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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상식에 기대어 보자면 진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진화에 있어서 유전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환경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스탠퍼드대 생명공학 교수인 폴. R 에얼릭이다. 그는 이미 전작, '인간의 본성들'에서 유전자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환경에 의해서도 진화가 이루어짐을 밝힌 적이 있다. 이번에 새로이 나온 같은 대학의 연구원으로 있는 아내와 같이 저술한 이 '진화의 종말'도 요지는 그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개체가 환경과 상호작용 하면서 진화한다는 이른바 '공진화'에 대해서는 그 뒷받침 되는 증거가 최신 연구 결과까지 포함하여 전작보다 더 넓어졌고 다루는 세계 역시도 '생태계' 전체로 더 확장되었으며 단순히 '환경의 영향 역시 크다'라는 식의 현상의 기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인식이 지금 맞이하고 있는 생태계 전체의 파국적 위기 앞에서 어떻게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나아갈 것인가 까지 말하고 있어 한 마디로 폴 R 에얼릭이 지금까지 해 온 작업의 이른바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제목인 '진화의 종말'은 우리나라에서 붙인 제목으로 여기에서의 '종말'이란 내 생각이지만 헤겔이 말했던 그런 '종말'인 듯 보인다. 그러니까 결국 역사가 최종 완성형에 이르렀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종말인 것이다. 원제는 'THE DOMINANT ANIMAL'이다. 즉 '인간'에 이르러 진화는 하나의 극점에 도달했다는 의미인데 하지만 이것은 그리 낙관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에얼릭이 굳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인간이 단순히 헤겔식으로 하나의 완성형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에게 진화의 극점이자 지구의 '지배자'로서의 지위에 걸맞는 생태계 전체의 보호를 위하여 져야할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진화의 종말'이 쓰여진 진짜 이유는 점점 심화되는 위기로 빠져드는 생태계 전체를 위하여 다시 한 번 인류의 관심과 책임을 고취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책 전체의 내용은 바로 그와 같은 의도에 맞게 철저히 이루어져 있다. 초반에는 다윈의 '자연선택론'을 통하여 진화라는 것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전작에서 했던 것과 같이 진화라는 것이 오로지 유전자에 의한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을 깨뜨리는 것에 집중한다. 그는 유전율이란 개념을 드는데 유전율이란 유전으로 결정되는 비율을 나타내는 지수를 말한다. 우리는 흔히 머리가 나쁜 부모에게 머리가 나쁜 자식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부분 자식의 형질은 부모가 물려주는 유전자로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가장 많이 드는 것이 '일란성 쌍둥이'이다. 모든 것이 똑같고 모든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는데도 일란성 쌍둥이는 전혀 같지 않다. 그러므로 인간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에얼릭은 반론을 제기한다. 그것은 유전율을 너무 낮게 잡았기 때문이라고. 유전율을 낮게 잡았다는 것은 관찰 대상의 환경을 단순화하고 오로지 나타난 형질만을 보고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에얼릭은 유전율을 높게 잡았을 경우 그러니까 그 쌍둥이들이 살아온 모든 과정을 세세히 밝히고 그 와중에 점차적으로 형성되어온 모습들을 두루 살핀다면 유전자 말고도 거기엔 환경의 영향마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작용했음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실제 높은 유전율을 적용한 경우 지금은 '일란성 쌍둥이'에게 있어 상이한 차이는 환경의 요인 역시 작용함이 드러났다고 한다. 그렇게 에얼릭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지만 자주 잊는 것, 그러니까 인간이 태어날 때 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人間)'이란 한자의 뜻 그대로 사람이 사람과 그를 둘러싼 환경과의 꾸준한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는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렇게 환경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중반에 가서는 우리 인간의 지배가 지구 전체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앞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마치 촘촘한 그물처럼 얼마나 밀접하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보았다. 때문에 마치 너무나 정교하게 쌓여있어 그 어느 한 조각이라도 빼내면 그대로 허물어질 것 같은 블록들 처럼 인간의 개입이 자칫 잘못하여 그 어느 하나라도 잘못 건드린다면 어떤 파국적 결과가 초래될지 모른다는 생각부터 앞서게 된다. 바로 그 생각 그대로 에얼릭은 인간의 저마다의 욕망과 편리를 위해 또는 보호의 명목으로 자연에 인위적으로 손을 대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특히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험 '바이오스피어 2'가 그렇다. '바이오 스피어 2'란 '바이오 스피어 1'인 지구의 생태 환경을 그대로 인공적으로 복제한 실험을 말한다. 