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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본 '대중예술과 예술 무정부주의'
"예술을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본 '대중예술과 예술 무정부주의'" 내용보기
이 책은 내게 세 개의 단어로 남았다. '후까시'와' 주눅' 그리고 '북극성'. 이 세 단어는 예술을 대할 때의 우리의 자세를 비근히 보여준다. 그래서 우습기도 하고 조금 애처롭기도 하다. 예술을 대할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든다. 재미라도 있으면 자연스런 감정 표현이라도 하련만, 재미조차 없을 때는 자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표징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
"예술을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본 '대중예술과 예술 무정부주의'" 내용보기

이 책은 내게 세 개의 단어로 남았다. '후까시'와' 주눅' 그리고 '북극성'. 이 세 단어는 예술을 대할 때의 우리의 자세를 비근히 보여준다. 그래서 우습기도 하고 조금 애처롭기도 하다. 예술을 대할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든다. 재미라도 있으면 자연스런 감정 표현이라도 하련만, 재미조차 없을 때는 자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표징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폼을 잡게 된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그 폼 잡는 행위를 박성봉은 후까시라 했다. 그런데 예술 작품이 재미있거나 자신의 눈을 뜨게 했을 때 그는 북극성이 떠올랐다고 표현했다. 이 세 단어에 외에 어떤 단어가 더 필요하랴. 이 핵심 키워드들을 잡고서 나는 책을 읽었다.

책의 도입부부터 '후까시'가 등장한다. 하고 많은 단어 중 박성봉은 왜 일제 시대의 잔재를 드러내는 말을 넣었을까. 욕 먹기 딱 좋은 말 아닌가. 다른 말은 없을까 생각해 보아도 그 느낌을 표현할 대체어는 없는 것 같다.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후까시란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예술 작품을 대했을 때 일체의 감흥이 일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 그랬을 때 후까시를 잡아줘야 한다. 밀리지 않아야 하니까. 후까시를 잡고는 내가 그렇게 함부로 대할 만한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는 태세를 취해줘야 한다. 후까시는 예술이 편하지 않아서 잡는 것이다. 그래서 후까시에는 평범한 일상인의 비애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예술 앞에서 허세와 비애는 이음동의어가 된다.

예술에 '주눅'이란 솔직한 느낌을 넣은 것 또한 내게는 흥미로웠다. 주눅은 호텔의 로비에 들어서면서부터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눅들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허리를 꼿꼿이 펴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을 위한 작품인 예술에 주눅 드는 것이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인간위에 득세하는 예술 작품이라니, 거기에 우리가 주눅까지 들어야 한다니. 그 사실을 박성봉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그래서 주눅과 후까시는 형제어다. 주눅 들면 후까시가 뛰어나가 방어해 주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이란 형제어에 대항해서 말이다.

드디어 박성봉이 무섭게 미는 '북극성'이 나온다. 예술을 대했을 때 개안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 받았을 때, 전율이 일거나 때론 대상을 창조해 낸 사람과 내 마음이 일치했을 때의 상태를 박성봉은 북극성이란 말로 표현했다. 예술의 궁극적 목적은 이런 북극성과의 만남에 있다. 예술이 예술에 대한 봉사가 아닌 인간을 위해 봉사했을 때 인간에게 주는 놀라운 정서의 고양이야말로 예술의 진정한 목적일 것이다.

그런 예술을 만나게 해주는 교량 역할을 이 책은 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이 다루는 주된 제재는 대중예술과의 만남이다. 우리가 주로 접하는 것은 대중예술이지 정통예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예술과의 만남에 결코 주눅들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 박성봉은 이 책을 펴냈을 것이다. 감흥이 일지 않았을 때 후까시를 잡을 필요가 없다는 말도 하고 싶어 이 책을 냈을 것이다. 예술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감정이니 그 감정을 부꾸러워하지 말라고, 그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냐는 말을 하고 싶어 이 책을 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예술을 주관적이라고 말하여 전문가도 결국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자신의 예술관을 펼치는 것임을 굳이 주지시켜준다. 

