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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산 신륵사 - 정병삼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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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륵사를 두고 "새로 지어진"과 "미륵"을 함께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뒷부분은 맞지만 신륵의 "신"은 새로울 신(新)이 아니라 신이할 신(神) 자를 씁니다. 이 절은 경기도 여주시 봉미산에 소재했는데, 봉미산을 찾아 보신 분들은 알겠으나 연고 오랜 사찰이 자리할 만큼 고즈넉하고 향취 깊은 곳입니다. 이런 유서 깊은 절이 한반도에는 이루 셀 수 없을 만큼이니 이 땅에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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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륵사를 두고 "새로 지어진"과 "미륵"을 함께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뒷부분은 맞지만 신륵의 "신"은 새로울 신(新)이 아니라 신이할 신(神) 자를 씁니다. 이 절은 경기도 여주시 봉미산에 소재했는데, 봉미산을 찾아 보신 분들은 알겠으나 연고 오랜 사찰이 자리할 만큼 고즈넉하고 향취 깊은 곳입니다. 이런 유서 깊은 절이 한반도에는 이루 셀 수 없을 만큼이니 이 땅에 얼마나 오래 전부터 불교가 민중과 함께 호흡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본래 이곳 여주 땅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일등미를 소출하던 고장이고, 농사가 잘 되고 기후가 순하여 많은 이들이 터잡고 살던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진평왕은 신라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이 그의 종조부입니다. 즉 법흥왕의 동생이 진흥왕이고, 다시 그의 손자가 진평왕이 됩니다. 갓 불교를 공인하여 나라 전체가 불법 숭신의 기운으로 넘쳐날 때 진평왕 역시 자신의 이름을 "백정"으로 바꾸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버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의 부인은 이런 이유로 우리가 "마야 왕후"란 공식 칭호로 기억하는 거고요.

신륵사라고 하여 그 연혁이 오래지 않은 사찰로 착각하는 분들도 있으나 창건에 얽힌 고사 중 원효 대사와 얽힌 것이 있을 만큼 유서가 깊고도 깊은 명찰입니다. 원효 대사는 신라의 삼한 통일 전후에 걸쳐 활동한 분이니만큼, 나라의 수도인 경주와 이곳 여주는 아득할 만큼 먼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이나 오랜 시점에 불교 신앙의 구심점 하나가 마련되어 많은 중생을 제도했으니 생각할수록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이 사찰에는 다층 전탑이 있고, 이 전탑은 모전탑이 아니라 순수 전탑으로서 한반도에서는 그리 흔치 않게 발견되는 종류입니다. 단 몸체를 받치는 기단부는 석재이며, 탑신(塔身)이 벽돌로 되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곤 하는데 이 탑은 고려 시대의 조형물입니다.

반면 다층 석탑도 따로 소재하는데 이것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8층이긴 하나 작은 편이며, 불교를 숭상했던 군주 세조 대에 건립된 우리나라 국보 2호 원각사지 십층 석탑을 그대로 모방하여, 규모마 줄인 채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평가됩니다. 이를 "다층"이라고 다소 모호하게 부르는 건 원형이 정확히 몇 층이었는지 현 시점에서 분명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학대사의 선배 뻘인 혜근, 즉 나옹화상과의 깊은 인연으로도 이 사찰은 유명합니다. 인도에서 원나라로 건너와 많은 활동을 하고 고려인들과도 폭 넓게 접촉한 지공법사와도 교유한, 여말 삼대 화상 중 한 분이지요. 많은 시련을 치르고 문화적 변혁도 큰 폭으로 겪는 한국이라고는 하나 이러한 전통 문화가 오래오래 보존되어 후손들에게도 길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v*****7 2018.02.06. 신고 공감 0 댓글 0