모든 과학자들이 실제 생태계 환경을 정확히 복사하여 인공적인 생태계를 복제하였지만 그래서 그것 역시 지구 생태계 처럼 완벽하게 흘러갈 줄 알았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발생했고 그리하여 결국 '바이오스피어 2'의 생태계는 파괴되어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실험의 실패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제아무리 예측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자연이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 전체는 그러한 인간의 예측을 가볍게 넘어선다는 사실이다. 즉 인간은 자연 앞에서 여전히 예측 불가능성과 통제 불가능성의 운명에 빠질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하니 인간이 보잘 것 없는 계산과 기술로 오만하지 말아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바로 그 얕은 계산과 오만함이 결국 어떠한 결과를 불러왔는지 가장 우리에게 살갑게 다가오는 예가 각 나라들이 저마다 닥친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외국으로 부터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동물이나 곤충들을 수입해 오는 사례이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에서 들여온 황소개구리가 우리 고유의 생태계를 모조리 망쳐 문제가 된 적이 있지만 그게 비단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에얼릭은 호주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들이 그런 식으로 해결하려 하다가 받았던 엄청난 피해들을 보여준다. 단순한 계산으로는 자연의 가장 작은 부분 조차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한 실패가 자주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얼릭은 그 이유로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생태계라는 거대한 매커니즘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생태계'라는 것은 아주 미시적은 부분, 즉 '마이크로 코스모스'라고 불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부분 조차도 서로가 아주 밀접하게 엮이어진 거대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때문에 어느 하나에 개입하면 당연히 되먹임(피드백)이 일어나며 그것이 너무나 촘촘히 엮어진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일인지라 그 어떤 변수가 작용하여 그 어떤 결과가 불러올지 예측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나비 효과'와도 같다. 미국 LA에서의 나비의 날개짓이 중국에 폭우를 불러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경로를 통해 그 모든 결과가 일어나는지 파악하기란 실로 불가능한 것이다.
'환경은 거대하다' '진화의 종말' 후반은 마치 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다. 인간의 의식과 역사 조차도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될 만큼 중요한 환경.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얼마나 작고 쉽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 에얼릭은 그러한 우리의 교만과 호기를 통렬하게 비웃는다. 자연 자체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조차도 긴밀하게 엮이어져 있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의 캐시미어에 대한 호감이 중국의 황사를 증가시키고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사람들 마저 기관지염에 빠뜨리는 것 만큼이나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 조차 어떤 결과가 닥쳐올지 전혀 모르는 지경인데도 우리는 그 '되먹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목전의 이익만을 집착한 채 무분별하게 환경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적 요인을 중요하게 생각함은 무조건 삽질 부터 할 것이 아니라 그 삽질을 하기에 앞서 그것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충분히 따져보고 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말이다. 왜냐하면 환경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 자체가 그러하니까, 즉 하나의 거대한 맥락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많은 상호작용을 단순화하고 관련된 것만 보아서는 다가올 결과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인간의 지엽적인 눈으로 보자면 자연은 늘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위에서 지긋이 내려다보는 어른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에얼릭이 더 선호하는 건 환경을 보호하고 싶다면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하나의 얼룩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종점이 아니며 비록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서 느낄 수도 없는 느린 속도라 해도 스스로 치유해나가고 있는 하나의 과정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에얼릭은 우리의 조급증을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분히 기다리지 않고 함부로 손을 대어 인간의 의지와 기술을 들이민다면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그저 학대에 지나지 않을 것임이, 읽고 난 지금엔 그렇게 생각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의 통념이라는 것이 또 얼마나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지 똑똑히 깨닫게 된다. 