그는 예술과 관련된 이런 모든 행위들이 실상은 우리 자신을 잘 이해하기 위한 과정임을 말하고 싶어했다. 인간위에 군림하는 예술이란 이름의 모든 것들을 해체한 후 다시 우리의 시선으로 그들을 복원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싶어 이 책을 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시대에 있어서 대중 예술과
그 예술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가 좀 편해지기를, 그래서 예술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안에 가득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라면 이 책은 완벽에 가깝다. 예술 입문서로서 말이다.


d*********2 2011.11.04. 신고 공감 9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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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뽕끼를 깨워주는 [예술무정부주의]
"내 안의 뽕끼를 깨워주는 [예술무정부주의]" 내용보기
예술하면 헉 ! 하는 거부감이 있는 그저 나는 일반인이다. 예술무정부주의, 무척 어렵게 들리는 이 책은 박성봉교수의 대중예술 강의모음집이다. 이책은 나같은 일반인이 예술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해 주는 동시에 시대의 변화속에서 예술의 의미 또한 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럼 우선 저자가 말하는 대중예술에 대한 정의를 들어보자.대중예술이란 문화 권력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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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면 헉 ! 하는 거부감이 있는 그저 나는 일반인이다. 예술무정부주의, 무척 어렵게 들리는 이 책은 박성봉교수의 대중예술 강의모음집이다. 이책은 나같은 일반인이 예술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해 주는 동시에 시대의 변화속에서 예술의 의미 또한 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럼 우선 저자가 말하는 대중예술에 대한 정의를 들어보자.대중예술이란 문화 권력을 갖고 있는 누군가에 의해 예술 동네의 변두리로 밀려난 예술입니다.(p17)

 여기서 또 문화권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문화 권력이라는 것은 쉽게 표현하자면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화가의 일반화된 지식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모나리자나 고흐를 보며 정형화된 틀에  나를 맞추어 그림을 판단하게 되는 것처럼 문화 권력이란 복잡한 개념이지만,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나의 것이 아님에도 왠지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게 나에게 행사하는 힘' (p55) 인것이다. 

   예술에 관해 모두가 다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나는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껴안을 수 있다면 말이지요. 이것이 예술을 포함하는 문화라는 말의 올바른 쓰임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예술무정부주의란 이 모든 정형화된 틀안에서 자유로워지는 혼돈의 자유를 추구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예술이란 누군가 정해준 틀 안에 있는 짜 맞춰진 예술이 아닌, 스스로 ‘예술이다’라고 느껴지는 감정이 진정한 예술을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하는데  저자는 그 감정을 ‘북극성이 떳다' 란 표현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와중에 어느새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종의 지표로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무정부의 개념에서  북극성이 뜨는 경험은 무척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입맛이 있듯이 북극성이 뜨는 경험을 누구는 할 수 있고 누구는 북극성이 뜨는 경험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 해바라기의 <사랑으로>가 들을 때마다 내 안의 잠자고 있던 뽕끼를 일깨우지만 젊은 사람에게는 아무 감흥이 없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극성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느끼는 감흥은 틀리지만 나의 느낌을 전달하여 느끼게해줄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예술무정부주의의 개념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내가 '나'를 놓지 않으면서 동시에 '너'와 함께 우리'가 되는 경험인 것이다.

 

근대에서 현대사회가 이르는 동안 많은 개념들이 깨지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다가 현재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예술무정부주의는 새로운 개념의 대두가 아니라 급변하고 있는 사회에서 대중예술이라는 코드에 관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컴퓨터산업의 발달로 게임이라는 분야는 급속한 발달을 가져온 것에 반해 점점 우리가 알고 있는 획일화된 예술에 관한 이미지는 쇠퇴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엄청난 발달은 이제 더이상 정의되어진 예술이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누구나 쉽게 모나리자를 알수 있고 누구나 고흐를 안다. 희귀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나리자 가치는 수백억이 넘는데다가 엄청난 자금을 들여서 예술작품을 보존하려 한다. 예술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에 설치하고 있는 경비만해도 천문학적숫자이다.저자가  모나리자가 죽어야 젊은 예술가들이 먹고 살수 있다는 말처럼 문화권력이 만든 예술은 창조를 막는 동시에 능력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굶겨 죽이는 행위이다.  

 

