람은 점점 더 입맛을 자극하게 됩니다."

그렇다. 그렇다!

한 번 검색에 빠지면 본질도 망각한 채 계속 클릭질을 해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스키너를 끌어붙인다.

보상센터는 과부하로 인해 규칙적인 보상이 아니라 우연적이 보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연성은 클릭에 클릭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인터넷을 하다보면 정말이지 이 우연적인 보상 그리고 그 우연성은 클릭에 클릭짓을 멈추지 않게 한다.

그러다 보면 무의미한 시간들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내 존재는 없어지고 나는 다만 클릭에 클릭만 해대는 잉여인간이 되어간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나는 조금 위로를 받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이 저자이기도 했고 연구들에 의하면 여럿이구나하는 안도감.

그리고 이 책을 읽어가며

저자가 무려 40일이나

인터넷 없이 스마트폰 없이 살아내는 것 그것도

이전과는 다른 근사한(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해

흥분감을 느꼈다.

인터넷 없이도 스마트폰 없이도 살아지는구나.

그리고 더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구나...

저자가 그걸 해내고 말아서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결론에 이르러서 참 좋다.

우린 아날로그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더 없이 아름답게.

w********w 2012.06.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