따라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아는 것,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에얼릭의 논지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그동안의 통념이 다만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질책하는 것이라 아프게 다가온다. 그 통념으로 인해, 우리가 알았든 알지못했든 그동안 지구는 우리로 인해 많은 아픔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지구까지는 생각할 것 없이 지금 우리의 국토 또한 그러한 것이다. 강의 물줄기를 함부로 바꾸고 인위적으로 막고 돈을 위해 강바닥을 사정없이 파내는 등 정말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펀치를 사정없이 자연에다 날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면 개발이라는 것이 불러오는 것은 오로지 생태계 전체의 파국 밖에는 없다는 에얼릭의 호소가 그렇게 절절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겸손과 배려가 타인에게 만이 아니라 자연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가져야 할 태도임을 다시한 번 깨닫는다. 그것이 에얼릭이 원제에다 정말 전하려고 했었던 진심, 그러니까 지배자로서 인간이 생태계에 대해서 짊어져야 하는 책임에 걸맞는 자세이기도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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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대학시절 교수님께서 수컷모기에게 불임시킬 수 있는 개발된 약물을 살포하면 정글속의 모기가 모
두 불임이되어 모기가 전멸할 것이란 소리를 듣고 순간 모두와 함께 좋아한 적이 있었다.
졸업후 한참있다 라디오에서 그런다 모기를 전멸시키는 물질을 살포한다고 나중에 그 뉴스가 끝날무렵
소수의 의견중 그러면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보도를 접한다.
모기나 쥐는 우리에게 얼마나 성가신 존재일까 그렇다면 그들을 먹고사는 그 윗단계는 그렇게 올라가다
보면 모기를 죽임으로써 결국엔 사자도 사라지게 된다는걸 알았을때 그때 환호하던 내 모습과 라디오에
서 말하던 방송이 얼마나 어리석었다는걸 알게되었다.
이 책은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라고 자신있게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인간의 모든 행위와 역사가 이해가된다.
중학교 역사시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그런데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
면서 예수안믿는 사람에 대해서 한심하다는듯 말씀을 하신다 앞뒤가 안맞는다 우리도 앞뒤가 안맞는 삶
을 사는건 아닌지 나치나 백인우월주의자도 결국엔5만년전에 흑인에서 갈라져나왔다는말에 여러저서에
서 지적한 것처럼 비타민D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란걸 안다.
한 번 생각해본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천년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천만년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천년후엔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천만년후엔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인구는 우리조상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로 1,000배가량 늘었다.
페이지310 사람이 한명 늘어날 때마다 갖추어야할 조건들이 있어 생태는 점점더 파괴를 면할수 없다.
페이지 320 한번 사라진 종은결코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나라를 보아도 여우, 늑대 ,호랑이등등 사라진게 어디 한두가지인가
대체종이 진화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기간은 일반적으로 수백만년의 단위로 측정된다.
미국이 정의를 그렇게 강조하면서 세계환경에 관한 협약엔 자꾸 빠지나했더니 미국 인구는 세계인구의4.5%밖에 되지 않지만 세계 에너지 소비의 20%이상을 차지한다. 였었다.
페이지 357의 페루 카네트 계곡의 재앙 76 꼭 기억해야할 말이고 나도 군대있을때 과수원에서 농약을 치는걸 매일 목격을했는데 일주일에 두 번씩 큰드럼통에 여러가지 농약을 섞어 마구 뿌려댄다 그러니 토양이건 익충이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물론 기술은 우리를 구하는데기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류를 가장 먼저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그러한 기술일 것이다
이 책은 진화는 일정한 방향이 아닌 생물 상호간의 선택압에 의해 진화의 수순을 밟는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해주었고 우리가 약간의 생활습관을 바꾸기만해도 우리의 환경을 다시 살아난다는 희망섞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할 이야기는 많지만 이 책의 개요는 인구폭발로 인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위를 넘었다는게 요지인것같다.