 강의실에서 만나는 젊은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대화가 되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정의되어있는 예술의 의미가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게임에 친숙한 젊은이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것이 아니라 게임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깨워주는 사회적 장치로서의  예술적접근이 필요하단 사실이다. 예술에 대하여 갑론을박을 할 것이 아니라 과거 300년전 웅변이나 조경이 예술의 한 분야였듯이 게임도 어쩌면 하나의 예술이 되어갈지 모른다는 가정은 모든 것이 과도기인 이 시대에 필요한 시각인지도 모른다. 저자<예술무정부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예술인이다. 내 안의 뽕끼를 일깨워주는 문학이 있고 또는 그림에서 북극성이 뜨는 경험을 하며 음악이 주는 감미로움과 영화가 주는 감동의 세계속에서 내안의 뽕끼가 휘몰아치는 세계, 그 안에서 느껴지는 예술의 진정성이 바로 대중예술이란 사실을 ,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예술이 형성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1.10.27.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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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무정부주의와 포스트모던적 오버의 허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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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봉의 《대중예술과 예술무정부주의》는 한마디로 대중예술에 대한 끝없는 구라의 미학서다. 이 책은 어느 박식한 문화엘리트의 커피숍 수다처럼 다가온다. 자신을 예술주관주의자, 예술무정부주의자, 예술무제한주의자라고 규정하는 저자는 이런 예술한담이 분명 '즐거움의 대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독자로써 이런 식의 한담은 오히려 '고통의 대화'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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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봉의 《대중예술과 예술무정부주의》는 한마디로 대중예술에 대한 끝없는 구라의 미학서다. 이 책은 어느 박식한 문화엘리트의 커피숍 수다처럼 다가온다. 자신을 예술주관주의자, 예술무정부주의자, 예술무제한주의자라고 규정하는 저자는 이런 예술한담이 분명 '즐거움의 대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독자로써 이런 식의 한담은 오히려 '고통의 대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음악, 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입에 담지만 특정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은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물론 이런 '깊이에의 결핍'도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의도에 따른 설정이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이 책에서 제기하는 두 가지 이론적 주장, 즉 '예술무정부주의'와 '충동적 장르론'에 대해서는 좀더 체계적인 접근과 정리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방법론적 무정부주의'를 주창한 과학철학자 파이어아벤트도 적어도 이런저런 인식론적 도그마에 대항하여 자신의 인식론과 방법론을 심화하는 작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해석의 개방성과 다양성만을 원칙적으로 강조하면서 모든 해석이 가능하고 정당하다는 '맘편한 논리'를 전개한다. 

 

저자는 예술에는 그 어떤 올바른 해석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예술무정부주의'를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예술엔 단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얘기다. 예술을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그저 입맛따라, 개성따라, 취향따라 개방적으로 평가하자는 견해다. 그런데 입맛이든 개성이든 취향이든 자기 '필'에 꽂히는 그 무언가를 저자는 '북극성'이라는 상징으로 비유한다. 자연계의 길잡이별 북극성은 단 한 개의 기준이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수용미학의 북극성은 지구별의 인구수만큼 다양하다. 누구나 저마다의 북극성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는 '월인천강'에 대한 저자의 오독(誤讀)에서 잘 드러난다.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기에 저마다의 북극성을 강조하는 저자는 천 개의 강에 비추는 달의 모습을 자신이 강조하는 예술무정부주의의 또다른 이미지로 설정한다. 저자다운 '내맘대로식 해석'이다. 

 

저자의 논리는 많은 허점을 드러내보인다. 먼저 저자가 주장하는 예술무정부주의가 그리 확고하지도 않고 심지어 모순적인 측면도 없지 않음을 지적하고 싶다. 저자 자신도 한편으론 급진적인 예술무정부주의자이자 다른 한편으론 보수적인 미학전통주의자인 자신의 이런 이중적 모순을 인정하고 있다. 저자의 예술무제한주의는 그다지 무제한스럽지도 않고 기존의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묵은 논쟁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커다란 문제점을 드러낸다. 예컨대 포르노그래피는 저자에게 있어서 결코 예술이 아니다. 저자는 문화산업에 대한 자기만의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 가령 포르노그래피에 관해서는 보수적인 미학전통주의자의 입장에서 반대하고, 대중예술에 대해서는 모든 해석이 다 허용되는 예술무정부주의를 들이댄다. '똥'과 '오줌통'이 버젓이 미술관의 예술작품이 되는 오늘날, 포르노가 여전히 예술의 전당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그저 "응어리의 악순환" 운운하며 보수적인 미학자의 시선을 번뜩인다. 내가 보기에 저자의 예술무정부주의는 저자가 말한 의미 그대로의 '사이비'에 해당한다.

 

"나는 가치론적으로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를 객관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잣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치중립적으로 예술은 사회의 약속일뿐이니까요. 300여년전에는 웅변이나 조경도 예술이었습니다. 내 생각에 예술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은 그것이 가치지향적이라는 점입니다."(403-4쪽)

 

앞의 인용구도 저자의 예술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모순된 입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예술이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예술의 중요성은 가치지향적인 측면에 있다고 항변한다. 어떻게 가치를 지향하는 동시에 중립적일 수 있는가? 오줌통이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은 가치지향적이기 때문이고, 포르노가 예술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은 "사회의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서인가?저자의 대답을 듣고 싶다.

 

다음으로, 저자가 이른바 '문화권력'에 대해 커다란 반감을 갖고 있지만 내 눈에 저자는 또다른 의미의 문화권력이 되고 싶은 욕망을 내비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지적하고 싶다. 문화권력이란 문화동네 혹은 예술동네에서 힘자랑하는 엘리트들로, 저자의 ‘동네에서 힘겨루기’ 비유를 빌리면, 고급예술이란 예술동네의 노른자 땅을 독차지한 것들이고, 대중예술이란 예술동네의 언저리 구석으로 밀려난 것들이다. 저자는 이런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묵은 논쟁을 '품끼와 뽕끼'라는 말로 재생산하고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품끼와 뽕끼의 작품은 순전히 주관적인 구분이고, 품끼를 뽕끼로 해석하는 류의 '지나친 해석'을 옹호하는 주장도 이따금 펼치고 있다. 독자들의 코 앞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해석학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일방적인 예술무정부주의 논리를 전개하는 저자가 다소 무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근거있는 오독에 대한 저자의 강변은 "포스트모던적 오버의 허무함"이 무엇인지 내게 생생히 일깨워주고 있다. 

z***a 2011.10.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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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과 예술무정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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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절 공학인증제로 전공 관련 과목만 120학점 들었던 내게 이 책은 재밌는 교양 수업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대학교 시절 교양 과목은 그저 학교에서 채우라는 학점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전공과목 시간표 다 짜고 남는 시간에 맞춰 아무거나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매번 교양 과목 선택은 실패였다. 뭐하나 제대로 얻지도 못하고 앉아 있다 나오는 수업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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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절 공학인증제로 전공 관련 과목만 120학점 들었던 내게 이 책은 재밌는 교양 수업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대학교 시절 교양 과목은 그저 학교에서 채우라는 학점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전공과목 시간표 다 짜고 남는 시간에 맞춰 아무거나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매번 교양 과목 선택은 실패였다. 뭐하나 제대로 얻지도 못하고 앉아 있다 나오는 수업이 대부분 이었는데, 이 교양수업은 참 재밌었다.(물론 실강이 아닌 책이지만..) 교수님께서 내주신 과제를 나도 한번 쭉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낙산사 화재를 접하고 수업을 소재로한 소설을 지어내고, 뽕끼의 절규 탄생만으로도 참여하는 학생들의 재미와 흥미가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런 학생들의 레포트 하나하나 간직하고 이렇게 책 각 장마다 활용을 하시다니 그것만으로도 재밌는 교양 수업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적어도 내가 이 책을 펼치기 전의 대중 예술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part1의 대중예술과 예술무정부주의에서는 솔직히 내가 겁냈던 부분들에 대해 친숙한 단어들로 설명해주고 있다. 대중예술과 무정부주의 관련 개념을 교수님만의 언어로 재밌게 설명해주신다. 특히 품끼의 예술과 뽕끼의 예술에서는 낯선 단어지만 1초만에 친근해지는 그 단어로 인해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에서 품끼와 뽕끼 북극성이란 단어는 중간 중간에 자주 등장하니까 part1을 잘 읽고 나면 대중예술과 예술무정부주의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대중 미술 편에서 p102"폐월이란 말이 있다. 한 마리의 개가 달을 보고 짖는다. 그 한마리의 짖는 개소리를 듣자 여기저기에서 개들이 너도나도 그 짖는 소리에 맞춰 죽어라고 짖어대는 것이다. 자기가 지금 왜 그렇게 짖어대고 있는지, 또 무엇 때문에 짖어야 하는지 그것조차 모르면서 남이 짖으니까 자기도 짖는다는 식이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모나리자가 좋다고 하니까 좋은줄 알지 내가 그 그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면 과연 모나리자를 보고 좋은 그림이야라며 흔쾌히 내 돈을 지불해가며 살 수 있을까? 사실 모나리자를 제대로 보게된 계기도 '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고 난 후부터였다. 그 전에는 모나리자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왜 좋은지도 모르고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좋은줄 알고 옆에서 좋다고 했던것 같다. 폐월.. 조심해야겠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에게도 편견을 갖지 않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관심을 가져야겠다. 

대중만화와 대중 애니메이션 편에서는 솔직히 그 동안 만화 한편 읽어보지도 않았고, 애니메이션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교수님께서 작품들을 얘기할때마다 공감이 간다거나 맞장구치며 좋아할 순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대중만화에 편견을 심하게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만화라고 하면 옛날 어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나도 갖고 있고, 최근에야 누군가가 만화를 읽으면 잡지식이 늘어난다는 말에 '신의 물방울'을 읽어본게 전부이다. 하지만 그런 지식을 얻기 위해 만화를 접한다는 것조차 잘못된 접근이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대중만화와 대중 애니메이션이야 말고 문턱이 낮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분야도 외면만 하지 말고 좀.. 관심을 가져줘야하지 않을까?