농업혁명이 일어나 식물과 가축을기르기 시작한 약 1만년전까지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인구는 겨우 500만명에서 1,000만명 정도였다.
그리스도시대에는2억5천만명에서 1억5천만년정도
1650년경에는 전세계 인구가 5억명
1850년경엔 10억명
세계인구는 1930년에 20억
1950년에 25억
1960년에 30억
1850년에 10억명에서 2008년에 67억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50년에 세계인구는 100억명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 예상되는 인구증가는 거의모두 아프리가나,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일부개발도상국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나 몇몇 중동국가처럼 급속한 인구증가 현상을 보이는 국가에서는 총출산율이 5명에서 8명이나 됨에 따라 15세미만의 어린이들이 인구폭발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
김혜자씨가 텔레비젼에서 나와 이야기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맞는 말이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이야기는 꽃을 멸종시키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든다. 무슨이야기냐
선진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비산업국가에 '사망억제'기술을 수출했기 때문에 인구는 지금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들이 활동하고 먹고살기 위해선 생태에 손을 댈수 밖에 없다 돕기전에 가족계획 프로그램도 같이 수출해야하는게 도리인데 우리는 그걸 잊고 있다
정글탐험 프로그램이 요즘 병만족장님의 지휘하에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다 비슷한 프로그램이 다른 채널에서 했는데 인도네시아 정글부근에서 부부가 아이들을 12명 낳아서 키운다 그리고 이것이 그곳의 추세이다 그럼 스스로 계산을 해보자 그들에겐 사망억제기술만 있지 가족계획프로그램은 없다
우리는 지금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걸 감지를 못할뿐이다 개구리가 냄비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듯이...
쓸데없는 기술적 손질보다 훨씬 더 필요한 것은 문제에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가져다 줄 사회 변화이다.
세계는 마르크스,밀,슘페터,케인스와 같은경제학자들이 모두 검토했던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답을찾기 위해 조만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설령 이러한 조치들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인구과잉, 경제적 불평등, 환경의회복력 쇠퇴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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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전 역사를 통틀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종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라면 누구나 우리 인류 자신을 첫손에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증에는 기후나 환경적인 요인은 배제하는 말이지만. 지구가 생성되고 첫 생명체가 탄생하고 이어서 무수한 시간과 환경 변화에 자연선택되어 온 지구상의 모든 생명종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자신 만큼이나 나름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말의 의미는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호모사피엔스나 아메바나 별반 큰 차이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인류를 제외한 그 어떠한 생명체와 비교 대상선에 오른다는 자체가 어불성설로 여기고 있으며 우리를 제외한 여타 생명종을 당연히 지배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지구라는 행성 자체 역시 그 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진화의 종말>는 지구(환경)와 이 행성속에 살고 있는 생명종를 지배하고 있는 인류에게 진화의 종말 끝에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서술이다. 진화생물학자인 에얼릭 부부는 현재 인류라는 종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지구환경계와 타 생명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 왔으며 향후 이러한 방향으로 진행 된다면 어떠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유전학,진화,생태학,기후학,경제학,국제정치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찰하는 보고서로 상당한 파문을 불러올 것으로 보이는 책이다.