대중음악편에서는 정말 한시대를 대표하는게 대중음악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얼마전에 조영남씨가 TV에서 'let it be'를 '내비둬~ 내비둬~'라고 한국말로 번역해서 부르는게 기억난다. 사실 그렇게 한국말로 번역해서 한국가수가 부르니 우스꽝스럽고 그다지 좋은지 모르겠지만 당시 let it be의 인기는 대단했다. 요즘 나는가수다를 통해 숨겨진 많은 대중 가수들을 알게되고 그들만의 음악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점점 똑같고 유행만 따라가는 대중음악 속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가수들을 보면서 적어도 나만의 북극성하나를 띄워볼때가 있다.  

대중문학 편에서 발가락이 꼼지락 거리는 그 기분을 알기 때문에 좋았다. 가끔 누군가가 평가해 좋은 글을 보면서 그들의 생각도 읽어보기도하고, 전문가가 남겨놓은 글을 통해 나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 읽곤한다. 하지만 교수님의 지적처럼 많은 사람들이 베스트셀러에 치중된 독서를 하고 이것은 출판계의 죽음과도 관련된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은한다. 다양한 장르의 문학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 다양한 장르의 문학을 접하기 위해서 이제 서점가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책을 골라봐야겠다.ㅎ  

사실 전자오락게임에 나는 전혀 관심도 없고 나와는 관련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친척중에 프로게이머가 한분 계셨는데 그분 때문에 그런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그 뒤에도 별 관심없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그 분이 친척이라고 하자 꽤 유명한 프로게이머라고 한다. 우승도 몇번했다고..  그렇게 전혀 관심 없어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어린시절 동생과 밤새가며 컴보이를 두들기던게 기억난다. 끝까지 가겠다는 일념하나로 우리는 6시간 넘게 그렇게 꼼짝 않고 앉아서 게임을 즐겼었다. 그때 부모님께 혼나지 않고 컴보이가 버려지지 않았다면 나도 전자오락을 꿈꾸며 전자오락의 북극성을 띄웠을지 모른단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전자 오락도 줄다리기에서 승리하는 날이 오겠죠?      

사람들은 다이아몬드와 금을 좋아한다. 반짝이는 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비싸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좋다고 말하고 점점 몸값이 비싸지니까 자신에게 정작 필요가 없어도 사고 싶어한다. 그래서 보물이란 반짝이는 걸로 정의해버리고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작 반짝이지 못하는 어린시절 소중히 간직했던 로보트나 인형등은 점점 보물로써의 가치를 잃고 기억속에서 사라지는건지도 모르겠다. 대중도 예술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예술이라고하면 뭔가 그럴듯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만 중시여기기 때문에 실제로 자신이 받았던 느낌과는 반하여 표현하는지도모르겠다. 그래서 현재 가까이서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대중예술을 등한시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 내가 만난 예술이 비록 남들에게는 뽕끼일지는 모르나 그속에서 내가 뭔가 북극성을 발견했다면 나만의 예술로 당당하게 표현하고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n*******a 2011.10.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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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과 예술무정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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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이란 다소 모호한 주제를 가지고 현직교수가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입니다. 강의 내용의 모음과 강의하는 문체의 글은 몇 해 전 읽은 신영복 교수의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과 비슷했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을 완전히 달랐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고전을 강의한 신영복 교수의 책이 더 어려울 것 같았는데 평소 예술이란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본적도 많이 없거니와 대중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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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이란 다소 모호한 주제를 가지고 현직교수가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입니다. 강의 내용의 모음과 강의하는 문체의 글은 몇 해 전 읽은 신영복 교수의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과 비슷했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을 완전히 달랐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고전을 강의한 신영복 교수의 책이 더 어려울 것 같았는데 평소 예술이란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본적도 많이 없거니와 대중예술에 대해 생각은 더더욱 해 본적이 없어서 인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쉽게 읽혀짐에도 더 어려운 이중적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술무정부주의자라고 선언한 저자는 예술에 관한한 우리 모두가 옳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판단을 대신할 다른 누군가의 권력은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물리학이나 수학에는 정답이 있을 수 있지만 예술의 영역에서는 정답인 해석은 없으며, 해석에 권력은 있을지 몰라도 정답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중예술은 문화 권력을 갖고 있는 누군가에 대해 예술 동네 변두리로 밀려난 예술이라고 정의합니다. 이해가 쉽게 되는 신선한 대중 예술의 정의입니다.


 미술에서부터 만화, 애니메이션, 음악, 문학, TV, 영화 등 멀티미디어 시대에 접할 수 있는 모든 문화에 대중을 앞에 붙인 대중 미술, 대중 만화 등에 대해 강의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3장 ‘문턱이 낮은 예술 또는 낮은 자세로 다가오는 예술 : 대중만화와 대중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만화책만 보면 꾸중을 하시고 어렵게 모아 놓은 만화책을 갖다 버리는 일도 서슴치 않고 해 오신 저의 어머니께 꼭 한번 권해 보고픈 장이었습니다. 

 대
중예술에 대해 입맛, 힘겨루기, 품끼, 뽕끼, 북극성 등 독특한 어휘로 채워가는 저자는 주관적인 요소를 강조하며 인간이나 말이나 물가까지 끌고 갈수 있고, 절대로 싫다는 말에게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반면, 인간은 물까지는 먹일 수 있지만 결코 맛까지 느끼게 할 수는 없다(p. 171)고 정리합니다.


 전자오락게임에 관해 예술을 이야기하면서 예술무정부주의자이자 예술무제한주의자로서 저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조금은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상당히 공감이 가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특히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저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중 미술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제2장을 마무리 지으면서 한 “모나리자가 죽어야 젊은 예술가가 산다”라는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본 서평은 이벤트 당첨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을 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y********a 2011.10.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난쏘공]대중예술과 예술 무정부주의 - 접하기 어렵던 예술.. 어느날 보니
"[난쏘공]대중예술과 예술 무정부주의 - 접하기 어렵던 예술.. 어느날 보니" 내용보기
난쏘공에 선정되었다. 흔하디 흔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소감을 물을때처럼이나 나는.. '될 줄 몰랐다.' 라며 하지만.. 은근히 기대심리가 증폭되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였는데 되었다..! 그리고 선정 도서로 올라온 목록을 보는데 가장 눈에 띈 책이자 나의 선정도서이다. 참 운도 따라 주는 것인지? 읽고 싶은 책을 먼저 선정하고 생각하는데 아래에 보니 조별로 일구어진
"[난쏘공]대중예술과 예술 무정부주의 - 접하기 어렵던 예술.. 어느날 보니" 내용보기

난쏘공에 선정되었다. 흔하디 흔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소감을 물을때처럼이나 나는.. '될 줄 몰랐다.' 라며 하지만.. 은근히 기대심리가 증폭되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였는데 되었다..! 그리고 선정 도서로 올라온 목록을 보는데 가장 눈에 띈 책이자 나의 선정도서이다. 참 운도 따라 주는 것인지? 읽고 싶은 책을 먼저 선정하고 생각하는데 아래에 보니 조별로 일구어진 내역에 이 책이 포함되어있었다. 될 아이는 되나보다..

강렬한 개나리빛의 노랑 사이로 타이틀과 잘빠진 남성의 실루엣이 적날하게 드러난 표지가 맞대한다. 그 남성의 머리 위론 무엇인가 봉곳 솓아나있다. 적어도 저 무엇이 미키마우스의 귀? 라고 생각하는 자는 나만이 아닐것이다. 인간이란게 유사하다고 인식되어지는 대상은 형태만 보아도 그것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심리적상황.. 더불어 미키마우스의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는 지구상 위의 몇 지식인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생각보다 미키마우스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남반구같은 경우에는 말이다..

내가 유독 이책이 끌어당겼던 이유중에서 나 역시 대중예술에 관심이 많고, 학업이나 미래의 목표가 종합예술대안학교를 세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전공은 인쇄학이다. 상업인쇄에 지금은 몸 담고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비주류 인쇄에서도 창안한 '디자프린팅이너'를 꿈꾼다. 말만 거창하지.. 어찌 보면 팝아트의 선구주자였던 '앤디워홀'이나 망점의 마술사 '리히텐슈타인'의 계보를 이어 나만의 팝아트를 꿈꾼다. 특히나 이야기와 감정이 있는 미술작업을 이뤄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는게 나의 꿈중에 하나이다. 꿈은 이루라고 있는 것이니!..

예술이란 것이 이제는 집앞마당 아니 내방 한 쪽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모 회사에서 만든 우유패키지에는 유명한 명작들이 걸려있다. '피리부는 소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같이 밀접한 우유 외각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그림들의 값어치나 저명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를 처음 접한 아이들이나 사람들에겐 우유표딱지로 처음 그 이미지가 각인 될 것이라는 것을..