그동안 지구상에 수 없이 많은 생명종이 탄생했고 이와 반대로 수 없이 많은 종이 멸종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진화는 한 종 내지는 개체군에 한정돈 범위를 지칭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진화는 지구환경이라는 변수(어감상 통제 가능한 말처럼 느껴지지만 지구환경이라는 변수는 그 어떠한 종도 통제할 수 없는 불변의 변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에 의해 자연선택되기 마련이고 지구환경과 어떻게 조화롭게 협상(혹은 순응)하느냐에 따라 종과 개체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한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실례는 진화론적으로 굳이 일일이 열거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인류를 비롯한 현존 하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지구환경과 적절한 형태의 교감을 이루고 있기에 종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지구 역사상 5차례의 커다란 협상 결렬(멸종)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폐름기의 대멸종과 6500만년전 백악기때의 대멸종은 바로 지구환경이라는 변수가 생명체의 진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여타의 종과는 사뭇 다르게 진화의 방향을 설정했고 거기에 대해서 단 한 차례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성장해왔다. 인류 만큼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종도 없을 것이다.(지구역사상 생존해온 시기를 비교해 보면 그 성장속도는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 대륙을 비롯하여 인류가 대약진(고향인 아프리카에서 전대륙으로 이동하는 시기) 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어떻한 방해도 없이 자신의 영역을 지켜왔던 대형포유류가 순식간에 인류에 의해 멸종했고 수많은 종들이 인류의 출현과 더불어 지구상에서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물론 혹자는 이러한 현상도 진화의 큰줄기속에 해당될 수 밖에 없다고 할 수 도 있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게 되면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명멸했던 종들중에 지구환경의 급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경우외 타 종의 출현으로 멸종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에 그 심각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물론 인류의 생존(의식주)에 직접적인 영향으로 멸종된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생존의 차원을 넘어서서 고상한 삶의 질을 위해 희생되는 종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타 종의 멸종을 불러 일으키는 지구환경이라는 대싸이클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점이다. 무분별한 개발으로 인한 지구환경의 파괴는 결국 인류를 감싸고 있는 보호막의 해체와도 같은 것이지만 아직도 이에 대해서 우리는 그 심각성을 피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절대변수인 지구환경도 우리의 뜻대로 조절 통제 가능하다는 착각이라도 하는양 그때 그때 땜빵질 같은 임시방편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지구온난화라는 표현을 많이 써왔지만 저자들은 이 말은 이제 용도 폐기해야 하는다고 한다. 이제는 온난화의 단계를 넘어서 가열화의 단계로 접어들었고 조만간(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를 겪게 된다고 보고있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인류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면서 순환과정을 거쳐 폐름기이후의 대멸절을 가져올 개연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다름 아닌 우리 인류라는 종이 화려하게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인류탄생과 더불어 진행되어온 인류의 진화와 그에 따르는 여타 종들의 변천 그리고 지구환경의 변화를 고찰하면서 인류가 지구환경과 여타 생명종(자연자본과 용역으로 저자는 표현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보고서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는 지구환경의 현주소와 미래의 예측은 가히 대재앙을 방불케할 정도로 암담하기도 하다. 지구온난화를 넘어서 지구과열화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심각해지는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그동안 환경이나 진화론적인 견지에서 바라보았던 문제들을 경제학,국제정치학,사회학의 분야를 총동원하여 종합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는 점이 기존 환경관련 서적과는 차별화된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동안 환경운동이라면 대표적으로 NGO를 연상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개념을 뛰어 넘어서 정부정책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이슈집단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실천방안등을 담고 있어 실천적인 문제에서도 상당하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구 역사상 가장 우수하게 진화되었다고 자부해왔지만 실상 가장 우수한 종이 지구내의 여타 종을 멸종시키고 더 나아가 지구라는 행성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태에 놓여있다. 결자해지라고 우수한 종인 인류가 풀어야할 숙제는 지금부터 상생하고 공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길만이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서 두발 뻗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자체도 우리만을 위한 극히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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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더 이상의 인간의 지능적 진화는 끝났다는 학설을 접한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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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부부인 저자들은 <진화의 종말>에서 인간이 이 행성에서 ‘지배적 동물’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바탕으로 그 인간이 이 행성에 저지른, 저지르고 있는 일들을 고발하고, 나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진화의 종말>은 원제 “The Dominant Animal”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을 준다. 