이 세상 위의 예술이란게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범위까지 지정하여 이것이 진리며 최고라고 불리우는 행위는 성에 안찬다. 적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인에겐 그 예술은 '먹지도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쓸때없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책을 쓴 저자의 대중예술을 꿈꾸는 것은 짚어낼 수 있다. 다만 곧 이는 없어질지도 모른다지만 적어도 향후 300년 이상은 새로운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그의 표현으로 뽕의 기운을 품은 뽕끼 작품들로 하여금 품의 기운을 담은 품끼작품만이 예술이 아니란 것을 알린다. 쉽게 말하자면 의류 브랜드중 명품이라 칭하는 것은 품끼의 고가품이고, 중저가의 조금은 만만한 브랜드는 뽕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브랜드만 다를 뿐 인간이 걸치거나 사용할 수 있는 활용도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똑같이 의류인 것이다. 그 원천은 섬유이고..

대중예술이라 칭하는 것들을 파트별로 나누어 설명을 있지만, 제시한 예시를 제외하면 이 내용이 저 내용이고 그 내용이 이 내용이다. 그가 말하고 싶은 중점이 하나다 보니 내용에서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그 덕에 그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 되내여 듣다보니 조금은 동화되어진 기분이다. 다만 나도 사람이고 독자들도 사람인지라 그가 생각한 것이 모두다 옳다곤 생각되지 않는다. 중립자의 입장이 아닌 한 개인의 지극적인 예술을 논한다. 얼마전 읽었던 지독히 개인적인 '마광수의 철학수업'이 생각나기도 했다. 적어도 그가 제입으로 예술무정부주의자라고 했기 때문에 작가분이 '아 예술무정부주의자'구나 하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예술에 대해 관대한 아저씨라고 밖에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예시속 학생분들의 과제나 이야깃거리에서 나온 책,영화,만화,미술,게임, 음악 등등에서 나온 여타많은 작품들을 과반수 이상은 알고 보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공감을 일삼는 경우도 많았다. 그의 표현을 다시 빌리자면 '북극성'을 띄운다고 한다. 혼이 깃들여지고 새로운 것에 눈이띄는 내식의 표현으로 하자면 나는 '소울메이트'를 만났다고 한다. 작가가 지향하는 북극성이란 표현이 나에게는 '소울메이트'이다 영혼의 동반자인데 이 동반자가 난 참 많다. 살바도르 달리의 말로도 표현이 힘든 초현실세계들은 나에게 '소울메이트'이다. 그리고 원더걸스의 'Tell me'는 보수지향적이었던 나에게 후크송의 신세계를 선사한 '소울메이트' 음악중 하나이다. 적어도 이 세상에 수 많은 인간이 존재하는 만큼 그 수의 예술사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길다가 앞발레 치인 돌 하나가 어느 누군가에겐 인류의 역사와 지질학을 평생연구의 대상으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특히 그중 우리가 조금 더 접하기 쉬운 코스로 대중예술이 존재하고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닐런지 하며 생각해본다. 시대를 만들어가는 트렌드시터들에게 역시나 대중예술 또한 그들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우리네 많은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같이 슬퍼하고 울음짓게 만든다. 일이해 전 일어난 예술학교 과 통폐합이나 예술학교를 대상으로 등급제를 매겼는데 상대적으로 취업율이 낮을 수 밖에 없는 예대를 최하등급으로 매겨 부실학교로 선정하는 일이 생겼다. 언제부터 대학이란 것이 취업을 위해 존재한 것인지 ? 대학이란 말 자체가 큰 배움을 얻는 곳이 아니던가.. 정해진 시간에 생산적인 활동으로 혹사를 시키려는 이 현실 에 이질감을 느낀다.

훗날 미래에 일이 어찌되어질지 모르지만은 세상의 다양한 분야는 저마다의 입지로 예술로 승화되리라 생각한다. 청춘처럼 아름답고 노고가 담겨진 언어로 표현되는 예술의 이면인 대중예술이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느끼지 않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술로 표현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만큼 예술은 이미 우리에게 많이 다가와있고 정의를 내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도 뒷표지엔 적어도 여성의 실루엣에 토끼귀를 기대했던 내모습은 정상적이지 않았던 걸까..?