물론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의 환경보고서’라는 부제가 이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설명하지만 ‘진화의 종말’이라는 제목은 적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나는‘진화론의 종말’ 쯤으로 오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 지구 상에서의 생명의 사라진다는 의미의 ‘진화의 종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게 과연 진화의 종말이라고 해야 옳은지 갸우뚱거려질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저자는 진화와 인간을 중심으로 지구의 보존에 대해서 열을 올리기 때문에 바로 인간이 ‘지배적 동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의미하는 제목을 붙였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부분에서 진화학자의 면모를 보이는 저자들이 뒷부분으로 가면서는 완벽히 생태학자로, 그리고 생태학적 정책 제안자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뒷부분이 저자가 이 책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임에 분명한데 왠지 뒤로 갈수록 재미가 없고, 한 말을 또 하고, 또 한다는 느낌이 든다. 말하자면 ‘지당한 말씀’의 반복이 주는 지루함인 셈이다. 반면에 앞부분의 상대적으로 짧은 진화학자로서의 면모는 기존의 진화학의 발전을 간략히 서술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함으로써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 가지 형질에 작용하는 선택이 다른 형질도 변화시킨다는 것을 몇 가지 예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진화에 관련한 책을 적지 않게 보았음에도 강조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 이러한 진화의 특징은 한 가지 특징만을 선택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류가 지구상에서 어떤 한 가지 (의도상으로는 선한) 행동이 다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할 수도 있는 것으로 저자들에게는 아마도 중요한 개념인 셈이다. 그래서 (특히 요즘 들어) 자연선택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얘기되는 인간의 수많은 행동 특징들, 이를테면 강간이라든가, 부자와 결혼하기 같은 것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까지 나아가 요즘 유행처럼 읽히는 진화심리학이나 진화문화학에 대해 분명한 반대 의견을 표시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재미있지만 사실은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발견하는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문화적 진화로 바라본 역사’에서 피력하는 ‘문화적 진화학’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는 역사는 기본적으로 문화 진화학이거나 혹은 그것을 포함한다고 보고 있는데,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플루타르크 같은 고대의 역사가들을 그러한 문화진화학자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문화계의 멘델’이 등장하여 문화적 변화의 메커니즘, 즉 비유전적 정보가 어떻게 다양한 사회적 생물물리학적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오늘날 우리를 지구의 주인으로 만들어냈는가에 대해 통합적인 이론을 개발”하였으면 하는 기대를 나타내는데, 따라서 이 부분은 아직은 가설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가설이기에 신선하고 재미있는 부분이다. 인류가 너무 많고, 너무 많이 쓰고, 너무 잘못된 것을 쓰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 새롭지 않다. 그걸 또 다시 읽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꼭 그래야 한다는 답을 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그러나 진화학자가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인류와 지구의 문제를 어떻게 고민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그래도 읽어보고 같이 고민할 수는 있는 책이다. (2011.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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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술 발전까지 더해져 무거운 하중이 지구를 짓누르고 있다. 그 무게에 압도되고 있다. 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리켜 종종 '인류의 곤경'이라고 일컫는다. - 여기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된다- 을 유지하는 너무도 널리 스며들어 있어서 정말 인상적이기까지 했다. 그렇더라도 다른 사회에 비해 특히 더 병들어 있는 사회가 있다. 다른 사회에 비해 더 많이 존재하는 사회다. - 로버트B.에저튼 현재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류는 스스로를 생태학적 올가미 속으로 밀어 넣었다. 문제에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가져다 줄 사회 변화이다. 해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 자신과 생물 세계의 모든 존재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데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대책도 제시해주고 있어 읽어내려가기만 했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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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 두고 전업주부가 되며 근 3년간 공부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나인데, 전공서를 방불케 하는 자태에 살짝 긴장하기도 했지만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깊은 감동의 물결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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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소설책 위주로 독서 편식을 하다가
책의 제본과 판형,번역상태등은 흠잡을데 없다고 봅니다.