t*******3 2011.10.2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여전하면서도 더욱 편파적인 대중예술을 향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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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가장 인상깊게 들은 수업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2000년 겨울에 한국외대에서 들은 박성봉 교수님의 <대중예술론>입니다"라고 아주 또박또박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타대생이 졸업 학점 맞출 목적으로 이름만 보고 선택한 과목에 불과하지만 편안한 인상, 매우 대중 친화적인 입장, 당시 유행하는 대중문화를 꿰고 있는 잡다함까지, 모두 오직 그 수업에서만 느낄
"여전하면서도 더욱 편파적인 대중예술을 향한 시선" 내용보기

대학 때 가장 인상깊게 들은 수업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2000년 겨울에 한국외대에서 들은 박성봉 교수님의 <대중예술론>입니다"라고 아주 또박또박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타대생이 졸업 학점 맞출 목적으로 이름만 보고 선택한 과목에 불과하지만 편안한 인상, 매우 대중 친화적인 입장, 당시 유행하는 대중문화를 꿰고 있는 잡다함까지, 모두 오직 그 수업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함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우연히 갔던 COEX 도서전에서는 특가로 팔던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의 예술>을 망설임 없이 집고 득템한 기분으로 신나게 읽으며 즐거워했었다. 또다시 우연처럼 이 책 <멀티미디어 시대 대중예술과 예술 무정부주의>이 내게로 날라왔고, 역시나 열일 집어 치우고 그간의 궁금함을 해소할 요량으로 읽어대기 시작했다.

책날개의 결의에 찬 듯한 점잖아 보이는 프로필 사진이 눈에 띈다. 강의만 15년 이상 하신 분이니 이제 무게감이 있어 보일만도 할 듯 하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이제 그 옛날 자유분방한 시선이 한 점으로 모였을까 궁금해졌다. 며칠을 낑낑대며 읽은 결과, 시선이 명쾌해지기는 했지만 이론이 명료해지지는 않았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발랄하지만 불행히도 깊이도 여전했다.

글 머리에 적힌 그대로, 그리고 '무정부주의'라는 제목 그대로 대중예술에 대한 입장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이전에 읽었던(혹은 들었던) 내용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천편일률적일 수도 있는 대중예술 중 소수의 몇몇 작품들은 왜 대중의 환호를 받게 되는가', 이 책 식으로 표현하자면 '북극성을 띄우는 작품들의 공통점'이었다. 내심 이에 대한 한 걸음 나아간 논의를 기대했는데, 불행히도 책 내용에서는 찾기가 힘들었다. 대신 전작에 적힌 조지 디키의 말을 빌자면 '어느 대상을 놓고 "나는 이 대상을 예술작품이라고 명명한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 대상은 곧 예술작품이다'라는 예술 무제한주의자로서의 면모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눈에 차지 않는 장르(현대미술이나 연극)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전면에 드러나고 광고와 게임에 대한 논의는 새롭게 등장한다. 또한 충동적 장르론 등 견고하지는 않지만 '독창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장도 곳곳에 나타난다.

그리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언뜻 뻑뻑해 보이는 주장을 밀고 끌기 위해 그간 열심히 모은 대중예술작품을 무차별적으로 들이붓는다. <희생>, <이나중 탁구부> 등 중요한 몇몇은 재탕을 하기는 했지만 예시로 들고 있는 작품들 중 2000년대 초반을 나름 대표하는 작품도 섞여 있다. 그러나 한 작품을 잡고 이론과 연결시키는 대신 여러 작품을 나열하고 있어 이론들과 작품들이 잘 엮여져 있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어쩌면 음성 지원이 되는 듯한, 즉 강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문체로 인해 재미있는 예시만 눈에 들어오고 뻑뻑한 이론은 손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책 내용의 분류는 각론(장르별 분류)로 되어 있는 반면, 내용의 전개는 통론(대중 예술의 논점/이론)으로 되어 있어 전개가 조금 어색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이전 책보다는 분명 주장이 강한 책이니만큼 장르별 분류의 비중을 낮추고 이론을 두드러지도록 편집했다면 좀 더 명료한 내용이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인 '발랄함'을 놓치는 셈이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이 적잖은 나이의 교수님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쌍/박/규'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TV, 책을 말하다"에 <멋지다 마사루>를 추천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비록 2007년까지의 강의 내용을 담은 책이라 극최근의 대중예술작품은 찾을 수 없었지만 수년 간의 강의 내용과 과제물들을 모아 놓은 내용 만으로도 읽는 즐거움을 준다. 다양한 시선들(과제물)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자신만의 북극성을 다시 생각하고, '그림을 거꾸로 걸어놓는' 담대함을 기르는 것도 삶을 재미있게 만드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0****2 2011.10.2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