책은 2008년에 최초 출간된 모양인데 지금 읽어도 하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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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검색하고 자동차로 직장까지 편안히 갈 수 있게 된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이다.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으면 그 방향을 알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 과학기술의 발전의 이면에는 산림파괴,대기오염,토양오염,각종생태계 파괴등이 뒤따랐다. 이러한 파괴중에는 우리가 아직 그 파괴의 문제점과 영향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고, 연쇄적으로 한 파괴가 어떤 식으로 우리 인류에게 보복할지 모른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뜻의 호모사피엔스는 지능과 노력으로 자연을 지배하는 정복자적 위치에 올라섰으며 지구를 멸망시킬 정도의 능력까지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침반 없이 사막에서 탐험을 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 있듯이, 과학기술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지닌 호모사피엔스가 생태계적 성찰을 하지 않고, 이익의 극대화만 바라보고 자연을 이용한다면 자연과 인류모두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빠질 수 있다. 이 책은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이 유전적 진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얻은 정복자적 위치가 생태계에 대한 고려없이 계속 진행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를 말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진화에 관계된 책은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어떤 진화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호모사피엔스가 되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 있지만, 이 책은 호모사피엔스 상호간 또는 호모사피엔스와 생태계와의 관계도 따져보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인간도 결국 지구 생태계라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시스템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에 변화가 생길 때 시스템 자체도 붕괴되거나 변화할 수 있다.인류가 인류의 복지와 편리를 위해, 공장을 가동하고, 그 공장을 돌리게 위해 자원을 개발하는 동안에 생태계를 구성하는 각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 산림자원을 파괴함으로써 그 산림에 살던 원주민의 문화가 파괴 될 것이다, 산림이 없어짐으로써 그 산림이 담당하고 있던 홍수예방, 대기오염물질 정화등의 기능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산업활동에서 나오는 각종 폐기물들이 정화가 되어 버려진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완전정화가 되지 않고, 소각되거나 바다에 투기한다. 소각되어 나오는 각종 해로운 성분이 대기를 점령하고 대기는 바람을 따라 전세계적으로 확산된다.그 대기의 해로운 성분은 비를 통해 육지에 침투하고 이 것은 토양오염과 식수오염을 초래하는 것은 뻔하다. 또한 바다에 투기된 산업폐기물은 어느 정도 까지는 바다가 자정작용을 거쳐 그다지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겠지만 그 것이자정작용의 한계를 넘게되면 아주 무서운 결과를 나을 수 있다. 바다속의 폐기물을 작은어류나 플랑크톤이 섭취하고 그 작은어류나 플랑크톤을 다른 어류들이 먹게 되면, 먹이사슬 상층부로 갈 수록 그 폐기물의 생물농축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그 먹이사슬의 맨 상층부는 우리 인류인데, 인류가 그런 어류를 지속적으로 먹게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해도 끔직한다. 태평양에는 어마어마한 면적의 쓰레기섬이 있다고 한다.그 쓰레기섬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것처럼 바다속 폐기물의 농도가 커진다고 생각하면 이 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들이 아무런 브레이크 없이 진행된다면 지구라는 시스템은 죽음의 시스템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정복자적 위치에 오르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선택과 고민을 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그 선택과 고민을 이익의 극대화가 아닌 생태계와의 조화를 생각하며 나아가야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연을 이용하고 거기서 이익을 얻어내야 할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인식을 바꾸어 인류와 자연 생태계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하나의 소실이 다른 쪽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호모사피엔스와 생태계와의 공생의 출발점이 만들어 질 수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진화란 인간위주의 진화가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포괄하며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머지를 무시한 채 인류가 진화를 거듭한다면 나중에 만나게 될 진화는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